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사람은 항상 무의식 속에 살고 있대. 무의식이 뭐냐면 첫째는 의식을 잃는 거고, 둘째는 깨어있긴 하지만 내가 하는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지” 언니가 프로이트 정신학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녀는 인간이 무의식에 조종당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언니는 내 앞에서 햄버거를 크게 베어 물고 있다. 햄버거 가게에서 프로이트 얘기라니 참 색다르다. 언니가 입 안에서 음식을 씹더니 갑자기 휴지에 무언가를 뱉어낸다. “봐, 이렇게 내가 음식 먹을 때마다 항상 토마토를 뱉어내는 것도 무의식에서 나온 결과라니까.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안 먹겠다고 반응하는 거야” 언니의 황당한 소리를 듣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서 생각을 멈추기로 한다.
무의식이라. 생각해보면 요즘 사람들은 무의식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꿈속에서 가상현실을 경험할 수 있는 무의식 장치가 유행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일명, ‘무(無)의 증명’은 ‘타임머신이 없어도 과거든, 현재든, 상상이든, 현실이든 어느 곳으로든 보내드립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사람이 캡슐에 누워서 렘수면 상태에 들어가면, 장치가 미리 입력해둔 조건에 따라 가상현실 공간을 꿈으로 실현해주는 기계다. 놀랍게도, 딥페이크 같은 가상 콘텐츠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에도 정부는 이 기계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그들은 이 장치를 통해 다른 목적을 실현하려 했다. 바로, 기후 재난으로 디스토피아가 된 서울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기후 위기를 예방하는 일로 사용하겠다는 거다. 최근 폭염 일수가 50일을 넘어가며, 한반도 위기설이 대두되자 정부는 기후 문제 해결에 온 관심을 쏟고 있다. 정부는 5년 안에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무의 증명’을 활용한 기후 위기 예방 교육을 마치겠다고 못을 박았다.
나는 지난주에 무의 증명에서 교육을 받았다. 눈 앞에 펼쳐진 디스토피아가 된 서울은 가히 처참했다. 강남에는 빽빽한 빌딩이 들어서 있지만, 사람들이 온열질환으로 많이 죽어서 내부는 휑하니 비어있다. 한강공원의 풀과 나무는 죽어 말라비틀어져 있다. 맨몸으로는 밖에 나갈 수가 없어 우주복을 입는다. 땅굴을 파고 들어가 사는 사람들도 많다. 전쟁을 치르고 나면 이런 모습이 될 것 같았다. 이윽고 무의 증명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하나둘 소감을 말한다. “으...끔찍했어” “이게 우리 미래면 빨리 죽는 게 낫겠다” “사람들이 바뀌긴 해야지” 무의 증명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에코백을 기념품으로 받고 인증 도장도 찍는다. 인증서를 보니, 내가 딱 2,500만 번째의 교육 이수자였다.
그러니까 분명 지난주였다. 그런데 일주일밖에 안 지난 시점에 나는 햄버거 가게에 앉아있다. 언니가 묻는다. “그래서? 무의 증명 교육받으니까 어땠어?” 충격이었긴 하다. 그렇게 답했다. “야, 그럼 이제서라도 채식주의자해야 되는 거 아니냐? 소고기 만들 때 배출되는 탄소가 어마어마하다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언니가 내 얼굴을 보더니, 햄버거를 크게 베어 문다. “그래서 내가 교육 안 받는 거야.” 언니가 고개를 돌려 TV를 본다. 뉴스에서는 무탄소 선박으로 이송된 상품들을 사용하는 게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그 뉴스를 BGM 삼아 사람들이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다.
사람은 왜 쉽게 안 바뀌는 걸까. 이토록 큰 재앙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도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말한다. “내가 말했지. 사람은 깨어 있어도 무의식에 조종당하는 존재야.” 언니가 테이블 정리를 하는 사이, SNS에 들어가 본다. 무의 증명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의견이 SNS에 빽빽이 올라오고 있다. ‘충격적이긴 했는데, 뉴스에서는 아직 기후 재난 위기가 200년 후라고 하니까’ ‘먹고 살기도 바쁜데 후손 생각할 겨를이 있겠나’ ‘이미 강대국들이 재활용도 안 하고 전쟁도 하는데 나 하나 바뀐다고 달라질까’ 수많은 글을 읽으며 공감 버튼을 누른다. 사람은 눈앞에 큰일이 닥쳐오지 않았다면 모른다. 깨어있어도 무의식의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언니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맴돌다 하나로 귀결된다. ‘어쩔 수 없지, 이미 햄버거는 먹어버렸으니까’ 햄버거 가게를 나선다. 언니와 수다를 떨다 보니, 햄버거 가게에서 나눴던 대화는 기억 저 너머로 넘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무의식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