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럽급여’라는 말에 숨겨진 억압
_이소연(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 2023.07.21.
여당과 정부 관계자들이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내뱉은 ‘시럽급여’라는 말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그 말에는 노동자를 더 쥐어짜기 위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가 무한 반복해 왔던 여성·청년 비하와 갈라치기라는 고전적 수법이 숨어 있다.
7월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를 열고 실업급여 하한액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현 실업급여는 ‘평균임금의 60%’를 기준으로 지급하지만, 일정 기준 이하일 때는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80%로 정해 지급한다. 국민의힘은 이 때문에 최저임금노동자의 소득보다 실업급여로 더 많은 소득이 발생할 수 있다며 하한액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공청회에서는 ‘시럽급여’, ‘실업급여 받는 분 중에 해외여행 가고, 샤넬 선글라스 사든지 옷을 산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이 발언은 현 정부가 여성, 청년 노동자들이 현재 어떤 노동환경에 처해 있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음을 드러낸다. 사실은 여성과 청년노동자 상당수는 실업급여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한다. KBS 뉴스1)에 따르면, 고용보험에 가입된 한국 노동인구는 48%뿐이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소규모 사업체 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들이 52%나 된다. 또한 실업 8개월 이후부터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이 현저히 떨어진다. 즉,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수급기간은 짧다. 하한액이 없어지면, 실업급여가 현재 180만 원에서 120만 원으로 줄어든다. 이 돈으로 생활하려면 집에서 맨밥 지어 먹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삶이 언제부터 사치가 되었을까?
비정규직의 절반인 여성 비정규직노동자의 고용보험가입률은 50%를 넘지 못한다. 나아가 고용보험 가입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노동자의 70%가 여성이다. 초단시간노동자라도 3개월 이상 계속 근무할 때는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으나, 자본은 3개월 미만 계약 후 노동자를 내보내거나, 쪼개기 계약으로 이를 회피한다. 이렇듯 국가와 자본은 언제라도 해고되고 계약해지될 수 있는 비정규 불안정노동자들에게 주어진 허술한 안전판마저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자본의 이윤을 늘리려 한다. 특히 여성과 저임금노동자의 처절한 삶에 ‘시럽’을 끼얹고 비아냥거리며 억압의 과녁 앞에 세운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자본주의로 인한 성별분업으로 남성은 제1노동력, 여성은 제2노동력으로 구분하는 기준이 정해져 있다고 주장했다.2) 한국 여성노동자의 현실은 이 주장의 확실한 증거다. 위에서 언급했듯,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못한 비정규직노동자의 다수는 여성이다. 지난달 고용동향을 보면, 여성의 고용률은 62.1%, 실업률은 3%다. 여기서 주의 깊게 볼 대목은 산업별 취업자 현황이다.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숙박 및 음식점업’과 같이 고용지표에 성별 구분이 되어 있지 않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고용형태 변화로 알 수 있었듯이) 여성노동자가 많은 산업에서 취업자가 늘었다. 다른 하나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에서 20대는 감소했지만, 30대와 60대에서 증가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이 뜻하는 바는 돌봄노동과 같은 서비스업 영역은 여전히 저임금 여성노동자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2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감소한 이유에 대해 여러 분석을 할 수 있겠지만,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밖에 없기 때문에 아예 경제활동을 안 하거나(구직 준비 등)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시럽급여’ 운운은 그야말로 망발이다. 수급기간이 짧더라도 실업급여가 있어 이들이 몇 달은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실언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실업급여를 필요한 사람에게 지급해 일하려는 사람을 늘리겠다‘고 말을 바꿨다. 또한 ‘조선족’과 중국인이 받는 실업급여도 ‘손 보겠다’고 밝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혐오정치를 확대하는 모양새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계급사회다. 세금, 공적 기금과 같은 공공 자원을 자본가와 기득권 부유층에 분배하고, 노동자 민중에게는 어떻게든 제공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성별·장애·학력·국적·연령 등 인간적 특성을 혐오의 대상으로 놓음으로써 이윤을 확대한다. 이 구조 안에서 여성노동자는 그냥 계속 알 낳는 거위가 된다.
2015년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많은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평생 겪어 온 차별과 폭력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로서 존재하고 나의 삶을 살고자 하는 그 열망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존의 열망으로 번져갔다. 누구도 나의 삶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업급여 받는 사람들이 해외여행 가고, 샤넬 선글라스 산다’고? 실업급여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저열한 공격임이 틀림없지만, 이 말을 덧붙이고 싶다. 실업급여 받는 사람은 해외여행 가면 안되는가? 실업급여 받는 사람은 샤넬 선글라스 사면 안되는가? 해외여행도, 샤넬 선글라스도 이 체제가 구매욕을 조장하며 판매하려 애쓰는 상품 아닌가? ‘각급 급여수급자다움에 관한 법률’이라도 제정해 실업급여 수급자의 생활과 옷차림을 규정하기라도 해야한다는 말인가? 정작 그 말을 내뱉은 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상품을 구매할 수 있을 것이고, 실제로 구매할 것이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국가는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으며 ‘선글라스끼고 해외여행 가는’ 청년·여성의 삶을 누려서는 안 될 사치로 여긴다. 적은 임금을 받고도 가족을 건사하는 아버지와 자기 삶을 포기하고 가족을 돌보는 어머니, 그리고 새로운 일꾼으로 자라나는 두 자녀로 이루어진 화목한 가족, 정상가족의 해체라는 현실 앞에 체제가 내놓는 답이 혐오의 조장이라면, 이 체제는 자신의 무능과 타락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국가는 시대마다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자의 가족상과 삶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흔들리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자본주의 정치인, 기업가들은 성별 분업(남성은 공적인 임금노동, 여성은 사적인 가사·돌봄노동)에 기반한 정상가족과 ‘평범한 삶’이라는 신화를 유지하려 전방위로 애쓴다. 그 안에서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낮아지고, 성소수자는 지워지며, 남성노동자에게는 가부장적 노동규율이 강요된다. 어느 개인이 여기서 벗어나는 존재가 되기를 선택하는 순간 가족, 친구·동료, 직장, 커뮤니티에서 눈엣가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장미처럼 가시가 돋친 존재도 있다.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 빵과장미도 그러하다. ‘시럽급여’라며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정치를 비판하고, 가부장제의 ‘남성’ 권력에서 배제되는 존재들과 함께, 삶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구조를 면밀히 드러내고 바꿀 것이다. 우리 일하고 싶은 곳에서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며 삶을 ‘살아내지 말고’ 살아가자.
1) 홍성희, “한국 실업급여 괜찮은 수준일까? OECD 통계로 따져봤습니다”, KBS 뉴스, 2023.07.19.
2) 로즈마리 퍼트넘 통 외 1,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김동진 옮김, 서울:학이시습, pp.160, 2019
[실업급여논란, 진짜원인은? - '빵과장미' 쇼츠]
https://youtu.be/wuM6eurS4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