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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시절의 추억!
누구나 힘 들었던 시절의 추억 "반디불" 혼자 품에 안고 가기에는 너무 소중한 추억입니다.
그때를 공감하는 분들과 함께 그 소중한 추억을 그때의 시절로 돌아가 동심에서 동심의 수준으로 그 때부터 현재 까지의 추억을 적어 보렵니다.
55년의 추억을 하루에 적을 수는 없고, 현재를 살면서, 슬플 때,외로울 때,기쁠 때, 옛날 추억이 생각 날때 마다, 생이 더 내리막 길에 와서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계속 적어,소중한 추억을 그리운 사람들과 공감대를 위해 계속 글로 남기고 싶어라...(지금 아이들이 이글을 알까?)
제가 살던 고향은
조용수
태어난 곳 , 자란 곳, 삶을 시작한 곳. 부모님이 계신 곳. 소꼽 친구. 죽마고우가 있 는곳.
추억이 있는 곳. 내일의 소망을 꿈꾸던 곳.
아픔과 슬픔의 추억이 있는 곳. 편안함과 안식이 있는 곳.
인생의 마지막 때에 돌아가고 싶은 곳.
느티나무가 있고 오두막이 있는 곳. 시내가 흐르고 산새가 우짖는 곳.
뒷뜰 감나무에 까치와 부엉이가 울고 담밑 양지 바른 곳에 아이들이 우기종기 앉아 조잘
거리는 곳
앞마당 참새가 종종걸음으로 모이를 쫏고 겨울밤 숨가쁘게 몰아쉬는 바람에 문풍지가 우는 곳
바깥 뒷벽에 긴밤이 지겨운지 걸어놓은 다라가 덜커덩거리며 몸부림을 치는곳
아침밥 일찍 먹은 봉학이 아버지가 지게를 들러 메고 뒷산오르고
어느새 온몸을 힘겹게 주춤거리며 나뭇짐을 지고 오는 곳
색낡은 목두레로 멋을 부리고는 힐끔 힐끔 도로가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동네 아줌마들이 수다를 떠는 곳
처마밑 검정 고무신을 아무렇게나 팽개치곤 장작불 밀어넣은 아랫목에서
짓고 땡으로 열을 올리는 동네 아저씨들의 화투판이 벌어지는 곳
앞뜰 무논에서 100% made in korea로 얼음 판을 뒹구는 아이들의 풍경이 있는 곳
앞마당에서는 엉겨 붙은 쇠똥을 달아빠진 싸리비로 쓸어내리며 소등의 털을 고르는 아버지가 계신곳
사랑방엔 군살 밖힌 손을 이리저리 비비며 고소한 알밤을 화롯불에 굽는 할아버지가 계신곳
이러한 곳이 우리들이 생각하는 옛 고향의 이미지입니다.
세월이 많이 변하고 따라서 문화 수준이나 삶의 방식도 너무나 많이 변하였지만
그래도 고향의 이미지는 아직도 우리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마도 20세를 전후한 신세대 들에게는 생소한 삶의 모습들이 될 수 있지만
아직도 시골엔 고향의 냄새가 물신 풍깁니다.
설날이 다가오면
대목장날에 사다준 검정 운동화가 신고 싶어 오줌 누러 일어 났다가 한 번 신어 보고
새옷이 입고 싶어 아침을 조르며 잠을 설치던 날이 설날이었습니다.
또 그날 한번 소고기국 먹어 보는 날 이었습니다.
구날 한번 떡국 먹어 보는 날 이었습니다.
그날 한번 이발도 하는 날 이었습니다.
그날 한번 대중 목욕탕에 가는 날 이었습니다.
이제 그설날 풍경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설날 추석이면 고향을 향해 많이들 떠납니다.
이러한 고향은
담이 없었습니다.
담이 없은 게 아닙니다. 낮은 토담과 나무 울타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둑을 방지하거나 집을 보호하는 차원이 아니라 집터의 경계를 타타내는 정도이며 자신들의 삶의 터를 나름대로 표시해 놓은 것에 불과 하였습니다.
길가며 고개 돌리면 안방까지 훤하게 보이는 낮은 울타리였습니다.
그담을 사이로 동짓날이면 팥죽을 건너고 정월보름이면 찰밥을 건넜습니다.
어쩌다 떡이라도 하면 담너머 퍼지는 떡 내음새에 이웃은 군침을 삼키고 으레히 떡 그릇은 이웃을 오가곤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고향에 이런 마음의 담이 없었습니다.
정이 있었습니다.
놀다가 때가 되면 식은 밥 한 덩이를 솟아 붙고 김치로 복아 나누어 먹습니다.
그리곤 또 놀고....
씨레기 떨어지면 옆집에 가서 몆 가닥 얻어오고
처마끝 양미리도 한 두름쯤 기꺼이 나누는 정이 있었습니다.
서로가 넉넉하고 풍요로워 나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쪽은 있고 한쪽은 없어서 나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없고 모두가 가난했지만 단하나 넉넉한 것 그것은 바로 훈훈한 정이었습니다.
정이있어 그리운 고향입니다.
제사 지내면 제사떡 얻어먹으러 가고, 엿을 고으면 엿밥 한 그릇에 정을 나누었습니다.
땅 파고 묻었던 무가 떨어지면 싸리로 만든 쏘쿠리에 한소꾸리 가득 퍼주는 정이 있었습니다.
설날이 되면 몰려 다니며 집집마다 세배드리고 음식을 나누어 멋었습니다.
고향엔 이런 사랑과 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향이 그리워지고 고향으로 달려갑니다.
웃음이 있었습니다.
이해타산이나 욕심이 적었기에 해맑은 웃음, 너털웃음이 있었습니다.
지나치는 모든 사람은 친구이고 나의 아저씨 나의 아주머니입니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입니다.
누우런 잇발을 드러내고 웃는 아저씨의 웃음에도, 앞니빠진 모습으로 합죽이 웃음을 웃는 옆집 봉학이의 웃음도 모두가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억지의 웃음, 형식적인 웃음, 비웃음이 아닙니다.
그저 좋아 웃고, 웃고 싶어 웃는 웃음입니다. 아름다운 마음의 웃임이 넘치는 곳이 고향입니다.
마음의 담을 없애면 웃음이 있습니다. 정을 품으면 웃음이 있습니다.
어느 곳에 있더라도 담을 허물며 정을 나누며 웃을 수 있다면 모두가 고향 사람이고 그곳이 고향입니다. 현재 내가 생활하고 있는 곳에서 옛날 고향 정서를 교훈삼아 서로 담이 없이 정을 주고 받을수 있다면 그곳이 고향입니다.
배고픈 시절의 이야기
1.도토리 털기
조용수
곰배로 두들겨 팼다
두둑 두둑
제몸 깊은 상처를 내며
상수리 나무는
열매를 떨어뜨린다
곰배 질을 멈추고
도토리를 줍는데
윙윙윙
땡벌이다
바짝 엎드려도
사정없이 쏘였다
고쿠락 볏집 타는 연기
할머니 수수비로 쓸어
두드러기 상처 문지른다
2.소먹이기
조용수
마루에 책가방 던지고
소 먹이려 간다
풀 밭에 소 풀어 놓고
시를 읽는다
해가 뉘엿 뉘엿
감자를 뽑아
냄비에 담고 불을 지핀다
소가 없다
겁이 나서 숨어 있는데
동네 어르신들
횃불을 들고 찾으러 다닌다
소는
이미 집에 와 쇠죽을 먹고 있는데..
3.도시락 비빔밥
조용수
꽁보리밥 한 주걱
주물럭 주물럭
마늘 짱아지, 무우 짱아지 한줌
모퉁이에 고추장 한 스푼
그 위에 수저를 올린다
보자기에 둘둘 말아
등 뒤에 바짝 동여 매고
20리 길 학교로 달린다
뒤범벅이 된 도시락
친구들 침을 삼킨다.
슬그머니 밀어 주고
강냉이 죽으로 대신한다.
4.아카시아 꽃 훌터먹기
조용수
아카시아 꽃 필 무렵의
보리 고개
향기가 좋다
꿀도 많다
허기 가실 때까지 훌터 먹는다
한참을 먹다보면
목에서 신물이 올라오고
배가 살살 아파온다
화장실 갈 때 마다
집게를 든 할머니 뒤따랐다
그래도 아카시아 꽃
또 먹어야 했다.
5.겨울철 야식
조용수
긴긴 밤
친구들 하나 둘 모여
화투를 친다
밥도둑이 정해진다
남의 집 부엌
가마솥을 살그머니 열고
밥을 훔친다
찬장을 열고 반찬을 훔친다
알고도 모른 척
눈감아 준다
냄비 가득한 밥을 화롯불에 올리고
참기름 몇 방울 떨구면
여기 저기 침 꼴각대는 소리 들린다
6.계란 찜
조용수
이른 새벽 암탉이 운다
누가 일어 날새라
어머니 헛간으로 달린다
헛간을 여기저기 헤집는다
계란 한 개 손에 잡았다
이렇게 모아둔 것이
어머니만 아는 장소에 있다
오랜만에 외할아버지가 오셨다
뚝배기에 계란 여러 개를 깨어 풀고
밥솥을 열고 찜을 한다
동생들 외할아버지 밥상에 턱을 고이고 있다
드시다 마시고는 아 배부르다
자리를 피한다
동생들 우르르 대든다
외할아버지가 또 기다려진다.
7.남정네들 목욕
조용수
그시절은 목욕탕이 있었지만
시골에서는 매일 목욕탕에서
목욕을 할수 없었다
집에서 물을 데워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몸을 씻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석양이 물들 때 쯤
수건과 양잿물 비누 한 조각을 들고
큰 개울가로 간다
사람이 다니는 큰길과는
삼십메타 정도의 거리에서
전 나체로 자연스럽게
목욕을 한다
큰길 가를 지나가는
아줌마들도 자연스럽게
안보는 척 하면서
쳐다보면서 간다
아마 그시절 마줌마들 치고
다른 남정네 고추를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당시 아줌마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있다
먼저 보는게 주인여....
이렇게 목욕하던 시절이
그립다
8.개구리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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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e Maria
소프라노 : Inessa Galante
첫댓글 시간이 한가할 때 와서 다시 볼게요
배고픈 시절에 이야기에 가슴이 메어 봅니다
저도 저런 모습으로 살아와서 그런지 ...쩝 ~
이렇게 많이 쏟아놓다니
급하긴 급하시네요. ^&^
동심의 수준으로 그때 그시절 이야기 입니다. 시는 아니랍니다.
저도 어릴 적 잠시지만 저의 고향 진천군 덕산면에 내려가 체험했던 경험이 있지요
반딧불이 반짝이던 개울가를 무섭지만 동네 여자 아이들 따라 내려가 목욕을 해야했던 그 시절이 눈에 선 합니다.
할아버지가 주워온 우렁이 서너 개로 아침 된장찌게를 끓이시던 작은 어머님.. 가고싶습니다.
내 어머님이 배고픔을 참기 위해 들이켜야만 했던 냉수 한 사발이, 그리고 여름 앞논에서 울어대던 개구리와
맹꽁이 소리가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진천이 고향 이었었군요 저도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가 고향입니다.
아직 노모가 살아 계시구요
반갑네요
네?? 저런 동향이었네요 반가워요 ㅎㅎ
저는 한 살 아래 당숙 한 분만 남아 계시답니다
고향집에 다녀온듯 합니다. 정겨워요 ^ ^ 잘 읽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