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백문학』2018년 봄호(통권 71호)
제43회 신인상 시부문 당선
1. 나팔꽃 질 무렵 외 4편
이부형
저녁 노을에 젖어
그림자가 되어주는
담쟁이 나팔꽃
찬바람에
얼굴 내밀고
지는 해에 피고 진다
나팔꽃 질 무렵
무지개 꿈을 싣고
잠이 든 어린 아기
잠든 아기 깰까봐
고운 살결 볼 비비며
쓰다듬는 가을바람
나팔꽃 질 무렵
어린 담쟁이 하나
담벼락에 붙어서
부활을 꿈꾼다
2.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면
앞산 밤나무가
입가에 보조개 지으며 인사를 하고
나뭇잎 다 떨어진 감나무는
가지 사이사이로 낙엽을 바라본다
가을이 오면
여린 가슴을 가진 젊은 아내는
낙엽 밟는 소리에 눈물을 흘리고
거둔 곡식과 자식 생각으로
논두렁 담벼락에 사랑을 수놓는다
3. 어머니가 걷던 고추밭에 서서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
어머니가 걷던 고추밭에 서서
고춧잎을 정신없이 바라본다
옛날에
어머니가 걷던 발길을 따라
고추밭에 서니
고추 따는 아낙네 하나
그림처럼 고요하다
어머니의 땀 냄새가
바람 따라 밀려오고
어느덧 고추밭은 어머니의 향기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4. 찬바람이 불면
찬바람이 불면
장미꽃 한 송이가 냉기에 떨며
속내를 감추고 길가에서 웃는다
지나가는 가을 찬바람 속에
떨어진 낙엽을 머리에 모자 삼고
친구들은 모두
어디에 갔는지
홀로 남아 정원을 지키고 있다
찬바람이 불면
곱게 접어둔 낙엽모자
다음 계절을 위해 내려놓는다
5. 민들레 피는 언덕
삽자루
끝에 물고
활짝 핀 민들레꽃
메마른
울창한 숲
원하는 맘 가득해
더 높이 더 멀리 날고파
노란 머리 휘날리며
바람에 몸을 맡긴 민들레꽃
푸른 소망 담고서
풍차 바람 따라 시집간 내 누이
누이 떠나 젖은 눈물
길가에 눈송이 꽃 되어
고향 산천 언덕에
민들레꽃으로 피었다
<당선소감>
온기가 사라진 싸늘한 대지와 사랑이 식어버린 인간의 마음 속에 작은 꽃을 피우고자 애쓰는 이들에게 희망과 안식을 주고 싶어 교회의 모퉁이에 있는 영안문학 동아리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메말라가는 상한 심령을 문학으로 선교하며 치료할 수 없을까. 고민하고 길을 찾고 있을 때, 깊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진주처럼 다가온 시를 만나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문학이란 것이 너무나 멀게 여겨지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나에게 "생활 속에서의 시"를 만나게 해 주시고, 시 쓰기가 좋아 펜을 잡았지만 방향을 몰라 방황하는 나를 이끌어주신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화백문학으로부터 시인으로 등단되었다는 한 통의 메시지를 접하는 순간 너무나 기뻐 머릿속이 흰 도화지처럼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작고 부족하기만 한 제가 이렇게 큰 선물을 받아도 되는지, 나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면서 먼저 화백문학 김광길 발행인과 심사위원,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문학을 좋아했지만 주변의 환경이 여의치 않아 살아가는 목적에만 정신없이 걸어가다가 어느덧 중년이 되었습니다. 부족하지만 품어 주시고 안식할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신 화백문학 선배님들을 따라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고 상한 심령을 치료하는 문학인이 될 수 있도록 매진하겠습니다.
산골짜기에 흐르는 깨끗한 시냇물처럼, 아름다운 산천을 보며 즐겁게 지저귀는 산새들처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문학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서일대학 부속 보육학과 졸업.
군종 선임하사 제대.
콘텐츠시연장 근무.
영안문학회 회장, 초우문학회 이사.
화백문학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