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사회, 바뀌는 가치관
나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돈을 세지 못하고 아무도 없을 때 혼자서 센다. 당당하지 않은 일을 해서 얻은 돈도 아니고 숨어서 셀 만큼 많은 돈도 아니다. 어떻게 보아도 떳떳하지 않은 못난 모습일 것이다. 졸업하고 취직하여 첫 월급을 받던 날(그때는 봉투에 넣어서 직접 주었다) 나는 서무과에 가는 일이 어려워서 서성거렸다. 월급의 액수를 확인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후 수십 년간 월급을 받다가 퇴직했지만 월급을 세어보거나 따져본 적이 없다.
때로는 새로 부임한 젊은 후배들이 남들의 이목을 꺼리지 않고 돈을 세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고 서무과에 들러 따지기도 하는 걸 보면 그 당돌함이 놀랍고 그 똑똑함이 부럽기도 했다. 나는 '월급'이니 '봉급'이니 '급여'니 '급료'니 'pay'니~~ 월급을 지칭하는 말들이 싫었다. 아마도 한 달 동안 조건에 매달려 부당하게 에너지를 소모 당한 듯한 느낌, 마치 그 대가를 목적으로 사역 당한 듯한 느낌, 아마도 그런 느낌 때문에 싫었을까.
노동 가운데에도 조건이 따르지 않은 노동이 있다. 보수는 얼마 되지 않아도 즐겁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들. 내가 희생을 당하거나 혹사를 당하면서도 가치와 긍지를 갖게 하는 일들. 그런 일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 도처에 남아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월급봉투를 아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두곤 했다. 나나 애 아빠가 얼마짜리 월급쟁이인가를 알면 부모에 대한 존경심과 신비감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엉뚱하게도 그중 제일 어린 녀석이 물었다.
"엄마, 월급이 얼마야? 많지? 엄마는 선생님이니까.", "그럼, 굉장히 많아."
아이는 내 말을 믿고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물었다. 아마 아이로서는 오랫동안 알아보고 싶던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다.
"신우네 아빠보다 많지? 신우는 알지도 못하면서 지네 아빠가 많데~.
"바로 옆집인 신우네 아빠는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수입이 많을 것이다. 월급의 많고 적음이 곧 사람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무슨 말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는 그때 무척 난감했었다.
나이 든 사람들보다 요즈음의 젊은 층들이 훨씬 돈의 소중함과 위력을 알고 있다. 아마 어렸을 적부터 용돈을 받아서 써 보았기 때문에 돈의 가치를 알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용돈이란 걸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세뱃돈이 모아지더라도 곧장 어머니께 드렸다. 그때의 어른들은 어린애가 돈을 알면 안 된다고 하셨다.
급격하게 변하는 이 사회에서 옛날 그분들의 교육 방법대로 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현명한 일일까? 나도 현대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아이들에게 용돈도 주고 쓰는 법을 열심히 가르치긴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물질 만능의 사회에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할 때 전공학과를 정하면서도 그 일의 절대적 의미보다 경제적인 것을 먼저 따지고 생존경쟁의 틈에서 살아남을 궁리를 했다.
어떤 사회학자는, 돈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공통적 특질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가난에 찌들었던 열등의식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비판하였다. 회사에 입사하여 어떤 대우를 받을 것인가, 확실히 알아보지도 않고 허겁지겁 일부터 시작했던 일, 고급 음식점에서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계산서를 받았을 때, 속으로는 무척 의심스러우면서도 체면상 따지지 못하고 돈을 지불하는 일도 찌들어 있는 자격지심이라고 하였다.
이런 말들이 모두 맞는 말이라고 해도, 무조건 돈만 따지는 것은 세상을 살벌하게 한다.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냐 하는 것보다 그 일에 따르는 보수가 얼마냐를 더 중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세상, 돈을 많이 벌기만 한다면 무슨 일도 기꺼이 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이러한 사고방식이 설령 우리를 옛날보다 열 배나 부유하게 해 준다고 할지라도 나는 여기 기꺼이 동의하고 싶지 않다.
정은 메마르고 각박한 계산만 남아 있는 세상, 지나치게 정확하고 선명한 세상이 편리하기에 앞서 무서워진다. 다소 어리석고 둔해 보일지라도 세상에는 아직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이 남아 있음을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