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23년을 뒤돌아 본다
송년의 자리에서 하는 우리의 상투적 말은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표현이다. 개인에 따라서는 그것을 파란만장·우여곡절·천신만고·전전반측(輾轉反側)·공사다망·복잡다난이란 성어로도 표현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몇몇 모임에서 나는 “올해 절친 2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우리 나이에 건강하게 이렇게 모여서 덕담을 나누고 식사를 함께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도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현대 첨단사회 적응·건강관리·친목·여가활동·가정사·재킷리스트·하심 등을 향해 땀 흘리며 분주하게 달려온 것 같다.
1월에는 5년 쓴 휴대폰이 말썽을 자주 일으켜 내친김에 거금을 주고 갤럭시 폴드4를 샀다. 새로운 기기를 구입하다 보니 환경이 낯설어 최신 버전의 전화·문자·카톡·사진·SNS의 첨단기능을 익히느라 한 달 동안 고생했다. 아직도 종종 중학교 1학년인 손녀의 힘을 많이 빌리고 있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세상 배우지 않으면 폭삭 늙으니 죽는 순간까지 따라가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2월에는 식후 경구약으로 혈당 스파이크가 잡히지 않아 경험자인 여동생의 조언에 따라 2주간 입원하여 3백만 원을 들여 인슐린펌프를 착용했다. 이후 정상에 가까운 혈당 관리가 되고 있다. 인슐린펌프는 식전에 적절량의 속효성 인슐린을 휴대폰 앱을 통해 원격 주입하는기계인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 것 같다. 물론 음식 요법과 운동요법을 병행해야 더 효과가 있다. 당뇨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3월에는 입교 중대원들과 생도 시절 훈육관님과 당시 기훈 분대장 생도였던 선배를 초청해서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나이가 드니 내 인생은 모두 주변 사람들의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또 다른 결초보은의 자리를 계속 만들려고 한다. 4월에는 어비동천에서 사돈 계추의 시간을 가졌다. 처갓집과 뒷간은 멀어야 한다느니, 사돈은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건 생각의 차이일 뿐 손주들은 양쪽 가문의 DNA를 물려받았으니 엄밀히 말하면 나만의 손자가 아니다. 공동양육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는바 일찍부터 춘추 호시절 날짜를 택하여 아들딸 사돈과 함께 천혜의 나의 산장에서 모여 식사하는 계추를 하여 왔다. 작년에는 내가, 올해는 아들 사돈이, 내년에는 딸 사돈 이 윤번제로 돌아가면서 식사 재료를 준비해 온다. 이때 가능하면 아들딸 가족도 모두 동행하고 있다. 부모 대에서 이렇게 격의 없이 친하게 지내니 당연히 자식 대도 화목한 가정을 만들려고 노력하리라 본다. 5월에는 충우회 홈커밍 데이가 있었다. 충우회는 대구대학교에 재직했던 충청도 출신 명예교수 모임이다. 혈연·지연·학연의 폐도 있지만, 고향이 충청도란 이유로 친목을 도모하면서 21년간의 재직기간 동안 상부상조하면서 잘 지냈고, 퇴직 후도 춘추로 만나 국내 여행을 같이하면서 옛 추억을 더듬으며 즐겁게 만나고 있다. 이번에는 10년 만에 재직했던 학교도 들러볼 겸 여행지를 대구 일원으로 정하여 승용차를 렌트하여 1박 2일 동안 캠퍼스투어·옛날 자주 들렸던 식당 미식 투어·팔공산 갓바위 등반·포항 죽도시장 방문 등의 일정을 잘 소화한 후 대구·충주·서울로 복귀하였다. 6월에는 갈헌 이동근 사이버 수필 문학관을 개설하였다. 나는 50대에 수필가로 등단하여, 41세에 처녀 수필집 <인간의 마을로 가는 길>을 상재한 후 현재까지 3년에 한 권 터울로 12권의 수필집을 발간하였다. 그동안 출간한 수필집이 절판되고 장차 팔순 기념으로 갈헌 수필전집을 발간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지만, 사이버 문학관을 개설하여 탑재하는 것이 더 유용할 것 같아 갈헌이동근수필문학관(https://cafe.daum.net/ghldgem)을 개설하여 하루에 한 두 편씩 카페에 작품을 올리고 있다. 많은 네티즌이 접속하여 사회적 거울이 되고자 하는 나의 생각을 두루 공유하기를 희망해 본다. 7월에는 동기회 간부를 어비동천으로 초청했다. 나는 사회봉사를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주변인의 적선가행(積善嘉行)에 대해서는 고마움을 표하기를 좋아한다. 사비를 들여가며 순직한 동기생 추모 행사·와병 중인 동기생 위문·미망인 격려·지역 동기회 격려 방문 등 의미 있는 사업을 착착 실천하는 2023년도 조성열 동기회장의 헌신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고마움에 동기회장을 위시한 집행부 간부 4명을 나의 산장으로 초대하여 같이 식사하면서 정중하게 고마움을 표했다. 8월에는 찐친 능화의 고향 친구 일행의 어비동천 내방이 있었다. 2022년에 내 고향 제천의 명승지인 청풍호가 안전(眼前)에 흘러가는 비봉산(飛鳳山) 중턱에 있는 능화 친구인 취송(翠松) 이정호(李庭鎬) 사장의 별장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다. 길인(吉人)이라야 길지(吉地)에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역시 대화를 통하여 바른 성품으로 평생 복을 짖고 살아온 내력을 듣고, 한번 태어난 인생을 평범한 기독교 신자로서 이처럼 아름답게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음에 나 자신이 무한히도 부끄러워졌다. 이분을 포함한 고향 친구 3명과 능화가 어비동천을 방문한다고 하니, 우리 집이 더욱 밝아지는 것이 아니랴.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종종 삶의 행복감을 느끼고, 정말로 멋지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축복으로 생각하고 있다. 역시 찐친의 멋진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어느 날 문득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9월에는 내가 회장으로 있는 31 문우회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고창 일대 문화 기행을 실시하였다. 작년 1차 내 고향 제천 청풍과 단양 일대를 돌아보는 문우회 하계연수에 이은 2번째 이벤트였다. 하루하루가 아까운 시간인데 단순한 식사와 여담 위주의 행사보다는 견문과 미각 여행을 병행하는 문화행사를 자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10월에는 전방에서 근무하는 아들은 사단 작전참모를 마치고 육군본부로 보직을 옮겼고, 며느리는 1차 사단 화생방대대장을 마치고 다시 2차 군단 화생방대대장으로 부임하였다. 취임식에는 가족이 참석하여 축하하는 것이 관례이기에, 우리 가족과 사돈 가족이 총출동하여 참석하였다. 자랑스러운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손녀·손자도 현장학습 명목으로 결석계를 내고 데리고 갔다. 그리고 당연히 영내외 축하객이 많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바 답례선물로 100만 원을 지원하여 기념타월을 제작하도록 하였다. 나는 평소 긴축을 하는 편이지만, 꼭 쓸 때는 즐겁게 쓰는 화끈한 자린고비이다. 11월에는 부산에서 사는 고향 친구 홍기영 사장 훼밀리의 어비동천 내방이 있었다. 홍 사장은 40대부터 친목을 도모해 온 제영회(영남에 사는 제중·고 17·19회) 멤버로서, 나는 홍 사장의 두 아들 결혼식 주례 선생이어서 특별한 관계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2남 4녀의 남매가 우리 집에서 2박 3일 숙박하고 싶다고 특별히 요청하여 황토방에 불을 넉넉히 넣어서 따뜻하게 맞이하고 또 나의 산장을 찾아준 성의에 보답코자 2일 차 점심을 내가 양평으로 모시고 나가 특별히 대접하고 색다른 전시 공간인 지평면에 있는 이재효 갤러리(양평군 지평면 초전길 83-22)로 안내하니 모두가 고맙다고 하였다. 지나고 보니 역시 우리의 삶이란 평생 신세 지고 신세 갚으며 살아가는 존재이려니, 젊은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덕을 많이 베풀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12월에는 모든 친목회 봉사 직책을 내려놓은 하심(下心)을 결행했다. 나는 60대 초에 돌발성난청으로 좌이 청력을 상실한 경증 청각장애자이다. 이후 두문불출하고 자연인처럼 살다가 너무 이기적으로 사는 것 같아 친목회에 나갔다고 덜컥 감투를 몇 개 쓴 지가 3년이 지났다. 그러나 청각장애로 더 이상 사오정식 회장이나 공직을 수행하는 것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몇몇 친목회에서 맡고 있던 회장·감사·회원의 직책과 자격을 과감하게 내려놓았다. 더 이상 노력 봉사를 하지 못함에 미안함도 따르지만, 꼭 어떤 직책을 맡아야만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아직까지 회원의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모임에서는 앞으로 격이 다른 역할 분담을 하면서 살아갈 예정이다.
62세에 퇴직하여 황혼육아와 산장 관리를 병행하는 촌부로서 그날이 그날인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유의미한 삶의 방식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 4도 3촌과 주경야독하며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아내는 주중 손주 학업 일정에 맞춰 동분서주하다가 행복택시를 타고 금요일에 산장에 들어왔다 일요일에 나가고, 나는 주로 산장에서 해가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산책이나 독서하고, 문득 글감이 생기면 병아리 타법으로 컴퓨터 자판을 톡톡 두드리다가 완성되면 SNS에 올리고, 농사일이 한가한 틈을 타서 가끔 서울로 가서 손주도 보고 최소한의 친목 활동에도 동참하기도 한다. 현재 70 고개를 넘은 우리 부부의 건강이 가정 행복의 제1의 과제라고 생각되어, 건강수명 80세를 목표로 하여 심신 관리에 특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아들 내외는 앞으로 10년을 더 직업군인으로 복무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바 역시 할빠·할마의 역할은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지병인 당뇨로 고생 좀 하지만 어차피 당뇨는 평생 관리만 잘한다면 오히려 남들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운동·식이·약물요법을 철저히 하고 있다. 안식구도 척추 시술을 한 경증 지체장애인이지만 적절한 운동이 재활에 도움이 된다는 마음으로 무리한 노동을 회피하면서 그런대로 육아와 산장 관리를 잘 병행하고 있다. 아무쪼록 80세까지 지금처럼 4도 3촌의 이중생활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은퇴전문가는 가능하다면 나이가 들었어도 가내 수입 창출에 도움이 되는 경제활동을 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나처럼 얼마간 연금을 받고 있고, 아들 내외가 맞벌이를 하고 있는 경우라면, 황혼육아를 하는 것도 아들 세대가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아들 내외는 우리에게 부족한 생활비를 효도비로 보내주고 있으니 바로 이것도 윈윈이 아니랴. 아들 며느리가 지난 20년 동안 전후방에서 근무함에 따라 손주를 대동하고 여러 차례 위문 방문 겸 근무지를 다녀왔는데, 대전·광주·대구·양구·춘천·파주·의정부·강릉 등등으로 가는 김에 공주산성·담양 죽림원·팔공산 갓바위·펀치볼 땅굴·인제 자작나무숲·춘천 소양강댐·철원 주상절리 잔도길·산정호수·고성 통일전망대 등 주변 관광지도 둘러보았으니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듯 국내 여행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기회가 되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나의 남은 세월도 2023년처럼 건강한 가운데 황혼육아와 산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때때로 심리적 산소를 같이하는 문우들과 글을 써서 카페에 올려 더불어 사는 선진 민주사회를 만들자는 생각을 널리 확산하고, 가족이나 지인들과 국내 여행하는 즐거움을 함께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통해 우리 세대 가난을 딛고 일어선 세계 10대 경제 강국인 대한민국이 경제·문화·국방 강국인 선진대국으로 진일보하여 아들 자손 대대로 아름다운 금수강산에서 풍요로움을 계속 누렸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여러 조건이 있겠지만, 흑백논리에 함몰된 국내 정치의 선진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된다. 또 주중 이름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라치면 대기표를 받아서 기다려야 하고, 주말 전국도로는 관광지로 떠나는 차량으로 장사진을 치고 있으며, 연휴 공황은 해외로 떠나는 관광객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세계 1위이고, 노인 소득 불평등(지니계수)도 상위권인 나라라고 한다. 일부가 성장의 과일을 많이 따먹는 경제 강국이 아니라, 약자를 보듬고 상대를 배려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선진문화강국을 만들기 위한 정치지도자의 선도와 전국민적 동조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23. 12.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