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생각하면 그리움이 피어나네
홍재숙
경주를 생각하면 버스 안 풍경이 떠올라서 입가에 웃음이 영근다. 내안에 따스한 온기가 퍼지면서 경주에 또 가고 싶다.
“그냥 계시소. 가까이 오면 알려드림시더.”
“아고, 고와라. 딸인가 보네. 그냥 가만있으면 다 알려주께.”
계시소는 버스기사님 말이고, 딸인가 보네는 버스 안에 탄 경주 사는 세 분 할머니들 말씀이다.
막내딸과 단둘이 떠난 경주 여행길에서 묵을 숙소를 찾아 버스를 탔을 때 처음으로 겪었던 경주 인심이었다. 순박한 웃음이 긴장으로 곤두섰던 마음을 순식간에 풀어주었다. 그리고 왠지 꽁꽁 감은 숙제의 실타래가 순하게 술술 풀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그랬다. 딸은 이십대를 건너 서른을 맞이하는 초입에 삶의 방향을 틀었다. 잘 다니던 법률사무소에 사표를 내고 가족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연금 타는 직장에 다니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서른 살을 맞이하여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 보겠다며, 엄마, 아빠 할머니는 지켜만 보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딸이 싱그러운 이십대를 관통하여 서른의 문턱에 다다라 나름으로 고민을 많이 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날부터 딸은, 방문을 닫고 고시생처럼 공부를 했다. 한 집에 살아도 밥 먹을 때 외엔 얼굴도 안 보여줄 만큼 독하게 몰두했다. 그리고 10개월 뒤, 시험을 보았다. 이제 한 달 후면 면접을 본다.
“엄마, 나랑 둘이서만 여행 가자. 경주 가고 싶어. 불국사, 석굴암 가서 기도하고 싶어.”
경주여행을 가자는 딸의 얼굴은 과부하 걸린 머릿속을 다 비워낸 듯 맑아 보였다. 나는 고생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딸에게 응원을 보내면서 당장 떠나게 KTX 예약과 함께 편안한 숙소를 알아보라고 했다.
그동안 나는 과보호를 받으며 경주 여행을 해왔다. 개인여행이 아닌 단체여행으로 집단에 소속이 되어 경주를 다녔다. 그런데 이렇게 딸과 단둘이 개인여행을 가는 것은 처음이다.
기억의 사진창고에서 풍경을 끄집어내어 본다. 오십여 년 전 까마득한 중학교 시절에 만났던 경주는, 석굴암을 보러 헐떡이며 올라갔던 토함산 산길의 돌맹이와 함께 버얼건 흙길이 아직도 풍경처럼 희미하게 주루륵 펼쳐진다. 지금과는 달리 꾸미지 않아 소박한 모습으로 서있던 다보탑과 석가탑도 나에게 다가온다.
경주의 속살, 경주의 보물 남산의 숲길도 풍경으로 달려온다. 바위마다 부처님이 조각되어 있어 얼마나 감탄을 자아냈던가. 올라가다가 학생들의 안전을 걱정해서 초입에 앉아 경주의 역사를 들었던 그해 한 여름 더위도 같이 후끈거리며 기웃댄다.
늦둥이로 낳은 딸에게 우리나라 역사 유적을 보여준다고 무던히도 끌고 다녔던 역사탐방 여정도 딸려 나온다. 그래서 딸도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여러 차례 다녀온 경주가 보고 싶은가 보다.
‘천년왕국 경주’에 간다고 해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기꺼이 신청했던 작가들의 경주여행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속살거린다. 경주 시내로 들어와서 원자력발전소를 향해 가는 거리 풍경에 빠져든 적이 많았다. 길가에 나란히 줄지어서 화사한 연분홍 꽃잎을 날려주며 반겨주었던 벚나무 군락에게 얼마나 감탄했던가. 또 가을비는 보슬거리며 내리고, 불그스름하게 물들은 낙엽은 바람의 손길 따라 팔랑거리며 떨어질 때 경주 거리는 절정의 아름다움으로 물들었다.
나는 한국수력원자력발전소의 홍보관에서 원전의 안전성과 운영실태에 대한 영상을 볼 때에도 경주 사랑에 넘쳤다. 월성원자력발전소를 견학할 때에도 고즈넉한 경주 풍경이 지루함을 눌렀다. 저녁을 먹고 둘러본 안압지의 밤 야경은 빛 요정의 세계였다. 사람들의 말소리에 놀라 천 년 전 신라인들이 어둠속에서 걸어 나와 우리를 보고 있었다. 혼자라는 두려움 없이 여럿이 함께가 편했기에 마음을 풀어놓았다. 그러면서도 몇 시 몇 분까지 정문 앞으로 모이라는 주최 측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핸드폰을 흘낏거렸다.
둘둘둘, 여행 가방 바퀴가 내는 소리는 언제나 경쾌하다. 보도를 구르는 바퀴 소리가 ‘나, 집 떠나왔어요’ 를 일깨워준다. 딸과 함께 하는 여행은 더욱 즐겁다. 무거운 여행 가방에서 벗어나서 가벼운 손가방만 앞으로 메고 다닐 수 있으니 자식 낳은 보람이 있다.
나는 앞장서서 스마트폰앱으로 지도를 보며 가방을 끌고 숙소를 찾아가는 딸을 바라보며, 단체여행 때 종종거렸던 시간과 팔짱을 끼고 느릿느릿 걸었다. 시간에 맞춰 모이지 않으니 급할 것도 없다.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뚜렷뚜렷 둘레를 보니 경주의 골목길 풍경이 들어왔다.
호텔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황리단길을 걷는다. 앱찾기에 선수인 딸과 다니니 내 경주여행도 덩달아 젊어졌다. 딸이 이끄는 대로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둘이 사진을 찍고, 기와를 얹은 옛집에서도 찍었다. 맛집이라고 소문난 밥집에서 대기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가 밥을 먹는 자유여행이 편안하다. 딸이 하자는 대로 생각 없이 따라다니니 더욱 행복했다. 비로소 여백이 가득한 여행을 한다.
둘째 날, 무릎보호대를 차고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여맸다. 천년고찰 불국사와 석굴암을 가는 여정이다. 택시와 버스를 번갈아서 타며 찾아가는 여정이 즐겁다. 경주 사람들과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소탈하게 받을 금액만 청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경주 사랑이 쌓여간다. 역시 어느 여행지에서나 현지 사람들의 친절한 접대가 관광객에게 감동을 준다.
딸은 불국사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대웅전을 찾는다. 운동화를 벗고 불전함에 시주를 하더니 부처님께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한다. 나도 옆에서 삼배를 올리며 딸의 합격을 빌었다.
석굴암에서도 본존불을 향해 두 손을 모은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피해 석굴 한구석에서 한참동안 고개를 숙인다. 나와 눈이 마주친 관리인이 딸을 보며 뭔가 간절한 소원이 있나보다고 말을 건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딸은 숙소로 돌아오면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해해 웃는다.
“엄마, 코로나가 주춤하면 경주에 또 가자. 나는 경주가 편하더라. 고요하고 한적해서 좋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근무 중인 딸이 속살거린다.
나도 ‘경주’ 라는 말에 그리움이 피어나서 이번에는 남산 쪽으로 여정을 잡고 그 부근에서 묵자고 마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