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19-22 (애국 충정의 기도행진)
성경본문 예레미야애가 5: 19-22
19.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
20.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 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22.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특심하시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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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이현우목사
마태복음 24:1-2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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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간 토요일에 3.1절을 맞이하게 된다. 기미년 독립운동 89주년이다. 이를 기념하고자 오늘, 2월 마지막 주일을 기념주일로 지키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여러 모양으로 아쉽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이 땅의 모두가 애국, 애족하는 호국 선열들의 정신을 유산으로 받았는데 오늘에 와서 우리는 별 의식 없이 지나고 있다는 말이다. 신앙적인 유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데 대한 사회적인 무감각이 깊어져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염려가 가시지를 않는다. 자라나는 세대들의 교육현장에서 조차도 3.1절 기념식은 없어졌다. 이러한 게 한두 해가 아니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과거 역사에 대한 왜곡은 그치지를 않고 있다. 그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기미년 독립운동을 못된 폭동쯤으로 가르치고 있단 말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오늘 우리 모두의 반성이 있어야겠다.
이런 사정으로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더듬어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할 터이다. 구한말 나라 밖의 세력이 유입해오는 그 즈음, 나라 안에서는 개화파와 수구파 사이의 정쟁이 극심했다. 왕실은 허약하고 국가운영에 제대로 주체하지 못해 이런저런 형편으로 휘둘리기가 일쑤였다.
1905년 7월에 미국의 레포트 장군과 일본의 게테랑 수상이 비밀리에 음흉한 약조를 맺었다. 을사조약이었다. 미국은 필리핀을 침략, 식민지로 하는데 일본은 묵인하고 일본이 한국을 침략, 식민지로 할 때 미국이 묵인하기를 밀약한 것이다. 이에 따라 그해 11월, 한일 협약을 체결하게 된다.‘한국과 일본은 서로 도우며 살자’라는 약속을 맺었다.
이때 총감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부임하게 된다. 그러면서 한국의 정치에 간섭하고 마침내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가운데 5년이 지나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합방)이 된 것이다.‘한국과 일본은 한 나라다’라는 그 내용을 문서로 조인했던 것이다. 1910년 후, 일본의 하세가와 총독이 부임하고 이때부터 혹독한 무단정치를 강화하게 된다.
3.1 독립운동은 1919년 병합 후, 10년이 채 안된 때 발발했던 거사였다. 이로 인해 물론 일본의 반응은 거세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원래 일본 동경, 간다구 YMCA에서 유학생을 중심으로 독립선언 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게 1919년 2월 8일이었다. 이렇게 해외에서도 은밀하게 조금씩 독립을 위한 운동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동안 나라 안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준비되고 이 존엄한 일에 나설 계획을 꾸며가고 있었다.
이러한 존엄하고도 위대한 큰일에 나서는 데에 당시 기독교 교회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하게 된다. 여기 독립선언서가 나오겐 된 사정을 살펴보면 특별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독립선언서는 육당 최남선 선생께서 집필하게 되었는데 그분은 이 독립선언서의 정신과 사상 등의 내용들을 주로 기독교에서 빌어 왔다고 말했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 기독교 교회의 사람으로 이 역사의 중요함을 마음에 담아야 하겠다.
안타깝게도 3.1 독립운동은 실패로 그치게 되었다. 그리하고서 일제의 만행은 더욱 극심해져 가고 있었다. 우리 민족의 고난도 날로 더해 갔다. 전국에서 조직적으로 행하여진 극악무도한 만행은 이루 말할 수 가 없었다. 기미년 그해 특별히 4월 15일 수원 제암리교회 사건은 당시의 참혹한 사정을 말해준다. 오후 2시, 일본경찰은 교인과 일부 주민 30여명을 예배당에 모아놓고 불 질렀다. 그러한 후 집중 사격을 했고 22명은 안에서 타 죽고 예배당을 뜯어 나오는 여섯 사람에게는 그침 없이 총살했다.
당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애국 충정의 길을 가고 있었다. 민족 대표 33인 중 16인이 기독교 측에서 참가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게 한다. 그들의 의로운 행진은 말하자면 십자가를 지고 죽음으로 가는 역사였다. 그럼에도 티끌만큼이라도 무력을 행사해 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성경의 가르침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함께 참여한 천도교에선 무력행사를 주장하기도 했다.
기독교에선 철저한 비폭력 평화의 운동으로 지켜가고 있었다. 당시 교회의 사람들 모두는 곧 독립운동자들이었고 예외 없이 혹독한 고난과 순교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마치 고난과 십자가 죽음으로 가는 주님의 길을 가는 것처럼 겸손과 희생으로 진리와 정의를 위해 분연히 나섰던 거다.
이 땅의 기독교 교회 역사 가운데 이 역사를 무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신앙선진들이 나섰던 그 걸음을 무엇이라 할 것인가? 오늘 우리의 신앙 선조로서 그들이 성경의 무엇을 보았기에 그렇게 나섰겠는가? 하는 말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성경의 이스라엘 역사는 흡사 이 땅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한 민족의 고난과 시련의 사정과도 같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나 로마제국 아래 힘겨웠던 유대에서나 침략당하고 억압의 세월을 눈물로 살아온 이야기다. 나라가 망하고 민족자존이 허물어져버린 비참한 역사다.
성경에서 그러하기에 이 땅 한민족의 신앙선조들은 하나님 백성들의 고난과 시련이 어떠했었는지를 우리의 이야기처럼 읽었을 테다. 이 땅의 고난도 어쩌면 이리도 성경의 역사처럼 눈물의 역사인지를 보았을 테다. 시시때때 채찍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위로와 회복, 구원의 복된 소식을 건네주는 예언자들의 말과 글들을 읽었을 테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애끓는 호소의 기도 또한 읽었을 거다. 끊임없이 조국을 품고 구국충정 눈물의 기도도 읽었을 테다. 성경의 이러한 말씀들은 이 땅의 신앙선조들을 가만있게끔 하지 않았다. 당시 일제에 정의와 진리를 호소하다 끝내 순교한 교회의 한 지도자는“우리가 성경의 하나님 말씀을 읽을진대 어찌 가만있을 수가 있는가!”하며 교인들을 나서게 했다.
나라를 구하는 데 하나님께 기도하며 진리와 생명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의 뒷걸음을 따라 나서자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운 자로서, 성경을 읽은 사람으로서 진리와 정의를 외치며 애국, 애족하는 기도의 책임을 어찌 외면하겠는가!”라고. 그때 신앙의 선진들은 그렇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앙의 전통을 따라 이 거룩한 행진에 나섰던 거다.
이는 곧 일컬어 애국 충정의 기도행진이라 하겠다. 이스라엘의 고난과 신려의 역사에는 바로 이 애국 충정의 기도행진이 이어가고 있음을 본다. 바벨론제국의 침공으로 저 유다왕국이 멸망하는 역사에서 예레미야가 있었다. 그는 조국 멸망을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었다. 조국의 앞날이 어떻게 될 건지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건네받았기에 더욱 아픈 가슴으로 눈물로 기도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유독하게도 눈물을 감추지 못한 생애를 살았다 해서 눈물의 예언자라고 한다.
예레미야의 애가는 바로 그런 내용들로 꽉 차있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렵니까? 어찌 우리를 이같이 오래도록 버리시겠습니까!”
그의 생애는 그야말로 애타는 기도행진이었다. 그의 기도는 골방의 몇 마디로 끝나는 기도가 아니었다.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로서 가슴 깊이에 담겨진 것만으로 끝나는 조용한 기도만이 아니었다. 그의 기도엔 삶이 녹아들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나는 기도였다. 곤란과 시련 가운데 있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현장으로 나선 기도행진이었다. 기도 따로 행동 따로가 아니었다. 기도행진은 이런 거다.
예수님의 경우에도 그랬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의 기도행진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보여주었다.
예수님은 당시 로마의 압제로 눈물의 세월을 살고 있는 조국 유대를 위해 기도했다.
유대가 멸망하게 될 내일을 내다보고 있었다.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이 그침 없이 무너질 것을 내다보며 그의 백성들에게 일렀다
.“우리의 조국 유대가 무너지리라!”
쓰라린 가슴으로 외쳤을 테다.
예수님도 조국 유대의 한 백성으로 이 처참한 나라의 일들 앞에서 어찌 기도하지 않았겠는가! 어찌 눈물 흘리지를 않았겠는가 말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었더냐!
조국의 멸망 앞에 누구보다 그 애통함은 컸을 테다. 독립운동에 나선 건 아니지만 옛날 이스라엘의 신앙선진들의 기도행진을 그렇게 잇고 있었다. 진정 우리는 예수님의 애국 충정의 기도와 눈물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성경에선 이처럼 애국 충정의 기도행진이 이어져 가고 있었다.
바로 그 기도행진은 이 땅, 이 나라 고통의 역사의 현장에서 교회의 사람들을 나서게 했다. 그때 신앙 조상들이 훌륭한 유산으로 물려준 중요한 삶의 내용이다. 애국 충정의 기도행진이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기도행진으로 나서 혼을 불사르고 몸을 제물로 내 놓았던 역사다.
오늘 우리가 이어가야 할 존엄한 애국 충정의 기도행진이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그 때 못지않은 나라와 민족의 어려움이 첩첩이 쌓여 있다.
우리의 기도행진을 이어가야 할 현실이 아닌가!
국가와 민족의 한 사람으로, 또한 그리스도교회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신앙인의 형식과 내용 중의 하나가 곧 애국 충정의 기도행진에 나서는 것이다.
물론 몇 마디 입술의 기도만이 아니라 행동하는 기도, 어려운 나라의 현장에서 신실한 삶을 살아가는 기도행진이다.
이를 또한 신앙의 후세들에게 가르치고 물려줘야 한다.
이제 우리의 현실은 해방 이후의 세대가 절대 다수로 많아졌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기도행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오늘의 신앙수련을 더해 나가자.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