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완주! 08.06.27 군위 산성초
'말아톤'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자폐증 아들을 마라톤 시켜 풀코스를 완주하게하고 종래에는 입상까지 하는 장애우 인간승리의 감동적인 실화영화였다. 물론 그 영광 뒤에는 끈질긴 모성애가 있었고 자폐증의 답답함이 계속 달림으로서 해소되는 순기능으로 역활한것은 아닐까?
요즘 우리학교는 전교생이 마라톤 붐이다. 전교생 전부가 10명의 경북 초미니학교이고, 마라톤이라기 보다는 장거리 달리기 정도다.
올해 5학 학급 담임을 맡았고, 업무로 체육을 맡아서 중간놀이 시간에 몇명되지 않는 애들 모아 줄을 세워서 체조 등을 하기도 그렇고 해서 2교시 마치고 운동장에 나오는대로 무작정 트랙을 돈다. 마침 학교운동장이 잔디구장이리 축구와 달리기 등을 부드럽게 할 수 있어서 좋다. 3월초 3바퀴부터 시작해서 매주 한바퀴씩 올려가며 계속 뛰어서 요즘은 운동장 열바퀴 이상을 거뜬히 뛴다. 물론 교사도 동참한다. ‘저녁에 퇴근해서 공기 나쁜 헬스장에서 땀빼시느라고 애써시지 마시고 중간놀이시간(30분간)에 잔디구장을 애들하고 무조건 뛰어보입시다’ 처음에 동료교사들도 반응이 좋더니만 얼굴 끄슬린다고 이내 그만두고 나하고 애들만 지금껏 계속 달리고 있다.
애들은 도시애들 하고는 달라서 교사의 말에 잘 순응하는 편이나 처음엔 장난삼아서 전력질주하다 이내 배 아프다고 드러누워 버리는 놈, 걸어가는 놈, 저것들도 얼굴 끄슬린다고 불평하는 놈, 체육선수는 절대 안시킬거라고 항의하는 학부모 등등 가지각색이다. 나도 애들 체육선수 시키고 싶은 마음, 상 타고 싶은 마음 절대로 없다. 다만 이 애들이 지금 체력을 길러서 고등이나 대학시절 밤새워가며 공부해도 쓰러지지 않을 체력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고(내자식들 고등학교 시절 밤세워 공부할때 코피 흘리던 안타까움 때문에...) 나도 운동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뿐이다.
두어달 운동장을 계속 달리다 5월부터 차츰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 150m 트랙을 10바퀴 이상을 단순하게 계속 돌자니 나부터 따분하다. 그래서 도로로 나서기 시작했다. 6월 초에 군위군 단축마라톤 대회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로 왕복 3km 되는 지점을 돌아오는 코스를 정해서 애들과 뛰기 시작했다. 오지 시골 학교앞 도로라서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산속으로 난 길이라서 마라톤하기엔 황금 코스다. 길 양쪽엔 개망초, 민들레, 애기똥풀, 등등의 야생화와 길옆의 산기슭엔 소나무가 지천이고 도로를 직선이면 3km를 달려가면 따분할텐데 약간 굽은 도로라서 앞이 확 틔지 않아서 피로감을 덜 느끼고 굽이굽이 산모롱이를 달린다. 900m쯤 가면 약간의 오르막이 형성되다가 반환점까지 200여m는 내리막으로 되어 있어 애들에게 마지막 고비를 넘기는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절묘한 코스다.
학교 운동장을 주로 돌다가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는 3km 도로를 뛴다. 물론 도로 마라톤은 4학년 이상 희망자만 뛰기로 했으나 2학년 남학생 1명과 3학년 여학생 1명도 형아들과 같이 뛰기를 희망해서 같이 뛴다. 그리고 기특할만한 일이 5, 6학들은 꾀를 부려 천천히 뛰는 날이면 2학년과 3학년이 1등을 하는 경우들이 더러 있어서 더욱 흥미로운 마라톤이 된다.
연습회수가 거듭되고 마라톤 군대회 날짜가(6.9) 다가왔다. 군위군 10개 각학교 4명이상의 마라톤 선수 명단을 제출하라는 공문이 왔다. 애들 기록은 형편없지만 완주를 목표로 우리반 5학년 4명이 전부 출전하기로 했다. 한명은 작년800m 군대회 1위를 하고 그간 기록이 괜찮은 편이나 나머지는 세명은 몸들이 비만하거나 허약해서 대회 출전하기는 부적격했으나 다같이 참가하기로 했다.
대회당일 각학교 교장, 교육장, 장학사들이 모두 결승점에서 기다리고 우리학교 교장샘은 나이 많은 남교사가 사제동행 마라톤을 그동안 꾸준히 해왔다며 전교생 10명중 4명이나 출전시켰다고 은근히 자랑하며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마라톤이 시작되었고 나는 반환점에서 감찰을 맡고 있었다. 시간이 점점 흘러 선두주자들이 반환점을 돌기 시작했다. 나도 그동안의 연습도 있고 해서 한 두명은 8위 시상권안에 들어갈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애들하고도 학교 출발전에 오늘 8위권안에 한명이라도 들어가면 짜장면 대신에 삼겹살 파티 해준다고 선언하니 애들도 의욕적이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출전선수 50여명 중에서 30여명이 지나가도 우리 애들이 보이지 않다가 우리애 하나가(박종언- 작년 800m 군대회 1위) 배를 움켜쥐고 허겁지겁 달려온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전문적인 마라톤 연습을 시킨 것도 아니고 그저 건강체력 기르기 목적으로 시작했고 다른 학교는 많은 애들 중에서 그것도 6학년 중심의 선수들을 뽑아서 연습시킨 애들인데 그들과 같이 달리자니 자연 오바페이스가 되었고 복통을 일으키며 달리게 되었다.
한참을 더 기다리니 우리반 애들이 꼴찌 1,2위를 다투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거 낭패다. 수상은 커녕 교육장과 각학교 교장들이 기다리고 있는 결승점 마무리를 산성초등 유니품으로 장식할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마지막 주자들이 다 지나가고 감찰을 맡은 내차로 선수 뒤쪽에 따라가면서 꼴찌로 가는 우리 학교 애둘에게 힘들면 차에 타라고 고함을 질렀다. 실상은 마직막을 보이기 싫었다. 학교에서 연습 시킬때는 무조건 참가하는데 목적이 있다 완주만 해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 했었는데 그놈의 체면이 무언지 그렇게 힘들게 달려온 애들에게 나도 모르게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 근데 아무리 애들을 욱박질러도 끝까지 뛰겠다며 걷다가 뛰다가 완주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교육장과 교장단들은 기다리다 다 온줄 알고 철수를 해버렸다. 내 승용차에다 애들을 태우고 아무 말없이 식당으로 차를 모는데 ‘뭐 사줄건대요?’ ‘우리 선생님 썽났다’ ‘우리가 약속을 못지켰으니 선생님 마음대로 하이소’ 하는 놈 등등 언제 힘들었냐며 잘도 재잘거린다.
다행히 우리 학교 교장샘이 문학하시는 분으로 사고가 트인 분으로 학교로 돌아오니 애들 완주 축하한다며 오히려 격려를 해준다. 실적은 못올린 마라톤대회였지만 애시당초 시작할 땐 대회용이 아닌 거저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했기에 그런 일들을 계기로 요즘도 계속해서 운동장을 잘 돌고 있고 일주일에 한 두번은 도로를 달린다.
몇일전에 있었던 일이다. 2교시후 중간놀이 시간에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도로 마라톤을 못했다. 3교시가 되니 비가 그치고 구름이 꽉 끼어서 달리기 좋은 조건이다. 수학시간인데 진도도 많이 나갔고, 나도 전날 먹은 주독과 쌓인 스트레스를 풀겸 애들한테 ‘수학할까? 마라톤할까?’ 물어보니 뛰자는 놈, 뛰지말자는 놈! 의견들이 분분하다. 그중에 한 놈이 고함을 지른다. “에이! 차라리 뜁시다!!!” 수학을 제일 못하는 애다. 5학년 수학이 분수셈 등으로 얼마나 어렵고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며 저럴까? 이해가 된다. 그날은 3교시 우리반 4명만 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이제 애들에게 습관이 되고 탄력이 붙은 마라톤이라서 날씨가 덥거나 춥거나 간에 비만 오지 않으면 무조건, 물론 애들이 좋아하는 한 계속 뛸 작정이다. 가끔씩 길가 논밭에서 일하시던 주민들이 ‘오늘은 선생님이 5등 하셨네요!’ 애들보고는 ‘완주! 완주!’하는 소리들도 듣기 좋다. 오랜세월 시골에서 농사지어며 살아오신 촌노들도 완주의 의미는 절감하시는 모양이다.
10여년전 혈기왕성할 때 경산초, 하양초 전교생 2000명이상 규모에서 교직생활하며 체육선수, 과학선수 길러내어 학교 실적 올린다고 부질없는 세월들 많이 보내고, 이제 승진 함 해볼끼라꼬 특수학교로, 벽지학교로 돌아다니다 보니깐 그 좋던 세월도 다 가버리고 시골에서 서너명 애들하고 토닥거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애들하고 느끼하게 분위기 잡아서 시낭송해보고, 음악시간엔 발성연습 해가며 신나게 노래도 불러보고, 중간놀이 운영도 내 마음대로 해보며 애들에게 ‘완주’의 개념은 어느 정도 정착시킨 것같아 승진 못해서 늘 고달픈 마음에 어느 정도는 위로가 됩니다. 대도시 애들은 영어교육, 컴퓨터교육, 영재교육 등으로 한참 앞서가는 최첨단 세월에 퉁딴지 마라톤완주 이야기나 해봅니다~^^
영산초53 동기생들의 댓글
김계숙 08.06.27 10;05
긴글(수필?) 생생하게 올려줘서 잘 읽었다. 전원학교 생활이 부럽다. 늘 활기차고 건강한 생활 또한 완주하시길~~~
허근명 08.06.27 14:30
아따 ~ 한참을 읽었네... 자연속의 방장님 교정, 생각만 혀도 저절로 그림이 그려 집니다요 , 맑고 깨끗하게 다져진 남선생님의 체력의 비밀이 이제야 알겠군요, 동심의세계와 오지의 보물이 가져다준 댓가겠지요, 부럽습니다요,,,, 건강하소, 남샘,
남향숙 08.07.01 22:49
산골길을 몇몇 꼬맹이들과 헥헥 거리며 뛰고 있는 남샘의 모습이 그림 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늘 인공 불빛 속에서 일하는 내겐 부러울 따름이고. 글을 읽으며 그 아이들이 우승권에 들었다면 더욱 좋았을텐데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걸 보면 남샘은 오죽했을라고... 욕심, 욕심을 부리자. 일도 건강도 우정도 사랑도... 그래서 지금 보다는 조금 더 행복해지자... ^^*
구 흥 서 08.06.30 10:49
옛날 소실적 생각이 나는구만,,,, 뭐라해도 건강이 최고 완주는 목표달성 산행도꼭 정상을 정복해서 터치를 해야 산의 기를 받을수 있다고 하더라
서영근 08.07.01 11:58
시월달 동아마라톤 하프코스 도전 어떠신지?
구상근 08.07.01 17:40
너무 과욕으로 무리는 마소 한참에 다 일루는것보다 .적당선을 유지로 건강 하이소,,
최갑종 08.07.13 10:37
남샘 파이팅~~건강하게 나머지 삶을 완주 완주 하입시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