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포엠포엠 2012 봄]평론 당선작/ 이철경- 시인의 콤플렉스와 그의 주변

[김명]

『포엠포엠』 제1회 신인작품공모 당선작 / 평론부문

시인의 콤플렉스와 그의 주변

 ─ 김수영 시인의 유고시와 기존시의 비교

  이철경

한국 문학에 있어서, 적극적인 변혁의 의지를 시작품에서 드러낸 김수영 시인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 민족상잔의 6·25동란을 거치면서 좌절된 4·19혁명, 그리고 5·16쿠데타의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이념 갈등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며 현실비판 의식과 저항정신에 기반을 둔 참여시의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 시인이다. 지난 2008년 40여 년 만에 또 다른 시와 산문이 발굴되어, 김수영의 시와 삶이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다.

김수영은 미당 서정주와 더불어 한국시단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시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서정주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음에 확연히 김수영의 시가 찬사를 받을 만하다. 김수영과 다르게 서정주는 1960년 4·19혁명 시기엔 관망하다 1961년 5·16 군부 쿠데타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영혼을 저당 잡히고, 월남참전을 앞장서서 고무 찬양하면서 일제 말기처럼 이 땅의 젊은 청년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1980년 5월 광주민중들을 학살하고 정권을 침탈한 권력과 밀착하여 광주학살을 당연시하고, 그 처연한 시민항쟁을 북한 공산당의 짓거리로 규탄하는 한편, 독재자 전두환을 위한 방송연설에 나오면서 군부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 과연 시인으로서, 철학도 없는 기교만 능한, 시인의 현실참여에서 아름다운 예술이 나올 수 있는가? 김지하는 어느 대담에서 “미당의 시는 아름답기는 하나 소름이 끼칠 정도로 눈물이 나고 가슴이 떨리는 감동이 없다.”라면서 그의 문학에 대해 간결하게 논평하였다. 그에 비하면 소시민적 비애를 담담하게 시로 발표하다, 4.19 혁명 이후에는 참여시로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넓힌 김수영은 한국 문학사에서 시인으로 나름의 문학적 흐름을 제시했다. 4·19 이후에 나타난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 이후, 「풀」에 이르기까지 현실 참여의 시작 활동이 전개되고, 그의 이러한 현실 인식은 「껍데기는 가라」, 「금강」 등, 신동엽의 민족주의적 역사의식과 연결되어, 「농무」의 신경림과 「타는 목마름으로」의 김지하로 계승되었다. 그 이후에도 김남주 「학살」, 박노해 「시다의 꿈」으로 꾸준히 이어져 왔다.

비록, 콤플렉스와 옹졸함을 지닌 소시민적 시인으로서의 갈등과 현실의 부조리에 괴로워하는 고뇌에서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의 흔적은 충분히 후대에 다른 그 어느 시인보다 이 땅의 민족시인과 국민시인으로 추앙받을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4·19학생 봉기의 실패에 따라, 김수영은 이미 그 이전의 모더니즘에서 자연스럽게 자유와 혁명에 대한 현실의 언어서술로 리얼리즘 시에 몰입하게 되고, 한층 격렬한 시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혁명의 실패를 노래한 「푸른 하늘을」을 보면 그의 시가 4·19이전의 시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自由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詩人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自由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自由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푸른 하늘을」 전문

4·19이전의 시가 모더니즘에 경도되어 있었다면 「푸른 하늘을」은 좀 더 직설적인 언어 표현에 치우쳐 있다. 사회적 시대상황이 김수영의 시를 리얼리즘으로 전환케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독, 피의 냄새, 혁명으로 전이되는 직설적인 화법에 대한 시인의 사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한 연유는 거제도에서의 하루에 한 명씩 죽어나가는 참혹한 현실을 기억 속에서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좌우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전쟁이 끝났으나 항상 그를 따라다니는 이데올로기에 물든 자신을 돌아볼 때, 피의 냄새를 느꼈으리라. 현실에서 김수영은 여전히 이념의 대립에 갈등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푸른 하늘을」에서 피를 담보로 하는 혁명은 김수영의 이념의 대립이나 민족상잔의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폭력 이외의 수단을 확보하지 못했던 사회적 혼란기나, 독재시대에서 수긍할 수 있었던 비극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간디의 비폭력주의가 인도 혁명의 근간이 되었고, 21세기에 들어선 한국의 정치혁명도 국민으로부터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때는 김수영 시인이 고독과 소통의 부재에 따른 어찌할 수 없는 시대적 아픔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시민의식이 지난 50년 전보다 월등히 높아진 지금은 각종 미디어와 SNS등, 인터넷통신의 발달로 김수영 시인의 시 「푸른 하늘을」은 수정되어야 한다. 또한 그에게 영향을 끼친 임화의 사상과 시대적 요구에 침묵하는 지식인의 모습에서 이데올로기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었던 소시민의 비애는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전통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傳統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光化門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寅煥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埋立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女史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歷史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追憶이

  있는 한 인간人間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 「거대巨大한 뿌리」 부분

「푸른 하늘을」 이후, 4년이 지나서 쓰인 「거대巨大한 뿌리」에서, 내면의 흐름이 더욱더 이데올로기의 체념에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첫 연에서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남南쪽식으로/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이북以北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에서 자신의 내면에 대한 이념 갈등의 속내를 언뜻 보여주고 있다. 둘로 갈려진 한반도에서 좌익, 우익 어느 쪽에도 안주할 수 없는 아나키스트적인 불편한 심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남한에서 어떻게 하든 동화되려는 모습이다. 젊은 시절 해방 이전, 일제치하에서 이미, 조국에 대한 회의감과 상실감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21세 때, 동경으로 유학을 떠난 후, 선진문명의 달콤함을 받아들였던 김수영은 그의 삶에서 변화하려고 무던히 노력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해방 후 만주에서 조국에 돌아왔으나 여전히 혼란스런 이념의 문제로 심란했을 터이다.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의 운명을 놓고 격돌하던 1890년대 말, 제국주의 팽창 시대에 비숍여사에 의해 작성된 한반도에 대한 영토 확장의 연구 자료를 보는 김수영의 시각에서도 느낄 수 있다.

김수영은 「거대巨大한 뿌리」 첫 연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의 이념 갈등과 현실의 치부를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다. 한국의 현실이 치욕스럽고,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기 환멸이 극에 달하여 비숍여사에 투사된 느낌이 시로 나왔으리라. 그의 현실은 시간이 가도 자유롭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시에 대하여, 주변에 대하여 평생을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그 뿌리에 대해 지울 수 없는 심적 부담과 벗어나고 싶은 갈망이 저리 격렬하게 뿜어져 나온 것이다.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歷史는 아무리/더러운 역사歷史라도 좋다” 조선의 역사에 대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김수영의 언어서술의 내포가 드러나는 것이다. 후기 시의 시각으로 바라 볼 때, 자기부정에 근접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치욕과 조국에 대한 환멸이 뒤범벅되어 현실을 타파하고자 하는 내적 변화가 시적 외연으로 드러난 것이다. 김수영 자신만의  강력한 시적 흐름이 있음에도 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으로 넘어오는 경계선에서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혼란기 지식인의 고뇌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 「눈 1」 부분

그러나 김수영의 시정신은 「눈」에서 강렬한 시 흐름을 엿볼 수 있다. 김수영은 「눈」에서 그 어느 시인보다 강렬한 이러한 시적 혁명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혁명은 모더니즘의 흐름에서 리얼리즘의 정점으로 치닫는 시적 메시지를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과 같은 내리는 눈처럼 땅에 스며들고야 말았다. 행동할 수 없는 시는 미완성의 변주곡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념적인 대립의 정점에 서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의 삶에 내재된 시정신이 4.19와 5.16을 거치면서 그의 거친 시와 다르게 점점 희미해져 가는 소시민으로 전락해가는 나약한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어느 시인보다도 한국사의 격랑의 파도를 넘어오며 가장 고뇌하는 시인,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시인의 삶은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金日成萬世’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 밖에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 밖에

                  - 「‘金日成萬世’」 전문

위의 시  「‘金日成萬世’」는 2008년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실리면서 세상의 빛을 본 미발표 유고 시이다. 이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은 부인 김현경 여사가 보관해 오던, 수첩과 노트에서 미발표 유고 시, 또는 일기에서 세상에 드러난 작품으로 김현경 여사가 청서淸書한 3편의 시 중 한편이다. 시에서 김수영의 생각과 흐름을 엿볼 수 있다. 4·19가 일어난 반년 뒤인 1960년 10월 6일 탈고된  「‘金日成萬世’」는 그의 이념적 성향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金日成萬世’」가 분단이 고착화된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볼 때 다분히 김수영 시인에게 지금까지 살펴본 시와 다른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는 위험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김수영 시인이 이 시에서 주장하고자 함은 ‘언론의 자유’를 말하고자 함이리라. 1960년대의 한국 언론의 자유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그러함에도 시인은 이 시를 쓰고 차마 발표할 수 없었으나 스스로의 이념적 신념과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가 발표되지 못함은 김수영 시인이 한국분단 상황에서 이념의 속박과 반공이데올로기에 침윤된 떨쳐버릴 수 없는 자유에의 속박을 잘 알고 있었음이라. 40여년이 지나 지면으로 소개된  「‘金日成萬世’」를 보았을 때 과연 독자들은 어떠한 반응이 나타날까? 또한, 이 시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 온당한 것인가? 김수영 시인은 미발표 시가 드러남을 원했을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김수영 시인은 거제 수용소 이후 서울에 올라와서도 그의 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념적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도 있겠으나 시인의 궁핍한 생활고와 주변인과의 마찰 등 여러 가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이 40여 년이란 짧지 않은 긴 세월 동안 침묵을 지키다 불현듯 공개된 이유는 분명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벌레와 같이

눈을 뜨고 보라구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긴장하지 말라구요

내가 겨우 보이는

긴장하지 말라구요

긴장하지 말라구요

사회주의 동지들

사랑이 있지 않어

작란이 있지 않어

냄새가 있지 않어

해골이 있지 않어

                  - 「연꽃」 부분

공개된 몇 편의 시중에 가장 문제작이 되는 「연꽃」 또한 이념적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시는 발표하기 위한 시가 아니라 김수영 시인이 낙서처럼 쓴 시 일수도 있다. 그것은 기존 발표된 시와 유고작으로 발표된 시의 작품수준이 현저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시가 이념적으로 편향적인 사상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공개용과 비공개용이 있을 것인데 메이저 출판사들은 앞을 다투어 모든 것을 드러내어 알리고 싶어 할 것이다.

그 결과 김수영 시인을 욕되게 하고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 그리고 시인의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반세기 동안 잠들어 있던 기억을 무덤에서 파헤쳐 그의 사상을 들여다봄으로써 궁금증을 해소하는 일부 출판사의 횡포일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

몇 가지 작품들은 또다시 많은 논쟁의 핵에 놓일 것이다. 이경호 문학평론가는 “김수영의 미발표 유고시와 몇 편의 일기는 발굴되지 않고 영원히 묻혀야 할 작품”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시인을 욕되게 하는 작품이 될 수도 있지만, 또한 한국사회의 이념 강박증을 꼬집은 날카로운 대목으로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이념에 대한 시라기보다는 일종의 풍자시”라고 밝혔다.

자유와 고독, 현실의 이념 갈등에 대한 시인의 삶, 이 모든 것이 김수영의 삶과 시인이 걸어온 궤적을 보여주고 있다. 「푸른 하늘을」을 뛰어넘어 혁명을 이룰 수 있는, 좀 더 내적인 흐름보다 강력한 추진력의 외적 치열함이 시인의 시와 함께 그의 삶에서도 도드라졌다면 4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재보다 더 큰 문학적 지평을 연 위대한 시인으로 길이 남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김수영 시인은 개인의 콤플렉스와 이념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여 일상생활은 정상적이질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높은 시적 사고思考인, “詩作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한 치열한 시적 흐름으로 시인의 자세와 리얼리즘의 정점에서 선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당선소감 =======================================================

이 철 경

언제나처럼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다 보면 어떤 날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다가 내려오는 일도 잦다. 또는 이른 새벽에 산을 오를 때 칠흑 같은 어둠이 휩싸인 길을 하염없이 걷다 보면 계곡으로 빠져들기도 하고 바위에 막혀 한참을 돌아가기도 한다. 첨단의 시대에 이렇게 어수룩하고 경쟁에 뒤처질 것 같은 나의 삶의 방식이 전혀 싫지만은 않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지나간 길은 이미 목적지가 정해져 있고 실패의 두려움도 없다. 하지만 길이 없는 산속을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작은 흥분과 생소한 이미지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며 야릇한 두려움이 나의 심장을 더 뛰게 한다. 그 막막함 속에는 단지 길을 잃어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어쩌면 영원히 길을 찾지 못해 산속에 묻힐 것 같은 앞날의 두려움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숲 속에 들어선 나를 만나는 것과 같다. 시를 천천히 읽다 보면 그 시인의 생각과 현실이 거울 속의 나처럼 보인다. 거울 속에 내 모습을 비춰보며 그들이 걸어간 길과 나의 길을 비교하고 과연 어떤 길이 더 흥미롭고 행복한 여정인지 수없이 그려보기도 한다. 시인과 고즈넉한 숲속을 걷는다는 것은, 길을 잃고 목적지 없이 걸어가는 것처럼 흥미롭고 행복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이 아닌 길을 걷다가 우연히 <포엠포엠>과 만나게 됨을 무한한 기쁨으로 생각하며, 방향성을 잃고 헤매던 나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신 심사위원님께 이 자리를 통해 감사드린다. 또한, 항상 곁에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공유한 김점용 시인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철경┃1966년 전북 순창 출생. 2011년 고려대 대학원 졸업(문예창작전공)

『포엠포엠』 제1회 신인작품공모 당선작 / 평론부문

정훈  문학평론가

오늘날 한국 사회는 예전보다 급변하고 있고, 예기치 못한 정치 사회 문제로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카오스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듯하다. 이런 가운데 문인들의 수는 늘어나고 있다. 모든 문인들이 현실과 정세에 관심을 가져라 말하기는 문학의 특성상 참으로 어렵고 요원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학의 본령은 아닐 것이다. 시인은 시인대로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그리고, 소설가는 소설가대로 자신만의 세상을 다듬어서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오늘날 문학작품의 성향을 독자들에게 쉽게 설명하면서 자기 식의 분석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평론가의 임무이다. 비평의 언어가 달리 특출 난 것은 아니다. 비평도 하나의 작품이다. 그것은 비평가 나름의 언어 미학과 예술의 색채를 지니고 있다는 말도 된다.

이철경의 투고작 「시인의 콤플렉스와 그의 주변-김수영 시인의 유고시와 기존시의 비교」은 그동안 학계에서 널리 다뤄왔던 김수영 시인의, 기존시와 유고시를 비교하고 있는 평문이다. 글이 대체로 잘 읽히고, 난해한 용법으로 독자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요즘의 ‘흔한’ 평론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장점이 되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비평이 보여주는 섬세하고 예리한 독법이 부재하다는 점에서는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한 가지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글의 배면에 담겨 있는 논자의 패기이다. 김수영의 시들은 아직 무한한 해석의 영역을 품고 있다. 논자의 분석이 대체로 기존의 논법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느낌은 주지만, “좀 더 내적인 흐름보다 강력한 추진력의 외적 치열함이 시인의 시와 함께 그의 삶에서도 도드라졌다면 4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재보다 더 큰 문학적 지평을 연 위대한 시인으로 길이 남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는 주장이 어떤 ‘고집스러움’ 같은 것으로 느껴진다.

앞으로 글을 다듬으면서 섬세하고 독창적인 논법을 갖춘다면 기대이상으로 좋은 평론들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인의 콤플렉스와 그의 주변-김수영 시인의 유고시와 기존시의 비교」를 선정작으로 정한다. 더욱 부지런하고 예리한 평론을 기대한다.

정 훈┃1971년 마산 출생. 부산 외국어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부산대학교 국문학과대학원 박사과정수료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평론집 『시의역설과 비평의 진실』(2011우수문학도서선정)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