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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동마을물통골
 
 
 
카페 게시글
갑동마을의역사와유래 스크랩 갑동 마을 유래지
갑동마을물통골 추천 0 조회 69 12.01.02 00: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갑동마을(甲洞, 도구촌)

 

       - <<지명유래>> -

       야사리(野沙里) 의 지명은 야사 마을의 지명을 취하여 이름하였다.

       야사리는 야사마을, 산사마을, 태평동마을,

       도롱굴(용호) 마을, 갑동마을로 나뉘어 있다.

 

       갑동마을은 원래 마을 입구에

       도구대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한때 도구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후 갑동이라 하는데 그 연원은 산아래 가장자리에 위치하므로

       갓굴 또는 갓동이라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갑(甲) 자를 취하여 갑동이라 하였다.

 

       풍수지리설로 장갑산 아래에 위치한다하여 갑동이라 했다고 전한다.

       또 앞산이 말이고 갑동이

       장군의 갑옷에 해당된다하여 갑동이라 했다고도 전한다.

       갑동마을을 세분하면 우데미, 가운데고샅, 알데미로 나뉜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동복현(同福縣) 외서면(外西面)

       갑동리(甲洞里) 로 기록되어 있으며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동복군(同福郡)

       외서면 갑동리(甲洞里) 로 기록되어 있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시 동복군이 화순군으로 통합되면서

       외서면 내서면은 이서면으로 통합되어

       화순군(和順郡) 이서면(二西面) 야사리(野沙里)

       (용호리, 태평리, 산사리, 갑동, 야사리) 로 편입되었다.

       현재 야사4리이며 1개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 <<주산물>> -

       (쌀, 보리), 특산물(목단, 흑염소), 주소득원(쌀, 보리)

 

       - <<성씨>> -

       해주崔(4), 달성徐(4), 김해金(3), 밀양朴(3), 전주崔(2), 동복吳(2), 의령南(1),

       충주池(1), 밀양朴(1), 강릉劉(1), 평택林(1), 청송沈(1), 영양千(1), 금성羅(1)

 

       - <<마을형성>> -

       동쪽으로는 야사리 태평동으로 가는 방향인데 뒷밭이(밭),

       써남거리, 깽변, 비미테 등이 있다.

       북으로는 몰미등(馬峰) 이 가로막고 있고 보월재가 있다.

 

       갑동과 보월사이를 다니는 지름길이다.

       또 당골과 뒤덕굴이 있으며, 북서쪽으로 여시꼭대기가 있다.

       서쪽으로는 안심리 사마동으로 연결되는데 비야배미, 베틀바위,

       별산아래 자라등이 있다.

 

       남쪽으로는 별산이 위치하는데 정상부분에 범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그아래로는 행깃등, 고사리밭등, 웃감나무, 물통골, 큰덕굴 등이 있다.

       마을의 방향은 별산을 남쪽에 두고

       그 아래에 위치하여 북쪽 몰미등을 바라보고 있다.

 

       1600년경 방씨가 무등산을 넘어 산세가 좋은곳을 찾던중

       이곳에 이르러 입향 거주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1775년경 의령남씨 南建啓(1755 ~ 1818) 가

       담양 남면 만월리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800년경 탐진최씨 崔元鍾(1781 ~ 1853) 이

       광산 마지면 수문리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800년경 전주이씨 李喆巖(1782 ~ 1846) 이

       화순현 동면 동림동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865년경 전주최씨 崔炳洙(1843 ~ 1905) 가

       동복 유천리 검천마을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880년경 김해김씨 김처형(1863 ~ 1944) 이

       무등산 돈등(장복리) 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885년경 전주이씨 李桭興(1867 ~ 1925) 이

       서리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893년경 해주최씨 崔正祿(1885 ~ 1946) 이

       안심마을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920년경 충주지씨 池守文(1898 ~ 1980) 이

       보성 회천면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925년경 김해김씨 金廷炫(1887 ~ 1948) 이

       동면 복림마을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946년경 달성서씨 서억수( ? ~ ? ) 가

       동복면 신율리 신기마을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946년경 전주최씨 최경안(1923 ~ 1985) 이

       동복면 신율리 신기에서 입향하였다.

 

       1952년경 동복오씨 吳昌鐸(1921 ~ ) 이

       월산리 진들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955년경 평택임씨 林泰周(1920 ~ ) 가

       동면 마산리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1956년경 달성서씨 徐正玉(1932 ~2010 ) 이

       동복면 신율리 신기마을에서 입향하였다.

 

       1965년경 언양김씨 金在萬(1936 ~ ) 이

       함평군 월야면 월야리에서 입향하였다.

 

       1965년경 밀양박씨 朴相基(1931 ~ ) 가

       북면 수리에서 거주하다가 입향하였다.

 

       동쪽으로는 산사마을, 서쪽으로는 안심리 사마동마을,

       남쪽으로는 동면 , 북서쪽으로는 보월리 보령마을이 있다.

 

        - <<유물>> -

       유적 물방앗간터, 주막터, 유산각(1990년, 주민과 향우들이 건립), 서당터

 

       - <<민속놀이. 전설. 민담>> -

       ⊙농악 : 정월 대보름에 농악을 치면서 시암굿을 치고 집집마다 돌며

       마당볼비를 했으나 지금은 하지 않는다. 상쇠로는 김상용이 잘 하였다.

 

       ⊙당산나무 : 최정록이 심었다고 전하는데 마을입구에 있다.

       ⊙당산제 : 이전부터 당산제는 지내지 않았다.

 

       ⊙물통골 물통 : 마을뒤에 있는데 이전에 물이 좋아

       물을 맞으러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하는데

       개를 잡아 묻은후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어졌다고 한다.

 

       ⊙디딜방아 액막이 : 이전에 마을에 전염병이 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하여

       산사마을에 밤에 몰래가서 디딜방아를 가져다가

       마을입구에 거꾸로 세우고 그 위에 고쟁이를 씌워 액막이를 하였다.

       이렇게 하면 마을에 병이없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한다.

 

       ⊙방씨 : 강개막굴에서 살면서 천석을 하고 살았다고 전한다.

       ⊙당산점 : 당산나무 잎이 한물에 피면 그해는 모내기를 한번에 하고

       여러번 나뉘어 피면 모내기를 여러번 해야 한다. 즉 물이 적다고 한다.

 

       ⊙큰덕굴 : 마을 사람들이 봄이면 화전놀이를 하던 곳이다.

       ⊙숲 : 마을입구 내 건너편에 도구대바위가 있는데

       이 험석이 마을에 보이면 마을에

       사람이 죽는다하여 바위를 가리고자 숲을 가꾸어 가렸다.

       또 비미테쪽에도 험석을 가리고자 대나무를 심어 바위를 가리고 있다.

       ⊙뒷밭이(집밭이) 에 큰 조산이 있었는데 기와편이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별산 : 갑동마을 남쪽, 즉 마을뒷산으로

       별모양으로 산등성이가 뻗어 있다고 한다.

       원래는 벼랑(범바위)이 있으므로

       처음에 벼랑산이라 한것이 후에 별산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지도표기에 星山 또는 鱉山이라 한것은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쓴 것이다.

 

       ⊙덕굴 : 갑동마을 좌측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몰미등(馬峰) : 마을앞에 있는 산으로 말의 형국처럼 생겼다고 한다.

       ⊙행깃등 : 마을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별산에서 뻗어왔다.

 

       ⊙당골 : 마을 앞에 있는 몰미등에 있는 골짜기이다.

       ⊙고사리밭등 : 마을 남쪽에 있는 별산아래로 웃감나무가 있는 윗쪽이다.

       고사리가 많이 있었다하여 이렇게 부른다.

 

       ⊙집터 : 마을 남쪽 별산아래 큰덕굴,

       마을앞 저건네 당골아래, 마을동쪽 입구 뒷밭에 집터가 있다.

 

       ⊙보월재 : 마을북쪽 몰미등에 있는 고개로 보월리 보령마을로 넘어간다.

       ⊙물통골 폭포 : 마을 남쪽 뒤 골짝에 맑고 차가운 물이 폭포가 되어

       떨어졌으나 지금은 간이 상수도의 설치로 물이 흐르지 않는다.

 

       ⊙웃감나무 : 마을 뒤 별산아래에 있는데 큰 감나무가 두그루 서 있는데

       이곳을 산위에 감나무가 있다하여 웃감나무라 부른다.

 

       ⊙범바위 : 별산에 있는 바위로

       눈이 내리면 바위가 범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한다.

 

       ⊙비미테 : 마을 동쪽냇가에 있는

       논으로 보아래에 있다하여 비미테(보밑에) 라고 한다.

 

       ⊙깽변과 써남거리 : 마을 동쪽에 있는데 냇가변에

       써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이곳을

       냇가변의 뜻으로 깽변 또는 써나무가 있다하여 써남거리라 부른다.

 

       ⊙여시꼭데기 : 몰미등 서쪽에 있는 산으로

       여우굴이 있다하여 이렇게 부른다.

 

       ⊙베틀바위 : 마을 서쪽 안심리

       사마동 경계에 있는데 형태가 베틀같다하여 이렇게 부른다.

 

       ⊙뒤덕골 : 마을 앞 보월재 넘어가는 골짜기를 이렇게 부른다.

       ⊙산, 등 : 몰미등, 별산, 행깃등, 고사리밭등,

       자라등, 여시꼭데기, 웃감나무등, 뒤까끔

 

       ⊙들 : 비야배미, 섬배미, 비밑에, 뒷밭이, 팽남쟁이

       ⊙고개 : 보월재( ~ 보월)

       ⊙골짝 : 당골, 뒷텃골, 물통골, 작은덕굴, 큰덕굴, 독굴,

       갱기막굴(강개막굴, 강가막굴), 감남굴, 방재막굴

 

       ⊙바위 : 범바위, 도구대바위, 베틀바위

       ⊙내 : 깽변, 써남거리

       ⊙터 : 집터(큰덕굴, 저건네, 뒷밭이), 자갈삼굿터, 물레방아터,

       주막터(한수막거리)

 

       ⊙보 : 섬배미보, 비밑에보, 베틀바우보, 집밭이보, 팽남정보

       ⊙샘 : 물통골시암, 동네시암

       ⊙굴 : 물통굴 호랭이굴

       ⊙밭 : 뒷밭이(집밭이)

       ⊙길 : 우데미고삿, 가운데고삿, 알데미고삿, 주막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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