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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 왕비 이방자(李方子, 1901~1989)가 그린 장미 그림이다. 종이에 수묵과 채색으로 장미꽃송이와 줄기 일부를 확대하여 그렸다. 화면 우측 아래쪽에서 중앙을 향해 대각선 방향으로 뻗은 줄기에 활짝 핀 붉은 장미 한 송이와 꽃봉오리, 초록색 잎들이 붙어 있다. 꽃은 몰골법(沒骨法)으로 표현하고, 잎은 물감을 덧칠하여 형태를 잡은 뒤 묵선으로 잎맥을 표현하였다. 화면 좌측 상단에 "長春"이라고 묵서하고 그 우측에 주문방인(朱文方印) "淸樂"을 날인했으며 그 아래에 다시 "庚戌初夏 佳惠"라고 묵서하고 백문방인(白文方印) "李方子"를 찍었다. 경술(庚戌)년은 1970년에 해당되며 가혜(佳惠)는 이방자의 호이다.
- 이방자 여사는 시,서화, 도자기 등 다양한 취미를 가져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으며 2018년 10.3~15일 인사이더 센터에서 전시를 하였다.
◐ 이방자(李方子,1901년1월4일~1989년 4월30일)는 일본제국의 구황족이자 영친왕 이은의 부인. 대한민국의 자선 사업가이다. 나시모토노미아의 제1여왕이며 1920년 영친왕 " 이은"의 비가 되었다.
결혼 후 일본에 줄곧 체류했으며 1945년 일본 패전 이후 일본 황족의 지위를 잃었다. 1963년 귀국 후 1963년 신체장애자재활협의회 부회장, 1966년,장애인 재활단체 자행회(慈行會)를, 1967년,언어장애인 및소아마비장애인 복지단체 명휘원(明暉園)의 설립에 참여하고 자선사업을 하였다. 한국에서 존경받는 일본인중 한명이다.
"한일관계는 갈등을 반복해왔지만 앞으로 달라져야 하지 않나. 이방자 여사가 한국에 남긴 희생과 봉사의 뜻을 기억해 미래 한일 청소년들이 더욱 교류하고 소통하길 바란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부인은 '이방자'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 기념사업회의 정하근 이사장을 최근 매일경제가 만났다. 영친왕비는 일본 황족으로 태어나 조선 마지막 왕비로 죽는 날까지 장애인 복지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헌신했다. 정 이사장은 그의 환국 60주년을 맞아 지난 45년간 모은 유물로 기념전을 연다.
기사... 영친왕비 희생의 삶... 한일잊는 가교될 것
어린 시절부터 우표, 동전 등 수집에 일가견이 있던 정 이사장은 대학생 때 본격적으로 고미술품을 수집했다. 그는 회사를 운영하며 모아온 고미술품으로 은퇴 후 인사동에서 18년째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것은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예술작품들이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것만 400여 점이다.
정 이사장이 영친왕비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979년 창덕궁을 찾았을 때다. 그는 "낙선재 앞을 지나는데 사람이 아주 많이 몰려 있었다"며 "그곳에 이방자 여사가 곱게 옷을 차려입고 궁궐 사람들과 자선바자회를 열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때 처음으로 이방자 여사와 인사를 나눴지만 당시엔 나도 일본에 대한 감정이 썩 좋지 않았다"며 "집으로 돌아와 여러 책을 찾아보니 고초를 겪고도 끊임없이 선행한 삶이 가슴 아파 눈물이 다 났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후로 자선바자회를 다니며 영친왕비가 내놓은 작품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영친왕비는 1960년대 한국에 칠보를 처음 들여왔다. 일본 예술학교에서 배운 솜씨로 당시 육영수 여사와 장관 부인들을 대상으로 칠보를 가르쳤다. 정 이사장은 "이방자 여사는 20여 년간 궁인들의 자문을 받아 조선 궁중예복과 칠보 혼례복을 직접 만들어 전시를 열었고, 그 후원금은 다 한국 장애인학교에 기부했다"고 말했다.
장애인 복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1960년대, 영친왕비는 국가에서 받은 지원금과 자선바자회 후원금으로 부랑하던 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정 이사장은 "이방자 여사는 장애인들이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기술을 가르쳐 목공소, 방직공장 등에서 일할 수 있게 했다"며 "세계 장애인 협회·기구에서도 그분의 공적을 높이 산다. 한 나라의 왕비가 소외계층을 위해 이토록 헌신한 역사가 없다"고 말했다. 영친왕비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 국민훈장을 받았다.
정 이사장은 영친왕비를 기리기 위해 기념재단을 세우고 유물 전시를 기획했다. 오는 8일에는 청소년을 위한 특별전을 개최한다. 그는 "시청각 교육자료를 통해 청소년들에게도 역사와 이방자 여사의 삶을 알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정 이사장은 2019년 일본 외무성 산하 일한문화교류기금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과거 영친왕비가 자선바자회를 열 때면 일본 황궁 사람들이 전세기를 타고 찾아와 왕비를 도왔다"며 "일본에선 이방자 여사를 일제의 야욕에 희생된 불쌍한 인물로 기억한다. 헌신적 봉사로 억압의 역사를 희석해 준 걸 고맙게도 여기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이러한 인물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의 목표는 영친왕비 기념관을 세우는 것이다. 그는 "한일관계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이 역사를 배우고 기억할 수 있는 상설 교육관을 마련해 문화 교류와 교육의 장으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제국 최후의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작품전은 이달 8일부터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 대원군(大院君)은 조선 시대에 본래 왕위 계승권자가 아닌 왕족의 아들이 즉위하면 아버지에게 주는 칭호[1]였다. 흥선대원군을 제외하면 모두 사후(死後) 추존된 경우였다. 조선은 대원군은 4명이며 그중에서 살아있는 이에게 칭호를 준것은 흥선대원군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