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10장
<새로운 국가 의식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
1.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새로운 국가 의식
이스라엘은 그 존재가 처음부터 세속 국가와는 다른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만 하더라도 그들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 국가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당시 애굽과 같은 막강한 왕정 체제를 갖춘 나라들이 존재했었음에도 이스라엘 민족은 완벽한 국가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 체제를 갖출 것을 암시하신 바 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2)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창 12:7)고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큰 민족이 되어 약속의 땅에 거주하게 될 것이라는 이 약속은 그들이 한 나라를 형성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약속과 함께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창 18:18) 하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한 나라를 세우게 될 것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때문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한 나라를 건설한다는 사실을 전혀 낯설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 세운 나라를 사사 정치 체제의 나라였다. 이 나라는 성막을 중심으로 결속된 국민 개개인이 여호와의 말씀 통치를 따라 사는 자율적 체제였다. 필요에 따라 하나님은 지도자로서 사사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의 통치권은 세습되거나 타인에게 양도되지 않은 단회성이었다. 그러나 계속된 이스라엘의 배도는 좀더 강력한 왕권 체제를 요구하게 되었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왕정 체제를 허락하심으로 이스라엘 왕정 체제를 갖게 되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왕정 체제에 대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언급한 바 있다(신 17:14-16).
왕정 체제가 들어설 때만 하더라도 이스라엘 왕국은 명실상부한 제사장 나라였으며 하나님의 나라로서 면모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다. 다윗 왕국과 솔로몬 제국 시대에는 매우 찬연히 빛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정 체제는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무너지고 말았다. 그와 함께 성전과 예루살렘 성도 무너지고 말았다.
이것은 왕정 체제와 같은 타율적인 체제 아래에서도 이스라엘이 여전히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남 유다 왕국의 멸망과 더불어 새로운 체제의 나라가 등장할 것을 예언한 선지자는 예레미야였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 31:31)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왕정 체제로서는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갈 수 없음을 암시한다.
때문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3)는 말씀은 지상 나라들과 그 성질이 전혀 다른 나라를 세우실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 나라는 여호와의 말씀과 공의로 다스려지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나라를 가리켜 ‘새 하늘과 새 땅’(사 65:17)으로 묘사하였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사 66:22)는 말씀은 이스라엘의 남은자들에 의해 건설될 것이었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 나라가 예전에 찾아 볼 수 없었던 성결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슥 14:20). 이와 같은 선지자들의 메시지에 따르면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고 장차 건설될 나라는 신령한 나라가 될 것이며, 이 나라가 곧 제사장 나라로서 이 땅위에 그 모습을 드러낼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에스더서는 국가 체제를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 스룹바벨을 통해 제1차 귀환자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무너진 이스라엘 왕국이 재건되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페르시아 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옛날과 같이 모두 팔레스틴 땅으로 되돌아가 거기에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페르시아 제국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존재 의식은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에 대해 에스더서는 그들이 거주하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할 것을 그 해답으로 제시한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부림절이다. 부림절은 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여전히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증명한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는 그들이 거하는 처소가 어디든지 간에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확신하고 그곳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자태를 드러내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백성들에게도 적용되는 원칙이 되었다.
2. 하나님 나라와 세속 국가와의 관계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존대하여 그 허다한 형제에게 굄을 받고 그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에 10:3)는 기록은 모르드개가 페르시아의 고위 관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유다인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은 아니다. 오히려 모르드개가 페르시아 제국의 한 일원으로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모르드개는 본국으로 돌아간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와 전혀 다른 환경과 형편에 처해 있었다. 이미 본국으로 귀환한 유다인들은 성전을 건설하고 시온이 회복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온의 회복은 단순히 영광스러웠던 다윗 왕국의 회복으로 성취되지는 않았다. 그들이 그렇게 소원했다 할지라도 궁극적인 시온의 회복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구현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온은 단순히 지역적인 영토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면에 시온의 회복은 여호와의 말씀 통치가 구현되는 것을 의미한다(에스라 구속사 강해 서론 참고).
따라서 성전의 재건이 상징하는 시온의 회복은 장차 전 세계적으로 건설될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 사실은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사실에서도 확인된다(느헤미야 7장 구속사 강해 참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제 한 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시온으로부터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야 하고 확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모르드개가 페르시아 제국의 제2인자로서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림절에 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었던 유다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업적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유다인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성인 공의(????)와 신실함(?????)을 바탕으로 정치를 펼쳐나갔으며 이로 인하여 제국 전역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제국이 평화롭다는 것은 유다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함에 있어서 최상의 여건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국이 또 다시 혼란의 와중에 빠지게 된다면 유다인들이 곳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도 그만큼 어려움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제 페르시아 제국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유다인들을 보호하는 위치에 서 있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세속 국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가치 있는 존재 의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