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4059] 길재(吉再)선생시-閑居(한거),述志(술지)
閑居(한거),述志(술지) - 冶은[야은] 吉再
臨溪茅屋獨閑居 (임계모옥독한거)
시냇가 초가집에서 홀로 한가하게 지내노라니,
月白風淸興有餘 (월백풍청흥유여)
달은 밝고 바람은 맑아 흥이 남아도는구나.
外客不來山鳥語 (외객불래산조어)
손은 오지 않아도 산새가 무언가 지껄여 대고 있는데,
移床竹塢臥看書 (이상죽오와간서)
대나무 둑으로 평상을 옮겨서 누워 책을 보고 있노라.
동문선 제22권 / 七言絶句 閑居(한거) 길재(吉再) 臨溪茅屋獨閑居。 月白風淸興有餘。 外客不來山鳥語。 移床竹塢卧看書。 시냇가의 초가집에 한가로이 혼자 사니 달은 희고 바람은 맑아 흥도 넉넉하네 바깥손은 오지 않고 산새만 지저귀는데 평상을 대언덕에 옮겨 놓고 누워서 책을 본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달진 (역) | 1968
冶隱先生言行拾遺卷上 / 先生遺詩 述志 (술지) 臨溪茅屋獨閑居。 月白風淸興有餘。 外客不來山鳥語。 移床竹塢臥看書。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0
東文選卷之二十二 / 七言絶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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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야승 용재총화3권
○ 길재(吉再) 선생은 고려가 멸망함을 통탄하여 문하주서(門下注書)의 벼슬을 던지고
선산(善山) 금오산(金鰲山) 밑에 살면서 본조에서는 벼슬하지 않기로 맹서하였는데,
본조에서는 예로써 대하였으나 역시 그 뜻을 빼앗지 못했다.
공은 군(郡)의 여러 생도를 모아 두 재(齋)로 나누었는데,
양반의 후손들을 상재(上齋)로 삼고, 마을의 천한 가문의 아이들을 하재(下齋)로 삼아,
경(經)ㆍ사(史)를 가르치고 근(勤)ㆍ타(惰)를 시험하는데 하루에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백 수십 명이었다. 공이 일찍이 〈한거시(閑居詩)〉를 지었는데,
차갑고 맑은 샘물에 낮을 씻고 / 盥手淸泉冷
무성한 나무에 몸을 비긴다 / 臨身茂樹高
관자ㆍ동자가 찾아와 글자를 물으니 / 冠童來問字
이럭저럭 더불어 소요함도 좋구나 / 聊可與逍遙
하였고, 또
시냇가 초가에 혼자서 한가로이 / 臨溪茅屋獨閑居
달 밝고 바람 맑아 흥겹고나 / 月白風淸興有餘
바깥 손님 안 오니 산새와 벗하고 / 外客不來山鳥語
대밭 언덕에 평상을 옮겨 놓고 누워서 책을 본다 / 移床竹塢臥看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