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부모님은 그들의 만남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뜻밖의 일'이 되었다. 그들은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을 드렸다.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그들은 다시 만났다. 한일극장 앞에서였다. 그들은 무작정 버스를 탔다. 도착한 곳은 서부정류장이었다. 그녀의 집에서 귀가 시간을 점검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시간은 많지 않았다. 낮에 만났으나 해가 지고 어둠이 왔다. 그제야 그들은 황급히 버스를 탔다. 그녀의 집이 있는 경산으로 가는 버스는 남부정류장에 가서 갈아 타야했다. 그들은 발을 굴렀다. 서부정류장에서 남부정류장까지는 대구의 끝에서 끝이었다. 어둠과 상가의 불빛을 가로질러 달려온 버스가 남부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녀는 거기서 1번 버스로 갈아 타야했다. 그들은 내렸다. 어이없게도 그들을 태우고 온 버스가 막차라는 것을 알았다. 남부정류장의 불이 곧 꺼졌다. 그러자 사방은 어둠에 묻혔다. 주위는 그냥 벌판이고 산이었다. 경산가는 버스는 이미 끊어진 것이다. 어떤 차도 다니지 않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어깨가 오랫동안 흔들렸다.
거기에 그렇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밤이 되자 기온은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얇은 옷뿐이었다. 그는 동대구역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충 방향을 짐작해서 걸어야 했다. 집과 집사이의 길을 돌아 넘고 그들은 갔다. 가로등이 없는 곳을 무수히 지났다. 칼날같은 추위가 파고 들어왔다. 너무 추워서 그들은 몸을 덜덜 떨었다. 몇 시간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그들은 저 멀리 불빛이 보이는 언덕에 섰다. 거기에서도 동대구역은 멀었다. 대합실로 들어섰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토스트와 커피를 사서 그녀에게 건넸다. "고마워요."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는 친절했다. 잠시 그들은 졸았나 보다. 역 앞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버스가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버스를 탔다. 그녀를 실은 버스는 이내 구름다리를 돌아 내려갔다.
그가 하숙집에 도착했을 때,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으로 달려오신 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그녀의 어머니와 언니였다. (2002년 7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