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렀지만 포로수용소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잔존 유적
제산마을 앞 들녘에 세워지고 있는 포로수용소.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들어선 것은 1950년 11월 27일이었습니다. 동족끼리 총구를 맞댄 지 5개월여 만이었습니다.
한미연합사가 밝힌 한국전쟁 자료에 따르면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본격적으로 건설된 것은 1951년 2월 1일이었습니다. 1950년 11월 말부터 1951년 2월 말까지 부산에서 이송된 포로는 5만 3588명이었고, 3월 1일 수용소 본부와 본부병력이 옮겨 왔습니다.
3월 31일 전체 포로 수는 9만 8799명으로 포로가 많이 늘어나면서 4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곳에 8000~9000명의 포로를 수용하는 등 포로 관리에 애를 먹었습니다.
한미연합사는 장평, 와치, 용산, 문동, 양정, 수월, 해명, 제산, 연초 임전과 송정, 남부 저구와 다포의 논밭과 임야를 강제로 거둬 포로수용소를 설치했습니다.
포로는 1951년 6월 북한군 13만 명, 중공군 2만 명 등 15만 명을 기록했고, 이후 2만 명이 더 늘어 최고 17만 명에 달했습니다. 중공군 포로는 해명 마을, 여자 포로들은 주자골에 수용됐고, 악질 포로들은 수양동 영창에 수용됐습니다. 포로들의 공동묘지는 연초면 송정리에 있었습니다.
포로를 관리하기 위해 수용동과 경비 막사, 집무실과 야전병원, UN군을 위한 PX와 무도장, 탄약고, 보급창고, 통신대 등이 설치됐습니다. 지금도 그 유적이 수월, 양정, 해명, 고현, 장평 등 거제도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초단파구역(통신대)
계룡산 고자산치 위쪽에 자리한 초단파구역으로 통신대 역할을 했던 이 잔존 유적은 1951년 1월 건설된 것으로 한국전쟁기 유엔군 제1거제도 전쟁포로수용소와 극동사령부 그리고 유엔군사령부를 연락하는 초단파구역 중에 중계소와 초소 건물입니다.
거제시 상동동 산34-39
경비 막사
이 잔존 유적은 포로수용소를 지키던 경비 막사입니다.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편입니다. 건물 5동이 제법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바로 위쪽 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안에 PX와 무도장 옆에 비슷한 건물의 경비대 막사가 있습니다.
고현중학교(고현동 368) 옆
PX와 무도장
이곳은 포로수용소를 지키던 미군 경비병을 위한 공간으로 PX(군인 매점)와 바닥이 둥글게 된 콘크리트로 포장된 부분은 무도장입니다. PX에서 음식물과 술을 사 들고 무도장에서 먹고 즐기며 머나먼 이국땅에서 향수를 달래며 여흥을 즐겼습니다. 그 인근에는 해군 군의관 순직비와 탄약도 잔존 유적도 남아있습니다.
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안
64 포로야전병원
의무감실
이곳은 포로를 치료하기 위한 64야전병원으로 VIP 하우스와 병원 부속건물, 병원을 책임지던 의무감실 등이 남아있습니다. VIP 하우스에는 빵을 굽던 화덕의 굴뚝으로 보이는 것이 잘 보존돼 있습니다. 의무감실은 지붕만 없을 뿐 외형은 잘 보존돼 있습니다.
수월동 430-11
보급창고
이곳은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포로 등의 물품을 보관하는 보급창고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창고의 흔적은 없지만 큰 벽이 창고의 크기가 어마어마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평동 58-14
검문소
이곳은 수십여 년 전만 해도 주택으로 사용된 곳으로 포로수용소를 드나들던 차량과 사람들을 검문하던 검문소였습니다.
양정동 4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