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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장: 하나님의 심판
1-14절,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 떠는 자들
[1-2a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며 땅은 그의 발판이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지은 성전에 매이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형식적인 종교의식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단지 성전 종교의식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떻게 무한하신 영이신 창조자 하나님을 감히 땅의 성전에서 온전히 섬길 수 있겠는가?
[2b-3b절]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眷顧)하려니와(나바트)[돌아보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뉘우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 떠는 자는 하나님께서 돌아보실 것이다. 배교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악에 굴복지 않은 경건한 성도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아합 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처럼(왕상 19:18), 또 사데 교회에 몇 명의 흰옷 입은 자들처럼(계 3:4), 오늘날도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이라는 말씀은 영어성경들처럼 “다름이 없도다”라고 끝나게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KJV, NASB, NIV).
이 말씀은 앞절의 말씀과 같이 단순히 종교의식만으로는 무의미함을 다시 증거하신 것이라고 본다.
[3c-4절]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도 유혹(타알룰림)[혹은 ‘변덕스런 일들’](BDB)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본문은 형식적 종교의식이 무의미한 까닭을 보인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길로 가지 않고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이 가증한 것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답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종하려 하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택하였다.
[5-6절]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아, 그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르시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훤화하는[큰 소동의]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위선적인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을 미워하며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그들을 쫓아내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광과 기쁨을 보이시라고 조롱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대적자들에게 보응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그 성읍들에는 큰 소동의 소리가 들릴 것이다.
[7-9절] 시온은 구로(劬勞)[해산의 고통]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劬勞)하는 즉시에 그 자민(子民)[그의 자녀들]을 순산하였도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임산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비록 시온 백성이 매우 부패되었고 형식적이었지만, 시온의 회복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귀환은 놀랍게도 갑자기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온의 회복을 조금 맛보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갑자기 세워졌고 성령의 강림과 사도들의 전도사역으로 힘있게 확장되었다.
바울의 회심(주후 35년경)으로부터 그의 순교 때(주후 68년경)까지는 약 33년에 불과했으나, 그 동안 복음은 소아시아, 마게도냐, 아가야, 또 로마와 스페인까지 널리 전파되었고 곳곳에 교회들이 세워졌다. 신약교회는 세계적 교회가 되었다.
[10-14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 원수에게 더하리라.
회복될 시온에는 기쁨과 강 같은 평안과 위로가 있을 것이다.
12절의 ‘열방의 영광’은 신약교회의 영광을 암시한다.
천국은 기쁨과 평안이 충만한 곳일 것이다. 신약교회와 신약 성도들에게도 기쁨과 넘치는 평안과 위로가 있을 것이다.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데살로니가후서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고린도후서 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단순히 성전 제사 같은 종교의식들은 무의미하다.
형식적인 교회생활은 헛되다. 아름다운 예배당이나 엄숙한 예배 의식이 소용이 없고, 심지어 충실한 교회 출석이나 봉사도 무의미할 수 있다.
그것들이 다 형식이 될 수 있다. 신앙생활은 내면적 경건을 상실할 때, 즉 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함이 없을 때, 또 사람이 성경을 무시하고 제 고집대로 악을 행할 때, 형식적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형식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형식적 신앙생활, 형식적 교회생활을 조심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 떠는 자들을 돌아보실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즉 경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가 어떻게 성경을 진지하게 읽고 어떻게 성경을 진지하게 듣고 성경을 묵상하고 그것을 믿고 실천하고자 애쓰는지 보면, 우리는 그가 참된 경건을 소유한 자인지 소유하지 않은 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 떠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시온의 회복은 갑작스럽게 그러나 기쁨과 평안과 위로 가운데 이루어질 것이다.
시온의 회복은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시작되었고 신약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의 완성은 그의 재림으로 영광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시온의 회복의 시작을 감사하며 그 완성을 소망해야 한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경건하게 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복된 천국을 소망해야 한다.
15-24절, 악인들과 의인들
[15-18a절]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케마)[격노함]로 노를 베푸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견책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살륙 당할 자가 많으리니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의 소위(所爲)[행한 바]와 사상을 아노라.
심판주인 하나님께서는 불 가운데서 강림하실 것이며 회리바람 속에서 오실 것이며 심히 격노함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징벌하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주의 재림 때 불의 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하였다.
데살로니가후서 1:7-9,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불의]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사도 베드로도 주 예수님의 재림 때 불의 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하였다.
베드로후서 3:6-7, 10-13,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불타버리리라](전통사본).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하나님의 심판은 또한 칼로 나타날 것이다. 그때 그의 칼에 죽임 당할 자들이 많을 것이다. 칼은 전쟁을 가리킨다. 마지막 심판은 큰 전쟁으로 나타날 것이다.
요한계시록 14:17-20,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날카로운] 낫을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약 300킬로미터]에 퍼졌더라.”
요한계시록 19:11-15,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날카로운]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악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며 우상숭배하며 율법에 금한 돼지고기와 쥐 같은 가증한 것들을 먹었다(레 11:7, 29). 그들은 그 심판에서 다 멸망할 것이다.
물론, 구약시대의 깨끗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대한 법들은 신약시대에는 폐지되었고 신약 성도들은 더 이상 그 법에 속박되지 않는다(골 2:16-17). 그러나 우상숭배와 도덕법을 어기는 죄악들은 여전히 더럽고 가증한 죄악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다. 악을 행한 자는 재앙을 당할 것이며 선을 행한 자는 평안과 형통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고 공평하다.
[18b-19절] 때가 이르면 열방과 열족(列族)[모든 방언들](원문)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내가 그들 중에 징조[표적]를 세워서 그들 중 도피한 자를 열방 곧 다시스와 뿔[풀]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열방에 선파하리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여러 지역의 이방인들을 불러 구원하실 것을 보이는 것 같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곧 그의 신성의 영광(요 1:14)을 볼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께서 사람이 되신 자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게 되었다.
고린도후서 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유다 백성 중 하나님의 심판을 피한 자들,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진 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온 세계에 흩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것이다.
다시스는, 소아시아의 동남부 길리기아 다소(Tarsus)나(요세푸스, 매튜 풀), 스페인의 타르테수스(Tartessus)나(알브라잇), 이탈리아 서쪽의 사르디니아(Sardinia) 섬(아하로니) 중 하나로 본다. 뿔[풀 Pul](MT, KJV) 혹은 풋(LXX 일부, NASB, NIV)은 아프리카 북동부를 가리키고, 활을 당기는 룻도 아프리카의 한 지역이라고 본다. 두발은 소아시아 동부를 가리키고, 야완은 헬라 지역이라고 본다. 또 하나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그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은 그 외의 먼 이방나라들을 가리킬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의 모든 이방나라들에 하나님의 복음이 증거될 것이다.
[20-21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열방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轎子)[가마]와 노새와 약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나는 그 중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방인들은 구원을 얻어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올 것이다. 이방인들이 구원 얻어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지만, 그들은 여호와께 드려지는 예물과 같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직무를 이방인들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 직무라고 표현하였다.
로마서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중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 즉 복음의 일꾼들, 곧 전도자들과 교사들을 많이 일으키실 것이다. 실상,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22-2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는 표현(20, 21, 22, 23절)은 선지자 이사야가 전한 말씀들의 참됨을 확증하신다.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고 하나님 앞에 항상 있게 하시듯이, 회복된 이스라엘 곧 중생한 성도들로 구성되는 신약교회는 하나님 앞에 항상 있을 것이다.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라는 말은 “한 월삭부터 다른 월삭까지와 한 안식일로부터 다른 안식일까지” 즉 “달마다, 주마다”라는 표현이며, “모든 혈육[사람]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는 말씀은 구원 얻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는 뜻이다.
구원 얻은 모든 사람은 달마다, 주마다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신약교회가 지상에서도 그러하고 천국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24절]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거역하여 범죄한](KJV, NASB)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본문은 악인들 곧 심판받을 자들에 대한 예언이다. 악인들은 불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벌레는 죽지 않고 그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증거하신 지옥의 모습과 같다. 마가복음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위해 지옥 불못을 예비하실 것이다(계 21:8).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장차 불과 칼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하늘과 땅은 불사르기 위하여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되어 있다(벧후 3:6-7).
최종적으로, 지옥이 있을 것이다(계 21:8).
그 곳은 꺼지지 않는 불못이다(막 9:43-47).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막 9:48).
모든 사람은 지옥 불못을 두려워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만국에서 택자들을 불러 모으실 것이다.
그것은 구원하심의 일이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주 예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명하셨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구원을 얻을 것이다(계 7:9).
셋째로, 그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항상 하나님을 섬길 것이지만, 하나님을 거역한 악인들은 영원한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구원 얻은 자들은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달마다, 주마다(사 66:23), 밤낮 하나님을 섬기며(계 7:15) 주의 얼굴을 볼 것이다(계 22:4).
그들은 영원토록 기쁨과 평안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악인들은 천국의 성밖에 있을 것이며(계 22:15)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것이다(계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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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아춰, 구약총론, 397쪽.
2) 한글개역성경에 ‘남은 자’라는 낱말은 이사야 10:20, 21, 21, 22; 14:22, 30; 15:9; 24:6; 30:17에 아홉 번 나오고, ‘남는 자’라는 말은 37:31, 32에 두 번, ‘남아 있는 자’라는 말은 4:3; 7:22; 37:4에 세 번 나온다.
3) ‘남아 있는 자’(4:3; 7:22; 37:4), ‘남은 자’(10:20, 21, 22; 14:22, 30; 15:9; 24:6; 30:17), ‘남는 자’(37:31, 32)로 모두 13번 사용되었다.
4) 구약성경의 예--창세기 24:43, “내가 이 우물곁에 섰다가 청년 여자(알마)가 물을 길러 오거든.” 이 단어는 ‘처녀’라는 말(베술라) (16절)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출애굽기 2: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알마)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아가 1:3,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아가 6:8, “왕후가 60이요 비빈이 80이요 시녀(알마)가 무수하되.” 70인역 인용과 신약성경의 적용--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파르데노스 parqevno")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는, (1) 그 모친이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고, (2) 그 남편 요셉이 저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고, (3) 천사가 꿈에 나타나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했고, (4) 이사야 7:14의 예언의 성취이며, 또 (5) 요셉이 주의 천사의 분부대로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않았다는 등 다섯 가지 점들을 증거했다(마 1:19-25). 누가도 천사가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말했다고 증거하였다(눅 1:34-35).
5) 옛날 영어성경(KJV)은 히브리어 본문에 쓰여진 대로(케팁) “그 즐거움을 더하게 아니(로) 하셨으므로”라고 읽었으나, 고대의 어떤 역본들(Syr. Targ)과 근래의 영어성경들(NASB, NIV)은 “그 즐거움을 그에게(로) 더하게 하셨으므로”라고 읽는다(케레). 후자가 문맥에는 맞는 것 같다.
6) ‘그럴지라도’라는 원어(베콜 조스)는 영어성경들에 'in spite of all this'(NASB), 'yet for all this'(NIV) 등으로 번역되었다.
7) 이사야서 전체에는 약 14번 나온다. “남은 자”(10:20, 21, 21, 22; 14:22, 30; 15:9; 24:6; 30:17), “남는 자”(37:31, 32), “남아 있는 자”(4:3; 7:22; 37:4).
8) ‘가지’라는 히브리어 네체르는 ‘나사렛’이라는 동네 명칭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사도 마태가 마태복음 2:23에서 “[예수께서]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고 말했을 때 이 단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9) 애굽 바다 곧 홍해는 북쪽 끝이 혀처럼 둘로 갈라져 있다. 오늘날에 서쪽(애굽 쪽)은 수에즈 만이라고 부르고, 동쪽은 아카바 만이라고 부른다.
10) 이 말은 옛날 영어성경(KJV)에서 ‘감사하다’는 말로 40회, ‘찬송하다’는 말로 53회 번역되었다.
11) 옛날 영어성경(KJV)은 다른 곳에서는 ‘여호와’라는 단어를 ‘주’ (the Lord)라는 말로 번역하였으나 본절을 포함하여 네 곳에서는 ‘여호와’ (Jehovah)라는 말로 그대로 번역했다(출 6:3; 시 83:18; 사 12:2; 26:4).
12) ‘강포한 성’이라는 원어(마드헤바)는 ‘황금 도시’(KJV), 혹은 ‘금을 강요하는 자(exactress of gold)’(B. Davidson, Langenscheidt)라는 뜻이든지, 아니면 ‘사나움, 난폭함’(BDB) 혹은 ‘폭행’(KB)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마르헤바)를 잘못 쓴 것(誤記)일 것이라고 한다(BDB, DSS, LXX, Syr). 근래의 영어성경들(NASB, NIV)은 ‘격노함’(fury)이라고 번역하였다.
13) 키 (‘왜냐하면’)(KJV)라는 말이 여기에서는 문맥상 ‘참으로’(surely) (NASB) 혹은 ‘그러나’(but)(NIV) 등으로 번역된다.
14) 이사야 5:8, 11, 18; 10:5; 28:1; 29:15; 31:1; 45:9, 10 등.
15) 브라질의 아마존강은 6,516km이며, 중국의 양쯔강은 6,300km임.
16) ‘아름다운’이라는 번역은 몇 개의 히브리어 사본들과 헬라어 칠십인역, 아람어 탈굼역, 수리아어역을 따른 것인데, 그것은 본문을 케메드(소원, 기쁨)라고 읽었다고 보인다(BDB).
17) ‘도망하다’는 동방 원문은 ‘스스로 도망하다’(나스 로)로 읽으라고 제안되나(케레), ‘피하지 못하다’(나스 로)로 쓰여 있다(케팁).
18) 시온이 여성명사이고 ‘오르라’는 명령형이 2인칭 단수여성형이다.
19) ‘젖먹이는 암컷들’이라는 원어(알로스)는 ‘젖먹인다’는 동사(울)의 분사 여성복수이다.
20) 마소라 본문의 액센트는 이 번역을 지지하는 것 같다. ‘이스라엘’ 밑에 찍힌 분리액센트는 그 말과 ‘나의 영광’을 동의어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21) 원문에서 에 붙은 티프카는 중요한 분리 액센트이며 그러므로 KJV의 번역이 나은 듯하다.
22) 전통적 히브리어 본문은, “비록 이스라엘은 모이지 못하였을지라도”라고 되어 있다(KJV). 그러나 9개의 히브리어 사본들과 사해사본의 본문은, 아퀼라, 탈굼, 한글개역, NASB, NIV의 번역대로,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라고 되어 있다. 그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23) ‘형통하다’는 원어(사칼)는 ‘지혜롭게 행하다’라는 뜻도 있고 그렇게 번역되기도 하였으나(KJV, NIV), ‘형통하다’라는 뜻도 있고 그런 뜻으로 쓰인 성경의 많은 예들이 있고(신 29:8; 수 1:7, 8; 왕상 2:3 등) 본문도 그렇게 번역하는 것(NASB)이 문맥상 더 낫지 않은가 생각된다.
24) 원문에 ‘그가 드릴 것이다’라는 동사(타심)는 3인칭 여성이며 7절의 ‘잠잠한 양’[암양](라켈)이 주어라고 본다.
25) ‘그가 기도하였느니라’는 원어(야프기아)(미완료형)는 ‘그가 간구하느니라, 중재하느니라’는 뜻이다(BDB).
26) 두 번째의 ‘나라’라는 원어(고이)는 ‘알다’나 ‘달려오다’는 동사가 복수 3인칭이므로 첫 번째의 말과 달리 ‘나라들’이라고 번역해야 한다(KJV).
27) 한글개역이나 영어번역들(KJV, NASB, NIV)은 17개 히브리어 사본들과 더불어 마소라 본문의 케레의 제안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원문에는 로 쓰여 있고(케티브), LXX, Vg, Syr도 그런 뜻으로 번역하였다. 그것은 10절에 ‘그들의 대적이 되사’라는 말씀과 대조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