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결선생 박문량(414~?)
휘 문량(諱文粮, 朴文良), 관설당 박제상(觀雪堂朴堤上)의 장자(長子), 신라 시조왕(新羅始祖王) 박혁거세(朴赫居世)의 10세손(十世孫), 신라 실성왕 13(新羅實聖王十三)인 서기 414년에 양산군 삽량주 수두리(梁山郡歃良州所土理) 효충동(孝忠洞)에서 탄생하고 초휘(初諱) 효원(孝元)이라 하다. 눌지왕(訥祗王) 무오(戊午, 백결선생 5세)년, 부친 제상공이 왜국(倭國)에 특사(特使)하여 왕자를 구(求)하고 순절(殉節)하니 모친 김씨(母親金氏)는 부친(父親)을 따라 치술령상(鵄述嶺上)에서 순사(殉死)하고, 장자(長姉) 아기(阿奇)와 3제 아경(三娣阿慶)은 또한 모친(母親)을 따라 자진(自盡)하니 선생은 중자 아영(中姉阿榮)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다. 중자 아영(中姉阿榮)이 눌지왕명(訥祗王命)에 의하여 공자 미사흔(未斯欣)에게 출가(出嫁)하니 선생은 궁액중(宮掖中1)에서 보육되고 또 수업하다.
1. 궁액중(宮掖中): 임금이 사는 궁중. 출처, 영가 권상익 선생(永嘉權相翊先生)《성재집,育於宮掖 中》. 영가 권상익: 교육자, 독립운동가. 유림단원(儒林團員). 1968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선생이 각간(角干) 이수현(李壽玄)의 여와 결혼하고 눌지왕조(訥祗王朝)에 수년 입조(立朝)하였다가 곧 향리 양산(鄕里梁山)에 돌아와서 문호(門戶)를 수복(修復)하다. 입조(入朝) 중에 봉록(俸祿)을 사용(私用)하지 않고 말하되 “이 봉록은 나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고 조상(祖上)의 소치(所致)”라 하고 전부 선영치봉(先塋致封1)에 경진(傾盡)한 후 빈궁(貧窮)한 생애(生涯)를 택(擇)하다.
1. 선영치봉경진(全部先塋致封傾盡): 부모님 산소와 주변을 가꾸다. 출처, 운곡 원천석 선생(耘谷 元天錫先生)의《화해사전華海師全》
선생이 평생(平生) 금서(琴書1)로 자오(自娛)하여 희로애락(喜怒哀樂)의 회포(懷抱)를 탄금(彈琴2)으로써 풀더니 부인(夫人)이 인가(隣家)의 춘저성(春杵聲3)을 듣고 과동량(過冬糧4)이 없음을 한탄(恨歎)하매, 先生이 금조(琴調5)로써 방아 소리를 내어 부인을 위안(慰安)하니 후세(後世)에 전해지고 그 가조(歌調)는 <방아타령>이다.
1. 금서(琴書): 거문고와 독서, 2. 탄금(彈琴): 거문고, 3. 춘저성(春杵聲): 방아찧는 소리, 4. 과동량 (過冬糧): 겨울 넘길 식량, 5. 금조(琴調): 대악(碓樂). 출처,《라사급 동경지羅史及東京誌》
자비왕(慈悲王)이 이벌찬예부시랑(伊伐湌禮部侍郞1)의 직(職)으로 부르므로 先生이 入朝하여 보니 녕인(佞人, 아첨꾼)이 만정(滿廷)하고 왕불능성(王不能省)하여 지치(至治)가 무망(無望)이나 다만 충애간공(忠愛懇功)하여 춘(천)재(天災) · 치폐(治弊) · 처경(處境) · 여인(與人) · 지인(知人) · 화인(化人) 등 여섯 장의 상소(上疎)를 올리고 곧 기관 귀향(棄官歸鄕2)하다. 기관귀향시(棄官歸鄕時) <귀향곡歸鄕曲>을 지어 탄금(彈琴)하니 후세(後世)에 이것을 <낙천악樂天樂>이라 하여 전하다. 부친(父親)의 유업(遺業)을 이어 《금척지金尺誌》를 기술(記述)하다.
1. 이벌찬(伊伐飡): 신라 17관등 가운데 첫째 등급. 자색 관복을 입으며 진골(왕족)만이 오를 수 있다. 2.기관 귀향(棄官歸鄕):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감. 출처, 김시습 선생 추기.
선생이 귀향(歸鄕)한 후(後) 누차 징소(累差徵召)하나 불응(不應)함으로 왕(王)이 수두리(所居里, 소거리)에 일체 국금(一切國禁)을 특명 철폐(特命撤廢)하여 선생(先生)을 자유롭게 하니 세칭 물금리(世稱勿禁里)라 하다. 왕조(王朝)와 관가(官家)로부터의 증자 송품(贈資送品)을 일체 사절(一切謝絶)하고 궁경(躬耕1)으로서 겨우 호구(糊口)하다. 선생이 식사를 자주 궐(闕)하며 의복이 남루(襤褸)하여 수(數)없이 비끄러매어 입으니 야인(里人)이 백결선생(百結先生)이라고 하다. 이에 인하여 先生은 백결(百潔)이라고 자처(自號)하다.
1. 궁경: 직접 농사를 지음. 출처, 김시습 선생 추기.
先生이 부친(父親)의 유기(遺記)를 봉준(奉遵1)하므로서 태고(太古) 선세(先世)의 무여도(無餘道2)를 친(親)히 실행(實行)하여 민족 전래(民族傳來)의 대인국기풍(大人國氣風)을 크게 진작(振作)하다. 누랑(婁琅)이라 개명(改名)하고 말년(末年)에 회적(晦跡, 종적을 감춤)하다.
후인(後人)이 백결학사(百結學舍)를 세워 先生의 유풍(遺風)을 전(傳)하다. 나조(羅祖)에서는 대령군(大寧君)을 추봉(追封)하다. 《나사야록羅史野錄》에 ‘신라 인물(新羅人物) 중에 영웅호걸은 김유신(英雄豪傑金庾信)이요 광명정대는 김양(光明正大金陽)’이라고 나와 있는데 그것을 읽은 운월제(雲月齊) 신문정 선생 왈(申文貞先生曰) “백결선생은 이 양자를 겸한 이(百結先生兩者兼)”라고 평정(評定)하였음. 1. 봉준(奉遵): 받들어서 실행함, 2. 무여도(無餘道): 온갖 번뇌를 없이 하는 도. 출처, 운곡 원천석 선생(耘谷元天錫先生) 저《운곡 시사耘谷詩史》
참고: 백결학사(百結學舍)에사 수학(修學)한 자 중에 백결선생의 증손(曾孫) 담(曇, 호 마령간), 김유신(金庾信), 용문(龍文), 최치원(崔致遠), 곽여(郭輿) 등 많은 인재(人材)와 현인(賢人)이 배출(輩出)되었다. 그들이 김유신(金庾信)과 결의(決意)하여 무렬왕(武烈王) 때 삼국을 통일(統一)하였다. 출처, 寧海朴氏大同譜卷1.
박씨 신라 선원 세계 분파략(약)도(朴氏新羅璿源世系分派畧圖)
백결선생(百結先生) 가계도(家系圖) 출처, 朴堤上 本孫《寧海朴氏大同譜》권1
해설
박혁거세(朴赫居世) : 신라 시조왕(新羅始祖王), 백결선생은 박혁거세의 10세손(十世孫),
물품(物品) : 백결선생의 부(父)인 박제상(朴堤上)의 부친(父親), 즉 백결선생의 조부(祖父)
1세. 제상(朴堤上): 영해박씨(寧海朴氏) 시종조(始宗祖), 백결선생(百結先生)의 부친(父親)
2세. 문량 백결선생(文良百結先生), 각간(角干) 이수현(李壽玄)의 딸과 결혼.
3세. 등흔(登欣): 백결선생(百結先生)의 아들(子)
4세. 의각(義珏): 백결선생(百結先生)의 손자(孫子)
5세. 담(曇, 마령간): 백결선생(百結先生)의 증손(曾孫)
6세. 용문(龍文) 등.
출처 : 朴堤上 本孫 寧海朴氏大同譜권1.
-작가 박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