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저 하늘의 별들 1 – 금봉암 참선법회(2023.09.23.) 수행기
1.경계
제자가 차를 몰고 간다. 지난달 법회 때 와 본 제자는 대구에서 금봉암까지 길을 스승이 손수 운전해 가는 것이 안쓰러웠을 것이다. 더욱이 눈 수술로 시력이 온전치 못하다. 안동보살이 햅쌀과 보시금을 전해주려 한다. 고속도로 밖으로 나가려 하니 그럴 필요없다 한다. 고속도로에 들어왔느냐 물으니 그렇지 않다 한다. 고속도로 밖에 있지만 안으로 전할 수 있다 한다. 고속도로 안과 밖을 구분하는 가드레일을 넘을 수 있다. 가드레일 위로 불전에 올릴 햅쌀 2자루를 옮긴다. 경계에 머물지 말고 안팎을 분별하지 말라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이다. 영주엘 들러 영주보살을 태운다. 큰스님 2주기 때 뵌 분이다. 고속버스로 3시간 달려온 두 분 서울거사를 봉화터미널에서 태운다. 생활법률 자문 일을 하는 이분들은 고해 격랑의 중심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햅쌀과 과일상자, 가방들로 트렁크가 가득 찬다.
2.대상
금봉암 텅빈 마당에 서니 얼마 전 큰스님의 2주기 대상을 치른 사실이 떠오른다. 사바세계에서 대상은 망자를 배웅하고 상복을 벗는 의식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망자로부터 독립하는 날이다. 큰스님은 사바세상 한복판으로 다시 오셨겠지만, 이제 그 자비심이 더 필요한 중생들에게 가셔야 할 때다. 우리는 스스로 이곳을 꾸려가야 한다. 멀리 청량산은 오늘따라 더 선연하게 부처님 얼굴과 가슴 모습을 보여준다.
요사채 쪽에서 스님들이 이쪽으로 걸어온다. 삭발하는 날을 맞아 문수산 산행을 나섰다가 이곳까지 오신 축서사 선방스님들로서, 중산스님의 도반이시란다. 삭발한 두상이 반짝이고 얼굴들이 환하다. ‘선방 40년에 남은 건 관절염’이란 스님들의 농담에 내가 깜짝 놀란다. 탐욕을 완전히 여읜 수행자의 한마디가 아름답다.
3.동서남북
보살들이 공양간에서 저녁공양 준비에 여념이 없다. 한때 큰스님을 모셨던 공양보살과 어릴 적 봉암사 주지실 옆방에서 잠들곤 했던 문경보살이다. 문경보살은 가장 이른 시기의 큰스님을 기억해준다. 법당에서는 수원보살이 벌써 삼매에 들어 있다. 금봉암에 대한 연민이 너무 절실해 법회를 빠지지 못하는 용인보살도 앉아있다. 국어교사로 계시다 은퇴한 뒤로 한방에 득력하신 안동거사는 오늘도 침통을 들고와 병 많은 우리들 맥을 잡아주실 테다.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주던 세 분의 빈 자리가 크다. 추석 전이라 특별한 사정이 많이 생겨서다. 풍산서 서울로 올라가 서울지하철을 모는 신심 돈독한 남양주거사는 금봉암 힘의 원천이다. 봉화보살은 자주 화두삼매에 드신 모습으로 수행 기운을 북돋운다. 그리고 구미보살의 빈자리도 크게 보인다. 지금까지 금봉암 법회에 와서 ‘한 달 간의 양식’을 마련해 갔는데 이번 달엔 참석 못하게 되어 다음 한 달 어떻게 살까 걱정이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이날이 아이 셋을 남겨두고 너무 일찍 먼저 가신 남편의 기일이다. 제사를 몇 시간 먼저 올린 뒤 혼령을 모시고 오는 쪽으로 마음을 모았지만 결국 물리적 시간의 부족으로 참석하기 어렵게 되었다. 혼령을 어떻게 잘 모실까 고심하던 나는 두분의 불참 소식에 섭섭해하면서도 안심하게 되었다.
뜻밖의 손님도 왔다. 출가의 길에 들른 목포거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