남구 대연4동 일대를 석포라 한다.
동래부지가 발간된 1740년 무렵은 남촌면의 석포리라 하였다.
옛날 석포 마을은 천제등(天際燈 : 부산공고 뒷산 일대)과 전선등(戰船燈 : 부산외국어대학교 뒷산 일대)사이에 있었던 한적한 포구였다. 193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폐어선의 잔해가 수상교(水上橋 : 동국제강 입구에 있었던 다리)부근에 산재해 있었다고 한다. 1950년대에도 비사등(飛蛇燈 : 부산시립박물관 근처)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포구였으며 등하천에 선착장이 있어서 어선이 왕래했다고 한다.
석포리는 돌개에서 온 말인데 지금은 매축이 되어 육지로 바뀌었으나 오래전에는 돌자갈이 많은 갯가가 되어 돌개라 한 것을 한자로 쓰니 석포(石浦)가 된 것이다. 석포에는 한때 수군의 만호영이 있은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태조5년(1396년)5월에 경상도 동래만호 윤형과 석포만호 이의경이 왜선 1척을 포획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때의 석포갯가 언덕이었을 오늘날 석포성당,백합유치원 일대는 전선등(戰船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그 전선등은 수군이 전쟁에 쓰는 전선을 묶어 두는 비탈이었기에 그리 말했을 것이고 그 전선은 석포만호영이 있을 때의 전선(戰船)인 것이다.
첫댓글 홍곡산 아래 돌개마을
남강시장에서 유엔탑까지의 지역
고맙습니다. 덕분에 내고향 역사를 하나하나 배우니.그지없이 좋네요^^ ^^
옛날 돌개 사람들도 얌세이에 대해 잘 알고 있습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