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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6: 17 예수의 흔적 - 갈 6: 18 마지막 인사
4. 예수의 흔적 ( 6: 17 )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갈 6: 17 흔 적 -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
1]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괴롭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푸스...파레케토'(*)는 '내면적인 고통이나 슬픔'을 의미한다.
* 마 26: 10 -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 눅 11: 7 -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바울이 당한 괴로움은 유대주의자들로부터의 직접적인 폭력이나 폭언이라기보다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유대주의자들에게 미혹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움이다.
따라서 '괴롭게 말라'는 구절은 더 이상 갈라디아 교회 안에서 이단자들에 의하여 미혹(迷惑)되는 자들이 없기를 바라는 호소의 성격이 강하다.
이것은 바울의 전도를 방해하는 유대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다.
그들의 방해운동은 바울에게 괴로움이었다. 바울 사도를 괴롭게 한 것은 그의 사도직과 그 권위를 부정하고 그의 전한 복음을 대항하고 왜곡시킴이었다. 바울은 이런 도전 때문에 이 편지를 쓰게 되었다.
2]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흔적'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티그마타'(*)는 소나 양에게 낙인을 찍어 소유주를 나타내거나 종이 특정한 주인의 소유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자국'이나 '소인'을 남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전도자 바울은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많은 옥고를 치르고 숱한 매를 맞았다.
이 편지의 수신지인 갈라디아 지역에서도 돌아 맞아 거의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 행 14: 19 -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당시의 채찍은 가죽 끝에 뼛조각이나 납덩이가 달린 가혹한 것이었다. 그러한 채찍은 바울의 몸 여기저기에 많은 상흔을 남겼을 것이다.
어떤 신비주의자들은 이 '흔적'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상처가 그대로 바울에게도 생긴 것이라고 한다.
아씨시의 프란시스(Assisi Francis)가 이런 식의 거룩한 흔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본 절에서 '흔적'을 신비적 체험으로 이해하는 것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Ridderbos, Huxtable, Cole).
바울이 말한 예수의 흔적은 복음을 전파하는 가운데서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수 많은 고난의 흔적을 의미한다. 그것은
(1) 수 많은 육체적 고난으로 인하여 실제로 남겨진 박해의 상처들을 뜻한다.
* 고후 11: 22-27 -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의 실천적 의미로서 수많은 고난에 동참하였음과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끝까지 예수를 따랐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바울이 소유한 예수의 흔적은 예수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얻은 거룩한 증표를 말한다. 율법주의자들이 육체의 자랑을 위해 스스로 행한 '육체의 모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것이다.
* 행 20: 24 -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유대주의의 거짓스승과 달라서 주님을 위하여 많은 고난을 받았으니, 그것은 그가 예수님의 참된 사도인 흔적 곧, 증표이다.
* 롬 8: 17 -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 고후 1: 5 -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 고후 4: 10 -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 골 1: 24 -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마지막 때에도 성도들의 박해가 있을 것이다.
(1) 해로 옷 입은 여자를 박해한다.
* 계 12: 13 -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본문은 다시 9절과 연결된다. 여인이 낳은 아이를 삼키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였고(4, 5절), 하늘의 전쟁에서 패하여 땅으로 내어 쫓긴 용은 이제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게 된다.
'남자를 낳은 여자'는 '참 이스라엘' 즉 혈통을 따르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영적인 이스라엘을 가리킨다(Morris).
'박해하는 지라'의 헬라어 '에디와센'(*)은 문자적으로 '추격하다'라는 의미로 여인을 향한 용의 이러한 추격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빠져나올 때 바로가 그 뒤를 추격해 온 것과 유사하다(Johnson, Mounce, Hughes).
* 출 14: 8 -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이러한 사단의 추격은 교회가 당한 고난을 상기시킨다.
* 겔 29: 2 -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와 온 애굽으로 낯을 향하고 쳐서 예언하라.
① 용의 핍박 - 사람들을 통하여.
② 이유 - 공중에서 땅으로 쫓김으로.
③ 대상 - 신령하지 못한 교회.
신령한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으로 피했기 때문이다.
* 창 3: 15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시 37: 12-14 - 12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도다. 13 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14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 요 16: 33 -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2) 여자의 남은 자손에게 박해한다.
* 계 12: 17 -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여자의 남은 자손'이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 '이방인 성도들'을 가리킨다(Glasson).
Ⓑ 여자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남은 자손은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Walvoord).
Ⓒ 여자는 '팔레스틴의 교회'로 이해할 수 있으며 남은 자손은 로마 제국 도처에 흩어져 있는 '이방인 성도들'을 가리킨다(Mounce).
Ⓓ 여자는 성도들의 '신앙 공동체 전체'를 상징하는 반면 남은 자손은 신앙 공동체 중에서 사단의 핍박으로 인해 '순교당하는 개인 성도들'을 가리킨다(Swete, Caird, Kiddle).
네 가지 견해가 모두 합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해 입은 여자는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 자체를 파멸시킬 수는 없으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하는 성도 개개인들'은 핍박하고 공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성도 개개인을 향한 사단의 공격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결코 사단의 승리라고는 말할 수 없다.
사단이 예수를 핍박하여 십자가에 매달았을 때 그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으나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단이 성도 개개인을 핍박하고 순교시킬 수는 있으나 그것은 결국 성도들에게 궁극적인 믿음의 승리를 안겨주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
용이 여자를 핍박한다(계 12: 13-17). 남자아이를 삼키고자 했으나 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려가므로 여자를 핍박하지만 여자도 광야로 도망하여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게 된다.
용이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한다. 용의 입김이 여자를 해하려 하지만 땅이 여자를 도와 입을 벌려 물을 삼키고 여자를 건진다.
용은 남자아이도 남자아이를 난 여자도 해치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하므로 분내어 돌아가서 여자의 남은 자손을 해하게 된다. 하나님의 계명도 지키고 예수의 증거도 있으나 들림 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한 교회가 남아서(*) 용의 밥이 된다는 것이다.
* 마 7: 22-23 -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마 7: 26-27 -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 마 24: 40-41 -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계 13 장과 같이 짐승의 표를 받게 하고 우상에게 절하게 하여 영원히 멸망 받게 한다. 계시록 13 장에서부터는 유대교인의 환난 기사는 없어지고 세계 만국 기독 성도의 핍박 받는 마지막 대환난 기사가 기록되고 있다.
그 전에 유대인을 어떻게 하나님이 도우시고 구원하셨는가 하는 장면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로 또한 기적의 힘으로 결국 승리케 하신다는 하나님의 구원을12 장에서 보여주셨으므로 낙심치 말고 승리하라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① 용의 분노 -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 남자 아이는 해치지 못함 - 계 12: 5.
⒝ 해 입은 여자는 해치지 못함- 계 12: 14.
⒞ 공중에서 쫓겨날 때- 계 12: 12.
* 단 11: 36 - 그 왕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이라.
②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에게
남은 자.
(1) 여러 견해.
①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다.
아처[G. L. Archer] : 유대인들의 모 교회와 구별된 이방인 그리스도인 들이다. [존슨, 엑스포지터스 요한계시록, p.452]
마운스[R. H. Mounce] : 여자의 남은 자손은 제국 각처에 있는 이방인 성도다. [마운스, 요한계시록, pp.291,292]
②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다.
왈부르드[J. F. Walvoord] : 메시아와 구세주로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미움이 급증할 것이다. 틀림없이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이 순교당 할 것이다. 그러나 7장 에서 인침을 받은 십사만 사천을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왈부르드, 요한계시록 해석, p.290]
개벨라인[A. C. Gaebelein] : 이 여자가 도망간 나라들에 유리되어 있는 자들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있는 믿음을 지킨 자들이다. [비더울프, 종말과 재림, p.427]
③ 그리스도의 계명을 따르는 공동체의 개개인이다.
래드[G. E. Ladd] : 지상에 교회를 형성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다. [래드, 요한계시록, p.224]
렌스키[R. C. H. Lenski] : 사단의 최초 노력은 모든 거룩한 것들을 물에 빠져 죽도록 한다. 그러나 이 일이 실패하므로 교회의 교인들 몇 사람에게 공격을 할 것이다. [렌스키, 성경주석 계시록, p.311]
(2) 저자의 견해 - 남은 자는 양면성이 있다. 여기서는 나쁜 의미의 남은 자로 본다.
① 좋은 의미의 남은 자.
* 왕상 19: 18 -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 원어적으로 입증된다.
스페르마토스[자손, σπερματο]는 뿌려진 것[that which is sown] 이란 의미이다. 해를 입은 여자가 참 교회의 모형이므로 그 여자로부터 뿌려진 씨앗도 좋은 의미의 남은 자라고 할 수 있다.
⒝ 그들의 자세로 입증된다.
남은 자손의 신앙적인 자세를 보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묘사되어 있다.
⒞ 진노의 재앙에서 입증된다.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당한다(14: 10). 그러나 성도들은 보호 받는다(14: 12). 따라서 남은 자손은 좋은 의미이다.
⒟ 짐승의 통치 기간에 순교로 입증된다.
짐승이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이기게 된다(13: 5,7). 성도들의 순교(13: 10)로 좋은 의미이다.
⒠ 천년 왕국의 내용으로 입증된다.
천년 왕국에 들어간 성도들을 볼 때(20: 4) 좋은 의미이다.
② 나쁜 의미의 남은 자.
⒜ 적그리스도와 싸워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13: 2, 7)
짐승에게 진다는 것은 결국 짐승을 경배하고 숭배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 성전의 척량으로 입증된다.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라(11: 2)는 것은 땅에 소망을 둔 자들이기 때문이다.
⒞ 바다 모래 위에 있기 때문이다.
12절에 땅과 바다는 화가 있다. 곡과 마곡의 전쟁에서도 바다 모래 같은 무리가 나온다.(20: 8)
⒟ 성경의 예언으로부터 입증된다.
* 벧전 3: 20 -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 벧후 3: 6-9 -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마 25: 1-13 - 열 처녀의 비유. -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 렘 24: 5-7 -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주님의 재림 때에회개하는 흔적을 볼 수 없다.
* 계 1: 7 -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 계 9: 20 -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 계 11: 13 -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 계 16: 21 -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 마 24: 30 -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③ 나쁜 의미의 남은 자로 보는 이유.
⒜ 해를 입은 여자들은보호 받기때문이다.(12: 6, 14).
⒝ 짐승의 통치 기간에는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13: 8, 15).
⒞ 주님의 약속이 입증한다.
* 요 17: 12 -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 마 25: 8-12 -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3)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
① 예비처에 들어가지 못한 교인 -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이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다.
* 계 11: 2 = 성전 밖 마당 -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 계 13: 7-8 -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 요일 5: 2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② 싸우려고 - 하늘전쟁에서 패한 뒤, 땅으로 쫓겨난 사단과 그의 사자들이 예비처로 보호받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은 교인들에 대하여 복수하려는 장면이다.
* 요 8: 44 -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 고전 2: 1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 벧전 5: 8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③ 모래 위에 섰더라.
서로 뭉쳐 바위를 이루지 못하는 오합지졸을 의미한다. 아무리 많은 숫자라 할지라도 성령의 도움을 받지 못하므로 능력을 상실해버린 교인들을 의미한다. 용과 그의 사자들의 화풀이 대상이 된다.
* 창 22: 17-18 -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4) 아브라함의 영적 두 자녀.
① 하늘의 별.
* 계 1: 20 -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 단 12: 3 -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② 바닷가의 모래.
* 사 10: 21-23 -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23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5. 마지막 인사 ( 6: 18 )
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갈 6: 18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찌어다. 아멘. )
1] 형제들아
'형제들아' -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형제들'이라고 한 것을 보니, 그들이 아직 유대주의자들의 그릇된 교훈에 완전히 빠지지 않은 것이 명백하다.
그는 이렇게 애정 깊은 명칭으로 그들을 부름으로 그들의 마음을 이끌어 자기의 말씀(복음진리)을 듣게 하고, 거짓 스승들을 멀리하게 하려고 한다(Greijdanus).
모든 형제들에게 거룩한 인사를 전함으로 시작했던(1: 2) 본 서신은 갈라디아 교회의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간구하는 기도로 끝을 맺는다.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리스도의 은혜'는 바울이 지금까지 말한 모든 성령의 약속과 구원을 함축적인 의미로 표현한 것으로서 저들의 구원이 자의적(自意的)인 행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에 달려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증한다.
특히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메타 투 프뉴마토스)라고 표현한 것은 외형적인 모양을 추구하는 율법주의자들의 견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들의 내적인 존재 전체에 영향을 끼치길 기원하는 의미이다.
3]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 축도의 목적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심령(心靈)깊은 데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며, 그의 은혜에 참예하여 거기서 떠나지 않기를 위한 것이다(Greijdanus).
큰 은혜가 하늘에 쌓였을지라도 인간이 그 심령으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그것을 받아 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엇보다도 그의 심령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11절부터 18절까지의 본문이 보이는 바는 다음 몇 가지이다.
첫째, 할례와 십자가는 두 개의 별개의 구원 원리를 보인다.
할례는 율법 준수의 원리를 보이고, 십자가는 복음 신앙의 원리를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하나님께서는 크신 긍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으심을 받았다. 우리는 이제 할례의 법 아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율법으로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함을 받을 수 없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와 다른 원리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둘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믿고 자랑해야 한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의 확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큰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찬송의 제목이 되어야 하며 우리의 감사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셋째, 우리는 복음의 원리를 따라 살아야 한다.
우리는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시 율법의 멍에 아래 있거나 율법에 종노릇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갈라디아서 앞부분이 강조한 복음 원리였다. 즉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복음 원리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받은 자로서 이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를 새 피조물로 만드신 것이요 그것은 새 삶을 살게 한다. 그 삶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삶이다.
이제 주를 믿는 우리는 모두 복음의 바른 원리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