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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문경문학 아카데미》
강의 제목 : 표현의 씨줄과 날줄
(부제 : 모든 표현은 메시지를 물고 있다)
장소 : 문경시립중앙도서관 2층
일시 : 2023.08.26.(토). 오후 2시.
강사 : 최우창
Ⅰ. 모든 표현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Ⅱ. 표현은 출력이다. (입력은 출력을 전제로 한다.)
Ⅲ. 표현도 유행을 탄다.
Ⅳ. 표현은 생존력이다.
Ⅴ. 맺음말
Ⅰ. 모든 표현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 문경시문인협회의 발전을 위해서 애쓰시는 고성환 회장님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여러분, 문경문학의 진일보를 위해서 늘 노심초사하시는 조향순 문경아카데미 원장님께 우렁찬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 모이신 여러분 본인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다 같이 함성과 함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방금 박수를 받은 분들의 표정을 혹시 보셨는지요?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박수를 치셨는지요?
혹시 나이롱 박수를 치신 분 계십니까?
아시는 것처럼 박수는 ‘기쁨, 찬성, 환영을 나타내거나 장단을 맞추려고’ 두 손뼉을 마주치는 것을 말합니다.
박수는 손뼉을 부딪쳐 소리를 내는 행위입니다.
박수는 다양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보통 축하할 때, 환호할 때, 격려할 때, 동의할 때, 감사할 때 박수를 칩니다.
뭔가를 표현하고 표시할 때 우리는 손뼉을 칩니다.
박수는 표현입니다.
표현은 자신의 생각, 감정,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표현은 말, 글, 그림, 음악, 춤, 연기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린 박수라는 표현의 방법으로, 축하하고 응원하고 환영하고 동의하기도 감사도 합니다.
우린 표현을 통해 소통합니다.
표현은 우리들의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앉아 계시는지요?
호기심 어린 마음,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는 궁금한 마음, 즐거운 마음, 긴장된 마음, 덤덤한 마음, 빨리 끝냈으면 하는 마음 등등이겠지요?
그 마음은 겉으로 드러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의 감정이나 감정의 실마리가 얼굴 등에 나타나는 것을 표정이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을 무표정이라 하지요.
오늘 박수를 받았는데 무표정한 분이 계셨습니까?
고성환 회장님의 표정이 어땠는지요?
조향순 원장님의 표정은 박수를 받기 전보다 더 밝아졌는지요?
아무 표정이 없는 무표정도 표현의 한 가지 형태입니다.
무표정은 눈을 뜨고 입을 다문 상태를 말합니다.
표정은 마음속의 감정·정서 따위의 심리 상태가 얼굴에 나타난 모양을 말해요.
좌우 앞뒤에 앉으신 분들의 표정을 서로 한번 봐주십시오.
표정도 무표정도 표현의 한 가지 형태입니다.
그 표현에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모든 표현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메시지는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의 내용이나, 의도, 교훈, 전하는 말 등을 말합니다.
메시지는 정보, 생각, 감정 등을 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메시지는 말이나 글, 몸짓, 표정, 노래, 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은, 메시지가 아닙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생각이고 상상이고 아이디어(구상. 고안)일 뿐입니다.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할(전달) 때, 비로소 ‘메시지’가 됩니다.
메시지는 소통의 중요한 방법이고 수단입니다.
메시지의 전달 수단이 되는 것을 ‘콘텐츠’라고 합니다.
메시지는 정보의 내용이고, 콘텐츠는 정보의 전달 방법(수단)을 말해요.
메시지가 물이라면, 콘텐츠는 물을 담은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콘텐츠이고, 책에 담긴 글의 주제는 메시지입니다.
신문은 콘텐츠이고, 신문에 담긴 기사는 메시지입니다.
영화는 콘텐츠이고, 영화에 담긴 이야기는 메시지입니다.
e-mail(전자메일)의 내용은 메시지이고, e-mail(전자 메일)은 콘텐츠입니다.
이처럼 메시지와 콘텐츠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e-mail은 전자메일의 약자로, 컴퓨터를 통해 문서, 사진, 동영상, 음성 메시지 등을 전송하는 통신 수단입니다.
메시지는 콘텐츠를 통해 전달되고, 콘텐츠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저의 집 강아지 이름은 ‘두부’입니다.
두부는 수컷인데 나이는 9세인데, 딸은 만(滿) 나이로 8세라고 웃으며 말해요.
두부는 거실 바닥에 앉아있다가 오후 5시쯤 되면 어김없이 제가 있는 소파로 옵니다.
그리고 앞발로 저의 손을 건드립니다.
또는 손을 핥아요.
제가 모르는 척하고 반응을 하지 않으면, 소파 위로 올라앉아 저에게 눈을 맞춥니다.
일부러 애써 외면하면, 앞발로 다시 손을 잡아챕니다.
머리를 들어, 저와 눈을 맞추려고(eye contact) 합니다.
두부는 온갖 몸짓과 표정으로 ‘아빠, 시간이 되었으니 산책가요.’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든 표현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흔히 동물은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저의 단짝 두부와 같이 살면서, 관찰하고 경험한 바로는 어떤 면에서 동물이 사람보다 생각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말을 못 하니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두부처럼 말을 못 하는, 초록별(Green star) 지구도 인류(인간)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기온 상승, 빙하가 녹고, 사막화의 가속, 폭우, 산불, 가뭄, 홍수, 한파, 혹서 등등의 표현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이기적이고 슬기롭지 못한 인간은 닥친 불덩이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모든 표현, 표정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린 지금 지구의 표정을 제대로 읽고 있나요?
우린 지금 지구의 심정(心情.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요?
Ⅱ. 표현은 출력이다.
대부분의 입력(인풋)은 출력(아웃풋)을 전제로 합니다.
출력은 입력의 결과입니다.
표현은 출력입니다.
표현이란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겉으로, 외면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문서작성 응용프로그램인 <한컴오피스>에서 자판으로 글을 쓰는 것(입력)은 문서의 출력을 염두에 두고 합니다.
작성한 문서를 프린트기로 인쇄를 하든 그것을 복사해서 카페나 블로그에 올리든 카톡에 붙여넣기를 하든 모두 출력에 해당합니다.
출력하지 않으려고 문서를 작성하는 분, 혹시 계십니까?
출력은 사용자가 입력한 정보를 처리하여 생성된 결과물을 말합니다.
출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텍스트, 이미지, 소리, 동영상, 행위나 행동 등등입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연극을 하고, 영화나 영상을 만들고, 말을 하고, 글쓰기를 하고, 토론과 토의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논문을 쓰고, 만화나 웹툰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다루고, 만들기를 하고, 집을 짓고, 하는 등등은
표현이고 다르게 말하면 아웃풋(출력)을 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하는 짓거리(몸을 놀려 움직이는 동작)의 대부분은 표현입니다.
몸짓, 손짓, 발짓, 딴짓, 눈짓, 고갯짓, 망나니짓, 개짓(사람의 도리에서 벗어난 못된 행동), 턱짓, 입짓(어떤 뜻을 전하거나 무엇을 넌지시 알려 주기 위하여 입을 움직이는 짓), 군짓(아니 하여도 좋을 쓸데없는 짓), 별짓, 팔짓, 바보짓, 머릿짓, 곤댓짓, 다릿짓, 어깨짓, 눈짓콧짓(온갖 눈짓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 우스갯짓 등등 짓거리의 대부분은 표현입니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출력은 입력된 것에 근거합니다.
입력에 따라 출력도 달라집니다.
배움도 입력이고, 질문도 입력에 해당합니다.
질문에 대한 응답은 출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그렇지만, 미래는 인공지능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대화형 인공지능(AI)은 3가지입니다.
인공지능(AI)은 인간의 지능을 흉내 내는 컴퓨터 시스템을 말합니다.
대화형은 기계어가 아닌 자연어를 입력하여, 원하는 콘텐츠를 생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인공지능을 말합니다.
기계어와 자연어는 모두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이지만, 그 목적과 구조가 매우 다릅니다.
기계어는 컴퓨터가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는 언어로, 이진법(0과1)으로 표현됩니다.
자연어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로, 문자, 소리, 몸짓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됩니다.
인공지능은 기계입니다.
인간이 기계와 대화를 하려면,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기계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기계어는 주로 컴퓨터나 IT 관련 전문가들이 사용합니다.
전문가들의 전유(專有. 혼자만 소유함)였던 기계와의 대화(기계어 사용)가 대화형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저와 같은 비전문가가 인공지능과 자연어로써 대화(질의응답)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챗봇은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입니다.
챗봇(chatbot or chatterbot)은 실제 인간과 온라인에서 대화를 할 수 있게끔 고안된 소프트웨어입니다.
챗봇의 주요 목적은 대화 방식으로 사용자를 지원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3종류의 인공지능(3명의 친구?)와 질의응답식의 대화를 함으로써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 3명을 소개합니다.
오픈AI의 챗GTP(https://chat.openai.com/)
구글의 바드(https://bard.google.com/)
마이크로소프트의 빙(https://www.bing.com/)
“배움(學)은 질문(質問)에서 나온다. 그것이 학문(學問)이다.”
저의 생각입니다.
이젠 질문(質問)의 시대입니다.
본질(本質)이 되는 중요한 것을 물어보는(問) 것이 질문(質問)입니다.
모르거나 의심나는 점을 묻는 것이 질문입니다.
예전에는 질문을 하기 참 어려웠습니다.
잘 몰라 궁금했지만, 물어볼 곳도 물어볼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그러나 이젠 대화형 인공지능과 말이나 글 등으로, 인간(최우창)이 기계(인공지능)와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대화의 방식은 대부분 주로 질의응답식입니다.
인간이 질문을 하면 인공지능(기계)은 대답을 합니다.
인공지능(人工知能)은 인간(人間)의 지적(知的) 능력(能力)을 본떠 만든(工) 시스템(기계)을 말합니다.
인공지능은 기계입니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기계적인 인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돈을 버는 기계적인 인간을 인재상으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저에게 질문을 하진 않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런 것처럼, 인간과 기계(인공지능)와의 대화에도 ‘질문’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이 기계와 대화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로부터 필요한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필요(needs)와 욕망(wants)이라는 게 있습니다.
필요는 음식, 물, 옷, 잠 등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반면 욕망은 생존에는 필수적이진 않지만, 있으면 좋은 것들입니다.
명품, 좋은 집, 좋은 차, 여행, 권력 등이 욕망에 해당합니다.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필요(needs)와 욕망(wants)을 얻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 그런 것처럼, 인공지능도 가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폐해는 늘어날 것입니다.
우리 조상은 파리와 구더기가 성가시지만, 된장을 담갔습니다.
인공지능도 그럴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폐해는 줄이고 이익, 유익, 유용을 늘려 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흔히 하는 말입니다.
질문이 좋아야 대답도 좋다.
가는 말이 좋아야 오는 말도 좋습니다.
인공지능과의 대화에도 적용되는 원리이고 팁입니다.
질문이 좋아야 글도 좋습니다.
질문이 좋아야 인생도 잘 풀립니다.
인생은 물음표(?)로 시작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생은 느낌표(!)로 끝납니다.
나는 행복했다. 나는 사랑했다. 나는 성공했다. 나는 그만하면 잘 살았다.
인생은 물음표와 느낌표로 가득합니다.
그 물음표는 우리를 궁금하게 만들고, 그 느낌표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인생은 묻고, 답하는 과정입니다.
묻는 과정은 우리를 성장하게 만들고, 답하는 과정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질문이 힘입니다.
질문력(質問力)의 시대입니다.
생성형(대화형)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제대로 된’ 질문이 필요합니다.
저는 인공지능인 챗GPT, 빙, 바드와 문답(問答)하기를 즐깁니다.
구글의 바드(BARD)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빙(BING) 같은 경우에는 온종일 질문을 해도 답을 합니다.
물론 그 답이 해답이 될 때도, 정답이 될 때도 있고, 오답도 있습니다.
때론 동문서답(東問西答. 물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대답)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것은 완전하거나,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인공지능에게서는 우문(愚問)으로 현답(賢答)을 얻긴 어렵습니다.
인공지능에게서의 우문(愚問)은, 우답(愚答) 또는 오답(誤答)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질문에 인공지능은 제대로 응답(應答)하고, 제대로 보답(報答)하고, 제대로 화답(和答)합니다.
현문(賢問)이 현답(賢答)을 냅니다.
인공지능은 묵묵부답(黙黙不答)하진 않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아는 대로 대답합니다.
물론 그 대답이 완전하진 않습니다.
질문의 방식은 절문(切問. 간절하게 물음), 갱문(更問. 다시 물음), 반문(反問. 되받아 물음), 기문(奇問. 기발한 질문), 일문(日問. 날마다 물음), 현문(賢問. 현명한 질문) 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알고 이해될 때까지 묻고 또 묻고 되물어야 합니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모두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이지만, 그 차이점이 있습니다. 아는 것은 단순히 어떤 사실이나 정보를 암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이해하는 것은 어떤 사실이나 정보를 깊이 파악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모두 중요하지만,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해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문제를 해결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입니다.
항상 질문은 명확해야 합니다.
질문은 단순명료(복잡하지 않고 간단하며 뚜렷하고 분명하다)해야 합니다.
질문이 애매하고 모호하고 불명확하고 알쏭달쏭하면, 필요거나 원하는 답이나 정보를 얻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불문(不問. 묻지 아니함)하면, 원하는 정보나 배움을 얻기 어렵습니다.
물음 없는 배움은 없습니다.
우린 질문이 가진 힘을 간과(깊이 유의하지 않고 예사로 내버려둠)하고 살았습니다.
대부분의 입력(인풋)은 출력(아웃풋)을 전제로 합니다.
출력은 입력의 결과입니다.
질문은 입력입니다.
표현은 출력입니다.
입력이 좋아야 출력도 좋습니다.
좋은 질문이 좋은 대답과 응답을 낳습니다.
“동해 바다를 소재로 인생을 주제로 감동적인 시 한 편을 써 줘요.”
<챗GPT>가 쓴 시입니다.
동해 바다/ 챗GPT
동해의 밀물을 품고
우리의 삶은 부드럽게 펼쳐집니다.
썰물과 썰물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다음을 발견합니다.
깊은 여행, 얽힌 사랑.
해안에 부서지는 파도처럼,
어려움이 닥치지만 우리는 견뎌냅니다.
그러나 좌절할 때마다 우리는 여전히 일어납니다.
결코 죽지 않는 힘과 희망으로.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그러나 위의 별들은 우리 홀을 밝혀줍니다.
가장 어두운 밤에 우리는 길을 찾고,
전투를 통해 우리를 인도하는 꿈과 함께.
폭풍과 강풍을 통해 우리는 조종하는 법을 배웁니다.
우리의 두려움에 맞서고 인내하기 위해.
폭풍우 속에서 우리는 보여진다.
우리가 가진 힘, 우리만의 힘.
해안을 따라, 우리는 우리의 일족을 찾고,
두껍고 얇은 함께.
웃음을 나누고 눈물을 흘리며
진정한 유대감은 따뜻해지고 퍼집니다.
해가 뜰 때마다 시작할 기회,
찢어진 것을 고치고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소중한 사랑과 우정을 소중히 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삶을 만드세요.
그러니 동해의 파도를 타고 항해하자,
인생이 만들어가는 여정을 받아들이십시오.
용기와 사랑, 희망의 품으로
우리는 기쁨과 은혜로 가는 길을 찾을 것입니다.
<구글의 BARD>가 쓴 시입니다.
동해 바다/ 바드
동해 바다는
우리의 삶을 닮았다.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고요하다.
때로는 잔잔하고
때로는 거센 파도가 몰아친다.
그러나 동해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우리의 삶도
동해 바다와 같다.
때로는 기쁨과
때로는 슬픔이 찾아온다.
때로는 성공과
때로는 실패가 찾아온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언제나 계속된다.
동해 바다는
우리의 삶을 위로해준다.
동해 바다는
우리의 삶을 가르쳐준다.
동해 바다는
우리의 삶을 영원히 간직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빙>
동해 바다/ 빙
동해 바다의 파도소리
인생의 여정을 닮아
끝없이 이어지는 물결처럼
우리의 삶도 흐르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길
때론 험난하고 가파른 하지만
그 길을 걸어가며
우리는 성장하고 변화해
동해 바다의 끝없는 수평선
우리 인생의 미래를 상징하네
끝없는 가능성과 희망이 가득한
그곳으로 나아가자
동해 바다여, 우리의 인생여
감동적인 여정이 되길 바라네.
Ⅲ. 표현도 유행을 탄다.
표현에도 트렌드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남편을 뭐라고 부르세요?
여러분은 아내를 뭐라고 부르세요?
남편에 대한 호칭은요?
“영감” “누구 아빠” “자기야” “여보” “오빠” 등등
아내에 대한 호칭은요?
“마누라” “임자” “여보” “누구 엄마” “누나” “어이” 등등 설마, “어이”는 없겠지요?
어이는 조금 떨어져 있는 사람을 부를 때 하는 말로써,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씁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서로를 부르는 호칭으로 ‘자기’, ‘여보’, ‘오빠’, ‘누나’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의 이름이나 별명을 사용하여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개인의 선호에 따라 다르므로 옳고 그름은 없다고 봅니다.
저는 아내를 부를 때, “란아!”라고 합니다.
제 아내의 이름은 ‘애란’입니다.
아내가 그렇게 불러달라고 해서, 오래전부터 이름을 부르고 있어요.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인 여사친과 카톡으로 대화하는데 대화 도중에, 그녀가 자꾸 ‘우리 랑이는, 우리 랑이는’ 했습니다.
‘우리 랑이’가 뭐지? 고양인가? 강아진가? 하다가 순간, 아! 신랑을 말하는구나.
그래서 제가 나중에 창의력?을 발휘해서, 그러면 우리 신랑을, ‘우리 랑이’라고 하기보다 ‘울랑’이 어떨까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우리 신랑을 ‘울랑’하면 될까요? ‘울랑’ ‘울랑’ 어떻습니까?
요즘 젊은이들이 만드는 신조어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단어를 줄이는 방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솔까’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를 줄여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신랑을 줄여서 ‘울랑?’, 우리 서방은 ‘울방?’ 우리 각시는 ‘울각?’ 우리 마누라는 ‘울마?’가 어떤지요.
여러분께서도 한번 만들어 보세요.
언어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창의성이니까요.
내가 만든 말이나 단어, 용어를 많은 사람이 사용하면 언어로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저는 1녀 1남을 두었는데, 아들은 결혼했습니다.
사돈, 사돈하고 부르기 좀 그래서 ‘사돈’ 대신에 형님, 아웃님, 언니, 동생으로 부르기로 서로 합의하였습니다.
한 살 위인 저는 형님이 되고, 밭사돈은 아웃님 그리고 아내는 밭사돈을 오라버니, 안사돈도 저를 오라버니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당연히 안사돈은 아내를 언니라고 부릅니다.
저의 부부와 사돈 내외간의 호칭에 대한 협의가 반드시 옳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서로 편하고 존중하는 방향이면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고 봐요.
사돈(査頓)을 한자어로 풀이하면 우리가 아는 사돈의 뜻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사(査)는 조사하다’, ‘돈(頓)은 조아리다’는 뜻을 가진 한자입니다.
아마도 어디서 들어온 말이거나 음을 빌려서 사용한 것 같아요.
원래 사돈이라는 말은 만주어의 ‘사둔’이나 몽골어의 ‘사든’에서 왔다는 설도 있어요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는 사돈을 ‘사둔’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사돈(査頓)이라는 말이 고려 시대에 여진족 정벌에 공을 세운 윤관과 오연총이 서로 사돈을 맺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사돈’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5~16세기부터 이후인 것 같아요.
그러니 ‘사돈’이라는 단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사돈, 사돈어른, 사부인, 사돈 마님, 안사돈, 밭사돈(바깥사돈), 사돈댁 처녀, 사돈댁 막내 도령 등등 필요하다고 여기는 분은 사용하시면 됩니다.
저처럼 형님, 아우, 언니, 동생, 오라버니를 사용해도 되고요.
중요한 것은 서로 존중하고 잘 소통하는 것이니까요.
표현도 유행을 탑니다.
표현에도 트렌드가 있습니다.
요즘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흔히 ‘이모님’이라 부릅니다.
예전에는 아주머니 또는 경상도는 ‘주인아줌마, 아줌마’하고 불렀지요
근데 요즘은 대부분 ‘이모, 이모님’하고 부릅니다.
한국의 식당에는 이모님이 계신다?
‘이모님!, 이모! 이거 좀 더 주세요.’ 합니다.
혈연적으로 이모가 아닌데, 이모라고 부르는 것은 친근감의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고모는 왜 없는지 모르겠어요.
왜 식당엔 고모님이 계시지 않을까요?
고모는 이모보다 대하기 어렵고 만만하지 않다는 통념 때문이 아닐까요?
이모라 부름으로써, 좀 더 친근감을 나타내고, 이모의 수고에 감사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존중과 친근감의 표현은 손님과 서비스 종사자와의 관계를 더 좋게 할 수 있어요.
대한민국의 모든 아주머니는 ‘여사님’입니다.
여사님, 이모님, 언니라 부르는데 욕할 사람은 없겠지요.
이모님, 여사님은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기분 좋은 표현이에요.
오빠,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여자분을 탓할 할아버지가 계실까요?
표현은 유행을 탑니다.
표현에도 트렌드(trend)가 있습니다.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할 때, 이모티콘(그림문자)을 많이 사용합니다.
예전에는 별로 없던 표현의 형태입니다.
<이모티콘>은 감정과 감동을 뜻하는 이모션(emotion)과 모습(모양. 형상. 象. 그림)을 뜻하는 아이콘(icon)의 합성어입니다.
생각, 감정 등을 기호나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이모티콘(emotic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콘은 ‘그림, 형상’을 뜻하는 그리스어 ‘eikon(이콘)’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이콘은 컴퓨터에서 프로그램, 파일, 폴더 등을 나타내는 ‘작은 그림’을 말해요.
아이콘은 사용자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이모티콘은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문자’이지요.
이모티콘은 문자를 이용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말해요.
이모티콘은 컴퓨터나 휴대 전화의 문자와 기호, 숫자 등을 조합하여 만든 그림 문자로서, 감정이나 느낌을 전달할 때 사용해요.
그래서 이모티콘은 한글로 ‘그림글자, 그림말, 그림문자’로 해석해요.
기호는 어떤 것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기호는 글자, 그림, 소리, 행동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기호는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되며, 정보를 전달하거나, 감정을 표현하거나, 규칙을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텍스트 기반 의사소통에서 감정이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호입니다. 이모티콘은 보통 기호나 문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양한 감정이나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웃는 얼굴 이모티콘은 기쁨을 표현하고, 우는 얼굴 이모티콘은 슬픔을 표현합니다.
이모티콘은 1982년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 있는 카네기 멜론 대학 (Carnegie Mellon University)의 스콧 팔만 (Scott Fahlman) 교수가 컴퓨터 수업 중 처음으로 했다고 합니다.
이모티콘의 본격적인 사용은 1990년대 초반, 일본에서라고 합니다.
1997년에는 영어 문자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휴대폰에 이모티콘을 처음 사용한 시기는 1997년입니다.
ㅋㅋㅋ (웃음) ㅠㅠ (슬픔) ㅜㅜ (슬픔) -_- (짜증) ㅇㅅㅇ (놀람)
8ㅅ8 (두근거림) ㅗㅜㅑ (화남) ㅇㅈ (동의) ㅇㅋ (알았어) ㅇㅁㅇ (놀람) 등등
웃는 이모티콘 (😊) 울먹이는 이모티콘 (😢) 놀란 이모티콘 (😮) 화난 이모티콘 (😡)
심쿵 이모티콘 (😍) 슬픈 이모티콘 (😭) 찡그린 이모티콘 (🙍) 윙크 이모티콘 (😉)
하트 이모티콘 (❤) 엄지척 이모티콘 (👍)
😊😀😃😄😁 이런 이모티콘들이 ‘행복’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입니다.
😢😭😞😔😟 이런 이모티콘들이 ‘슬픔’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입니다.
😠😡😤 이런 이모티콘들이 ‘화남’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입니다.
😍😘😗😙😚💕💖💗💓💞 이런 이모티콘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입니다.
문명의 이기인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통한 이모티콘의 사용은, 아마도 인류가 출현한 이후 가장 많이 ‘감정을 표현’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을 늘리고 부정적인 면을 줄여가면 되겠지요.
이모티콘(그림문자)의 등장처럼, 표현에도 트렌드(동향)가 있습니다.
트렌드(추세. 유행. 물결)는 특정 분야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말합니다.
그림에도 글에도 말에도 트렌드가 있어요.
이모티콘의 등장처럼 말이지요.
MZ세대는 대략 40대 초반(1981년)에서 10대 초중반(2010년)까지를 말합니다.
이들을 ‘신인류’라고 해요. 새로운 인간이지요.
이들이 태어나고 학교에 다닐 무렵엔, 컴퓨터가 일반화되었어요.
한국에서 컴퓨터(PC)의 사용이 일반화된 시기는 1990년대 후반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노트북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컴퓨터의 사용이 더욱 일반화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일반화되었어요.
미국에서 2007년에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 한국에서 스마트폰의 사용이 일반화된 시기는 2010년대 초반입니다.
MZ세대의 특징은 디지털 환경(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사용)에 익숙하고, 사생활을 중요시하고, 수평적 문화를 선호하고,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중요시하고, 편리함과 간편함을 추구하고, 워라벨을 추구하고, 재태크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요.
스마트폰과 한 몸처럼 살아요. 궁금한 점이 생기면 유튜브 등에서 찾아요.
자신의 가치관을 소중히 여깁니다.
자기주장이 강해요.
MZ세대들이 사용하는 말과 글의 특징은 이모티콘을 많이 사용합니다.
줄임말을 많이 사용해요.
은어(隱語)를 많이 사용합니다.
은어는 어떤 계층이나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자기네 구성원들끼리만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해요.
유머러스한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자기표현을 많이 합니다.
MZ세대들은 긴 문장을 사용하는 대신 짧게 줄여 말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예를 들어,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 ‘인싸’ ‘아싸’ ‘소확행’ ‘내로남불’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등의 줄임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단어를 줄여 쓰는 것을 넘어 문장을 줄여 쓰고 단어의 초성만 사용해 신조어를 만들기도 합니다.
다음은 MZ세대들이 사용하는 줄임말과 합성어의 사례입니다:
가심비 :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도
갑통알 : 갑자기 통장을 보니 아르바이트해야 할 것 같다
구취: 구독 취소
좋댓구알: 좋아요 댓글 구독 알림 설정
힘숨찐: 힘을 숨기고 있는 찐따의 줄임말로 겉으로는 찐따 같지만 실제로는 대단한 사람을 뜻합니다.
꾸안꾸: 꾸민 듯 안 꾸민 듯.
낄낄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의 줄임말.
너또다: 너도 또라이라 다행이다.
ㅈㅂㅈㅇ: ‘정보 좀 요청’의 초성을 따서.
댕댕이: 멍멍이
띵곡: 명곡
마상: 마음의 상처
멍청 비용: 나의 부주의로 뜻하지 않게 낭비하게 되는 돈
맥세권: 맥도날드 근처
문찐: 문화에 뒤처진 사람
반모/존모: 반말 모드, 존댓말 모드
졌잘싸: 졌지만 잘 싸웠다 스포츠 경기에서 아쉽게 패배하였거나 좋은 경기를 펼쳤을 때 사용한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과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중 잣대를 가진 사람을 나타내는 말
법 블레스 유: 법이 너를 지켜주길
별다줄: 별걸 다 줄이네
복세편살: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혼밥: 혼자 먹는 밥, 혼술, 혼방
애빼시: 애교 빼면 시체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의 줄임말 추운 날씨에도 아이스 음료만 먹는 것을 말함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
케바케: 케이스 바이 케이스
혼코노: 혼자 코인노래방
누물보: 누구 물어보신 분
‘존버’ (존나 버티기)
'내돈내산' (내 돈 내고 산)
노잼 : 노잼은 ‘No와 재미’의 합성어입니다. ‘재미없다’는 뜻입니다.
이모티콘의 등장과 사용처럼, MZ세대들의 줄임말 사용처럼 표현은 유행을 탑니다.
표현에도 트렌드(trend)가 있습니다.
Ⅳ. 표현은 생존력이다.
좋은 시와 좋지 않은 시를 구분하는 기준은 다양하겠지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시가 좋은 시라고 합니다.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생각하게 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하고, 시인의 독특한 개성과 목소리를 담고 있고, 시의 형식과 구조가 독특하며 신선하고, 시의 언어가 아름답고, 시의 이미지가 생생하고 강렬하고, 시의 주제가 독자에게 의미가 있고, 시의 전달력이 뛰어나고, 시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하고, 독자와 잘 소통하고, 독자와 교감과 감동을 이끌어 내고 등등입니다.
한마디로 좋은 시나 좋은 글은, 심쿵(어떤 일이나 대상을 보고 심장이 쿵 하고 뛸 정도로 놀라거나 설렘)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 표현이 감동적일 때, 좋은 시가 됩니다.
그 표현이 심동(心動)해야 좋은 시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움직임이 없는 시는 의미가 약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주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식물도 표현과 표정에 민감히 반응하지만, 그들이 시를 읽는 것은 아니니까요.
따라서 좋은 시의 핵심은 ‘사람살이와 감동의 여부’가 될 것입니다.
사람살이는 인생, 인생살이라고도 하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인생살이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적절한 방법으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해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해선 아래와 같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먼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분명히 파악하지 못하면,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적거나, 그림으로 그려보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수사적 표현을 사용해 보세요.
수사적 표현은 문장의 의미를 더 풍부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언어의 장치입니다.
수사(修辭. 고칠 수. 말씀 사)는 ‘말과 글을 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글이나 말(辭)을 다듬고 꾸며서(修), 더 아름답고 정연하게(짜임새가 갖추어지고 조리가 있게. 가지런하게) 하는 일 또는 기술을 말합니다.
수사적 표현은 문장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하거나, 표현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말을 꾸미는 것을 말합니다.
수사적 표현에는, 두 가지 사물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비유법(그녀의 눈은 별처럼 빛났다), 두 가지 사물을 직접적으로 비교하지 않고, 한 가지 사물을 다른 사물로 대체하는 은유법(내 마음은 호수다)이 있습니다.
무생물을 생물처럼 표현하는 의인화(나무가 바람에 춤을 추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었다), 말의 뜻과는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반어법(아이고 밉상이네. 그는 매우 바쁘다, 하루에 12시간씩 자고 있다는 문장은 그 사람이 매우 게으르다는 것을 반어로 표현한 것입니다)이 있습니다.
반어는 표현하려는 뜻과는 반대되는 말입니다.
사실을 과장(과대. 사실보다 부풀려 떠벌림)해서 표현하는 과장법(그는 산처럼 컸다),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져서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질문법, 같은 말이나 문장을 반복하여 표현하는 반복법(나는 너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는, 사랑의 마음을 강조하기 위해 같은 말을 반복하여 표현한 것) 등이 있습니다.
수사적 표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수사적 표현은 문장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하고, 표현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사용됩니다.
잘만 사용하면 독자의 이해를 높이고, 글의 분위기를 더 생동감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적절한 시기’에 표현하세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적절한 시기에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늦게 표현하면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할 수 있고, 너무 일찍 표현하면 상대방이 당황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세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때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면,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은 의사소통의 기본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하면, 다른 사람과 더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관계’입니다.
말(표현)과 글은 인간관계에 매우 밀접합니다.
말 한마디, 글 한 문장으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습니다.
그릇된 말 한마디로 평생 원수가 될 수도 있어요.
말은 생각의 거울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의 표현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해를 끼치지 않으려면, 그들의 말과 행동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관계가 외틀어지면 외롭습니다.
관계가 틀어지면 왕따가 되기도 해요.
잘못된 표현은 한순간에 오랜 관계를 끊어버릴 수도 있어요.
표현은 생존력입니다.
잘 표현해야 잘 살아요.
물론 세상엔 자신을 위해 나쁜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나쁜 표현이 생존전략인 거죠.
증오와 혐오가 생존의 방식, 생존의 전략인 사람들이 있어요.
나쁜 표현과 혐오가 생존전략인 사람들은 특징이 있어요.
자존감이 낮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증오하고 혐오하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합니다.
사회적 고립을 경험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해, 타인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합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협을 느끼면, 나쁜 표현이나 혐오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려고 합니다. 폭력적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쁜 표현이나 혐오를 통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심지어는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것으로 자신의 힘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나쁜 표현과 혐오는 결코 생존전략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쁜 표현과 혐오는 자신과 타인을 모두 해치는 독이 됩니다.
날실(날줄)은 세로줄이고, 씨실(씨줄)은 가로줄입니다.
어떻게 표현하고 사느냐에 우리의 삶도 성패가 결정됩니다.
날줄과 씨줄의 수직과 수평이 잘 놓일 때, 좋은 천이 짜이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표현하고 살아야 잘 삽니다.
삶은 표현의 연속입니다.
죽음 직전까지 표현을 하다가 갑니다.
유언도 표현이겠지요.
“어휘력은 상황과 맥락에 가장 적합한 어휘를 떠올릴 줄 아는 힘이다.”
정유라의 <말의 트렌드>에 나오는 말입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표현력을 갖는 것은 생존에 유리합니다.
날실은 수직(세로)으로 놓이고, 씨실은 수평(가로)으로 놓입니다.
날실과 씨실은 서로 교차하면서 천이 만들어집니다.
날실은 천의 길이를 결정합니다.
날실이 많을수록 천은 길어집니다.
씨실은 천의 너비를 결정합니다.
씨실이 많을수록 천은 넓어집니다.
날실과 씨실의 짜임새는 천의 무늬와 질감을 결정합니다.
날실과 씨실이 촘촘하게 짜여 있으면 천은 단단하고 튼튼합니다.
날실과 씨실이 띄엄띄엄 짜여 있으면 천은 부드럽고 가볍습니다.
날실과 씨실의 색깔은 천의 색깔을 결정합니다.
날실과 씨실의 색깔을 조합하여 다양한 색깔의 천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직조(織造)처럼, 언어에도 삶에도 씨줄과 날줄이 필요합니다.
유시민 작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남과 다른 나를 표현할 수 있고, 타인의 견해에 공감할 수 있어야,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표현은 결국 나를 찾고, 만들어 가며 그것을 타인과 교감하는 과정입니다.
모든 표현의 근간에는 나와 타인, 세계에 대한 인식과 마음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삶에 문제가 생기면, ‘동굴’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 동굴은 ‘나는 자연인이다.’ 에 출연하는 남자들처럼 ‘자연’이 아닐까요?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여자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반면 여자들은 삶에 문제가 생기면, ‘광장’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카페’도 광장의 일종이겠지요.
남성은 동굴에 숨어들어 ‘은둔(세상일을 피하여 숨음)’의 방식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선호하고, 여성은 광장으로 나와 ‘사교(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 사귐)’를 통해 대화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남녀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별에 따른 성향이나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표현에 서툴고, 여성은 능숙한 부분이 있습니다.
잘 표현하고, 밝은 표정으로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히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흔히 경상도 남자의 특징으로 ‘무뚝뚝하다.’고 합니다.
퇴근 후에 하는 말이 “아(애)는? 먹자? 자자?” 정도라는 우스갯말이 있지요.
또는 “내 왔다.” “밥도” “불 꺼라” “알제?”
무뚝뚝하다는 말의 뜻은 ‘성질이 쾌활하지 않고 인정미가 없다. 아기자기한 맛이 없다.’입니다.
인정미(人情味)가 없다는 말은 인정이 깃든 따뜻한 맛이 없다는 뜻입니다.
인정은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정, 남을 동정하는 마음씨를 말합니다.
인정은 이해심이에요.
인정의 속된 표현이 ‘인정머리’에요.
인정머리가 없다는 것은 이해심도 없고, 동정심이 없다는 말이에요.
아기자기한 맛이 없다는 말은 잔재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잔재미는 잘고 감칠맛(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재미를 말해요.
소소한(작고 대수롭지 않은) 재미가 잔재미에요.
요즘 세상의 대세(유행)는 이해심, 동정심, 인정머리, 아기자기, 잔재미, 감칠맛,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에요.
쾌활하지도 않고, 아기자기한 맛도 없고, 잔재미도 없고, 인정머리도 없고, 이해심도 동정심도 없고 따뜻하지도 않은 남자, 이런 남자 또는 사람을 좋아하는 여자나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무뚝뚝하다는 말은 표현에 서툴다는 것이지요.
무뚝뚝한 성격은 세상의 흐름과 잘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는 거예요.
오늘날은 여자든 남자든 나와 상대가 큰 부자이길 바라기보다, 내 마음과 내 처지를, 내 입장을, 이해해주며 함께 소소한 재미와 행복을 느끼며 사는 거예요.
소위 말해서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지요.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행복, 그게 현대인의 지향점이에요.
물론 큰 부자가 되어 권세를 부리고 눈알을 부라리며, 노목(怒目. 노기가 서린 눈. 또는 성난 눈)을 부라리며 살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요.
대체로 소확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입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들에게 묻습니다.
그래서 좀 나아진 것 있습니까?
그래서 가정이 더 평화롭습니까?
그래서 부부 금실이 더 좋아지셨습니까?
무뚝뚝하다는 말은 표현에 서툴다는 것이지요.
서투르다. 미숙하다. 서먹서먹하다. 서먹하다. 어색하다.
표현에 궁색하다. 표현이 가난하다. 표현이 궁핍하다. 표현이 구차하다.
경상도 남자라서 그렇다. 그것은 궁색한 변명입니다.
‘경상도 남자’라는 프레임에 나를 집어넣고, 무뚝뚝함을 합리화하려는 것은 어리석다고 봅니다.
이제 여자들은 근육질의 남자나 우락부락한 남자보다, 나긋나긋한 남자, 부드러운 남자, 상냥한 남자, 친절한 남자, 연한 남자, 말랑말랑한 남자를 선호합니다.
그게 시대 흐름이고 대세입니다.
여자들이 바라는 남성상을 바뀌었습니다.
남자들이 바라는 여성상도 바뀌었습니다.
오늘날 젊은 여성들은 자신감 있고, 배려심이 많고, 신뢰할 수 있는 남성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자신감 있는 남성은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여성을 이끌어줍니다.
배려심 있는 남성은 여성의 의견을 존중하고, 여성을 이해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남성은 여성의 마음을 흔들지 않고, 여성을 믿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능력 있는 남성을 선호합니다.
젊은 여성들은 성격이 좋고, 유머러스한 남성을 선호합니다.
성격이 좋은 남성은 여성과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유머러스한 남성은 여성을 웃게 만들고, 여성의 삶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줍니다.
남녀 모두 공통점은
성격 좋고, 유머러스하고, 배려심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포용력이 있고, 자신감이 있고
여러분은 자녀들을 키우면서, 자녀의 말문(말門)을 열어주셨습니까?
아니면 말문을 닫는 방향으로 교육하셨습니까?
자녀를 키울 때, 말문을 닫았나요? 열었나요?
대체로 동양은 말문을 닫는 방향으로, 서양은 말문을 여는 쪽으로 교육을 해요.
동양은 너의 생각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서양은 네 생각이 중요해요.
그래서 항상 ‘네 생각’을 말해봐. 해요.
동양을 말문을 닫고, 서양은 말문을 열어요.
아시는 것처럼, 말문은 말을 할 때 여는 입(門)을 말해요.
말을 꺼내는 실마리, 말의 시작이 말문입니다.
말문을 떼다. 말문을 막다. 그가 나의 말문을 막았다.
글은 쓰지 않으면 글쓰기는 절대로 늘지 않아요.
틈나는 대로 자꾸 글을 써야 글쓰기는 나아집니다.
말도 마찬가지겠지요.
우리나라 사람들, 유난히 말을 잘하지 못해요.
말은 조리있고 재치가 있어야 해요.
요즘은 돈 많은 사람보다, 재미있는 사람의 선호도가 높다고 해요.
말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높이면서도 꼭 내가 하고자 하는 의사는 전달해야 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보면, 한국인은 말을 잘 못하는 편이에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말이 곧 글입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을 잘하는 사람이 글을 잘 쓸 가능성이 커요.
우린 그동안 말문을 막았습니다.
특히 가부장적(家父長的)인 유교문화의 영향도 있다고 봐야겠지요.
귀머거리(청각장애인) 3년, 장님(시각장애인) 3년, 벙어리(언어장애인) 3년은 시집간 여자들에게 남자들이 요구하는 조건이었어요.
친정의 부모는 시집가기 전에 딸에게 그렇게 교육했어요.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 해라!
가부장적인 남자들은 여자들(딸과 며느리)에게 장애인?이 되길 요구했어요.
같은 여자인 엄마조차도 그랬어요.
그렇게 가스라이팅* 당한 여자들은 그걸(~척한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했어요.
가스라이팅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자신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글문(글門)은 글을 시작하는 첫머리를 말해요.
그는 질문으로 글문을 열었다.
말도 글도 문(門)이 있습니다.
문이 있으니 들어오기도 나가기도 합니다.
문이 있으니 말과 글은, 출입(出入)이 가능해요.
가정도 학교도 사회도 국가도 ‘말문과 글문’을 열어줘야 해요.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의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가운데, 언론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이고, 표현의 자유입니다.
물론 자유는 방종(放縱. 아무 거리낌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함)과 구분됩니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해요.
자유권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갖는 기본권입니다.
기본권은 헌법에 보장되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말해요.
독재자일수록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고 합니다.
독재자일수록 독재 권력일수록 국민의 <말문과 글문>을 막으려고 합니다.
북한과 중국을 봐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을 봐요.
어느 나라가 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합니까?
권위주의적 정권일수록 국민의 표현력(말문과 글문)을 제한하려고 합니다.
권위와 권위적인 것은 차이가 있어요.
권위는 사회구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영향력(권세와 위엄)을 말합니다.
반면 권위적인 것은 어떤 일에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복종하게 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니 권위와 권위적인 것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합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권위는 있어야 해요.
교사로서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 권위가 있어야 해요.
그러나 권위적인 아버지가 되면 곤란해요.
권위가 있는 아버지께 자식은 다가가지만, 권위적인 아버진 멀리해요.
한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권위가 있는 것과 권위적인 대통령은 전혀 다른 거예요.
권위는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리와 힘을 말합니다.
권위는 종종 지식, 경험 또는 지위에 근거합니다.
권위적인 것은 권위를 사용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권위적인 사람은 종종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권위와 권위적인 것의 차이점은 권위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고려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반면, 권위적인 것은 종종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권위적인 사람은 종종 다른 사람을 제압하고 그들의 의지를 강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6월에 돌아가신 강만길 교수
“독재자 한 명 아닌 만 명의 사람이 자유로워지는 것, 그게 역사”
표현의 트렌드는 그 시대의 문화와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표현의 트렌드를 이해하면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표현의 트렌드는 새로운 문화와 사회를 창조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표현의 트렌드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치관이 생겨나고, 새로운 문화와 사회가 만들어집니다.
결론적으로, 표현에도 트렌드가 있고, 표현의 트렌드는 그 시대의 문화와 사회를 반영하고, 새로운 문화와 사회를 창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표현에 미숙하다. 표현에 서툴다.
표현에 ‘서툴다’의 반대말은 표현에 ‘능숙하다’에요.
‘표현에 능숙해지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표현과 표출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을 말해요.
표현과 표출의 반대말은 숨김, 은닉, 은폐, 억제, 감춤, 차단 등이에요.
아시는 것처럼, 표현(表現. 겉 표. 나타낼 현)은 의견이나 감정 따위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해요.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표현이고 표출이에요.
표현은 출력이에요.
자기표현과 표현력을 키우려면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합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기업이든 사회든 공동체든 학교든 국가든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표현력에서 생의 지속 가능한 능력이 나오거든요.
표현의 자유는 ‘비판적 사고(思考)’가 바탕이에요.
문인은 비판적 사고를 갖고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비판적 사고력이란 어떤 사안(문제가 되어 있는 일의 안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꼼꼼히 따져보는 행위를 말해요.
비판적 사고는 분석, 추론, 종합, 대안 제시 등 4가지 사고를 통해 이루어져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주장은 받아들여야 하고 어떤 주장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결정을 하게 돼요.
비판적 사고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능력입니다.
비판적 사고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돼요.
비판적 사고력은 개인 생활, 직업 생활, 사회 생활에서 모두 중요해요.
개인 생활에서는 비판적 사고력을 사용하여 건강한 의사 결정을 내리고, 유익한 관계를 구축하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직업 생활에서는 비판적 사고력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성공적으로 의사 소통할 수 있습니다.
사회 생활에서는 비판적 사고력을 사용하여 사회 문제를 식별하고, 해결책을 찾고, 변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
비판적 사고력은 개인, 직장, 사회에서 모두 중요합니다.
비판적 사고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의사 결정을 내리고, 더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비판과 비난을 전혀 달라요.
비판은 사실과 논리에 입각하여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지적하는 것이고, 비난은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에서 사건이 발생하거나 트집 잡힐 거리가 생길 시 이를 사실 관계를 떠나 욕하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비판은 공익을 위해 근거를 가지고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고, 비난은 사익을 위해 근거 없이 타인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비판은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여 개선을 촉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 반면, 비난은 단순히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여 공격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즉, 비판은 건설적인 반면, 비난은 파괴적입니다.
비판은 구체적이며, 개선을 위한 제안을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의 글은 문법이 많이 틀렸습니다. 다음에는 문법을 더 신경 써서 쓰세요.”는 비판의 한 예입니다.
비판은 상대방의 자존감을 해치지 않습니다.
비난은 추상적이며, 개선을 위한 제안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의 글은 쓰레기입니다."는 비난의 한 예입니다. 비난은 상대방의 자존감을 해칩니다.
비판과 비난은 그 목적과 의도가 다릅니다.
비판은 개선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지만, 비난은 공격하기 위한 것입니다.
비판은 건설적인 반면, 비난은 파괴적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비판과 비난을 잘 구별하지 못해요.
그러니 비판도 비난, 비난도 비난으로 받지요.
특히 독재적이고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성향의 인간은 더 그래요.
자신을 향한, 건강한 비판과 비평을 비난으로 오독(誤讀)하고 공격해요.
비평은 실질적인 분석을 통해서 가치를 논하는 행위입니다.
문학에선 예술 작품에 관하여 의식적으로 평가하고 감상하는 일을 비평이라고 해요.
독재적이고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인간에게 직언(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바로 말함)을 하려면, 그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해요.
때론 목숨까지 걸어야 해요.
독재 권력은 비판적 태도를 비난으로 받아들여요.
부정적인 사고(思考)를 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권위주의적 권력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고 합니다.
독재자들이 말하는 자유는 그들만의 자유에요.
절대왕국에서, 절대국가에서 자유는 왕(王)만이 가질 수 있는 거예요.
절대군주 국가에선 군주만이 자유권을 가지고 있었어요.
독재자, 그들만이 말할 수 있고, 나머진 입을 닥치고 있어야 해요.
북한의 지배자들을 보세요. 그들은 지배자이지 지도자라 하기 어려워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입니다.
민주(民主.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 국민인 우리가 주인이에요.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지도자일 뿐입니다.
대한민국엔 지배자가 존재하면 안 돼요.
주인은 주인이 되려고 애쓸 때, 주인이 될 수 있어요.
왜냐하면 힘을 가진 자들은 언제든지 틈만 나면, 그 가진 힘으로 민(民)을 지배하려 들거든요. 그게 권력의 속성이에요.
모든 삶에는 견제와 균형이 필요해요.
그걸 동양에선 중용(中庸. 어느 쪽으로나 치우침이 없이 올바르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 중간 또는 보통 정도. 어느 쪽으로 치우침이 없고 알맞음)이라 해요.
모든 힘은 견제와 균형이 필요해요.
견제와 균형을 잃은 힘은, 폭력이 돼요.
물체만 관성(慣性. 물체가 외부의 작용을 받지 않는 한 정지 또는 운동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삶도 관성(慣性. 버릇이 된 행동이나 성질)이 있잖아요.
지배자와 통제자는 계속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속성이 있어요.
독재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에요.
경제적인 지원을 줄이거나 끊는 거지요.
비리로 말문과 글문을 닫으려고 해요.
물론 비리(非理. 올바른 이치나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가 있다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겠지요.
블랙리스트(blacklist)는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의 명단을 말하지요.
한때, 대한민국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문인들과 예술인들을 권력의 입맛대로 통제하려 했다고 합니다.
우린 비판과 비난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해요.
비난을 말고 비판을 해야 해요.
비난을 말고 비평을 해야 해요.
비평(批評)은 사물의 선악(善惡)·시비(是非. 잘잘못.옳음과 그름)·미추(美醜. 아름다움과 추함)를 평가하여 그 가치를 논하는 일이에요.
비평은 사물의 좋고 나쁨, 옳고 그름 따위를 따져 평가하는 것을 말해요. 잘 따져보고 평가하는 것이 비평이에요.
비평은 비평가만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 비평을 비난으로 오독(誤讀. 잘못 읽음)하지 말고, 정독(正讀. 글의 참뜻을 바르게 파악함)해야 해요.
그래야지 발전과 진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문학과 예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표현을 제한하면 창의성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비판적 사고를 제한하면 창의성과 창조성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것은 자유로운 곳에서 나와요.
문학은 자유로운 곳에서 꽃을 피워요.
문학은 획일적인 곳보다 다양함이 존중되는 곳에서 열매를 봐요.
종교는 획일적일 수 있지만, 문학과 예술은 다양해야 해요.
표현을 제한하면 창의성이 나오기 어려워요.
표현을 제한하면 창발성(創發性. emergence. 출현)도 어렵고요.
창발성은 어둠 속이나 숨어 있던 곳에서 나오다. 모습을 드러내다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드러나다, 알려지다, 생겨나다, 부상하다, 부각되다는 뜻을 가진 단어에요.
창발성(創發性)이란 하위 계층(구성 요소)에는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 계층(전체 구조)에서 자발적으로 돌연히 출현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개미 군체의 대규모 분업사회가 창발성의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한 마리의 개미는 그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분업을 이루어내기는커녕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개미들이 수만, 수십만 마리가 모이면서부터 점차 뭔가 체계가 잡히고 조직화가 시작됩니다. 개미마다 역할이 정해지고 업무가 세분화되는 것입니다.
한 마리의 개미 수준에서는 관찰되지 않던 특성이, 개미 집단의 수준에서는 비로소 관찰되는 것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생명체는 아미노산에서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단백질로 세포가 만들어지며, 세포에서 생명체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창발성이라고 해요.
한마디로 말하면, 무생물에서 생물이 나올 수 있다는 이론이 창발성이에요.
생물은 탄소, 수소, 산소, 질소, 인, 황 등이 매우 단순한 화학원소들이 고도로 정교하게 조립되어 생명 활동을 갖게 된 존재라고 말해요.
창발성, 전체는 부분의 합 그 이상
말문과 글문은 표현력이에요.
표현을 억누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말문을 막으면, 의사소통으로 부족으로 개방적이고 정직한 의사소통을 방해합니다.
말문을 막으면, 그것은 우리의 생각, 감정 및 필요를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을 방해하여 오해, 오해 및 긴장된 관계로 이어집니다.
글쓰기에서 표현력과 기교는 매우 중요합니다.
표현력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기교는 글을 잘 쓰는 기술입니다.
표현력과 기교가 뛰어난 글은 읽는 사람의 관심을 끌고,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습니다.
표현력과 기교는 글쓰기의 모든 장르에서 중요합니다.
에세이, 소설, 시, 보고서 등 어떤 장르를 쓰든지, 표현력과 기교는 글쓰기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표현력과 기교가 뛰어난 글은 읽는 사람에게 더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고, 기억에 남습니다.
표현력과 기교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이 읽다 보면 다양한 글쓰기 스타일을 접할 수 있고, 글의 구성, 문장, 어휘, 문법 등 글쓰기의 기교를 배울 수 있습니다.
많이 쓰다 보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글쓰기의 자신감을 키울 수 있습니다.
말하기와 글쓰기에서 표현력을 키우는 방법은 뭘까요?
말하기와 글쓰기에서 표현력을 키우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많이 읽고 많이 쓰세요.
책, 신문, 잡지, 기사, 블로그 등 다양한 글을 읽으면서 어휘력과 문장력을 쌓을 수 있습니다.
또한, 글을 많이 쓰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쌓으세요.
다양한 경험을 할수록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소재가 많아집니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생각과 경험을 배울 수 있습니다.
피드백을 받으세요. 말을 하거나 글을 쓴 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피드백을 받아보세요.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 수 있고, 이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꾸준히 노력하세요.
말하기와 글쓰기 능력은 하루아침에 향상되지 않습니다.
꾸준히 노력하고 연습해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말하기와 글쓰기에서 표현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팁입니다.
주제에 집중하세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제에서 벗어나면 청중이나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명확하고 간결하게 말하세요.
복잡한 문장이나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면 청중이나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명확하고 간결하게 말하면 청중이나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세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예를 들어 설명하면 청중이나 독자가 이해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개념을 설명할 때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 청중이나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표현하세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을 표현하면 청중이나 독자가 말하는 사람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하기와 글쓰기 능력은 사회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능력입니다.
말하기와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면 직장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표현은 나타내는 것입니다.
표현은 출력입니다.
표출이라고도 합니다.
모든 입력(入力. input)은 출력(出力. output)을 전제로 합니다.
‘입력은 출력을 전제로 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입력이 출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어떤 입력이 있어야 그에 따른 출력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입력의 목적은 출력에 있어요.
먹는 것은 입력이고, 소화되고 영양분으로 가고, 배출되는 것은 출력입니다.
입력된 것이 없으면 출력할 것도 없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입력이고, 귀로 듣는 것도 입력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도 입력입니다.
시를 읽는 것은 입력이고 시를 읊조리고 쓰는 것은 출력입니다.
읊조리다 : 뜻을 음미하면서 낮은 소리로 시를 읊다.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고 춤을 추는 것은 출력입니다.
모든 행위는 출력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고, 우리의 생각과 관점이 바뀔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입력이고, 생각과 관점과 행동의 변화는 출력에 해당합니다.
긍정적인 출력을 바란다면, 긍정적인 입력을 해야 합니다.
잘 입력되어야 잘 출력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과 행위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 주변과 세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운동을 하는 것은 입력에 해당하고, 운동의 결과 기분이 좋아지고, 건강해지는 것은 출력에 해당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입력이면서 출력에 해당합니다.
나도 기분이 좋아지고 다른 사람도 기분이 좋아져, 서로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출력에 해당합니다.
표현의 수단으로써 가장 대표적이면서 중요한 것이 말이에요.
말은 생각과 사상을 담는 그릇이지요.
로봇청소기는 식기세척기, 의류건조기와 함께 ‘3대 이모님’으로 불릴 정도로 집안일 부담을 덜어주는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고 있다
Ⅴ. 맺음말
<2023년 문경문학아카데미>라는 강좌의 열두 꼭지 가운데, 한 꼭지를 맡았기에
오늘 저는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아카데미’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플라톤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원래는 철학을 연구하고 철학을 가르치고 배우던 곳이 아카데미였습니다.
철학 연구소 내지는 철학 강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은 학술 연구소를 흔히 아카데미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학술원(學術院), 예술원(藝術院)처럼, ~원(院)이라고 합니다.
<문경문학아카데미>는 문경을 중심으로 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이 모여, 문학에 대해 교학상장(敎學相長)하는 역할을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학상장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 서로가 성장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향순 선생님의 노고로 시작된 <문경문학아카데미>는 문경 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봅니다.
문학(文學)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입니다.
문학(文學)은 ‘언어를 통해’ 인간의 감정, 생각, 경험, 상상력 등을 표현하는 예술의 한 형태입니다.
문학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언어 예술입니다.
문학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언어에는 ‘말과 글’이 있습니다.
말과 글은 표현의 대표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든 표현에는 그 나름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문인은 ‘메시지’를 담은 말과 글로써, 인간의 삶을 표현합니다.
문인은 말과 글로써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표현으로 서로 소통하고, 소통으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합니다.
소통(疏通)은 막혔던 것이 ‘트여 잘 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불통은 소통의 부재입니다.
몸도 삶도 정신도 관계도 불통(不通)이면 고통(苦痛)이 동반됩니다.
대부분의 입력은 출력을 전제로 합니다.
입력이 부재(不在)하면 출력도 부재합니다.
표현은 출력에 해당합니다.
잘(제대로. 똑바로) 입력되어야 잘(제대로. 똑바로) 출력됩니다.
옳지 않은 배움을 옳지 않은 삶을 잉태합니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잘 쓴 글을 읽고 따라서 써야 합니다.
읽기는 입력이고 쓰기는 출력입니다.
문인은 읽기에서 쓰기로, 쓰기에서 읽기로 왕복달리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옷에만 유행이 있는 게 아니라 표현도 유행을 탑니다.
물을 거슬러 흐르는 역류(逆流)는, 참 힘듭니다.
물론 역행과 역류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체로 물의 흐름을 따르는 순류(順流)가 편합니다.
유행을 거슬러 살아도 되지만, 유행을 따르거나 유행을 앞서는 표현은 소통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MZ세대의 표현 방식을 배워보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표현은 생존력입니다.
말문을 열고, 글문을 열어야 합니다.
이야기의 시대입니다.
이야기의 힘은 큽니다.
신화(神話)도, 설화(說話)도, 전설(傳說)도, 전기(傳記)도, 판소리도, 민요(民謠)도 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문학의 5대 갈래는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입니다.
소설에만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니라, 시도 희곡도 수필도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표현입니다.
표현은 겉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작가는 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의 생각, 감정, 경험 등을 겉으로 드러냅니다.
그 이야기가, 그 표현이 타인들에게 이해되고, 공감되고, 감동되고, 마음을 크게 움직이는 심동(心動)이 된다면 곧장 ‘벌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돈벌이’는 동식물의 ‘먹이활동’에 해당합니다.
인간에겐 돈이 먹이입니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음식, 물, 의복, 주거, 의료, 교육, 전기 등 다양한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인간에게 돈은
그러니 표현이 생존력이 되는 것입니다.
잘 표현하는 사람은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먹이의 저장 강박에만 집착하는 인간이 된다면, 타인과의 관계는 단절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관계입니다.
씨줄과 날줄이 골고루 촘촘하게 잘 엮어졌을 때, 고운 옷감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우리도 상황에 적절한 표현을 재치있고 익살스레 하고 산다면 더더욱 의미있고 값진 삶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천 냥 빚을 어떻게 갚았는지요?
말 한마디로.
말 두 마디도 아니고,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았습니다.
구글의 인공지능 바드(bard)에게 물었습니다.
조선 시대 천 냥의 돈은 현재 대한민국의 화폐 가치로 얼마 정도 될까요?
1억 원 정도라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요.
오늘 여러분 덕분에 저의 부족한 강의를 무탈하게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이곳에 계신 여러분의 덕분입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