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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희미한 시간 너머로
심영의
부음訃音
혼자서 천 여 채가 넘는 집을 갖고 있는 자도 있다네. 판교 아파트 청약에는 오천여 가구 분양에 십오만 명이 넘게 몰렸다는군. 아내도 별 반응이 없지만 김연수도 혼잣말 하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부동산 투기 앞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구분도 여야의 가름도 의미가 없다고 비꼬는 어느 필자의 글에 그는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이봐, 이봐, 이 기사 좀 봐. 예전에 십억 원 상당의 상가 건물과 땅을 대학에 기증했던 어느 젓갈장수 할머니가 이번에는 일억 원 상당의 땅을 다시 그 대학에 기증했다네. 김연수는 드라마를 보느라 텔레비전 브라운관 앞에 붙박여 있는 그의 아내에게 다시 말을 건다. 돈도 많네요. 잠깐 고개를 돌리며 그의 아내는 건조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그러네, 돈도 많네. 그도 혼잣소리로 보탠다. 그래놓고는 뭔가 불편한 어떤 것이 그의 가슴에 잠깐 머무는 걸 느낀다.
만약 그래야 한다면, 그럴 필요가 있다면, 우리가 미워해야 할 대상이란 누구여야 옳을까를 김연수는 잠시 생각해 본다. 혼자서 천 여 채가 넘는 집을 갖고 있다는 자를? 그들만의 잔치라느니, 당첨은 하늘의 뜻이라느니 하는 판교 아파트 분양에 청약한 이들을? 아니면 평생 젓갈을 팔아 모은 돈 십억 여원을 대학에 기증한 팔순의 할머니를? 알 수가 없다. 그가 내린 결론은 그랬다. 그러니까 그는 세상에 대한 어떤 결기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그는 문득 이마에 스치는 바람 같은 서늘함을 느꼈다. 지방판 하단 박스기사의 제목을 보고 나서였다.
“박영선, 지병으로 세상을 뜨다…….” 아직 더위가 머뭇거리고 있던 초가을의 어느 날 오후였다. 이봐, 이봐, 그는 아내를 부르다 멈칫 한다. 아내의 뒷모습 너머 텔레비전 브라운관에서는 병에 걸린 남편이 이제 막 숨을 거두고 있었다. 아내와 아직 어린 아이 둘을 남기고 떠나는 남편의 여위고 창백한 얼굴에는 굵은 눈물 자욱이 얼룩으로 남아 있다. 브라운관 속의 아내와 브라운관 밖의 아내 둘 다를 그는 모른 체 하고 벽시계를 쳐다본다. 일주일에 한 번씩의 도시속대안학교 야간 수업에 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죽은 박영선이나 아직 살아있는 그나 어슷비슷하게, 과로와 스트레스와 만성피로에 찌든 사십대 후반의 나이에 걸쳐있는 참이다. 끔찍하다기보다 그는 멀미를 느낀다. 봄의 바람, 가을의 물 따라 어느새 사십대가 훌쩍 지나가고 있다. 스물세 살 젊었을 때에도 그에겐 꽃 시절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다짐을 곧잘 하곤 했었지 싶다.
비슷한 시간에 이정식은 후원자들과의 저녁 모임 장소로 이동하는 승용차 안에 있었다. 선거를 치르자마자 학력허위기재가 문제가 돼서 공석이 된 구청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그는 계산이 좀 복잡했다. 시의회 부의장 자리에 눌러 있는 것이 좀더 안전한 선택임을 그가 모를리 없었다. 다만 그는 욕심이 좀 났다. 기초의원 두 번에 광역의원에 그것도 부의장 정도의 경력이면 한번 해 볼만 하지 않을까 하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넌지시 부추기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자리 하나가 비게 되는 까닭일 것이다. 일찍이 어느 시인이, 의례적이라도 비워둔 자리를 전혀 낯선 얼굴이 차지해 버렸다고 탄식했다는 말을 술자리에서 흘려들은 바 있었다. 그 뿐 시인의 말은 이미 강을 건넌 누구에게도 아무런 울림이 되지 못했다. 퇴근 시간대라 도로는 정체가 심했지만 이정식은 그러려니 했다. 세상일이란 그처럼 막혔다가 뚫리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어물쩡 아물어가는 세월 속에서 길이 열리면 나아가고 막히면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 무엇보다 건강에 좋은 일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스무 살 무렵 그 꽃 시절의 나이에 그는 전문대 임상병리학 교실의 허름한 실험실에서 자주 통음을 하곤 했다. 그가 평생에 걸쳐 해내야 할 일들이란 환자들의 가검물이나 혈액을 채취해서 검사하는 일일 것이었다. 그러나 예기치 않았던 사건은 그를 전혀 다른 길로 가게 만들었다. 김연수나 박영선도 함께 맞았던 그 날 이었지만 되돌아보면 이십여 년의 세월 동안 그는 일상의 삶을 한시도 낭비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그 덕분에 지금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뱃살이 좀 나오긴 했지만 그의 나이에 흉 될 건 없었다. 시력에 아무 문제는 없었으나 그는 부의장에 당선되던 다음 날 금장 안경 하나를 맞추기까지 했다. 지금은 비록 지방 정치인이기는 하지만 정치인에게 이미지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이미 상식일 것도 없었다. 약속 시간에 조금 늦게 나타나는 것 역시 그가 항상 바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판화처럼 신문 속에 박혀있는 박영선의 작은 사진을 김연수는 오랜 시간 응시한다. 그 날에 살아남은 죄 값으로 그는 이 십 여년을 줄곧 연극운동으로 여일했다. 그의 죽음 앞에서 까닭 모를 화가 치미는 건 왜일까 하고 김연수는 생각한다. 생의 어느 한때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그러나 이마에 깊게 패인 두어 개의 주름살과 너무 커서 슬퍼 보이는 두 눈과 그렇게 생각한 탓이었겠지만 어쩐지 수척해 보이는 박영선의 얼굴 모습이 조금도 낯설지 않다고 그는 생각한다. 자주 피곤해서 병원에 가 보았더니 말기 암이었다고, 그리고 두 달 후 생을 마감해버렸다고 신문기사는 그렇게 건조하게 박영선의 죽음을 전하고 있다.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식구들 때문에라도 한번쯤 건강검진을 받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김연수는 한번 소심하게 생각한다. 아니라면 이 주간의 훈련만으로도 가능하다는 무사정 조루방지 페니스 크기 확대 프로그램에 등록해야 하는 건 아닐까. 혼자 생각에도 실없어서 아내의 뒷모습을 흘깃 쳐다보다가 그는 다시 신문을 본다. 강남 어느 부동산 업자의 말인데, 종합부동산세 과세를 피해 할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명의를 옮겨 놨다는군. 강남에서 2,30년씩 활동해온 큰 손들은 앞을 내다보고 투자를 하니까, 그래. 박영선도 나도 앞을 내다보고 살긴 했을 텐데 박영선은 몰라도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를 그는 또 한번 소심하게 생각해 본다. 근데 당신은 언젯적 신문을 보면서 그래요? 그 기사 오래전에 난 건데? 아내는 채널을 바꿔 또 다른 드라마를 보고 있다가 한마디 한다. 응, 이 신문? 어, 어제 조간이네. 이게 왜 여기 있어서…. 그는 잠시 당황스럽다. 그럼 박영선의 장례일은 언제야? 누구요? 누가 또 죽은 거예요?
그는 박영선의 장례일자와 시간을 조그마한 탁상용 달력에 빨간 색연필로 표시해 둔다. 옆구리에 암모기 한 놈이 제 딴에는 깊숙하게 침을 내리꽂고 이젠 뜨거울 것도 없는 그의 피 한 컵을 빨아들인다. 암컷의 흡혈은 살기 위한 것보다 알을 낳는 데 있어 결코 겪지 않고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들어 알고 있지만 그는 괘념하지 않고 놈을 가장 잔인하게 죽인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넣고 놈의 형체가 없어질 때까지 비벼대지만 물론 그렇다고 빼앗긴 그의 피를 되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또 물론 그렇다고 혼자서 천 여 채의 집을 갖고 있다는 자에게 그의 몫을 빼앗겼다는 뜻은 아니다. 평생 젓갈을 팔아 모은 돈 십억 여원을 대학에 기증한 팔순의 할머니에게는 더욱 더 아니라고 그는 생각한다.
난만한 웃음이 탁자 위에
이정식이 저녁식사 시간에 만난 이들은 모두 셋이었다. 후원자라기보다는 거래관계에 있는 이들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었다. 하기야 사람들의 관계에서 거래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정년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시청의 국장은 한 달 후에 있을 작은 딸의 주례를 그에게 부탁했지만 그것이 빈 말이라는 것을 그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가 모르지 않았다. 곧 의회의 정기회의가 공고될 시기였다. 국장님도 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아직 젊디젊은 제가 무슨 주례를 다 합니까 ……. 축의금을 많이 내 놓으시라는 뜻이겠지요? 관급공사를 많이 하는 건설회사의 이사가 스스럼없이 끼어든다. 독립해서 회사를 차릴 것인가, 그대로 눌러 앉을 것인가를 이사는 고민하는 중이다. 오늘의 후원자는 그다. 돈을 내는 날은 누구나 표정에 활기가 있지 하고 이정식은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그는 돈을 모으지는 못했다. 몇 번의 선거 때마다 다른 이들의 신세를 져야 했다. 그리곤 되갚아야 했으니 그것만도 다행이라고 그는 생각하기로 한다.
지난 번 선거를 앞두고는 때 아닌 결혼식 청첩장을 돌렸던 이정식이었다. 제대로 결혼식을 하지 못했던 게 늘 마음에 걸렸던 그는 아내의 불평과 현실의 요구를 다 해결하기 위해서 다소간의 뒷소리를 참아내기로 했었다. 그는 자신의 눈부신 성공을 하례객의 숫자와 봉투에 들어있던 돈을 통해 확인했다. 그 때 아파트 평수를 배나 늘려 나갈 수 있었다. 올 해부터는 지방의원도 유급화가 되었다. 지난 이십 여 년 동안 제대로 된 월급이라는 걸 받아본 기억이 없는 그로서는 그것만으로도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앞으로는 생활에도 훨씬 여유가 있을 것이다. 구태여 보궐선거에 뛰어들 것이 무언가. 그렇게 결정하고 나자 그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과유불급이라 했고, 가진 것이라도 잘 지키는 것 역시 지혜가 아닐 것인가. 다만 낚시찌에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는 말자고 그는 다짐한다. 언제 찌가 움직일지 모르니까. 오래 기다린 사람에게는 찾던 것이 어느 순간 올 것이니까. 그 때 딴 데 눈을 팔고 있으면 기회란 바람처럼 멀리 달아나 버리지, 하고 그는 생각한다.
몇 잔의 술이 돌고 그 기운에 난만한 웃음이 탁자 위에 넘쳐난다. 오랫동안 총포상을 해 온 남편의 일 때문에 얼굴이 굳어있던 초로의 여인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집에 돌아가면 남편이 돌아와 있을 것만 같은 기분으로 그녀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정식에게 그녀는 혹과 같은 존재였다. 사실 자신의 지지기반이란 그녀가 회장을 맡고 있는 어느 단체의 상징적 이미지일 뿐인 것이다. 그는 그 점을 늘 잊지 않았다. 그녀를 위해 수사과장에게 아쉬운 소리를 좀 한다손 치더라도 그녀가 선거 때마다 몰고 오는 더 많은 것들과 비교하면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이런 사소하면서도 잡다한 부탁들에서 그는 이제 벗어나고 싶었다. 이것은 생활정치도 뭣도 아니라고 한 번씩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으나, 그래도 그 날의 공포와 혼돈이 정리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그녀와 그녀가 회장을 맡고 있는 단체는 모종의 현실적 힘으로 기능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랬으므로 이정식은 그녀를 향해 싱긋 미소까지를 지어 보냈다. 미소뿐이겠는가. 발에 입이라도 맞추라면 또 못할 게 무엇인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유권자를 좆으로 알면 안 돼, 누군가의 말투를 흉내 내어 가만히 발음해 본다.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나중에 죽어서도 이웃일 처지이기도 했다. 일어서기 전에 그녀는 이정식에게 소식 하나를 전한다. 그, 박영선씨라고 있잖아요? 소극장하던 사람. 죽었다던데, 연락 받으셨죠? 의원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아직 젊다고 술, 담배 마구 하지 말고. 네, 잘 가세요. 건강들 합시다, 하하하…….
이정식은 그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 두어 번 만난 것 같기는 하지만 잘 아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긴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사실 누가 있나, 그는 시니컬하게 웃는다. 무엇보다 세상은 확실히 달라졌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가를 밤새 따졌지만 오늘은 무엇이 재미있는가가 시대를 움직이는 코드가 되었다. 나쁠 건 없다. 무엇이 옳은 일인가를 밤새 따지던 일도 사실 재미있었다고 해야 옳을 테니까. 문제는 박영선은 세상을 너무 진지하게만 살아왔다는 것일 게다. 그날에 살아남은 자의 죄 갚음이라고들 했지만 어쩌면 가금씩, 그 무거운 짐을 한순간 내려놓고 싶은 날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박영선의 죽음은 암세포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시효가 끝나버린 시간에 대한 절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혼자 생각한다. 아니라도 장례에는 당연히 가봐야겠지 하고 그는 고개를 가만 끄덕인다. 집을 향해 오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한번 응시해 본다. 왼쪽 눈썹 바로 위에, 그 날에 아주 우연히 스쳐 지나간 총알의 상처가 음각처럼 뚜렷하게 남아있다. 이것이 미래에도 나의 성공을 담지해줄 훈장이야, 그는 중얼거린다.
낯선 세대들의 입맞춤만 가득한
일주일에 한번 가는 도시속대안학교에서의 수업을 마치고 김연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비인가 대안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거의 다 학교에서 쫓겨났거나 스스로 그만 둔 아이들이다. 그들이 스스로 자신을 긍정하는 힘이나 사회적응력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일이란 난망한 일이다. 학과공부를 지도하는 일이 그나마 손쉬운 일인데 그것도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한심할 정도로 공부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 아이들을 보러 오는가. 나도 그들처럼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에 목말라하며 상처를 깊숙이 감추고 지냈던 날들이 있었지. 그러나 그것 때문이라면 이제 이곳에 더 이상 와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는 매번 낙담한다. 아이들은 상처의 속살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래, 제각각의 몫으로 혼자서 가는 것이다. 그게 옳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세 곳의 방과후학교와 한 곳의 문화센터에서의 수업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피곤하다.
소설은 더 이상 써지지 않는다. 아니 쓸 것도 없다고 김연수는 밤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그도 박영선처럼 그날의 아픈 기억밖엔 써먹을 게 없고, 그 옛 이야기는 이제 그가 들어도 사실 싫증이 난다. 박영선의 소극장 무대에선 여태 군홧발자국 소리 들렸으니 누가 지갑을 열고 색 바랜 기억을 사겠는가. 어느 때고 진실은 잘 팔리지 않을뿐더러 조금은 불편하기도 한 것이다. 물론 군홧발은 진실이고 여배우의 벗은 몸은 거짓이라는 뜻이 아니다. 전혀 새로운 열망으로 달아오른 낯선 세대들의 입맞춤만 가득한 광장을 눈살 찌푸리고 바라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주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것을, 우리가 고향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가를 지금 그는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박영선이 어느 날 자리에서 일어나다 느꼈을 법한, 그의 몸이 무언가 예전 같지 않다는 수상쩍은 생각을 오늘은 김연수가 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한 번은 걷다가 팔다리에 갑자기 힘이 빠져 발을 헛디딘 적도 있었다. 식욕도 없고 입맛은 갈수록 까다로워져서 끼니때마다 이번엔 또 무얼 먹을까의 궁리로 딴전 피는 아이처럼 한참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정작 배가 고파서 건짜증이 일기 시작하고, 곧바로 두통이 내습하는 것이다. 정말 몸이 지쳐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을 때면 아늑하고 깊숙한 잠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행복한 게 없다고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겐 이제 아무런 분노나 욕망이나 희망마저도 사라져버린 듯하다. 은퇴한 노인처럼 양지 바른 곳에 흔들의자를 내놓고 꾸벅꾸벅 오수를 즐기며 하루해를 보내고 싶다는 가끔 씩의 상상만이 그에게 위안을 줄 뿐이다. 또 가끔은, 죽음이 이렇듯이 깨어나기 싫은 숙면처럼 편안하기만 하다면야 굳이 슬퍼할 게 뭐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는 정말 몸이 나빠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종합검진을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끔 하지만 그러다가 혹 예기기 않은 발견이라도 있으면 그걸 어떻게 감당하나 싶어 자꾸만 뒤로 미루는 중이다. 티베트의 승려처럼이야 할 수 없겠지만 이제 좀 웬만한 일에는 그러려니 하고 느긋하게 생각하자는 다짐이 부쩍 잦은 것도, 속 끓이고 난 뒤끝마다 마치 지독한 숙취 때의 다음 날 아침처럼 머릿속에 전갈이 헤집고 다니는 게 예삿일 같잖아서일 터였다. 그러나 삶은 혼자의 다짐처럼 단순한 게 아니어서 그는 자주 무거운 비애를 느낀다.
박영선씨라고 있거든. 연극운동 했던 사람인데 엊그제 죽었다는군. 김연수는 오랜만에 아내의 몸을 만지면서 꿈속에서처럼 중얼거린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내게 준 충격이란, 미안하지만 그에 대한 일말의 부채감 때문은 아니야 하고 그는 생각한다. 뭐라는 거야, 뭐라고 혼자 소리하는 거야? 그의 아내가 이미 무뎌진 김현수의 단도를 가볍게 쥐고 흔들며 엷게 웃는다. 응, 박영선처럼 마지막 날 새벽의 도청에서 뿐 아니라, 교도소의 외딴 창고에서나 상무대의 습기 찬 영창에서도 나는 삶과 죽음의 넘나듦을 너무도 비참하게 무수히도 치러 냈어. 그 얘긴 왜 새삼스럽게? 응, 부박하고 곤궁한 삶일망정, 나 혼자서 그날의 의미를 사유화하거나 영달의 도구로 휘두르며 살아온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난 그에게 미안 한 거 별로 없어. 연극 한 번 보러 간 적 없다는 게 미안할 뿐이야. 응, 당신은 항상 시간이 없잖아. 그 사람 아이들이 셋이나 된다는데, 한참 돈 많이 들어갈 시긴데 않됐네. 그래, 그래. 발인은 언제래요? 이틀 후야. 장지는? 운정동 묘역. 운정동 묘역이라…….
입 속으로 중얼거리다 말고 그는 아내의 몸을 벗어난다. 그의 영결식에는 가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순간부터 그의 마음 한 자락을 불편하게 했던 것의 정체란 이 운정동 아니었을까. 묘역이 호사스럽게 꾸며진 뒤로는 한 번도 그곳을 찾지 않았고 그와는 무관한 듯 지내왔던 김연수였다. 그에게도 어느 틈에,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든, 운정동이라는 고유명사가 아득히 잊혀져가고 있거나 기억하기에 편치 않음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말했던 어떤 시인은, 사람의 속성을 아직 잘 알고 있지 못하거나 아니라면 지나치게 상업적인 게 아닐까, 그는 생각하며 어두운 거실을 혼자, 한참동안 어슬렁 거렸다.
임인규는 아침 일찍 마륵동에 있는 화훼단지에 나갔다. 아이구, 사무총장님. 오늘 행사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려? 그를 보자 화훼단지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한다. 총장님이란 그가 예전에 관련단체 일을 보던 시절 명함에 박혀있던 자리 이름이다. 총장님은 뭔 총장님이요, 언젯적 얘긴데. 오늘 시세는 어쩌요? 어찌 들으면 비아냥거리는 듯한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그는 과히 싫지 않은 표정이다. 공자도 말했다. 마을 사람 모두에게 좋은 소리를 듣는 이는 없다. 그렇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이도 있다. 이것이 세상이다. 그는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좋은 습관이 있었다.
제화공이었던 스무살 시절 그 때, 문화방송이 불타던 밤의 일을 그는 새삼 떠올린다. 누군가 방송국에 불을 질렀고, 화염이 타올랐고, 의미를 잘 알 수 없는 함성이 일었으며, 일층 전자제품 대리점의 주인은 혼자서 가전제품들을 밖으로 끌어내느라 허둥댔고, 진압군의 장갑차가 군중들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오던 때, 그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전남여고 적벽돌담을 뛰어 넘어 그 순간을 피했다. 그랬으나 우루루, 억. 담장이 무너지고 몇 사람이 엉켜서 넘어지고, 그 맨 아래에 그가 있었다. 왼쪽 다리를 절룩거리게 된 전말이란 그러한 것이었다.
그는 제법 많은 양의 국화꽃들을 사왔다. 정오 무렵 운정동 묘역에서는 박영선의 영결식이 열릴 것이었다. 운정동 묘역 입구에는 여러 개의 화원이 있지만 행사가 열리는 때는 대부분 임인규의 화원에서 꽃들을 샀다. 그는 민주유공자이고, 그냥도 아닌, 한때의 일이기는 했으나 한 단체의 사무총장을 지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그가 스스로 입에 올려 알려진 건 물론 아니었다. 해마다 때가 되면 기사거리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이 고장에 내려와 어슬렁거리는데, 그 날의 투쟁에서 다리를 다친 인물이 운정동 묘역 입구에서 망자들을 위해 꽃가게를 열고 있다는 것은 흥미 있는 기사거리일 수 있었다. 아니 사실이 그러하기도 했다. 함께 싸우다 먼저 가신 임들을 지키는 아름다운 투사의 이미지는 그와 잘 어울렸다. 그도 죽으면 묻힐 묘원이 이곳이었다. 어느 주간지의 표지에 실렸던 그의 사진을, 운정동 묘역을 배경으로 엄숙하면서도 쓸쓸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큼직하게 확대해서 액자에 넣어 걸어둔 그의 사진을,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올려다보곤 했다. 그는 늘, 이래뵈도 나는 민중운동의 자랑스런 투사였어, 라고 중얼거렸다. 그른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싸웠는가가 문제되기는 할 테지만.
그에게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저지난번에도 그랬고 지난번에도 그가 신청했던 구의회 의원 후보자리가 다른 이에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핑계는 많지만 까닭은 명료했다. 그의 학력이 내세울 게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민중이 주인되는 대동세상을 위해 몸 바쳤건만 그 과실은 다른 이들이 가져가고 있는 게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필요할 때만 민중 어쩌고 하는 자들에게 오랫동안 휘둘리지는 않았을까 해서 그는 요즘 부쩍 무언가 손해 보았다는 느낌이다. 투쟁의 경력만으로 본다면 이정식 따위에게 밀릴 게 무엇인가 하고 그는 또 생각했다. 그가 사무총장일 때 이정식은 그의 아랫자리인 사무차장을 했었지 않은가. 국화꽃 다발을 묶다말고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탱, 풀었다.
이제 우리는 모두에게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잘 알려진 목사가 낡은 레코드판 돌리듯 언제나 같은 소리를 영결식장에서 또 하고 있었다. 김연수는 지겨움을 느낀다.용서는 강자의 몫이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그는 한다. 무엇보다 그는, 피 흘리며 쓰러지던 그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선 닥치는대로 퍽, 퍽, 몽둥이를 내리치던 진압군들을 결코 용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허리를 다쳤으니 제발 좀 그만 때려달라고 애원하던 그를 그들이 어떻게 했던가. 그러냐고, 그러면 똑바로 서라고, 그리고 그들은 뼈가 깨지고 터져 검붉은 피가 청바지를 적시고 쓰려질 때까지 몽둥이로 두 다리를 내려 쳤었다. 반역죄를 짓기라도 했던가. 가래떡처럼 부풀어 오를 때까지 그의 손바닥에 몽둥이를 내리치던, 검게 그을린 얼굴의 디룩디룩 황소 눈알을 굴리던 헌병도, 취조실에서 까닭 없이 욕설과 주먹을 날리던 뱀 눈의 사복에 대해서도 그는 영원히 용서가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한은 원한대로 간직하고 사는 게 그나마 힘이 되지 않을까 하고 그는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금남로를 지나 운정동까지 오면서도 그는 사실 별다른 느낌이 없다. 호화롭게 살다 죽은 옛 왕들의 능을 지날 때도 그가 이리 무심했던가. 새삼 놀라운 일이다.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 근처가 예전에 군부대 영창이 있던 곳이고, 그 해 여름 내내 그가 신음하며 지냈던 곳임에도 별다른 느낌이 없는 것처럼, 언제부터인가 중요한 건 기억이 아니라 일상의 삶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용서고 원한이고 다 부질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시간의 문을 통과한 우리가 이렇듯 하나 둘 죽고 나면 이 거리에서의 싸움의 기록은 아득한 전설로라도 남겨지기는 할 것인가 하고 그는 생각한다. 다만 국립묘지로 관리되고 있는 운정동 묘역의 웅장함이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그는 갖고 있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아마 이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하고 그는 막연히 생각했다.
하관下官
이정식은 영결식장에 괜히 왔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 그의 결혼식장에 왔던 하객들의 숫자와 비교하면 너무도 초라한 장례식이 아닐 수 없다. 이만한 숫자의 사람들과 눈도장을 찍 느라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시청 앞 광장에서 한창 진행 중일 7080 콘서트에 갔어야 했다고 그는 생각한다. 요즘은 하루걸러 무슨 콘서트라느니 지역 축제니 하는 게 많아서 빼먹지 않고 찾아다니기 정신없을 정도다. 시의회 부의장이 가면 짧게나마 인사할 시간을 주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 영결식장에서는 그에게 추도의 말 한마디 해 볼 기회를 주지 않은 것도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소위 운동을 오래한 자들은 자신들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는 버릇이 있어서 다른 권위를 인정하는 게 인색하다고 그는 새삼 느낀다. 그래도 그는 속내를 감추는 데 익숙하다. 그는 정치인이 된 것이다. 아까 임인규를 얼핏 본 것 같은데 다른 곳에서 꽃 한 묶음을 사들고 온 게 그는 영 꺼림칙하다. 그와 나는 수준이 다르다고 그는 생각한다. 감히 어딜, 누구와 비교하려 드는가. 그리고 제 잘난 맛에 사는 김연수는 하도 오랜만에 보아서 처음엔 알아보기 쉽지 않았다. 이정식은 장차 죽어 묻힐 이 묘원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부지런히 경력을 관리해 나간다면 죽은 후에도 아마 좋은 터에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공수거공수레라는 말은 괜한 소리라고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임인규도 낭패였다. 사람들이 워낙 오지 않은 탓에 준비했던 꽃묶음들이 거의 팔리지 않은 탓이었다. 지금은 운정동 묘역에 일반 참배객들도 몰리는 때가 아니었다. 재고를 어떻게 처리하나 하는 생각으로 그는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그런데다 이정식이나 김연수가 다른 곳에서 국화꽃묶음을 사 들고 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얼굴에 경련이 이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그들이 내가 이곳에서 화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리라. 아무려면 내가 다른 곳보다 더 비싸게 받을까. 아는 사람 도와주면 서로 좋은 것을 무슨 맺힌 억하심정이 있다고 그랬을까 싶어 그는 견디기 어려운 분노를 느꼈다. 이렇듯 일상은 우리의 기억을 무화시키는 것이리라. 아니, 어느새 적보다 한때의 동지를 더 미워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관성이 되어 버렸다. 아, 그런데 우리가 한때나마 동지이긴 했을까. 임인규도 이정식도 김연수도 각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천천히 관이 내려지고 몇 사람의 숨죽인 오열 속에 흙이 덮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없이 흩어져 제 갈 길로 사라져갔다. 임인규와 이정식과 김연수도 보고서도 못 본 척 서로를 비켜갔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세상은 딴청인데
운정동에서 어긋나던 때로부터 두 달 후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 저녁 무렵, 조철기 선생의 구청장 보궐선거사무소 입구에서 세 사람은 다시 어색하게 지나친다. 우선 김연수는 현수막에 적혀있는 글자를 하나씩 발음해본다. 민주투사 조철기.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포도 위를 구르던 나뭇잎들이 회오리를 일으키고 널어둔 빨랫감처럼 현수막이 펄럭거린다. 사형수였던 조철기, 빵빵 경적을 울리며 버스기사가 앞을 가로막은 서툰 여자운전자에게 종주먹을 들이민다. 씨팔, 집에 가서 밥이나 할 것이지 왜 돌아다니고 지랄이야. 조철기와 함께 개혁을, 조철기와 함께 희망을, 그는 욕지기가 인다. 배가 고파서 일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바로 오느라 그는 아직 저녁을 먹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그는 늘 허기가 져서 지내는가 싶기도 하다. 사무실 안에 조 선생이 있을는지 그를 만나면 무어라 인사를 해야 좋을지 망설이느라 그는 주춤거리고 서 있었다. 그로서는 박영선의 영결식에 가봐야 하는 것처럼 조철기의 선거사무소에 한 번 쯤은 들려봐야 했다. 그것이 사람의 예의였다. 김연수의 생각에 그래도 오랜 세월 흔들리지 않고 제 길을 걸어온 이는 조철기 정도 밖에 없었다. 그는 조철기를 존경하기보다는, 좋아했다.
임인규는 조철기 선생의 선거사무소에 화분과 화환들을 배달하느라 흥이 났다.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조 선생이 선거에서 제발 이기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구청에서 필요로 하는 꽃 화분들을 독점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처럼 그는 마음이 들떴다. 오래 살다보면 좋은 일들이 꼭 생기게 마련이고, 그래서 가능하면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할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봉고차에서 화분들을 내려 선거사무소 입구에 진열하다가 그는 얼핏 김연수를 보았다. 그의 생각에 김연수와 특별히 얽힌 일은 없지만 하여간 재수 없는 놈이었다. 두 사람은 얼굴을 외면했다.
길 건너에서 운동원으로 보이는 여인들과 이정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김연수는 낭패스런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저녁식사를 마친 듯 이쑤시개를 질근거리며 대 여섯의 사내들이 횡단보도의 신호등 앞에 서서 그들을 건네다 보고 있었다. 낯설지 않은 걸로 보아 이정식과 함께 조철기의 선거운동을 도와주고 있는 이들로 보였다. 그는 불편한 기분이 빠르게 스쳐감을 느꼈다. 오지 않아도 될 것을 그랬다고 생각하며 그는 이정식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네. 그런데 이정식은 아예 그를 못 본 체 했다. 일행인 여인들이 곁눈으로 그를 흘끔거리며 그 뒤를 따라 선거사무소로 올라갔다. 왜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잠시 영문을 알 수 없었던 그는, 그러자 화가 났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고, 극심한 피로와 두통을 느꼈다.
오, 이게 누군가? 김연수, 자네가 여긴 웬일이당가? 무례를 느낄 만큼 그의 어깨를 탁, 치며 사내 하나가 눙을 쳤다. 임인규와 늘 어울려 다니는 주먹패 중의 하나였다. 옳지, 조 선생님이 출마를 했으니 당선이야 따 놓은 당상이고 아하, 자네도 미리 한 몫 껴보겠다 이거지. 그럼, 그럼 생각 잘했네. 자네야 능력 있는 사람이고 그 능력이 차고 넘쳐서 그게 문제였던 친구니까. 그란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자네한테 마땅한 자리가 있을랑게 모르겄네.
그는 빨리 이 장소로부터, 이들로부터, 이 곤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침묵으로 그들을 외면했고 구원을 바라듯 혹 조철기 선생이 나타나지나 않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의 사내가 갑자기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김연수보다 오히려 그들 일행이 놀란 토끼 눈인 채 멈칫 했다. 김연수는 사내의 우악스러운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캑캑 거렸다. 눈앞이 흐려졌다. 이봐, 왜 아무 말이 없는 거야? 내가 같잖다 이거지? 네놈이 예전에 신문에 투고한 걸 보았지. 오월의 금희가 살아온다면 살아남은 우리가, 뭐 창부 같은 우리가 그녀를 어떻게 대할 수 있을까 그랬던가? 이 너 혼자 잘난 새끼야.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 많이 배운 놈들은, 하다못해 여기 조철기 선생만 해도 그때 대학을 다녔고 이름 있고 지식인이니께 오늘날 단체장 선거에 공천을 안주냐? 그란디 나같이 가방 끈 짧아 불고 가진 것이라곤 두 쪽 방울밖에 없는 놈들은 별 수 있다냐? 여기저기 쑤셔보고 성가시게 해야 산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다니께. 야, 민중이 잘 먹고 잘 사는 게 좋은 세상 아니냐? 우리가 왜 총을 들었다냐?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고 그런 거 아니냐? 그란디 뭐 우리보고 창녀 같은 자들이라고야? 차라리 너 같은 놈이 어중간하게 무능하고 차라리 응큼한 거 아녀? 이정식은 차라리 똑똑하기라도 하고 임인규는 성실하기라도 안하냐? 너는 그들이 부럽지야? 너는 여전히 좆도 아니지? 여기 왜 왔어? 미리 한자리 보아 두겄다 그 속셈 아니어야?
그는 숨이 꽉 막혀 아무 소리를 낼 수 없었는데 사내는 대답을 하라고 틀어쥔 목을 마구 흔들었다. 이마엔 땀방울이 솟고 심한 갈증으로 목이 탔다. 사내들은 그러나 뜯어말리지 않았다. 그들과의 구원舊怨이 있었던가. 그래서 일 것이다. 누군가는 박수를 쳤다. 그래, 한번 맛을 보여줘. 어쩌면 임인규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구원舊怨의 근원을 더듬어보면, 그들이 아니라 김연수 자신이 더 많은 몫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문일 것이다. 그래 그는 사내들의 폭행이 가슴에 깊이 남을 상처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게 있었다면, 그들에게 진 빚을 갚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만큼은 그들의 말을 긍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라는 생각도 김연수는 들었다. 그들의 탓만은 아닌 것이다. 갑갑해서 침을 뱉을 때마다 김연수의 목에서는 한줌씩의 피가 묻어 나왔다. 조 선생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게 그는 아쉬웠다. 본 지가 오래였고, 당선되고 나면 그에게도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그 자리에 걸맞은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이젠 정말 누가 그 날의 진실을 묻고 간직하고 전할 것인가, 벌써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세상은 딴청인데. 그는 사내들의 패거리에게 봉변을 당한 것 보다 몇 십 배 더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그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그 희미한 시간 너머로 우리는 이렇게 변했지만 여전히 아직은 살아 있어 제각각의 몫을 누리고 있으니 그럼 된 것 아닌가. 제 각각의 몫을 누리고 살자고 그 날 우리는 거리로 나서지 않았던가, 헛헛. 아니 캑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