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12 일 씀)
얼만큼 세월을 살아내고 나니
술에 대한 생각도 원숙해 지는것 같다
무심코 연 냉장고 속 캔 맥주를 보고는
며칠 전 스산해 보이던 친구가 생각났다
별스럽게도 남편을 좋아하는 그녀
꼭 신혼의 신부처럼 지극히도 남편에게
정성을 다하는 그녀인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얼마 전 부터 외박을 하더니
그 날도 늦은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캔 맥주를 한통 두통 마시며
술 기운에 잠들어
못견디게 타는 속을
잊고 싶다고 한다
'' 안주는 멸치가 좋아''
그러면서 웃는 그녀가 안스러웠다
한이 켜켜히 쌓여가는 우리네 삶에서
취한 동안이라도 내 안의 다른 나를 꺼내
참지 말고 내키는 대로 한풀이 해 보라는
술은 악마의 선물인가?
갓 시집 온 어린 새색시 적에
술을 좋아하시던 시아버님
평소에는 말씀도 없으신데다가
걸음 마저 조용조용
생전 구두가 닳지 않을거라서
양화점 수입에 지장 있을거라고
뒤에서 농을 할만큼 점잖으신 분인데
그런 어른이 약주만 하시면
다른 사람이 되어 달라지셨다
폭군으로 거칠것 없이
세상을 향해 호통치시며
누구라도 조무라기 취급하고
호기스러워지셨는데
단정하신 분이 왜 저러실까
같이 살고 있지 않았으니
취한 모습을 몇번 밖에 본 적 없었지만
두려움에 떨던 나는
도무지 이해 할수 없었다
언제나 내편이셨고
날 아껴주시던 어른이신데
취한 모습은 외면하고 싶기만 했다
술에 힘을 빌려 그동안 참고 담아 두었던
넋두리를 쏟아내신 거라는걸
그때는 전혀 몰랐었다
이제 나는 앞에 앉아 얼마든지
맞장구도 쳐드릴수 있는데
정작 어른은 기다리시지 않고 떠나셨다
애주가 남편 덕에 고생 길이었던 할머니는
술이 웬수라며 넌더리를 내던데
술 못하는 남편과 평생 살았던 할머니는
다시 태어나면 술 하는 기분파 남편과
살아보고 싶다고 하신다
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취해 흐트러진 친구를 보면
언짢은 표정이 되었으니
술 좋아하는 사람 특유의 너그러움에도
맨 정신으로 그만 마시라고 채근하는
나를 다시 부르고 싶지 않았을거 같다
그러나 이제는 촛불 켠듯 소주잔을
앞에 두고 고개 숙인 남자도
야속한 사연을 술과 함께 삼키는
주름진 여인의 지친 삶도
그녀의 붉은 립스틱마저
눈물을 머금은 듯 하다
속절 없는 세상사
술에게 위로받고 삭히는구나
이해하게 되니
덩달아 마음이 아릿해진다
술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도란 도란 술잔을 기우리고 싶은 날이다
정이 흐르고 시름도 잊어지겠지
내게 좋아하는 와인의 이름을 묻는다면
좋아하는 사람과 마셨던 와인이다
행복한 시간에 들었던 음악처럼
술이 마음이라는것을 알아지도록
내가 살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