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게?! 초고를 올리다니!!!
Sea & Bogi
2017. 10. 향기 이영란
여행기
스쳐가는 사람들 모두
뭉게구름을 타고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들은
나룻배 위에서 한가로이
바람 따라 흔들리고
물결은 온갖 꽃으로 만발하여
권태를 속속들이 파고들었다
노을이 멈추는 마을까지
산 몇 개쯤은 단박에 열렸고
모닥불 사이에서 날밤夜이
노릇노릇 무르익을 때쯤이면
별이 하얗게 쏟아져 내렸다
(임영준·시인, 1956-)
Can I join with you?
그 한마디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제주 동서네 집을 다녀오는 배에서의 일이다. 뱃길로 5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따로 의자가 없는 배에서의 시간은 무척 길게 느껴졌다. 나는 시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을 보다가 깜빡깜빡 졸다가를 반복하며 시간과 치근대며 있었고, 남편과 아이들은 넓은 배를 구경하며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는 짐작만 있었을 뿐, 무얼 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와서 하는 말
“아이들이 노래방에 있다. 어딨는지 알 수가 없어서 전화해 봤더니, 노래방에 있더라고. 짜슥들이”
하긴 나도 그랬다. 이선희, 변진섭, 조정현, 이상은, 무한궤도, 공이로비 등을 들으며 그 터널 같은 시간을 지나왔다. 가장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지금의 아들 둘도 노래와 함께 자라고 있다. 마음을 적실 노래마저 없다면 그 삭막한 청춘은 훨씬 견디기 어려우리라.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께서도 노래 부르고 있을 손자들 모습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함께 가보고 싶어 하셨다. 우리는 ‘녀석들~’하면서 노래방을 찾았다. 그런데 웬 일? 어떤 외국인 커플이 함께 앉아있는 것이었다. 의아해 하는 우리에게 상우가 들어와서 함께 해도 되냐고 해서 같이 있다고 했다. 연휴는 우리의 마음을 느슨하게 하였고, 그게 아니더라도 별로 나쁠 것 없는 일이었다. 아들들이 배운 영어를 써 보거나, 적당한 영어로도 웬만큼 의사소통도 가능할 일이었다. 남자는 뉴질랜드 출신으로 이름이 Sea, 여자는 헝가리 출신으로 중앙대 국제교육원 학생으로 Bogi라는 애칭을 지닌 상냥하고 목소리가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해보니 Bogis는 아마추어 밴드 활동을 하는 뮤지션으로 실제 노래실력이 수준급이었다. 상우, 건우가 학원에서 배운 팝송을 열심히 부르고 있을 때, 우리는 모두 즐겁고 신나서 어쩔 줄 몰라했다. 수줍음 많은 시어머니도 분위기를 타고 한곡조 뽑으셨고, 남편도 회식 때 부르던 18번을 총동원하여 부르는 동안 나는 안되는 영어를 쥐어짜가며 아들을 통해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제주에서 2주동안 배낭여행을 했고, 텐트를 쳐서 숙박을 해결한다고 했다. 그들은 가장 저렴한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여수였고, 며칠 머물다가 부산으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통영으로 올 것을 제안했다. 사람들의 대부분이 더 이상 힘든 여행을 하지 않는 요즈음의 시대에서 그들의 모습은 내게 무척 인상적이었고, 텐트로 하는 가난한 여행자들에게 따뜻한 숙소와 인정을 제공하고 싶었다. 그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물정 모르는 바보와도 같았다. 앞뒤 가리지 않는 순진함이 없었다면 나는 그런 제안을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30분에 만원인 노래방 기계에다 돈을 집어넣고 집어넣고 해서 2시간 반인지, 3시간인지를 노래하며 떠들다가 그들과 헤어져서 여수에 도착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추석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숙소를 검색했다. 팬션, 게스트하우스 등등 내가 좋아하는 팬션부터, 잘 모르는 데 참 예쁘고 괜찮네 하는 게스트하우스를 뒤져 봤더니 모두 예약완료가 떠 있는 걸 보자, 평소에는 가볼 생각도 않는 비싼 팬션으로 이동해 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 산양면, 용남면, 광도면 등 저~~ 멀리 통영이라고 하기 힘든 곳까지 모조리!!! 3일부터 7일까지는 하나같이 all all all reserved였다. 나는 그제서야 경솔한 내 입을 원망했다. 그런데 뭐 어찌어찌하다가 4일 밤 하루는 시내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이 가능한 곳을 찾아내었다.(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리고 그들의 페이스북을 통해 Sea는 아프리카, 인도, 터키, 캐나다 등 전 지구적 여행자에다가 상당히 깊이 있는 글을 쓰는 작가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Bogi 또한 노래하는 모습, 상념을 적어놓은 글들이 많았다. 둘은 여행과 글쓰기가 생활이었다.
4일 날 오전 아니나 다를까 아들의 페이스북으로 연락이 왔다.
“Hello!”
그렇게 Sea와 Bogi는 통영으로 왔고, 추석 연휴라 문 닫은 식당이 많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사장님들 덕분에 우리는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었다. 과자나, 컵라면 등 질 나쁜 음식을 먹으며 지내던 그들은 깔끔한 삼겹살과 구수한 된장국을 먹으며 환호했다. Sea는 세계의 부의 불평등과 빈곤 재생산의 모순적 구조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한국의 정치체제와 세금부담율,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지원 등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그들이 머물 게스트하우스를 안내하고, 커피를 함께 마시며(둘은 커피도 나누어 마셨다. 한잔으로도 충분한 양이라며 모든 걸 share하는 사이라고 하면서) 강구안을 함께 걸었다. 막 그림에서 나온 듯한 통영의 밤풍경과 우리들의 호의에 그들은 감동했다. 오랜만에 침대에서 잘 수 있고, 따뜻한 물에서 샤워할 수 있다는 것도 무척 감사해 했다. 우리는 충무김밥을 사서 내일 아침에 데워서 먹으라고 가르쳐 주면서 제발 질 나쁜 nuddle을 너무 많이 먹지 말 것을 당부했고, 주변의 동피랑과 남망산 공원 등의 구경거리를 추천해 주고서는 헤어졌다.
5일은 친정에서 보냈고, 6일 저녁은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하고 싶었으나, 대단한 고딩시험 준비 때문에 반대의견이 있어, 건우와 나 둘만 밖에서 Sea와 Bogi를 만났다.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짬뽕, 짜장면을 함께 먹으며 나는 말했다. 당신들을 보니, 나는 매우 틀에 짜인 인간이며, 나는 무척이나 가난과 모험을 두려워 하는 것 같다고. 당신들의 그 자유와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 마음자세가 무척이나 멋지다고. 우리는 검은 아저씨네에서 차도 함께 마셨다. 역시 그들은 까페오레 한잔이었고, 우리의 호의에 찻값은 자신들이 내겠다고 했다. 그 날 저녁 나의 바보근성은 다시한번 출현했다. 나는 통영에 초대해 놓고, 그들이 텐트에서 자는 것이 괜히 미안했다. 낮에 모텔 몇군데에 전화를 해 보았는데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곳이 많았다. 그래도 나는 죽림지구에 있는 그 많은 모텔들 중 방 하나 없을까 하고 우습게 보고 있었고, 그 정도 쯤이야 생각했다. 대여섯 군데를 가보고서야 나는 모텔을 고를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고, 숙박료가 오히려 저렴한 모텔은 더더욱 없는 사정이었던 걸 알리 없었던 것이다. all이 스무개쯤 붙은 reserved였던 통영의 10월 6일 금요일 밤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그들이 텐트를 치고 있었던 수륙터 해수욕장에서 아예 텐트도 가져오지 않았고, 바보였던 나는 그 사실도 모르고 모텔을 구하겠다고 설쳐댔던 것이다.
7일에 그들은 통영을 떠나 부산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 페이스북을 다시 되살려 냈고, sns상에서 더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페이스북에 우리와 함께한 사진을 올리며 우리들의 호의와 통영의 아름다움에 깊이 감사해했다. 그들은 구글맵으로 우리가 가르쳐준 장소보다 더 좋은 장소를 잘도 찾아내었고, 시내버스, 시외버스 타는 일 쯤은 동네 안처럼 익숙한 일이었다. 그들은 몸과 마음이 무척 강인한 사람들이었지만,
여행.hwp
그들의 결핍을 나는 참 많이 채워주고 싶었다.
아들을 통해서 번역해 달라는 것도 귀찮아서 나는 하고싶은 말을 전하기 위해 내 뇌의 깊고 깊숙한 곳에 내버려 둔 영어를 가지고 나왔고, 초보적인 영어로도 나의 마음을 전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I can’t believe that I am poor English. How so many words!
Sea 와 Bogi의 만남을 통해 우리 부부는 simple한 여행과 삶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럭셔리한 여행보다 많이 걷고, 숙박과 먹거리에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하며, 많은 독서와 사색에 투자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이번 겨울에는 그렇게 여행해 보려고 생각 중이다.
우리는 Sea와 Bogi에게 기회가 되면 다시한번 통영에 방문할 것을 제안했다.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요리솜씨에다 너저분한 집이지만 그들에겐 왠지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다. 말도 잘 안통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편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마음은 꼭 언어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뜻깊은 경험을 남겼고, 그들에게 우리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