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날 - 목포를 걷다.
여고동창이라는 다소 엔틱한 표현이 어색하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남녀 딱딱 나눠진 학교를 다닐 때 같은 고등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들이니.
이 친구들 셋이 뭉쳐서 목포를 걸었다. 2시간 반 가량 기차를 달려서 목포역에 도착.
삭당 <만인살롱> 가는 길.
점심 먹기 좋은 곳을 찾아 걸었다. 목포역에서 천천히 걸어서 10분 가량.
지도앱을 켜니 찾기는 쉽다만 스몸비 상태로 걷다보니 길거리 구경이 어려워서 아쉽다.
등에 매달린 봇짐같은 가방은..그래 이제 도보 여행 시작점이니 아직은 괜찮다만 곧이어 물먹은 솜처럼, 아니지 엉덩이 무거운 아이처럼 축축 늘어지며 매달릴 태세다.
목포 여행을 하며 놀란 점 하나.
협동조합 형태의 영업이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있는 듯 하다.
이 곳 만인살롱도 그렇고 개항문화거리도 그랬고, 심지어 택시 영업도 그랬다.
목포에서 첫 숟가락을 뜬 <만인살롱> 은 마을기업이다.
반찬가짓수가 80년대 학력고사 시험 과목 만큼 다양하다.
집밥같이 익숙하고 맛있는 밥.
우리는 보통 이런 밥맛을 <할머니 손맛> 혹은 <엄마 손맛>이라고 한다.
이미 엄마인 우리들은 이 맛을 못내니, 엄마 손맛과 할머니 손맛은 식당에서 맛봐야 하나보다.
찬그릇이 금방 비워져서 더 달라고 했더니 금방 리필된다.
특히 국물맛이 시원한 미역국도 한 그릇 가득 덤으로...이걸 어떻게 다 먹지 싶은데.. 또 다 비웠다. 내 친구들이. 싸악싸악.
만인살롱에서 멀지 않은 <1897년 개항문화거리>.
식당에서 개항문화거리 까지 가깝다는 목포주민의 확언도 받은 터라 부담없이 출발..
분명 멀지 않은 거리는 맞다만 34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그늘도 귀한 아스팔트 도로를 걷기가 힘겹다.
몸이 힘들어도 눈이 즐거우면 고통이 상쇄된다.
문제는 볼거리가 별로 없다는 것.
이른바 <개항 문화거리>라 명명된 곳이지만 문화거리라기 보다는 퇴락한 상권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 싶다.
이 거리의 어느곳에 1897년의 모습이 남아있다는 것인지. 하...
친구가 찍은 카페 사진 한 장.
카메라 앵글 속에 균형있게 잡힌 이 카페 사진 한장이 그나마 체면치레를 한다마는 전라도 말로 하자면 <야그다>.
즉슨, 약하다.
그래, 내가 지도앱에 찍어서 간 곳이 바로 이곳인데..
동네 어르신들 사랑방 같아 보여서 아닌줄 알았다,
<사진 찍고 가세요~>할 때 눈치 챘어야 하는데, 낯선 곳에 대한 동경과 기대로 눈과 귀가 먼 상태라 눈치 못챘다.
그래서 공연히 한참을 더 걸어다니며 헛발품을 팔았다. 그 무더위에.
미안하다. 친구들아.
이왕 내친김에 근대역사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퇴약볕 아래 한참을 걷는데 시선을 확 끄는 푯말.
소년 김대중 공부방.
부러 찾아올 일은 없을 테지만 가는 길에 있으니 안 가보기는 좀 서운한 느낌.
좁은 골목길 가팔라 보이는 계단을 기어코 올라갔다. 아닌게 아니라 제법 가파르다.
계단 끝 왼쪽은 절, 오른쪽은 교회.
근데 좌우 길을 두루 돌러봐도 소년 김대중 공부방은 안보인다.
이쯤되면 목포 관광담당자에게 화딱지가 난다. 갈림길에 이정표 하나 세우는게 그리 어렵나.
혹시나 싶어 반대쪽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는데 공부반은 안보이고 갑자기 확 몰려오는 기시감.
오래전 통영에서 박경리 선생 생가를 찾던 바로 그 골목 냄새.
갑자기 나 누구 ?여기 어디? 이런 느낌이 들며 숨이 확 막혀왔다.
전생의 기억이 현생의 기억을 방해하는 느낌.
게시판 용량 부족으로 오늘은 여기까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