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소개한 한국영화 추천 10편
1. 8월의 크리스마스(1998)
허진호 감독의 첫 작품이자, 가장 수작이라고 생각하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입니다.
한국 영화를 넘어서 시한부를 다루는 영화 중 가장 독특한 시선의 영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기존의 시한부 영화들은 무척 어두운 편이었습니다. 사실 관객에게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는 방식은
그 편이 더 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무척 담담하게, 한편으로는 약간 밝게 남은 인생을 정리해가는
정원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첫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연출력과 따뜻한 장면장면이 펑펑 우는 일반적인 영화보다 더 마음에 깊이 울림을 줍니다.
DVD로 처음 작품을 접했는데, 재개봉 소식이 들리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가서 본 영화이기도 합니다.
많은 좋은 영화들이 있지만, 단 하나만 추천해봐라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꼭 언급하는 영화입니다.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 번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2. 오세암(2003)
한국 애니메이션 중 으뜸을 골라라는 이야기를 할 때 단연 첫 순위에 올리는 작품입니다.
많이 알려진 오세암 설화를 바탕으로 한 정채봉 작가의 원작을, 약간의 영화적 각색을 통해 훌륭히 구현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워낙 유명하기에 별다른 줄거리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한국적인 풍경, 색채, 이야기구성까지 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비운의 걸작이죠.
원더풀 데이즈와 같은 해에 개봉했지만, 변변한 주목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극장에서 사라져버린 안타까움이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있고, 그 당시 극장에서 봐주지 못한게 너무나 미안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성백엽 감독은 오세암으로 안시 그랑프리 대상을 수상하지만 이후 별다른 작품 활동이 없어서 더욱 안타깝기만 하죠.
펑펑 울고 싶을 때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화이리라 생각합니다.
3. 잉여들의 히치하이킹(2013)
앞선 두 작품이 다소 슬프고 무거운 영화라면 이번 영화는 굉장히 발랄한 영화입니다.
대중영화라기보다는 독립영화 진영 쪽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은 무척 쉽고 친절합니다.
대학을 그만두고 일 년간 유럽에서 체류하기로 한 네 청춘의 모습을 때로는 다큐멘터리같이, 때로는 무한도전이나 일박이일같이,
시작부터 결말까지 무척 흥겹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십대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보는 여행의 모습을 현실과 낭만을 적절히
섞어가며 보여줍니다.
상과 맞물린 소소한 이야기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4. 그 해 여름(2006)
어떤 시대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고난을 겪는 연인들의 모습은 많은 갈래에서 변주되는 오랜 주제입니다. 그 해 여름 역시 한국에서 다소 특별한 시간대인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를 관통하는 사건 속에서 가슴아파야 했던
젊은 연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야기 구성면에서는 다소 허술한 부분도 보이고 완성도가 무척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화면을 채우는 두 배우의
연기력으로 완성도의 부족함을 메꿀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이 아직 안타깝게 남아 있는 분들이라면 무척 아름답게 볼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공포영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서양식의 피튀기는 공포물보다는 동양적인 스산함이 배어있는 영화들을 더 좋아합니다.
기담은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그런 스산함을 잘 살린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1942년 경성병원을 배경으로 세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각각의 이야기를 보는 재미도 있고 그 이야기들이 하나의 큰 그림으로
엮어지는 재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의 색채와 배경이 공포영화임에도 무척 아름답게 묘사됩니다.
그래서 공포감을 더 배가시킨다고 하면 맞을까요.
엄마귀신 장면이 워낙 유명해서 어마어마한 공포를 기대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다 보고 나면 찬찬히 곱씹는 재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기담 이후에 한국에서는 이만한 공포영화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깝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화면과 찬찬히 스며드는 듯한 공포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6. 내가 고백을 하면(2012)
포스터에 있는 배우들은 나름의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배우들이지만, 이 영화 역시 독립영화쪽 진영에 걸쳐 있는 작품,
내가 고백을 하면입니다.
강릉에 사는 여자 유정, 서울에 사는 남자 인성이 서로 집을 바꾸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써 놓고 보니 일반적인 연애담처럼 들리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잔잔함'을 영화로 구현한다면 아마 이 영화만큼 잘 된 영화를 찾기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언가 큰 사건이 벌어져야 재밌게 느끼는 분들에게는
비추천,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화면, 부드러운 색채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보시길 권합니다.
7. 연애소설(2002)
차태현이라는 배우는 한국의 영화시장에서 보기 드문 코미디장르에 특화된 주연배우입니다.
물론 그 외의 모습을 많이 보여준 것도 사실이지만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 과속스캔들의 현수,
최근 일박이일에서의 모습까지 어쩌면 대중들이 차태현이라는 이름에 기대하는 일정 부분의 코미디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배우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가 이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 찾아온 풋풋한 사랑, 오해로 빚어지게 된 감정의 파열 등을 잘 표현했죠.
개봉 당시 평론가들의 반응은 다소 차가웠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나름대로 호의적이었던 영화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만 저 광고문구는 지금 봐도 참 별로라는 생각이 드네요.
8. 파이란(2001)
허진호 감독의 가장 명작을 꼽으라면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질문을 송해성 감독으로 바꾸면 단연 파이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사다 지로의 원작소설을 먼저 읽어서 이게 영화화되면 너무 화면이 비참하겠다 생각했는데,
영화는 무척 고맙게도 여자주인공의 직업을 바꾸는 것으로 약간이나마 비참함을 덜어냅니다.
지금 영화를 다시 봐도 백란이라는 이름과 무척 잘 어울리는 장백지의 모습과 삼류 건달을 그 자체로 체현한 최민식의
연기력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볼 만한 영화입니다.
크게 흥행을 못한 이유가 뭘까 한번씩 의문이 드는 수작입니다. 만약에 보신다면, 혹은 보셨다면 원작도 꼭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드립니다.
9. 그대를 사랑합니다(2010)
한국 영화에서 노년이 가장 아름답게, 그리고 무척 현실적으로 그려진 영화라고 생각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입니다.
강풀 작가의 원작을 들고 야심차게 영화화되었던 작품들이 대체적으로 원작의 느낌을 전부 살리지 못한 것에 비해 이
영화만큼은 감히 원작만큼 감동적이었다 추천드립니다.
한 쌍에게 미끄러운 내리막길이 인생의 모습이라면, 다른 한 쌍에게는 등을 맞댄 부부의 모습이 인생인 이들을 보고
있자면 펑펑 눈물이 나지는 않아도 잔잔하게 마음을 흔드는 느낌이 전달되어옵니다.
겨울에 몸을 데우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영화입니다.
10. 이층의 악당(2010)
막 폭소를 터뜨리지는 않아도 보고 있으면 괜히 실실 웃게 되는 영화 이층의 악당입니다.
결핍된 모녀에게 결핍된 남작가 찾아오며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닥터봉 이후에 정말 오랜만에 만난 한석규와 김혜수의
조합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시종일관 야한 농담과 몸개그가 등장해야 코미디지 하는 분들께는 추천하지 않지만, 해학이라고 하면 좋을 그런 이야기 속
웃음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재밌게 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의 평이 다소 낮은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쁜 틈을 이용해 머리도 시켜가며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로움을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