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으로 부르는 몇 분의 인정하는 선배들이 있다.
그분 중 한 분과의 대화에서 은혜가 있었다.
지나가는 말 속에 던져진 '수행중'
세 글자가 가슴을 두드리며 머리 속에 남았다.
이번에 재미난 장면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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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서 잠 때문에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는 HH
그녀를 찾와와 깨우는 선배 IA
일어나지 못하는 HH를 향하여
짜증한번 없이 긴시간 달래며 깨워준다.
짜증도 날만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선배IA는 '수행중'이었다.
결국 일어난 HH는 늦었지만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지만 ~
결과는 선했다
수행하는 IA으로 인해 마음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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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이었을 수 있는데
나에게는 강렬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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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한주간을 보냈다.
나는 명절이 싫다.
아직 그렇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분 때문이다.
그분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맴돈다.
너 때문에!
넌 도대채 왜!
언제나 구박받는 삶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부터 구박이 날라온다
그 구박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명절이면 생일이면 만날 때가 다가오면 들린다.
아직 그런 상황이다.
그런데 나는 '수행'한 적이 없다.
그져 골방에서 분노하며, 혼자 차에 앉아 중얼거렸다.
억울함에 몸소리 쳤다.
반복이다
나는 그렇게 '수행'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후회가 밀려온다.
주어진 현실 앞에서 나는 '수행' 을 했던가.
고민이라도 했던가~~
'수행'의 의미를 어렴풋이라도 알았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이러면서 원주공항에서 지연된 비행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