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家有功者碧珍李公諱鍾俊之墓
自古로山水秀麗하고人傑多出한紫陽土洞壬坐原斧堂은故碧珍李公의衣舃之所藏也라一日公之長胤益淳氏가門外洞再鎭의寓所로찾아와先親의墓碣銘을 請하기에以非其人으로辭而不獲하여事實에立脚하여如左序之하노니公諱는 鍾俊字는碩如一諱는鍾久로丁卯三月初四日土洞故第에서生하여甲戌二月初四日에卒하니享六十八로土洞先塋下壬坐原에葬禮하였으니姓은李氏이며 系出碧珍하니高麗開國元勳碧珍將軍諱忩言이始祖요玆後로鴻儒巨卿이綿綿하여諱堅幹號菊軒은進賢館大提學인데杜宇詩로鳴於天下하여世稱山花先生이며諡號는文安이다朝鮮朝에서諱孟專號耕隱은端宗遜位時生六臣의一員으로吏曹判書에贈職되고諡號는靖簡이다諱培源은將仕郎으로善山에서永川으로移居하였고諱喜白은成均生員으로號臺嵒이니於公에十三代祖다高祖의 諱는瀧曾祖의諱는楨鳳祖의諱는學魯號는後隱이니舊韓末義兵大將으로大韓民國建國勳章愛國章이追敍되었다父의諱는基昌이고母는龍仁李舜相의女이다公은早失父母하고性品이溫柔勤勉하여伯兄을如父事之하여大小家의和睦에힘썼다特히先王考後隱公墓碑및紀念碑建立時誠心竭力하여主幹其事하고 功績發掘에도盡力하였다庚寅動亂時參戰하여江原道高城戰鬪에서負傷을 입고第五陸軍病院으로後送入院加療中名譽除隊하였고歿後二十四年國家報勳處로부터國家有功者로追敍되었으며戊午年永川댐建設時水沒로五百餘年 世居地를떠나琴湖冷泉里로移居하였다配位는驪江李錫洋의女로婦德이있었으며己亥十月二十六日에卒하니壽九十一墓는合窆이다三男二女를두었으니長益淳은陽山李漢弼次恒淳은平山申淑子次克淳은安東權明姬와婚姻하였고女玉順은海州崔鎭文貞順은密陽朴明洙에게出嫁하였다益淳의男은東洹東珏恒淳의男은東燦東根克淳의男은東憲東殷崔鎭文의男은願求豊求와一女이다長孫東洹은晉州鄭馟謙東燦은固城李美林과婚姻하였고東洹의男은楈晙榕晙이다銘曰 碧珍開基에 耕隱從跡하니 詩禮靑氈이요 忠孝世襲이라 故國當亂에 投身報國하니 積善古家에 餘慶期必이라 王竹之田에 豈有細竹이리 寶樹滿庭하여 能繼先業하리 土洞古原에 永眠安息하니 碩德休名이여 終古斯赫하소서
歲己亥 端陽節에 羅州後人 丁再鎭은 삼가 짓고
不肖 益淳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쓰다
국가유공자벽진이공휘종준지묘
옛부터 산수가 수려하고 인걸이 많이난 자양토동 임좌언덕에 무덤은 고 벽진이공의 예복을 감춘자리라 하루는 공의 맏아들 익순씨가 문외동 재진이 거처하는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의 묘비문을 청하기에 내가 마땅한 사람이 아니므로 사양하였으나 얻지 못하고 사실에 입각하여 좌와 같이 서술하노니 공의 휘는 종준 자는 석여 또 한이름은 종구로 정묘삼월초사일 토동 본집에서 나시어 갑술이월초사일에 돌아가시니 향년 육십팔세로 토동 문중산 남쪽 언덕에 장례하였으니 성은 이씨이며 본은 벽진이니 고려개국원훈 벽진장군 휘 총언이 시조요 그후로 높은 벼슬이 이어져 휘 견간 호 국헌은 진현관 대제학으로 두견새 우는시로 천하에 명성을 드러내어 사람들로부터 산화선생이라 칭송을 받았다 시호는 문안이다 조선조에서 휘 맹전 호 경은은 단종이 임금 자리를 물려줄 때 충절을 지킨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이조판서에 증직되고 시호는 정간이다 휘 배원은 장사랑으로 선산에서 영천으로 처음 옮겨왔으며 휘 희백은 성균관 생원으로 호는 대암이니 공의 십삼대 할아버지이다 고조부의 휘는 농 증조부의 휘는 정봉 조부의 휘는 학로 호는 후은이니 구한말 의병대장으로 대한민국건국훈장애국장이 내려졌다 아버지의 휘는 기창이고 어머니는 용인이순상의 따님이다 공은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었으나 성품이 온유하고 근면하여 큰형님을 부모 같이 섬기고 대소가 간의 화목에 힘썼다 특히 할아버지 후은공 묘비 및 기념비 건립시 성심을 다하여 주간 하였고 공적 발굴에도 힘을 다하였다 6.25전쟁때에 참전하여 강원도 고성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제5육군병원으로 후송입원가료중 명예제대 하였고 돌아가신뒤 이십사년만에 국가보훈처로부터 국가유공자로 내려졌으며 무오년 영천댐 건설시 수몰로 5백여년의 세거지를 떠나 금호 냉천리로 옮겨 살았다 처는 여강이석양의 따님으로 부덕이 있었으며 기해년 십월 이십육일에 돌아 가시니 연세는 구십일세 묘는 합장이다 삼남이녀를 두었으니 장 익순은 양산이한필 차 항순은 평산신숙자 차 극순은 안동권명희와 혼인하였고 녀 옥순은 해주최진문 정순은 밀양박명수에게 출가하였다 익순의 남은 동원 동각 항순의 남은 동찬 동근 극순의 남은 동헌 동은 최진문의 남은 원구 풍구와 일녀이다 장손 동원은 진주정도겸 동찬은 고성이미림과 혼인하였고 동원의 남은 서준 용준이다 노래 한장 바치오니 벽진에 터를열어 경은선생 그 자취 이었고 시례는 청전이요 충효는 이어 받았슴이라 나라에 난을 당해 내몸 던저 보국하니 선을 쌓은 옛집에 반드시 남은 경사가 기약되리라 왕대나무밭에 어찌 가는대나무 나리 보배로운 나무들 뜰에 가득하여 능히 선업을 이어받으리라 토동 옛언덕에 영원히 안식하니 높은덕 그이름이여 영원토록 빛나소서
기해년 단양절에 라주후인 정재진은 삼가 짓고
불초 익순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