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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5: 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 요일 5: 21 자신을 지켜
5.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 5: 18 – 21 )
⑱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⑲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⑳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요일 5: 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계속]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자신을 지키며]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계속 죄를 범치 않는다는 것, 즉 죄 가운데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 진리는 본 서신 3: 6, 9-10에서 이미 말씀한 바이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계속]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계속]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계속]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계속]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중생한 성도는 계속 죄를 범할 수 없다. 중생한 자는 그 영혼 속에 죄를 범할 수 없는 새 생명의 원리가 심어져 있고 영혼의 지배적 성향이 새로워졌기 때문에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중생한 자 속에 심긴 새 생명은 하나님만 향하고 의(義)만 향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생명이다.
'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라는 원문은 전통 사본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자신을 지키며'라고 되어 있다(KJV). 중생한 자는 계속 죄를 범치 않는다고 자신을 방임해서는 안 되고 항상 자신을 지키며 죄를 범치 않기 위해 힘써야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악한 것들이 많다. 중생한 자에게도 죄악성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 19-21에서 여러 죄악들을 열거하며 그것들을 버려야 할 것을 교훈했고, 고린도후서 7: 1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 말했다.
* 갈 5: 19-21 –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우리는 이런 죄악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악한 자는 중생한 자를 만지지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기 때문이다.
1]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본문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 앞 절과 관련시켜 믿는 자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의미다. (Calvin).
Ⓑ '범죄치 아니하는'(우크 하마르타네이)가 현재에도 계속되는 동작을 나타내는 현재시상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믿는 자는 계속 반복되는 범죄나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의미다. (Stott).
두 견해는 타당성을 지닌다.
'우리가 아노라'(오이다멘)은 18-20절에 걸쳐 세 번 사용되고 있다. 이 '오이다멘'은 지식의 활동 상황을 나타내는 '기노스코'(알다)와 달리 주로 지식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본 절에서 영적 지식의 확실성을 한층 더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2]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본 절의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호겐네데이스 에크 투 데우)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1) 상반절의 '난자'(게겐네메노스)는
완료 분사형인 반면에 본문의 '나신 자'(겐네데이스)는 부정 과거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이라는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2) '나신 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야만 문맥상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개념은 신약성경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요 17: 12, 15 - ⑫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⑮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 벧전 1: 5 -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 유 1: 24 -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요한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을 악과 사탄의 영향력에서 보전하실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은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한도 내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속하여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는 성도들에게는 아무런 해를 입힐 수 없다.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 롬 8: 35-39 -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요일 5: 19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하나님께로서 났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로서 나서 하나님께 속하여 있다는 것을 안다. 중생(重生) 즉 거듭남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거듭남은 하나님께서 홀로 행하시는 구원 사역이다. 거기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돕거나 협력하는 것이 아니다. 중생한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께 속한다.
그러나 우리는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거듭남은 우리의 영혼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어두운 세계에서 생명을 얻어 다시 살아나는 사건이다. 온 세상은 이 두 세계, 즉 하나님의 세계와 죄악 된 세계로 나누어진다.
1]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본 절은 하나님과 세상을 날카롭게 구분한다. 여기서의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적대하는 사탄의 세력권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비록 사탄의 세력이 강하다 할지라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속하여 사탄이 만지지도 못할 정도로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을 보호하신다.
요일 5: 20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
성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참된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또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이것은 구원의 길을 나타낸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의 아들을 알고 믿는 것이 중생의 증거요 그를 믿고 그 안에 거하는 것이 구원이다.
사도 요한은 또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고 증언한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대한 명확한 또 하나의 증거가 있다. 그는 신적인 존재로 높임을 받는 정도가 아니시고, 참 하나님이시라고 증거되었다. 또 그는 우리에게 영생이 되시고 친히 영생을 주시는 구주이시다.
1]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가리킨다.
* 요일 1: 1-2 –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참된 자'는 하나님을 지칭한다. (Smalley, Stott, Brooke).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실재로서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다.
* 요 14: 6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하셔서 대속 사역을 이루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참된 자되신 하나님의 실재를 깨닫도록 인도하셨다.
2]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본문은 본 절 상반절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실재를 계시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실재를 계시하시는 중보자가 되신다.
그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자들은 참된 자이신 하나님 안에 있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 예수께서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이다.
* 요 17: 21 -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3]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그'(후토스)는 문자적으로 '이 사람'을 의미한다. '후토스'가 가리키는 자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 하나님을 가리킨다. (Westcott, Stott, Smalley, Brooke).
Ⓑ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Luther, Calvin, Marshall, Hass, Schnackenburg, Brown).
두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녀서 어느 하나를 지지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토스'는 문맥상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낫다. (Johnson).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실재를 계시하는 참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여 하나님을 부정한 것에 대한 요한의 결론적인 공격이다.
그리스도께서 '영생'이라는 사실은 이미 본서 서두에 언급되었다. (1: 1-2)
* 요 11: 25-26 -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곧 영생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 있는 것과 같아서 수신자들이 이미 영생을 소유하고 있음을 재차 강조하기 위한 요한의 결론적 진술이다(Smalley).
요일 5: 21 자신을 지켜 -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아멘.]
성도가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근본적 요소이다. 우상이란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처럼 높임을 받는 것이다. 우상숭배는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큰 죄악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에서 모든 우상을 제거해야 한다.
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현대인은 돈이나 육신의 쾌락, 인간의 지식과 과학, 아니 인간 자체를 하나님처럼, 혹은 하나님 대신에 높이고 가치 있게 여긴다. 그렇다면 이것들, 돈이나 육신의 쾌락이나 지식과 과학과 인간 자신은 다 우상이다.
우리는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만 경외하고 섬기며 순종해야 하며 모든 우상, 즉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을 멀리해야 한다. 중생한 성도들은 우상들을 멀리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만일 우리가 그런 것들을 멀리하지 않고 사랑한다면, 우리는 죄를 범하는 것이고 그런 자는 멸망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
우상에서 멀리하라는 저자의 권고는 요한 서신 전체의 논지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우상 숭배란 용어 자체가 본서에서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서 자체가 당시의 이단 종파인 영지주의에 대하여 날카롭게 공격하고 있음을 볼 때 본 절에서 말하는 우상 숭배는 영지주의 사상을 인정하고 승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우상에서 멀리하라는 말은 영지주의의 위험을 피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굳게 믿으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요한은 이러한 파격적인 결론을 통해서 수신자들에게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문은 중생에 대해 밝히 증거하고 있다. 중생 곧 거듭남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일이며 이렇게 중생한 자는 계속 죄를 범하거나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본문은 우리가 중생한 자로서 자신을 죄로부터 또 우상으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교훈한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육신의 죄악 된 일들을 다 버려야 한다.
갈라디아서 5: 16은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또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처럼 혹은 하나님 대신에 높임을 받는 모든 것, 즉 우상들을 다 배척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성삼위일체 되신 하나님만 경외하고 믿고 의지하며 따르고 신․구약성경에 밝히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명들만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의 바른 길이요 복된 길이며 영생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