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대학입시와 경쟁사회를 거부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9년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함께하게 된 박경석입니다. 연대의 마음을 담아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서울에서 열리는 대학거부선언 행사에 함께하지 못하고 이렇게 선언문으로만 함께하게 되어 너무 죄송하고 또 아쉽습니다.
얼마 전, 저의 어머니와 크게 다툰 적이 있었습니다. 가족끼리 투닥거리는 일이야 어지간한 집안에서는 으레 있는 일이고, 더욱이 제가 살고 있는 집은 ‘정파가 다른 운동권’이 한 지붕 아래 살다보니 그 투닥거림의 횟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잦습니다. 그렇다보니 어지간한 말다툼이야 화장실 한번 갔다 오면 다툰 사실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무감각한 저에게 이번 말다툼은 이전의 다툼과는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대학거부선언을 앞두고 어머니는 제게 집에 큰애가 대학을 안 간다니 자리에 누워계신 할아버지를 비롯해 온 가족이 걱정한다, 너는 할 줄 아는 게 글공부 말고는 없으니 분명 내년이나 내후년에 대학을 가려 할 것이다, 지금 대학거부선언을 하면 나중에 책임질 수가 없어진다며 어머니가 제 앞에서 눈물을 쏟았습니다. 대충 예상했던 우려의 지점들이었고, 먼저 대학거부를 한 이들이 들었다던 말들과 대강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들을 실제로 들으니 경찰 차벽보다 넘어가기 힘들다는 ‘가족산성’을 실제로 마주했구나 하는 현실감과 함께 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가지 않는다는 선택을 한 것이 어떤 선택인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제가 대학을 거부하는 것은,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제가 배우고 살아온 삶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청소년으로서 지금보다 더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바라면서 공부하고 배운대로 실천하며 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며 지내왔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라온 고향 밀양에서 수십년을 살아온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폭력적인 송전탑 건설에 저항하며 고령의 주민들을 만났고, 정리해고로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공장에서, 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저처럼 학교에서 또 세상에서 억압당하고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고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모두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배운 대로 실천하며 살기 위해서 사회운동을 함께했고, 할 수 있는 만큼 함께 연대하고 함께 싸워왔습니다.
활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수록, 도대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불러오는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바로 경쟁체제였고, 경쟁이 있어야지만 굴러가는 자본주의가 있었습니다. 청소년들을 끝도 없는 경쟁으로 몰아넣고 낭떠러지로 떠미는 주범이 바로 대학이었고 입시경쟁이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과 연대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지식과 학문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곳이 바로 대학이었습니다. 그런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아주 어릴 때부터 곁의 친구들을 경쟁상대로 인식하게 만들고, 폭력과 차별을 내면화시키는 것이 교육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되니 학교에서 순응하고, 대학을 가서 학벌권력을 누리려고 하는 저의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지금 제가 스스로의 깨달음을 저버리고 대학을 간다면, 경쟁과 차별의 근원, 자본주의를 심화시키는 대학에 들어간다면 그동안 제가 사람들 앞에서 했던 말들을 어기는 것이었기에 차마 대학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거리에서 차별에 맞서는 노동자들에게 죄송해서, 함께 차별없는 학교와 청소년이 해방되는 교육을 위해 싸우는 동료들, 동지들을 저버릴 수 없기에 오늘 대학을 거부하려고 합니다.
저는 빨리 입시경쟁이 사라져 제가 대학에 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또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세상과 싸워야 하겠지요. 그 싸움 속에서 지금보다 더 외롭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테고, 지금보다 더 화를 내야 하고 더 눈물을 쏟아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대학에서 애인을 사귀어 한참 달콤한 시기를 보내는 친구들을 보며, 혹은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어 학생운동에 뛰어든 친구들을 보며 한없이 부러워하고 저의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대학을 가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든 길인데 꼭 그 길을 가야 하겠냐?” 그렇습니다. 저는 대학에 가지 않을 권리를 원합니다. 그와 더불어 외로울 권리도, 고통스러울 권리도, 스스로 고민하고 자신을 되돌아볼 권리도 원합니다. 저는 스스로 배울 권리, 함께 성장할 권리를 원합니다.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길을 제시하는 교육을 거부합니다. 덜 힘들고 깨끗한 것만을 가르치는 대학을 거부합니다. 교육이 깨끗한 자본주의를 가르쳐 깨끗한 자본에 충성하는, 덜 힘들여서 부릴 수 있는 노예를 만들어 주기를 원하는 사회를 반대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여과없이 직시하고,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경험하고 판단해 선택할 수 있는 교육, 어떤 선택도 무시받지 않고 존중받을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대학을 거부합니다.
오늘 대학거부선언을 한 우리들만의 힘으로는 입시경쟁을, 대학구조를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입시경쟁이 바뀐다고 세상이 다 바뀌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대학거부선언이 분명 사람을 죽이고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입시경쟁, 경쟁사회에 작은 실금을 내는 일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저는 더 이상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차별없는 평등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 대학입시와 경쟁사회를 거부합니다!
2019년 11월 14일
박경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