蔣 序
命書가 世上에 專해진 것이 몇 개인지 알수 없으나 내가 읽은 책이 많지 못하고 아는 것 중에서는 명리약언, 명리석의. 명리집요, 적천수집요와 자평진전이 가장 정확하다 할 것이다.
명리약언의 일서는 이전의 同學인 선중책(국훈)에게서 봤는데 벼슬하였던 先人이 손으로 써서 傳한 것으로 내가 약간을 가려서 기록해 놔두고 참고로 했는데 내가 紹興에 居하면서 비록 命을 말하는 것으로 生涯를 살지 않았을지라도 法令을 읽는 짬을 내서 命學을 연습하기를 좋아했으며 더욱 各地를 다니며 命家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서로 탐구하고 토론하며 意識을 交換하기를 좋아했는데 鎭江 袁樹珊이 醫術에 밝고 命理를 잘한다 하여 내가 그 이름을 흠모하여 가르침을 구했더니 나를 버리지 않고 때로 편지를 주고 받다가 우연히 命理約言을 언급했는데 袁公도 全貌를 다 보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내게 점검을 의뢰하길레 내가 同學에게 原本을 빌려 袁公에게 빠진 것을 써서 보충하였다.
원수산의 책에서 빠진것은 三十六則인데 袁公의 記錄에 그것을 보충해 넣고 나는 다시 친척에 속하는 袁幼安에게 命理輯要와 滴天髓輯要를 빌려와 배껴 써서 우편으로 袁公에게 보내 전체를 만들게 했다. 袁公이 나에게 말하기를 命理約言은 아주 價値가 있으나 세상에 나온책이 적기 때문에 목판에 새겨서 책으로 출판하여 同好에게 제공하자고 해서 내가 옳다하고 점검하는 작업을 수년동안 했으나 實現을 보지 못했는데 嘉興 韋天里君이 마침 命理를 硏究하고 校訂한다 하여 피차 通信이 빈번하였으며 또 偉君이 紹介한 훌륭한 張恒夫先生과도 때로 命學의 어려움을 서로 물었다.
韋君은 名術家인 遯道人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英俊하고 命理에 관한 노하우를 배웠는데 나는 偉君이 命理學說을 收集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위군이 平日에 談命해 얻은 것과 같이 책으로 낼 論議를 했는데 나는 위군의 내용을 命理約言에 덧붙여 採擇하자고 했으나 偉君이 말하기를 그 책에서 말한 學說과 자기의 뜻이 맞아 떨어지고 내가 詮註를 달아 책을 내어서 先賢의 著書를 선양하자고 했으나 偉君이 따로 編輯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命理約言만 실어 검토하여 원고를 완성시키고 原名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내가 편지로 袁公에게 序文지어달라고 부탁했으니 그 자초지종은 원수산의 序文을 자세히 보면 되니 내가 더말하지 않겠다.(註: 그런데 원수산의 서문은 원본에 없다.)
命書에 또 命理析疑가 있지만 역시 목판으로 나온 것이 없어 名著가 끊겨 없어져 버릴까봐 내가 깊이 안타까와 했는데 위군이 이미 책으로 編輯을 마치고 내게 교정을 부탁하고 더불어 서문을 쓰라 했으나 내가 학술을 안다해도 알량하고 글재주가
없으니 이렇게나마 대략의 내용을 간단하게 적어 序로 삼는다.
中華民國 二十二年 癸酉年 暮春
浙江 紹興 古越魚化橋畔桂蔭館에서 善瀅 蔣淸渠 甫序.
韋 序
公子가 命을 때로 말하지 않고 때로 命을 자주 말했으니 어찌 전후가 이렇게 다른가?
대개 하늘로 부터 命은 부여 받았으나 知命하는 것은 人間에 있으며 사람마다 命이 있으나 사람마다 命을 안다고는 볼수 없다.
소위 知命이라 함은 學問이 아니면 그 極致에 이를수없고 지나간 것을 보지 않으면 그 功을 다할수 없다.
고로 君子는「 命을 기다린다」 했고 또「 五十이면 知 天命한다」 했다.
魯論의 마지막 편에 다시 말하기를 「命을 모르면 君子가 아니다」 했으니 聖人이 힘써 知命하려고 애쓴다는 뜻임은 깊고 멀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것이다.
千里는 弱冠의 나이로 배움이 짧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재주에 경험 또한 적어 감히 知命한다고 말할수 있으랴 마는 기억을 돌이켜 보건데 十二歲때 先君子 石泉公을 따라 子平의 諸書를 읽고 외웠으니 先君子가 나에게 깨우쳐 말씀해 주시기를「 命을 배우는 것이 어찌 쉽겠냐마는 반드시 두가지를 兼備해야 비로소 功을 볼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많은 책을 읽는것이요, 둘은 많이 看命하는 것이다. 책을 많이 보면 學術이 정밀해질것이고 看命을 많이 해보면 經驗이 풍부해질것이니 二者중 어디에도 치우쳐서는 안될 것이다. 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책을 다 믿는 것은 책이 없는것만 못하다 했는데 책으로 말을 다할수 있겠는가? 설사 다한다 한들 완벽하게 다 도달하려면 반드시 오늘날 사람들의 命과 古人의 책을 參合하기를 오래도록 하다보면 스스로 이치를 알수 있을것이니 그렇게 하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불보듯 분명하게 알수 있을것이다.」
어릴 때 이 말씀을 내가 감히 잊지 못하고 十八歲에 先君子를 떠났다. 내가 시중의 소문을 듣고 또 읽을 책을 얻어서 날마다 士大夫와 朝夕으로 硏究하고 反復해서 討論하기를 五年이 넘자 看命한것이 三萬命남짓 되었으며 다행히 收穫은 있었으나 古書에 얽매여서는 命을 말하기가 부족했다.
先君子에게 命을 배우는데 있어 모든 책을 다 읽을수는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유익한 答信이 왔고 뒤이어 친구에게 나의 近年의 노하우를 책으로 써낼려고 부탁하면서 누락된 것을 챙기다가 나의 일이 복잡하여 두서있게 整理를 하지 못한 것이 마음으로 항상 부끄러웠다.
여름에 紹興 蔣淸渠先生이 갑자기 淸初의 陳素菴 相國이 저술한 命理約言 네卷을 보여주길레 내가 엎드려 읽기를 두 번하고 찬탄을 금할수 없었는데 대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命理約言에서 이미 했고 내가 감히 말하지 않고, 말할수 없었던 말을 陳素菴이 책에서 이미 일사천리로 당당하게 차분하게 말하고 있었으며 또 그 識見이 높고 월등하며 論議가 透徹하여 가히 命書中의 唯一한 傑作이었다.
또 文章이 우아할 뿐아니라 考證도 상세하고 분명했는데 淸渠선생이 말하기를 이 책은 친구 宣仲策君이 집안에 감춰둔 鈔本으로 세상에 流轉함이 적어 君이 만약 인쇄해서 책으로 내려면 반드시 종이가 귀한 洛陽에서라야 된다 하여서 내가 외람되게도 사양하지 않고 따라가 교정해 내는 일을 맡아 그 編目을 약간 옮기고 그 사이에 끊고 맺음이 필요한 것을 약간씩 손을 봤다.
賦二十篇은 論命의 精華로 내가 약간 註를 달았고 初學者가 읽기에는 얕은것에서부터 깊게 들어가게 하고 高明한 사람이 읽을때는 같은것이라도 색다르게 하였으나 사족의 우려가 있음을 면치 못하겠다.
원고를 완성하여 淸渠先生에게 물어 다시 틀린곳을 精選해 주십사 했기에 이름을「 精選命理約言」이라 했다.
先生이 또 말하기를 「책이 세상에 묻힌지 三百年이 되었으나 지금 君의 의지력에 의해 天下에 알려지게 되어 命學이 가일층 昌明하게 되었으니 이로 말미암아 사람마다 知命하고 사람마다 분수를 지킨다면 위로는 戰爭하는 害가 없고 아래로는 약탈하는 근심이 없으리니 그 功이 역시 크지 않겠는가!」
나는 단지“예예”할뿐 감히 받들지는 못하였으나 이 책이 인쇄되는 인연이 이와 같으니 크나큰 편달을 바라며 부족한 것을 가르쳐 주면 심히 다행이라 하겠다.
中華民國 癸酉年 春日
浙江 嘉興 韋天里 謹識
譯者序文
이책은 진소암의 命理約言을 번역한 것이다.
흔히들 子平眞全, 滴天髓, 窮通寶鑑은 알고 있으나 이 命理約言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그 위치가 平價切下된 감이 없지 않으나 이책을 고전의 반열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만큼 내용이 좋다.
대만의 많은 命理에 관한 입문서를 보면 종종 이 진소암의 命理約言見解를 많이 참고 하고 있으며 滴天髓闡微를 낸 袁樹珊이 쓴 유명한 命理探原에도 이 命理約言이 관점을 많이 취용하고 있는데 이 모두는 陳素菴의 命理에 관한 倬見 때문에 그러하다.
이 책의 요점은 한마디로 “正理대로 命理를 보자”이다.
옛날을 따질것없이 지금도 많은 책에서 神煞과 奇異한 格局을 장황하게 나열하여 공부하는 이로 하여금 혼란을 줄뿐아니라 이 때문에 易學이 迷信이나 非論理的으로 치부되는 유력한 근거가 되어 왔는데 陳素菴은 바로 이런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그 부당하고 망령됨을 누누이 설하고 있다.
淸代에 문제가 되었던 問題들이 아직도 횡횡하고 있는 것을 볼때 陳素菴의 그러한 見解는 비록 世代이 차이는 있을지라도 참으로 감탄을 금할 수가 없는 부분이 많다.
이 책이 나오는데는 子平眞全을 飜譯하신 박영창 선생님의 격려와 도움이 컸으며 하이텔의「古代易書硏究모임인 하역회」회장님이신 학선 류래웅선생님, 그리고 하역회 여러 회원님들의 성원에 힘입은바가 크다.
그 모든 분들게 감사드린다.
丁丑年仲秋에
김선호(金善浩)
일러두기
1. 이 命理約言은 臺灣의 大衆書局에서 나온 韋天里選輯의「精選命理約言」을 原本으로 해서 飜譯했다.
2. 原本의 編輯은 卷一에 法 四十八篇, 卷二에 賦 二十篇, 卷三 에 論四十八篇, 卷四에 雜論과 張神峯闢五行諸謬論順으로 되 어 있으나 쉽게 읽고 기초부터 차근 차근히 배우게끔 순서를 갖추기 위해 이러한 編輯體制를 譯者의 任意대로 바꾸었다.
즉 예를들어 看正官法은 卷一에 있고 正官賦는 券二에 있어 읽기에 불편하므로 看正官法뒤에 正官賦를 넣어서 읽기에 쉽도록 하였다. 그리고 卷一, 二, 三. 四로 나누는것이나 각 제목 앞에 번호를 붙이는것도 讀者의 便宜를 도모하기 위해서 譯者의 任意대로 하였다.
3.譯註에서는 가능한한 譯者가 아는 범위내에서 예를 들었고 內容만으로 이해 가능한 글들은 譯者註를 달지 않았다.
또 譯註에 나오는 四柱의 實例는 譯者가 본 命例도 간혹 있지만 고전을 많이 참고하고 근대의 이석영선생의 四柱捷徑을 비롯하여 중국의 진신양이 쓴 명리진적이나 여타의 원서들을 참고 했다.
4. 한글 번역문뒤에 譯註를 따로 달기도 하였지만 이것은 대부분 四柱例가 必要한 경우에 한하였고 내용중에서 譯註가 필요한 부분은 譯註를 內容안에서 바로 달고 그 표시를 위해 글자體를 달리 하였다. 때로 이러한 註가 길어 原文의 내용이 길어지는 경우도 있으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므로 양해 바란다.
5. 그리고 命理約言외에 서락오의 글이나 진심양의 天干論等은 命理約言의 內容이나 位置 등을 深化한다는 뜻에서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