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 미국과 영국의 압력으로 개항된 청국과 일본은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었습니다.
조선 : 제너럴셔먼호(1866년), 병인양요(P.G.로즈), 신미양요(J.로저스)에도 척화비를 건립하며 개항을 거부합니다.
일본은 조선에 개화를 강요하며 직접교섭론, 무력정한론, 우회안을 꺼내 듭니다. 하지만 고종이 집권해서도 서계, 도서환납 문제로 거부하자 일본이 무력을 씁니다.
1876.02.26 조일수호조규 : 일본 자신들이 쳐들어와 놓고는 조선의 책임을 묻습니다.
1876.08.24 조일수호조규부록, 조일무역규칙 : 일본이 조선에 침투 기반을 마련합니다.
이후 일본 화폐가 유통되고 쌀이 유출되며, 일본 선박과 상품에 대한 면세가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종은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영선사, 보빙사 파견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열강에 대한 전면 개방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학습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1880.10 수신사 김홍집[조선책략]은 관세 자주권과 통상조약의 중요성을 배워옵니다.
1882.05.22~1882.06.30 조미, 조영, 조독 수호통상조약 : 금수관계 미국과 국교를 수립합니다.
사실 여기에는 청국의 속셈이 담겨 있습니다. 이이제이 전략으로 조선을 속국화하고, 서구 열강으로부터 받은 불평등을 보상받고자 함이 그것입니다.
1882.07 임오군란 : 문호개방 반대 세력이 반란을 일으켰고, 청국이 군대를 급파해 진압합니다.
1882.08.30 조일수호조규속약 : 진압 시에 일본은 청군에게 당했는데, 조선의 책임을 묻습니다.
1882.10.04 조청 상민수륙무역장정 : 청국은 조선이 자신들의 속국임을 문서로 밝힙니다.
1883.07.27 조일 통상장정 : 관세자주권 회복이 실패하고 오히려 일본에 최혜국 권리를 줍니다.
1883.11.26 조영수호통상조약 : 조선은 청의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공식 조약을 맺습니다.
1884.12.04 갑신정변 : 청불 전쟁 도중 14개 조 개혁안을 발표합니다. [위로부터의 개혁]
1885.01.09 한성조약 : 진압 시에 일본군 2명이 전사했는데, 또 조선의 책임을 묻습니다.
1885.04.03 톈진조약 : 마찰이 심해지자 일본과 청국은 4개월 내로 한반도 철수를 약속합니다.
● 일본은 자신들이 저질러놓은 것을 조선에 책임 전가합니다.
● 청국은 외세 끌어들여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듭니다.
때마침 일본은 1885년도의 영국 거문도 점령사건, 1891년도의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사업을 이유로 군비 강화합니다. 그렇게 10년 준비하고는 벼르고 벼르던 전쟁을 치릅니다.
1894.06.03 명성황후가 동학 농민군(아래로부터의 개혁) 진압을 위해 청국에 파병 요청합니다.
1894.06.08 일본은 경기, 인천에 혼성 1개 여단, 해병대 약 400명을 투입합니다.
1894.06.08 청국은 충남 아산에 군인 약 2,000명을 파병합니다.
1894.06.11 조선과 동학 농민군이 눈치채고는 전주 화약을 통해 사건 종료시킵니다.
1894.07.23 청군은 철수했지만, 일본군은 오히려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국에 선전포고합니다.
1894.08.20 잠정합동조관 : 청군과의 전쟁을 대비해 경제권 장악 성격의 체결 맺습니다.
1894.08.26 조일 양국맹약 : 청군과의 전쟁을 대비해 군사동맹 성격의 체결 맺습니다.
1894.09.15 청일전쟁 : 평양전투를 시작으로 청군 격파하며 다롄, 뤼순지역까지 진출합니다.
1895.02 히로시마 회담이 2번 결렬되면서 일본군은 랴오둥반도까지 점령합니다.
1895.03.20 시모노세키조약 : 청국은 패배인정뿐 아니라 조선 내에서 완전 철수를 약속합니다.
1895.08.20 명성황후는 청국이라는 우산이 사라지면서 시해 당합니다. [자객 80명, 반일감정↑]
1895.11.08 요동 환부조약 :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삼국간섭에 대해 일본은 수용하고 맙니다.
1896.02.11 아관파천 :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대피해 청국의 탕샤오이를 만납니다.
1896.02.24 베베르-고무라 각서, 로바노프-야마가타 의정서 : 일본이 러시아에 실력행사 中
1896.06.03 러청비밀군사동맹 : 러시아도 동아시아에 손을 떼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1897.02 Sergei Witte의 한반도 중시정책 덕분에 고종은 환궁할 수 있었습니다.
1897.10 고종은 대한제국 선포하고 광무개혁 단행합니다. 그리고는 황제 칭호를 부여합니다.
1898.01 무라비예프의 만주 중시정책이 추진되면서 한러은행은 해체됩니다.
● 청국은 시모노세키 조약 이후 조선에 어떠한 힘도 쓸 수 없습니다.
● 러시아와 일본은 서로 가면을 쓰고 끊임없이 줄다리기 싸움합니다.
청국의 서수펭과 조선의 박제순이 덕수궁 함녕전에서 만나 6개월간 8차례의 회담을 진행한 끝에 한·청통상조약을 맺습니다. 더 이상은 외세의 기세에 눌릴 수 없다는 간절함이 통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조약은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외세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렬했습니다.
1901.09.07 신축각국조약 : 청국은 의화단(1900.6.21 부청멸양)이 실패한 후, 2억 4천만 냥의 은을 열강들에게 배상했습니다.
1902.04.08 러청만주철병조약 : 만주의 러시아군을 6개월에 1번씩 차례로 철병하기로 합니다.
1903.01.30 제1차 영일동맹 :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합니다. [vs 먼로주의]
1903.04 러시아는 러청만주철병조약 위반하며 압록강 하부 용암포를 강제 점령합니다.
1904.02.06 일본은 러시아와의 국교를 단절하고, 러시아 함정 급습합니다.
1904.02.10 러일 양국은 서로 선전포고합니다.
1904.02.23 한일의정서 : 일본은 공수동맹 전제로 이지용의 승낙을 받습니다.
1904.03.01 황성신문이 논설로 한일의정서의 부당함을 알립니다.
1904.05 일본 내에 조선을 보호국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확산합니다.
1904.08.22 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서 : 조선 재정고문 메가타, 조선 외교고문 스티븐스 임명
루스벨트 대통령은 러시아의 희망 발트함대가 패배하는 것을 보고는 급하게 국방장관 윌리엄 태프트를 일본에 파견합니다.
1905.07.27 가쓰라-태프트 비망록 : 조선 종주국 일본, 필리핀 지배국 미국을 서로 인정합니다.
1905.08.12 제2차 영일동맹 : 조선 종주국 일본을 영국이 인정합니다.
1905.09.05 포츠머스 강화회의 : 일본은 조선 지배권을 러시아에 인정받습니다.
1905.11.10 조선 보호권 확립에 관한 각의(천황 친서)를 이토히로부미가 고종에게 전달합니다.
대한제국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 협약안을 받아들이면서 대한제국 외교권이 박탈(을사늑약)됩니다. 이후 고종은 헤이그 밀사 사건을 빌미로 황제직 양위하는 양위식 거행해야 했고, 일본은 이 기세를 몰아 조선 내정의 통치 실권마저 장악(정미조약)합니다.
1909.07.12 사법 및 감옥 사무위탁에 관한 각서 : 이완용의 승인으로 사법권이 박탈됩니다.
1909.10.26 안중근 의사의 이토히로부미 암살 사건 이후 일본 내에 강경론이 득세합니다.
1910.05.30 영국, 러시아에 조선병합 승인을 받은 후, 데라우치를 한국 통감으로 임명합니다.
1910.06.24 일본에 경찰권마저 위임되어 경시청, 경무국, 경찰부, 경찰서가 모두 폐지됩니다.
1910.08.22 경술국치 : 대한제국 통치권을 일본에 양위한다는 조령 발표합니다.
● 러시아는 포츠머스 강화회의 이후 조선에 어떠한 힘도 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