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묻는 게 조금은 창피할 정도로 파란만장하게 돌아다녔다.
이번 여정에는 <받아들임>을 동반자로 삼았다.
이 책을 읽으니 내가 무엇을 창피해하고 불안해 하는지 또렷이 알게 됐다.
나는.
올해의 모든 여정을
2월-3월 세르비아, 독일, 오스트리아 / 4월 미국 / 6월 미국 / 7월 스웨덴, 덴마크를
모두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 가세요?" 라는 물음에 그때마다 대답을 할 때면, "아~~ 부럽다. 좋으시겠어요."라는 한결 같은 대답을 듣게 되었다.
솔직히 내겐 그냥 일이었다.
매번 떨어지고 붙는 시험을 치러야 했었고,
매번 격무에 시달리다고 겨우 짐을 싸서 출발했고,
비행장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하아~~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고 마음 속으로 부르짖었고,
때론 소리내어 말했다.
호텔이나 아파트에 들어가게 되면 방밖으로 꼼짝도 안 하고 자거나,
멍하니 있거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항공비며 숙소비며 생활비며 수천 만원을 써야했고,
내겐 여행이 아닌 일종의 사업에 대한 투자였을 뿐이었다.
지난 6월 미네소타에서 존 두 케인 사장을 만났을 때 그는 우리에게 "너희는 정말 투자에 미쳤구나."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그가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느꼈다.
결국 6월이 되어서는 몸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 찾아왔고, 더불어 정신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미국을 갔다왔고,
그나마 용케 달래서 지금은 스웨덴을 거쳐 덴마크에 와있다.
하지만 코펜하겐에 내리자 마자 너무 추워서 위가 얼어붙기 시작하더니,
예테보리로 기차를 타고 가서 써트 준비를 돕고 어시스턴트 시험을 보고 나니 몸이 너무 힘들다.
결국 써트 내내 고열을 동반한 몸살 감기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건이 함께 한 15년 동안 이렇게 아픈 걸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아팠다.
어시스턴트 인스트럭터로서의 역할은 다소 조심스러움과 함께 부담감을 주었다. 참가자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힘들고, 긴장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을 최대한 돕기 위해서는 내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했다.
그런데 내 예민한 호흡기는 무너진 면역체계와 함께 더욱 예민해져서 끝내 목소리까지 잘 나오지 않는 상황에 이르게 했다.
프레데릭과 춘화의 극진한 대접으로 건강을 되찾고,
스웨덴을 좀 즐기다 크라브마가 캠프를 위해 7월 9일 코펜하겐으로 돌아왔다.
OECD 국가 행복 지수 1위인 덴마크에 사실상 꼴찌 나라의 국민(한국 뒤에 터키, 멕시코가 있다.) 둘이 잠시 살고 있다.
시커먼 구름이 밀려와서 한 판 퍼붓다가는 햇살이 조금 나오고 다시 어두컴컴하다. 바람은 차갑고, 최고 기온은 20도도 되지 않는 우울한 여름날이다. 이런데도 행복 지수가 1위가 나왔다니 정말 복지가 대단한 게 아닐까 싶다.
정말 우울한 도시다.
그래서 좀 덜 행복하더라도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가 그리워지는 도시다.
내내 우울함과 무기력함에 3일을 보냈다.
우리는 G 캠프에 앞서 앞의 P캠프 이틀을 참석할 요량으로 왔는데,
나는 계속 망설이다 끝내 G 캠프에 집중하기로 했고, 건 홀로 떠났다.
건을 출근(?)시키고, 마음을 잡고 청소를 하고, <받아들임>을 정독했다.
어느 문장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어느 부분에서는 그래도 내가 내 자신을 조금이나마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는 일을 하면 확실히 하는 사람이다. 무엇이든 잘 하는 사람이다. 똑똑한 사람이다.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다. 등등
내 마음 속에는 나를 규정짓는 네버 엔딩 스토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능력있는 사람. 존경받는 사람 그리고 사랑 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계획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참지 못했고,
내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강해서 수영장에서는 수영을 해도, 호수나 강이나 바다에서 수영은 늘 무서웠다.
사람들과의 회합이나 모임에서는 늘 분위기를 이끌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내가 좋은 무드를 만들기를 기대한다는 압박감을 자주 느꼈다. 그래서 모임이 끝나고 나면 즐겁게 놀았군이라는 느낌보다 또 하나의 일을 끝마쳤군하는 피곤함을 느낄 때도 많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쿨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가장 가까운 한 사람에게만 심하게 못 되게 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삼고 있는 피난처가,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무리에서 책임감을 덜 느끼며 배우는 것이라는 걸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받아들임>을 읽고 나서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나를 알고 있긴 했지만,
알아차림을 통해 멈추고 받아들이고 자비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완전히 놓치고 있었다.
고통은 언제든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무지로 인한 괴로움은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완전히 놓치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 없던 2012년의 여정에 대해 창피함을 느꼈던 것은,
결국 '사람들이 속 편하게 놀러다니는 줄로만 아는구나.'하는 망상에서 나온 것이고,
즉 모든 일도 완벽히 해내서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와 함께
또 그러한 욕구가 전혀 없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평가 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정말 내가 꿈에도 그린 일이고,
결국은 자유롭게 살고 있고,
그리고 내 주변에 진심으로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원래 나는 "알아차림을 통한 <받아들임>"이란 요가 칼럼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아직 나는 이 분야에 대해 수련도 통찰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냥 솔직한 한 인간의 사례를 쓰게 되었다.
이 책은 타라 브랙(Tara Brach)이라는 미국의 임상심리학 박사이자 저명한 불교 명상가의 책이다.
나는 모든 인류에게 자비심을 갖기에는 일부의 사람에게 적개심이 강한 편이어서, 결국 불교적 사상과 배치되는 경우가 있지만.
알아차림, 멈춤, 받아들임이라는 큰 명제에는 크게 동감하기에 배우는 것이 많았다.
자신이 크게 동감하는 부분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누구든 가슴 깊은 울림 몇 가지는 얻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첫댓글 뭔가 뭉클하네요...
좋아서 천천히 꼭꼭 씹어먹는 기분으로 두 번 더 읽어봤네요 ^^
정말 멋진 글입니다~!
하란 파이팅~!!!...^^)=b
KMG, HKC 등등 4일 동안 하루 7시간꼴로 통역하고그러자마자 2번 다 이틀만에 미국 갔었으니..... 그게 정말 하란샘 건강에 치명타가 되었던 것...항상 돌아오면 그날부터 더 바쁜 일이 있었고...
갑자기 또 막~보고싶어지네요ㅠㅠ 하란 선생님이...
늦은댓글 이긴하나 .. 물론 저는 하란선생님이 만들고 노력해 오신 시간의 0.1 % 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공감이 갑니다 ( 너무 시건방진것일까요 )
저는 요즘 새로운 운동센터 를 알게 되어 너무 행복 합니다 ...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