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간여행〉
아직도 달려가는 완행열차
박영식
경남 삼천포(현재 사천)의 와룡과 남평이란 마을에서 나의 유년은 시작되었다. 6.25가 끝나고 엉망진창이 된 삶들을 다시 일으키는 시절이라 몹시 배고픔을 겪어야만 했다. 하루하루가 참 무료함을 느끼며 봄에 올라오는 연한 찔레 순을 꺾어 질겅질겅 씹어 먹기도 했다. 논두렁이나 언덕배기에 알이 통통한 삘기를 뽑아 하얀 속을 까서 먹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동네 형들과 산에 나무를 하러 가는 날이면 낫으로 소나무 껍질을 벗겨 연하고 하얀 속살을 긁어먹으며 솔 향기와 함께 허기를 달래야 했다. 그 당시는 미끈거리는 고무신을 신고 10리든 20리든 걷고 또 걷는 것만이 이동 수단이었다. 자수성가한 금자탑이 대동아전쟁이란 명분으로 일순에 와르르 무너져 폭망한 아버지. 삼대독자의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자식 부농만 남긴 채 화병으로 일찍 생을 마감했다. 그 비극의 그늘로 입 하나 덜려고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전학을 밥 먹듯 했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외삼촌 집 어미 소 고삐를 잡고 풀을 먹이려 들이나 야산으로 가야 했다. 이것저것 허드렛일을 하며 구슬픈 타령조로 흥얼거리던 어머니. 그것이 한의 소리란 걸 늦게서야 알았다. 왠지 그런 소리가 싫지만은 않았었고, 알게 모르게 가슴 밑바닥에 앙금으로 가라앉았다. 저녁밥을 끝낸 부산 수영 변두리 마을에 어둠이 짙어지면 이웃 사람들은 불나방 모양, 등유로 밝히는 사기 등잔불 주위로 모여들었다. 신기루나 다름없는 라디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사실감을 느끼게 했던 음향이 만들어 내는 연속극은 사람의 마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가슴을 쪼이게 하거나 대본의 갈피에 끼어 훌쩍이기도 했다.
어딜 가나 또래 중에 제일 키가 작았던 꼬마. 6학년 때 버스 정거장에 심부름을 나갔다가 동생으로 삼겠다는 예쁜 누나도 만났다. 나보다 열 살쯤 위였던 누나는 방학을 틈타 키 작은 꼬마가 예쁘고 귀엽다면서 선물도 해주고, 맛난 것과 유원지에 구경도 시켜주었다. 생활의 수준 차이 때문이었을까,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소식을 끊었던 참 좋았던 누나. 옷깃 칼라가 유난히 흰 반듯한 검정색 교복을 입고 싶었던 중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다. 가난을 벗어나려 맨발의 무전취식(無錢取食) 어린 객은 눈 내리는 한겨울에 무릇 13시간 동안 어둠을 헤집고 달리는 서울행 완행열차에 몸을 숨겨 올라타야만 했다.
세상의 밑바닥 일이란 일은 다 해 보았다. 슈샨보이, 신문 배달, 심지어 조폭 똘마니까지…. 일기를 썼고 야학을 하면서 어렴풋이 배움의 소중함을 느꼈다. 공교육의 기초가 부실했었기에 학업 시험만 쳤다 하면 늘 빵점이었고, 통신표(성적표)엔 〈가〉 밖에 보이질 않았다. 가끔 긁적인 잡문이 신문 독자란을 장식하면서 당시 문화의 한 축을 이룬 펜팔 편지는 밤을 새워 수도 없이 써 날렸다. 그 덕에 늦깎이 고등학교 시절 「문예부장」이란 과분한 감투를 쓰게 되었고, 아직도 60년 가까이 된 펜팔 답장 편지가 300여 통이나 박스에 담겨 있다. 아픔이었고 사랑이었고 슬픔이 용해된 눈물이었다.
읽을거리가 참 귀했던 시절, 부산 보수동 뒷골목 헌책방을 자주 찾았다. 더구나 생활 속에서 눈에 띄는 문학적 자료가 되겠다 싶은 것은 모조리 스크랩하여 나만의 자습서를 만들었다. 심지어 땅에 구르는 구문 속에서 기사, 사진, 그림도 놓치지 않고 가위질을 했다. 불끈 쥔 주먹에서 힘이 솟구쳤다. 우리나라에서 독자투고를 가장 많이 한 장본인이 바로 나였음을 자부한다. 당시 나에게 동인 결성을 주문했던 문청(文靑)은 지금 한국 문학계를 이끄는 수장이 되었다. 대신 삶도 등단도 지각생일 수밖에 없었던 나는 《우체부 시인》이란 타이틀로 「신춘문예」 역사상 가장 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면서 기염을 토했다. 누구 말마따나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좀 달라져 있었다. 나는 아직도 완행열차 3등 칸에 기대어 차창 밖을 응시한다. 자주 비는 뿌리고, 또 어디쯤에서 내려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또 한 번 하얀 증기를 뿜으며 기적 소리를 토해낼지는 미지수지만, 무던히 100세 정거장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바다로 간 공룡
박영식
쥐라기
백악기
그때 지구 주인이었던
산만한 공룡
다 어디 갔을까
남해 고성마을
바닷가에 와보고
편평한 너럭바위 위
공룡화석 큰 발자국이
뚜벅뚜벅
바다로 걸어갔구나
안개 자욱한 바다
얼른 등 내보이는
엄마섬 아기섬 형제섬
섬 섬 섬…
모두 공룡이구나
- 〈새벗문학상 당선작〉
박영식 sig3519@naver.com
《서울신문》(1984), 《동아일보》(1985) 신춘문예 시조 당선. 《월간문학신인상》(2003) 동시 당선. 울산 《푸른문학공간》 운영. 동시집 『바다로 간 공룡』, 『빨래하는 철새』, 그림동시집 『반구대암각화』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