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심사평]
“문학사의 거목으로 성장하기를...”
우후죽순처럼 번지는 인문학의 물결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나 서양의 르네상스는 아니다. 컴퓨터라는 인간 이기문명의 극점에 와서 사람이 차지하는 자리를 컴퓨터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의 소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의 기조는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역사문화다.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고전(古典)에는 경전을 비롯해서 문학서적이 대종을 이룬다. 인간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이야기들 중에 인간이기를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쌍방향의 소통기법을 통해 구전으로 혹은 문자로 알려 후대에 전승시킨다. 우리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이를 수용하지만 각자는 살아온 날들의 족적과 이해관계에 의하여 선별 수용한다.
詩는 고급 언어다. 혹은 고급 저택에서 사는 사람들의 전유물로도 여겨 왔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장 존귀한 존재가 인간이고 그 인간 중에서 선별된 인간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는 것이 고전적 의미의 詩다.
화자(話者)는 시인이 되고 문학에 귀의할 뜻보다 윤기 나는 삶의 요소요소에 문학정서가 도사리고 있는 서정을 동경해 왔다고 한다. 해학과 풍자, 한 구절의 시구에 폭발하는 감정의 노출과 절제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고 한다.
청년기에 문학을 만나 장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이르러서 집대성을 하는 많은 원로들을 보면서 그 시작이 빠른 것은 아니지만 늦은 것은 더더구나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허나 그 작품을 대하면서 누군가 "젊은이"라는 표현을 들어본 기억을 소환해 본다. 시인 김동현은 젊은 늙은이이다. 님의 시제(詩題)부터 그렇다. 철학적 사변을 요하는 "청록색 삶"이 그렇고"순환의 진리"가 그렇고 "삶과 죽음의 길목에서"가 그렇다. 흔히들 자연을 노래하고 인간관계의 우정과 신의를 아름답게 노래하는 것이 시라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뜨리고 철학이 있는 삶의 근원을 고민하는 육중한 시제를 선택한 것이다, 언어의 가벼운 유희쯤으로 업신여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이 되고 스스로의 삶에도 분명한 철학을 삽입하리라 믿으며 등단의 서광이 꺼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데스크에 올라온 작품 5점을 보면
1. 청록색 삶
어제는 그리움으로 채색하고 오늘은 청록색으로 시간을 색칠한다.
기항지를 잃어버린 난파선의 항해 투명한 하늘이 두렵고 삼엄한 어둠은 공포다
기어이 가고야 마는 고집쟁이 시간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덧칠된 삶의 본체를 돌려 달라고 목이 메어 울부짖어도 기항지는 보이지 않는다.
매정하게 손을 흔드는 이별의 막장 내 삶의 좌표는 청록색 물감으로 나염 되어 있는데 세상은 온통 이리떼의 피범벅이다
하늘색 이상 초록의 꿈
시간아! 비켜라! 내일은 내가 가야 한다
評 / 기승전결의 테크닉은 약간 미흡하나 언어를 청색과 녹색 물감으로 나염하는 기교, 좌초된 현실에 대하여 하늘색 이상과 초록의 꿈으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분석하고 도전하는 의지를 높이 칭찬하며 천료 한다. 푸르른 5월은 싱그러운 계절이다!
2. 순환의 진리 가슴 설레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귀로 먹는 독약이 되고
밀려드는 외로움이 폭식의 배앓이가 되는
-중략 -
산다는 일은 참 고단하다
-중략 -
評 / 세상을 향한 어려운 외침이다. 패러독스의 극치다. 돌고 도는 윤회의 철학을 그려냈다. 일품이다. 시가 보여줄 수 있는 극을 간직하여 오히려 신인다운 신선함이 떨어진다. 감탄을 금치 못한다.
3. 삶과 죽음의 길목에 서서 함께 행복하자고 철석같은 약속을 뒤로하고 죽음의 신에게 유혹당한 육신의 절규
휴거 된 혼의 서글픈 노래는 다시 만날 날의 기약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 지를 약속할 수는 없어도 꼭 만난다는 불변을 노래하는 것 이리라
남겨두고 간 추억의 산을 허물 수 없고 고독의 바다에서 운명해야 할 또 다른 운명 앞에 경건할 수밖에 없는 운명
사랑도 이별도 산사람의 것이거늘 순간의 고비 앞에 어정쩡한 자아
사랑은 잊을 것은 잊고 버릴 것은 버리는 일이다
評 / 동전의 양면 같은 삶과 죽음을 소재로 다룬 점은 인정받아야 한다. 사랑의 정의를 비교적 냉정한 시선으로 정의한 것은 아주 훌륭하다. 미래를 인정하는 종교적인 냄새를 감지한다. 그렇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4. 재회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영력(靈力)도 관성의 이빨 사이에서 헛발질을 하고
-중략 -
재회는 꿈이어야 한다.
評 / 창작은 모방에서 비롯된다.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치다 보면 옥동자가 탄생한다. 그러나 무리한 프로들의 헛발질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님이 꿈꾸는 재회, 문학을 향한 노정에서 삼라만상의 소리를 마음으로 듣는 시인 곧 자신이기를 빈다.
5. 이팝나무의 함정
-중략 -
한겨울의 눈도 아니고 3월의 목련꽃도 아닌 분수를 모르는 푼수가 되어 오월을 지키는 함정이 되었나
評/ 눈꽃도 아니요, 초록색 잎나무도 아닌 오월의 이팝나무가 계절의 함정이 되었다.
조금 무겁기는 해도 앞의 세 편을 천료 한다.
1. 청록색 삶 2. 순환의 진리 3. 삶과 죽음의 길목에 서서
총평 / 전체적으로 산만하지 않다. 어제의 그리움에 오늘은 청록색으로 채색하고 님이 가야 할 내일은 탄탄대로가 되리라 기원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면 살찐 돼지의 시간과 무엇이 다르랴. 한 편의 시제(詩題)를 끌어안고 뜨거운 태양 아래 이가 시린 고독에 떨고, 한겨울 신열을 앓는 테스형(?)이 되어야 한다.
허나 님의 시귀(詩句)에서 노래한 바와 같이 잊을 것은 잊고 버릴 것은 버리는 과감성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귀띔하고 싶다. 언어의 연금술사 시인의 고뇌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면 잊고 버린 것들과 재회하게 된다. 추억 속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끊임없이 자맥질하듯 귀 기울이고 파편들을 찾아 퍼즐을 맞추다 보면 월척(?)을 낚는 어부가 되는 날이 있으리라.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이팝나무 가로수에 매달려 휘파람을 부는 이팝나무의 함정에 빠진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삼라만상 작은 것들의 소리와 향기의 함정에도 빠져볼 것도 권면한다. 목요 문학교실 “나의 인생의 나침반”에서 철학적인 시제(詩題)를 열거한 님의 영롱한 눈동자는 빛나는 별이었다. 문학사에 거목으로 성장하기를 빌며 정진을 빈다.
덕향문학 신인등단 심사위원 신상성, 최기복, 최태호(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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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동현 시인님!
문학사에 거목으로 성장하시기를 빕니다.
거듭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