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시작은 ,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의 이름에 걸맞게
승객의 '기적이에요! 기장님 감사합니다"
라는 말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런 감사의 말을 듣는 기장 '설리'의 표정은 몹시 어둡고, 지쳐있다.
바로다음, 설리는 조사팀과의 만남을 가지게 된다.
조사팀은, 항공기록에 의한 데이터베이스와, 이 일은 잘못됐어 라는 합리적 사고에 빠져,
세간에서는 '영웅'이라고 칭하는 설리와 부기장 제프를 공격한다.
하지만, 거기에 설리는 자신의 내적 불안감과 혼란을 감추고, 당시의 자신의 심정을 담담히 고백한다.
" 계산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40년간 수천 번의 비행으로 익힌 고도와 속도에 대한 제 경험에 의지했죠."
"직감에 따랐습니다."
"승객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죠."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실제로도 그랬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155명의 목숨, 실제 설리의 개인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155은 숫자죠, 하지만 그들이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 (생략) 이란걸 생각할 때 그 수는 엄청나게 커졌죠"
가히 비행기의 무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의 책임감 앞에서, 설리는 자신의 '직감'에 의지하여,
허드슨 강에 비상착륙을 하였고,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살렸다.
영화를 보면서 모든 말들이 명대사라 할 만큼, 설리의 말들은 모두 자신의 신념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설리가 악몽을 꾸고, 사람들의 찬사에도 마음 편하지 않았던 그런 모습 조차 나는 너무나 '인간적' 이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다양한 곳에서 수도없이 쏟아져 나오는 영웅물들은 자신의 선택을 단 하나의 길이라고 믿으며,
자신의 행동이 불러온 다양한 결과의 찬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설리'는 비상상황에서는 자신의 직감을 그대로 실행에 옮김에 거침없었지만,
그 일이 끝나고는 매번 고민하고, 고민한다.
내 선택이 옳았는가.
나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았는가.
옳고 그름을 따지고,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하고, 다른 대안을 찾는 행위는 더없이 '합리적'인 사고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직관을 설리가 가지는 데까지, 42년간의 항공기 운행, 조사경험이 이러한 내적인 합리적 고민과,
내부의 반복적인 시뮬레이션에 의해 쌓이고 정교해져 필요한 순간에 날카로운 직관을 발휘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그렇다고 설리가 '합리적' 모델에 의해서 산다는 것이 아니다. 설리는 결코, 행동의 원인을 찾지도 않았고,
그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않았다. 설리는 쉼 없이 나아갔고, 다만, 직관을 성장시켰을 뿐이다.
"뭐든 일어나기 전에는 전례가 없는 일이죠."
영화에서 이 대사가, 한 학기(여름)동안 배운 '직관'에 명쾌한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학생들은 다양한 동영상을 보고 수업을 들으면서 끝없이 질문했다. 왜 '합리적 모델'이 잘못된것인지.
문제해결에 합리적 모델이 왜 맞지 않는지.
수없는 재난 사고에, 합리적 사고 방식으로 예방하고 대처하는 것이 왜 잘못된것인지에 대해
수없이,
왜? 왜? 왜? 하고 질문했다.
결국 그 질문조차 합리적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합리적 모델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비상착륙을 위해 제일 먼저 본 것도, 메뉴얼이었고,
체크리스트 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준비된 상황'에서만 이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죠."
시뮬레이션을 하는 비행기 조종사들이 잘못됐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설리가 한 말이다.
누구도, 설리에게 그날, 그런 상황이 닥칠 것이지, 라과디아 공항으로 회항할 준비를 해라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앞으로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왔던 것은
유사한 일이 있을 수는 있지만, '동일한'일은 아니고, 과거의 일과 지금의 일이 매우 일치하더라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즉, 앞으로 우리가 볼 모든 일이 준비된 상황이 아니다.
이걸 쓰면서 한가지 더 떠울랐는데, 메뉴얼과 체크리스트를 확인하는 그 행위자체도 직관으로부터 시작된 것 일지도 모른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메뉴얼과 지침을 확인하며 되고 되지않고를 판단하는 그 행위조차도 말이다.
결국은 직관이란 그렇다.
허드슨강에 비상착륙하는 그 비행기에 설리가.
"필요한 순간 필요한 곳에 계셨어요."
라는 인터뷰어의 말처럼.
그게 보자면 그 사건의 '설리'는 우리의 '직관'과 같다.
필요한 순간 필요한 곳에 적절한 직관에 의한 판단이 우리를 살릴수도, 우리를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부기장 제프는 이런말을 한다.
"기장님은 지침을 따르지 않으셨어요. 내가 교본을 보고 있어서 알아요. 엔진이 꺼지자마자 보조동력을 키셨는데, 지침상으로는 15번째에 해야할 일이죠. 15번째요. 규칙대로 했다면 우린 다 죽었을 겁니다."
만약에 설리와 제프가 두 엔진이 망가져 추락하는 상황에서 체크리스트를 1부터 약 세페이지에 다다르는 모든 사항들을
확인했다면, 비행기는 도시 한복판에 떨어졌을 것이고, 155명이 아니라, 그 아래에 있던 많은 시민들이 추가적으로 죽는
'재앙'이 되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설리를 가르치던 아저씨는 설리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무슨일이 있어도 비행을 멈춰서는 안돼"
이 말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나에게 다른 메세지로 전해졌다.
"결코 사는 동안 직관을 멈춰서는 안돼."
아마도, 수업을 너무 의식했네, 수업 과제라고 이렇게 끼워맞추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설리는 비행을 하는 동안 직관을 쉰 적이 있을까?
이륙을 하고, 비행기와 부딪히고, 208초동안 비행기가 out of control 되는 동안 말이다.
내 답은 'No'이다.
개인 인터뷰에서 설리는 자신의 일은, 승객들 모두의 안전을 확인할 때야 말로 비로소 끝난다라고 이야기한다.
설리는 비행기에 오르는 그 순간부터, 아마도 정상적으로 샬롯공항에 도착해서 착륙을 하고, 비행기를 내리는 그 순간까지
이러한 긴급한 일이 없었다라더라도 결코, 비행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비행을 하는동안 비행을 멈춰서는 안돼라는 말은, 비행을 하는 동안 절대, 자신이 비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된다라는 말과 동일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비행이라는 것은 수많은 항공 조건, 기상 조건, 인적 조건들을 끝없이 생각하고,
control 해서, 승객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합리적 사고 방식에 의해, 계산하고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일까.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사는 동안, 내가 이 과제를 하는동안, 어떤 말을 하고 쓸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흐름을 따라 정처없이 주절주절 대고 있는 이 순간조차도, 내 직관으로 이 글을 범벅시키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의 직관적 인물은 설리나 제프뿐만이 아니다.
항공기 승무원들이 그랬고, 관제소 직원이 그랬으며, 유람선, 통근배들의 선장, 승무원들이 그랬다.
-20도의 날씨에 차가운 물속에 빠진 사람의 생존율이 얼마나 될까. 따뜻한 항공기에서 갑자기 내려,
겉옷도 없이 강물위 조그만 보트에 올라서야 했던 사람들의 생존율은?
아니, 가라앉는 항공기에서 155명 모두가 살아남 을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가라앉는 배에서 잘못된 판단과 지시에 의해서 목숨을 잃게된 사람들을 보았다.
그 일은 모두에게 상처고 흉터로 남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보며 수없이 만약에.. 만약에라며 비교하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멈출 수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그 일에 대해 만약이라며 가정하는 일은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겠지만.
그런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모두의 올바른 직관에 의한 판단이, 메뉴얼을 뒤로 한채, 긴급한 상황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수행하는 그들이, 그런 '기적'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반대로, 더없는 합리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도 수없이 나온다.
항공운항팀, 정비팀, 생존전문가들, 기자들 등등
수없이 원인을 찾고자 노력하고,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민약'의 상황을 가정하여, 설리에게 죄를 묻고자 한다.
과연 그가 영웅일까요, 사기꾼일까요.
하지만, 그러한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적요소' 의 개입에 의해 그들은, 자신의 wrong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이 맹신하던 시뮬레이션에서 단지 고민의 시간 '35초'를 더하자,
비행기는 처참하게 도시에 떨어지거나 다리와 부딪히며 탱탱볼처럼 튀어 올랐다.
'원인'을 찾아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며, 해결될 수도 없다. 왜냐면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그들의 '왜'라는 질문은 더없이 의미없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최선의 선택, 최선의 실천, 그리고 최선의 결과앞에서
그들은 끝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영화에서의 '문제해결'은 무엇인가.
새들에 의한 엔진고장이 추락의 원인이니까, 지구상의 모든 새들을 잡아 죽일 것인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엔진을 더 단다면? 그것또한 해답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인을 찾고 진상규명을 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그들은 설리의 직관에 의심을 품었을 뿐이다.
우리가 '합리성'에 의해 '직관'을 의심하듯이.
과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절대 그럴일 없어, 직관은 부정확해, 불확실해! 라고 수업내내
직관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교수님의 말에 의심을 가지던 내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이제 슬슬 '미래교육에 대한 시사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미래'
미래란 무엇일까.
미래엔 무엇이 될까.
미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아는 질문이 하나도 없다.
당장 다음날 아침에 무슨일이 일어날지 조차 우리는 모른다.
미래의 교육이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미래에는 무엇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지
미래에는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지
미래의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지
우리는 전혀 예측할 수도 없고, 예측한다 치더라고 그것이 맞으리라 확신할 수 없다.
단지 교육이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을 위해
미래에 새로이 생겨날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닥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직관력' 을 키워줘야 하지 않을까.
직관력이 창의력과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창의력이 크면 클수록, 해당 상황에 대처방법이 수없이 떠오르기는 할 것이다.
또한 나는 직관력이 무에서 뿅 하고 나타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설리의 방식대로 착륙 했던 다른 비행기는 날개가 먼저 떨어져, 바다위를 굴러 아무도 생존하지 못했듯이
결국은 설리가 그것을 실행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면, 결국 설리의 직관은 잘못된것이고, 최악의 결과를 불러왔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수'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교수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그렇게 '배울' 필요가 있을까?
기초교육은 분명 중요하지만, 지금처럼 공식을 가르치고, 그것을 잘 외웠는지, 잘 적용하는지에 대해 묻고 답하게 만드는
이 교육의 시스템은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무얼 '딱' 가르쳐야 한다라는 말은 정확하게 하지 못하겠다.
각자마다 필요한 지식이 다를 거고, 각자의 삶의 방식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살면서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을 써먹을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 미래 교육을 위한 역할이 아닐까.
뭔가 가장 중요한 교육에 대한 시사점은 너무나도 짧은 것 같아서 민망하기 그지없지만,
짧은 내 생각은 이렇다.
영화에서 설리는 이야기한다.
"This is your captain"
사실 이 말은 설리가 아니라, 모든 기장들이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닫으면서 이 말을 가장 마지막으로 임펙트있게 다루고 싶다.
'your'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책임지는 그 모습
끝까지, 생존자들의 수를 누으로 세며 불안해 하는 그 모습이
가장 영웅다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