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역사상 가장 크게 성공한 프로덕션 창작물

[Layman]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바빌로니아와 가나안(1)에서 살던 사람들은 신을 엘(אל)이라 불렀다.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으로 ‘모든 신’ 또는 ‘엘의 가족’을 뜻한다. 창세기는 창조주 하느님을 엘로아흐(אלוה) 또는 엘로힘(אלהים)이라 부르던 사람들(2)로부터 시작되었다. 유일신을 지칭할 때는 서술어를 단수형으로 호응하고, 다른 신들이나 지도자들을 지칭할 때는 복수형 서술어를 쓴다.

창세기의 첫 문장인 “태초에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에서 바라(ברא, 창조하다)가 3인칭 단수형 동사이다. 이 동사의 3인칭 복수형은 바루(בראו)이다. 하느님을 엘로힘이라 칭하던 이 사람들이 창세기를 쓰기 시작한 인물들이다.

(1) 가나안 : 고대 근동 지역.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 히브리인은 언어적으로 가나안에 속하지만 문화적으로는 매우 다르다.

(2) 성서학에서는 이들을 엘로히스트(Elohist)라 부르며, 이는 본래 북왕국의 전통이다.

히브리인은 기원전 15세기경(3)부터 이집트를 탈출해 부족연맹체 시기를 거쳐 왕국을 이루어갔다. 한편,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집트 제국은 제20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람세스(4) 11세(재임기간 BC1098~BC1070)를 끝으로 정복자가 아닌 피정복자의 위상으로 추락한다. 이집트의 실권은 테베의 지방정권이었던 아문 대사제단의 손에 떨어졌고, 제21왕조는 나일 삼각주 북동부에 위치한 도시 타니스를 중심으로 이집트 남부만을 통치했다. 제21왕조의 여섯 번째 파라오 시아멘(5)은 딸을 솔로몬 왕과 혼인시킨 것으로 추정된다.이집트 제22왕조는 BC945년부터 BC715년인데, 이 시기에 히브리 민족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져 있었다. 창세기 최초 집필이 이루어진 시기도 기원전 900년경으로 추정된다. 창세기는 히브리 민족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공동 조상의 후예 즉 혈통으로 묶어 민족의식을 결속시켰고, 일주일 간격으로 휴식을 취하며 자신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3) 1세기의 유태계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AD37?~100?)는 『유대 고대사』에서 고대 히브리 민족의 이집트 탈출을 BC1446년으로 지목한다. 히브리인의 이집트 탈출을 BC13세기로 보는 견해도 많다.

(4) 라 메스시스. 그리스 식 발음. 태양신 ‘라’의 아들이란 뜻.

(5) 재임기간 BC978~BC959

하지만 창세기 최초 저자들의 염원과 달리 북녘의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앗수르)에 의해 기원전 8세기에 멸망하고, 남녘의 유다는 바빌론에 의해 BC587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당한 뒤에 이듬해에는 나라를 잃게 되었다. 히브리인은 나라를 잃은 BC586년부터 페르시아 제국 키루스 대왕의 도움으로 유대로 돌아온 BC538년까지를 ‘바빌론 유수’라 부른다.

바빌론 유수 기간과 키루스 대왕(6)의 통치를 체험하면서 히브리인은 페르시아 제국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에서 드러난 절대적 신의 위상을 실감하고, 자신들의 기존 신앙 체제를 크게 발전시켰다. 기원전 6세기말부터 히브리 사제들과 서기관(율법학자)들은 레위기, 민수기를 집필하여 경전을 민중 통치에 본격적으로 활용했다. 이들은 창세기와 출애굽기 일부 구절을 보완하기도 했다. 이들보다 조금 앞선 기원전 7세기부터 레위인 중심으로 집필되기 시작한 신명기가 레위기, 민수기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기원전 5세기에 접어들어서는 마침내 5경 즉 토라가 완성되었다. 토라는 아브라함 계열 종교 모두의 경전이기도 하다.

(6) 한국어 성서에는 고레스. 이민족 인물이지만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아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엘로히스트와 사제들 이외에도 독특한 저자들이 창세기와 출애굽기 저작에 관여했는데, 성서학자들은 하느님을 야훼라는 고유명사로 부른 이들을 야훼이스트(Jahweist 또는 Yahweist)라 한다. 야훼에 해당하는 고대 히브리 문서 낱말은 모음 없이 자음 네 개만으로 표기(고대 그리스어로 테트라그람마톤 즉 신성한 네 문자)해서 정확한 발음은 아무도 모른다. 알파벳으로도 YHWH 또는 JHWH로밖에 표기하지 못한다. 하느님을 야훼라 부르던 바로 이 사람들이 에덴동산, 아벨과 카인, 바벨탑 등 하느님이 유난히 인간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부분의 저자들이다. 발상이나 집필 스타일이 발랄하고 상징적 이미지와 설정을 능숙하게 사용한 이들 야훼이스트는 현대적 의미의 소설가에 가장 가깝다. 에덴이란 이름은 페르시아어인 헤덴(heden)이나 수메르어인 에디누(edinu)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신에게 이름과 형상과 성전을 마련하려 하는 야훼이스트들은 유다 왕국 출신이다. 이들이 남긴 문서를 J문서라 하며 이들은 창세기, 출애굽기, 여호수아 등에서 꾸준히 엘로히스트와 조금씩 다른 입장을 표현한다. 구약성서에는 곳곳에 펼쳐진 남북 작가들의 대결을 자연스럽게 편집하려 애쓴 후대의 흔적이 엿보인다. 그중 몇 가지를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세겜은 북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야곱이 그곳을 매입했다고 표현한 부분은 엘로히스트의 흔적이며 원주민을 학살해서 쟁취한 도시로 표현한 부분은 야훼이스트의 흔적 곧 J문서이다. 야곱의 아들들이 작당하고 당시 막내였던 요셉을 죽이려다 결국 팔아버리는 창세기 37장에는 르우벤이 말리는 장면에 이어 죽이지 말고 차라리 사막을 건너다니며 장사하는 이들에게 팔자고 유다가 제안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엘로히스트는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임을 강조하고, 야훼이스트는 가나안 정탐꾼 갈렙의 역할을 강조한다. 갈렙은 유다 지파이고 그의 영토는 헤브론이다.

구약성서의 최초 다섯 권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를 토라, 율법서 외에 5경(Pentateuch)이라고도 부른다. 5경 앞에 흔히 모세를 붙이는데, 이는 신명기 영향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출애굽기의 핵심 인물인 모세를 저자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는 사실로 보기에 무리이다. 물론 모세가 신명기 원저자이고 후손들이 가필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신명기는 북이스라엘이 이미 멸망한 기원전 7세기경에 쓰이기 시작해서 바빌론 유수 기간을 거쳐 기원전 5세기경에 완성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가장 설득력 있다. 법전 내용이 등장하는 12~26장이 가장 먼저, 5~11장이 다음에, 편집상 가장 앞부분인 1장부터 4장까지가 오히려 마지막에 쓰였다고 본다. 신명기를 편찬한 사람들은 레위지파 사람들로, 이들은 이스라엘의 다른 부족들과 달리 소유한 영토 없이 전국에 퍼져 살면서 제사, 경전 보전 등 주로 종교적 업무를 수행해왔다.

창세기를 비롯한 구약 문서들이 성향이 서로 다양한 여러 작가들에 의해 쓰였다고 주장하는 이론을 문서설 또는 문서가설이라 한다. 이런 구분은 19세기 독일 학자 율리우스 벨하우젠이 개창한 것으로 게르하르트 폰 라트, 한스 하인리히 슈미트 등이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바이블, 그중에서도 특히 <창세기>는 오랜 세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유대 사회라는 제작소에서 발전시켜온 프로덕션 창작물이다. 이 사전지식을 갖추었으니, 이제 여러분은 ‘고전 중의 고전’인 창세기에서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