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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성 52. 영성의 대가들(소화데레사 2)
무심 14.06.04 23:30
(,,,) 데레사의 눈에 뜨인 이사야의 다음 말씀은 그녀에게 새로운 빛을 가져다주면서 성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젖먹이들은 그의 등에 업혀 다니고 무릎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어미가 자식을 달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이사 66,12~13).
그녀는 「예수의 팔」이라는 상징적 용어를 쓰며 성화시키시는 하느님께 대해 자신이 갖추어야 할 자세를 표현했다.
『저를 하늘에까지 들어올려 줄 승강기는 오 예수님, 당신의 팔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저는 커질 필요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작은 채로 있어야 하고 점점 더 작아져야 합니다.』
데레사가 깨달은 주요한 진리는 성화에 있어 주도권이 하느님께 있는 것이지 인간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영적 어린이의 작은 길이 나타난다.
작은 채로 남아있으면서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인정하고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맡기며 아무 걱정도 않듯이 모든 것을 선하신 주님께 내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 (,,,)
『저의 성소는 사랑입니다.』
『완덕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고요? 저는 한 가지 방법밖에 모릅니다. 그것은 사랑뿐이지요.』
『저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서 이웃에 대한 애덕의 의무는 전모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예수님께 일치하면 할수록 자매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작은 길의 핵심과 방법은 사랑이었다.
『사랑으로 행한 지극히 미소하고 가장 감추어진 행동은 종종 위대한 업적보다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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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교리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영적 어린이는 신뢰·사랑의 길을 걷는 영혼
티-지 16.06.30 10:05
(,,,) 성녀는 만일 어린아이가 잘못을 하고 나서 토라지거나 두려워하며 방구석에 쪼그리고 있다면, 엄마는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그 대신 그 아이가 엄마에게 달려가 뺨에 뽀뽀하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용서해 달라고 청하는 가운데 미소를 지으며 “다시는 안 그럴게요”, “엄마 사랑해요” 하고 고백하면, 내칠 엄마가 어디 있겠느냐며,
그런 아이의 고백을 들은 엄마는 굉장히 기뻐하며 아이의 잘못을 금세 잊어버릴 거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성녀는 이내 서운했던 엄마의 마음은 다 녹아버리고 아이는 잘못에 대한 벌을 받지 않을 것이며, 비록 그 아이가 같은 잘못을 저지를 걸 알면서도 엄마는 아이를 용서하며 꼬옥 안아준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을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는 어린아이의 신뢰!
이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 앞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 자세입니다.
소화 데레사의 바로 손위 언니인 셀리나가 리지외 수녀원에서 성녀와 함께 지내며 있었던 일들을 추억하며 쓴 「권고와 추억」에 보면,
성녀가 하느님에 대해 신뢰를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셀리나에게 해준 재미있는 일화가 나옵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옛날에 어떤 임금이 사냥을 나가 하얀 토끼 한 마리를 쫓고 있었는데, 사냥개가 잡으려고 달려들자 그 작은 토끼는 이제 죽게 됐다고 생각하고는 급히 되돌아가 사냥하던 왕의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왕은 그와 같은 신뢰심에 감동해서 아무도 그 토끼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하고, 손수 먹이까지 주면서 그 후로는 그 토끼를 자기에게서 떼어놓으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화 데레사는 이 일화를 전하면서 좋으신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다루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개에 비유된 ‘정의’가 우리 뒤를 쫓아온다 해도 우리는 오히려 우리의 심판자이신 주님의 팔 안에서 피난처를 찾을 것이라고 성녀는 말합니다.
소화 데레사에게서 번뜩이는 영적인 영민함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출처: 평화신문 2016. 06. 26발행 [13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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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위탁 16 p.87-91 제 1 편 제 8장 위탁(委託)에 있어서의 노력(努力) ②
옴니아(도쿄 서글라라) 2014.09.15. 05:47 무화 18.01.19 23:40
「나는 예수님 곁에 오르기 위한 하나의 『엘리베이터』가 필요합니다.
왜냐 하면, 나는 완덕의 험악한 단계를 올라가기에는 너무나도 작기 때문입니다.
..... 하늘까지 나를 끌어올릴 『엘리베이터』..... 예수님이여, 그것은 당신의 팔이 옵니다. 」
라고 영해 예수의 성「데레사」는 말하였다,
그렇다고, 정관주의자 등은 서둘러 개가를 올려서는 안된다. 성녀가 말한 것은 사랑과 신뢰와, 각별히 겸손의 말이다.
왜냐하면, 소화 「데레사」성녀는, 주께서 그를 팔로 안으시어 옮기실 때까지는, 수동적 나태 안에 순간이나마 머물러 있기를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는 커다란 활동력으로써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덧붙여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크게 될 필요가 없사옵니다. 어디까지나 작은 이로서 머물러 있어야 하나이다. 그리고 더욱 더 작은 이가 되어야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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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위탁 113 pp.565-569 제 4 편 제2장 거룩한 위탁의 효과 제1절 천주와의 친밀②
옴니아(도쿄 서글라라) 14.03.05 06:29 무화.보조 21.08.11 11:11
p.568 영해 예수의 성녀 「데레사」에게 있어서는 겸손은 천주께 대한 신뢰의 샘, 그것도 보통이 아닌 하나의 샘이었다.
성덕에의 길을 찾아 구하고 있던 성녀는 그것을 신적 예지의 다음의 말씀 안에서 찾아냈다.
「누 만일 온전히 미소한 자면 내게로 오라.」(잠언 9.4) 그것은 성녀에게 있어 한 줄기의 광선이었다.
그는 자신의 나약함과 허무의 의식 안에 온전히 미소한 이가 되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미소한 이었다
그의 소망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고, 잊혀져 사는 일이 었다.
그리고 유아와 같이 작은 그는 유아처럼 사랑하고 유아처럼 따르며, 유아처럼 작은 꽃잎을 뿌렸다.
p.569 즉 유아가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모든 작은 희생을 바쳤다. 그 대신 그도 유아처럼 사랑을 받고, 예수의 팔은 그를 완덕의 절정에 오르게 하는 「엘리베이터」(승강기)가 되었다.
그는 과실에 떨어지는 적이 있었다. 아, 그러나 유아는 때때로 구르는 것이다. 그 때, 유아는 울면서 어머니에게 달려 가, 그 팔에 몸을 던진다.
이와 같이 하여 용서를 받고, 위안을 얻는다. 성녀도 그와 같이 하였다. 그는 가장 순결한 성인 중의 순결한 이었다.
그러나, 비록 온 세계의 모든 죄를 혼자서 범했다 하더라도 통회자 「마리아.막달레나」를 본받아 조금도 그 신뢰심을 잃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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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wee 16.08.21. 08:23 (가입인사 댓글)
★ 그 <한 걸음>은 시작이며 끝입니다. ★
그러나, 그 한 걸음을 < 어디에 올려놓느냐 >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한 걸음을 <엘레베이터>에 올려놓느냐 아니면 <에스컬레이터>에 올려놓느냐,
아니면 <계단>에 올려놓느냐에 따라서
올라가는 속도와 힘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거내영>은 엘레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려놓는 것과 같습니다.
많은 열심하다는 신앙인들이 계단에 발을 올려놓습니다. <계단 밟기 운동>을 하려 말입니다.
계단에 발을 올려놓으면 肉에는 좋을지? 모르겠으나, 靈에는 좋지 않습니다. 자아~ 이제 한 걸음 뗀 그 발을 힘차게 디디십시오, 계단만 제외하고.
엘레베이터가, 에스컬레이터가 님이 원하는 목적지로 옮겨줄 것입니다.
엘레베이터(에스컬레이터)가 바로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거내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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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조교사방 스크랩 내 뒤를 따르르면
moowee 12.09.20 23:54
< "언제부터인가 원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되는 조건을 알고 싶고, 묵상하고 싶었다.
이렇게 공부를 해 보니, 너무나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어,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의 뒤를 따른다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되었다.">
<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하느님의 뜻 앞에서 자신의 이기적 자아와 본성과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 않음을 안다.
그래서 자신의 뜻을 하느님 뜻 앞에서 버리는 데서 오는 십자가의 아픔을 지고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십자가는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소명의 십자가에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데 버려야 하는 아픔의 십자가가 첨부된 것이다. >
<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자아실현을 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마음, 정신, 사상, 운명, 가치관 모두를 자신의 것으로 삼는 사람들이며, 거기에 따르는 희생과 십자가를 매일 지속적으로 죽는 날까지 지고 가는 사람이다." >
- 임 언기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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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wee작성자 12.09.21. 08:50
그렇습니다, 신부님, 동감입니다. 그분의 뒤를 따른다는 것은 만만치 않습니다.
왜? 신부님 말씀대로 자신의 이기적 자아와 본성과 욕심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전부 내려놓아야, 다 버려야, 내맡겨<abandonment(give up)>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 내려놓고, 버리고, 내맡겨야 합니까? 우리는 아무데나 내려놓고 버리고 내맡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모든 것은 사실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기에 반드시 하느님 앞에 내려놓고, 버리고, 내맡겨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 내려놓고, 버리고, 내맡기고 살아가겠노라고 굳게 결심하고, 그 결심을 하느님께 봉헌해 드리고 하느님의 뜻대로 그 이끄심에 따라 사는 삶이 바로, <내맡김의 삶(영성)> 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버리는, 비우는, 내맡기는) 것까지가 만만치 않지, 그 다음부터는 너무너무 쉽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나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다 내맡겨 드렸기에 그분께서 모든 것을 다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엘레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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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섭리에내맡김(韓) 하느님섭리에내맡김《서론》⑸ p.24-27
성녀는 사람들에게서 이 세상을 하직한 다음 성녀에게 맡겨진 모든 영혼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즉시 이르길
"신뢰와 완전한 위탁의 길인, 영적 어린이의 길에 그들이 나서도록 권고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또한 성녀의 자서전 안에 언니 마리아에게 보내는 글, 마지막 장에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으셨던 비밀들"을 말하겠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이러하다.
"예수님은 결코 드러나시지도 않고 당신의 목소리를 나로 하여금 듣게 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분은 은밀히 저를 가르치시지만 당신 사랑의 신적 용광로에로 이끄는 유일한 통로를 저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품 안에 두려움 없이 잠든 아기처럼 완전한 위탁과도 같습니다. ... 예수님은 위대한 행동들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모든 것은 자기를 온전히 내맡김이며 감사드림입니다. ... 오! 예수님, 당신의 측량할 수 없는 자애에 대해 모든 '작은' 영혼들에게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보다 더 연약한 영혼을 만나신다고 하고 그 영혼이 당신의 무한한 인자를 굳게 믿어 그 자신을 온통 내맡긴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에게 더 큰 은혜를 즐겨 넘쳐흐르도록 내려 주실 것 같이 생각됩니다." (p.26).
(,,,)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조용히 쉬지 않고 안달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짓은 없습니다."
성녀 데레사의 "작은 길(Little Way)" 의 전 목적은 만인이 하느님 뜻에 조금도 남김없이 내맡김으로써 거룩하게 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사랑 외에" 아무것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성녀는 성녀 체실리아를 두고 자기가 좋아하는 성녀라고 말했다.
"저를 특별히 기쁘게 한 것은 성녀가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긴 것이었고, 그분에 대한 끊임없는 신뢰심이었습니다."
위탁과 신뢰, 이것은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열쇠가 되는 두 개의 단어들이다.
moowee16.11.30 14:55
작은 길(Little Way) = 거룩한 내맡김의 길(Holy Abandoned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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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조교사방 Re:누가 내맡김의 영성에 돌을 던지는가
moowee 17.07.27 21:25
(,,,) 제가 "위탁(의탁)의 영성"을 우리말로 "내맡김의 영성"이라는 말로 사용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만들어준 책이 바로 <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인데,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살았던 이 책의 저자 프랑스의 영성가 예수회의 '코사드의 요한 베드로 신부님'의 영성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특히, 이 책에는 <성녀 소화 데레사>에 대한 영성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데, 성녀 소화 데레사가 말하는 "작은 길(Little Way)"이야 말로 <내맡김의 영성>과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내맡김의 영성에 돌을 던지는 행위는 곧,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에 대해 돌을 던지는 행위와 다를 바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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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책
6-113 1905년 5월 29일 순명의 품안에서 쉬는 영혼은 온통 신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1 오늘 아침 복되신 예수님께서는, 마치 쉬시고 싶다는 듯이, 오시자마자 내 품안으로 몸을 던지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영혼은 이렇게 순명의 품안에서 쉬어야 한다. 어머니의 품안에서 안전하게 쉬는 아기같이 말이다.
순명의 품안에서 쉬는 영혼은 온통 신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3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잠들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에게 색칠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순명의 품안에서 정말로 쉬고 있어서 잠들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도 원하시는 대로 채색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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