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당신, 하나도 안 특별하다구요
2018. 10. 향기 이영란
오늘날,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장식하는 수많은 책들이 하나같이 당신은 특별하며 소중한 존재라고 말할 때, 누군가 한 명쯤은 ‘당신 평범해요. 하나도 안 특별하다구요. 근데 그게 뭐 어때요?’ 이렇게 말해주는 작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다른 이가 아닌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언니네 이발관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 이석원
얼굴 뺨에 닿는 서늘한 기운이 무척 상쾌하다. 나른한 끝여름 더위 즈음부터 시작되었던 무기력함이 끝을 모르는 시간이다.
나름 글을 가까이 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 시간을 헤집어 보니, 소설을 비롯한 그저 그런 책들을 겉핥기식으로 읽고 그 잔재들을 남겨 두었을 뿐이다. 20년이 넘게 학교선생질을 하고 다녔음에도 나다운 방식의 교육기법들을 말하라고 하면 떠듬거리기나 하지 않을까? 20년 넘은 선생의 교실이나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뭉친 3년차 신규의 반이나 별다르지 않아보인다.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 선을 타는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먼저라는 것과 오히려 교육의 무력함만이 선명하게 남는 것을 확인할 뿐이 아닌지. 슬럼프란 자신을 탓하고 헤벼파는 데 전문가가 되는 시간이다.
나의 교직경력만큼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함께 해 온 활동 중의 하나가 사물놀이 지도이다. 지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인데, 내가 지도했다기 보다는 반 이상은 내가 배운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개천예술제 행사 중 학생국악경연대회가 있는데 4년 전인가부터 우리 학교 아이들과 함께 출전을 하고 있다. 중간에 한번은 빼먹어서 올해가 3번째 출전이었다. 그런데 대회참가 결정을 하고 나서 그 문제의 반갑지 않은 손님이 나를 점령했다. 그 당시 나는 책갈피를 쉬고 있어서 글 한줄 쓰지 않았다. 어디로 배출될 곳 없는 상념들은 내 몸과 머리를 헤집고 다니면서 나를 들쑤셨다. 인터넷을 뒤지며 작은 책방들을 검색하고 다녔다. 아기자기한 다육이와 율마화분이 있는 곳, 책과 함께 차를 파는 서점, 책마다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글이 적혀진 북카드가 있는, 일주일에 두세번 책모임을 하는 책방, 책을 깊이 읽고 그 작가를 초청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책방, 하루 8시간 오픈하여 나는 4시간만 일하면서 책 읽고 글쓰기 하는 오만 상상을 하고 다녔다. 그러면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그렇게 중심지는 아니어도 돼! 내가 하고 싶은 일 중에서 돈이 많아야 하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그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책방을 검색하면 열에 아홉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들이라도 오는데, 나중에는 책이 한권도 안 팔리는 날, 그러다가 어떨 땐 책방에 아예 한 사람도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 그러고 보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비싼 일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팔아서 나의 월급만큼 소득을 올린다는 것은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불확실성에 나의 모험을 걸만큼 그동안에 증명된 나의 커리어는 너무나 초라하였다. 내 꿈의 저효율성은 중고등학생에게도 단번에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런 저런 말을 흘리면 우리 집 고등학생은
“엄마가 뭘 해도 좋은데 그건 건우가 대학이나 들어가면 하던지..... 아~! 진짜!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내가 엄마까지 먹여 살려야 하나?” 하는 말로 내 꿈을 무참히 짓밟았다. 남편은 안 그래도 공부하는 거 힘든 데 그런 말까지 해서 아이들 신경을 어지럽힌다고 타박을 주었다.
어쨌든 나는 새로 만난 (돈 안 되는 책방의 꿈) 애인을 쫓아 다니면서, 마음에도 없는 (원래 돈이 안 되었던 사물놀이) 옛날 애인을 만나야 했다. 게다가 이 옛날 애인은 엄청난 체력소모를 요구한다. 가장 즐거운 표정과 몸짓을 요구하는 그 옛날 애인은 내 표정이 연기였다는 것을 알아챘을까?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얼마나 버텼는지 모른다. 뒤집어진 배에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잡고 온 힘을 다 주듯이. 9월 내내 집에 돌아오면 기진맥진했다.
기어코 사달이 나고 말았다.
우리학교 사물놀이 팀은 38명 내외이다. 사물놀이 연주를 하다보면 호흡이라고 하는, 연주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머리를 위아래로 흔드는 몸짓이 있다. 내가 그걸 하도 강조하는 바람에 우리학교 4학년 여학생들은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흔들어댄다. 열심히 움직이지 않는 5학년 여학생들에게 말한 건데, 자꾸만 4학년 아이들이 더 움직이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동고동락을 함께 한 6학년 아이들에게 남을 귀한 경험을 그런 식으로 안겨선 안되는 일이었다.
열심히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마음이 다른 데 있었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같이 가 주고 응원해 준 나의 든든한 지원군인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었다.
입선!!!
결과에 연연하는 편은 아니지만, 해가 갈수록 성적이 좋아져야 하는데, 더 참담한 결과였다. 오전에 대회를 치르고, 오후에 전화로 소식을 전해 듣고서는 그만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별스럽지도 않았던 몸에 갑작스런 감기가 내려앉았다.
월요일 출근을 했다. 수고 많았다는 형식적인 인사를 받는 일이 고역이었다. 입선 상장을 학교에 보관해야 하는데 교무실에 가지고 가지를 못해서 아직까지도 교실 어딘가에 숨어서 있다.
미안한 마음을 지닌 나와는 별개로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진주라는 곳에서 다른 아이들의 경연을 감상하는 기회를 가지면서 자신들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 받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만 괜찮으면 아무 것도 문제가 없을 일이었으나 내가 그 당시에 바람?을 피지 않았다면 그 평가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미안함은 어쩔 수 없었다. 스스로 위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연습하는 과정에서 아이들 의사를 항상 존중했고, 늘 잘해 주고 싶었다. 연습장소를 덥지 않게 에어컨을 틀고, 아이스크림과 음료수 등 간식을 항상 챙겼다.
며칠 후 학예회 프로그램을 의논을 하는 데 교감선생님이 사물놀이를 가지고 시비?를 건다. 시간이 너무 길어서 줄이라는 요구를 비롯해서 학년 프로그램까지 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을 자꾸 말한다. 제 발이 저린 나는 (아마도) 발개진 얼굴로
“사물놀이 시간을 줄이는 건 가능합니다만, 그 학년 프로그램을 조절하는 건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라고 분명히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대회는 9월 29일이었고, 10월 첫 주를 뒤통수가 간질거리며 다녔다. 29일에 가까울수록 쉽지 않은 시간이었고, 교감선생님의 저 멘트 속에는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한 비아냥까지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며 나의 마음은 내내 속상하고 식식거렸다. 그런 마음들이 오랜만에 책갈피 모임을 하면서, 좋은 책을 건네 받으면서, 또 그 감동적인 책을 읽으면서, 두 시간동안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며칠간의 연휴에 밀린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면서, 그리고 그 생각을 마음에 담아두기가 무거워 하나씩 까먹어 가면서, 이렇게 끄적이다 보니 홀가분해지기 시작했다. 이석원의 사람을 위로하는 그 평범해 보이는 글귀는 이 글을 쓰기 1시간 전에 우연히 본 것이다.
그런데, 조금 큰 일이긴 하다. 그 바람기가 언제 식을까? 식을 수는 있을까? 그 뒷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