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風海)
마태복음 8:18-27, 제題)는 25절
◇加利海多風浪, 主以海比世相. 世多風浪, ◇主不置我風波之世, 而置于樂園. 始祖犯罪後世有風波, ◇主命我曰 渡風海云者, 使人不必置情于世, ◇人常棄此肉身之舟, 肉甚弱故皆畏之, ◇然則風浪何也? 傳道師喪配亦風浪也. 患亂皆風波也, 人人有之, 家家有之, 況朝鮮人乎? ◇主曰渡此風海而風浪起焉, 主若不止之, 人不能止之. ◇平壤一夫人喪一子傷心, 人曰請齊于佛而傷心如前, 又請巫禳而傷心如前, 又請瞽誦經, 且傷心如前, 夫人乃失眞, 有人請偕往敎堂信主, 聞讚美之聲, 心始慰安, 故主曰渡風海, 主又偕之, 故人在世主偕之, 使往天國亦偕之. 前日博覽會時, 入京者二百萬, 其心內無平安之人, 皆風波之人也. 風浪有二, 一,弟子心內之風浪也, 一, 海上之風浪也. 英國有一少年提督넬손, 欲避暑渡海遇風, 艦長曰必死, 艦內之人皆哭泣, 넬提督展經讀요한十四章一節. 其夫人抱兒納櫃中, 泛海記名云, 提督又讀經, 夫人請祈禱風止. 又携妻至出處, 拔劍指腹曰 畏乎? 妻曰不畏, 何故? 劍之柄在所愛之夫手故也. 生殺之權在天父之手故, 愛能止風浪也, 其次靈的風浪也. 敎會之內有偏黨, 有紛爭.
갈릴리 바다에 물결이 많이 일어나니 주님께서는 세상 형편을 바다에 비유하여 세상에도 풍랑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풍파가 많이 일어나는 세상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낙원으로 만들려고 하셨습니다. 인류의 시조가 죄를 지어 세상에는 풍파가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명령하기를 ‘풍랑 이는 바다를 건너가자’고 하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에 정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육신이라는 배를 버려야 하는데 육신은 매우 약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풍랑은 무엇입니까? 전도사가 아내를 잃은 것도 역시 풍랑입니다. 환란은 풍파입니다. 사람마다 있고, 집집마다 있는데 하물며 조선인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주께서 ‘이 풍랑 이는 바다를 건너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만일 풍랑을 그치게 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그치게 할 수가 없습니다.
평양에 사는 어느 부인이 아들을 잃고 상심하자 사람들이 말하기를 ‘부처에게 재를 올리라’고 하여 재를 올렸지만 상심이 여전하였고, 또 무당과 소경을 데려다가 푸닥거리를 하라고 하여, 그것을 해보았으나 마음의 상심은 여전하였습니다. 부인은 마침내 본정신을 잃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 여자를 데리고 교회에 가서 주님을 믿도록 하였습니다. 부인은 찬송 소리를 듣고 마음이 비로소 안정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주께서 ‘풍랑 이는 바다를 건너라’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건너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세상에 살 때에 주님은 함께하시고, 천국에 가도록 인도하시고, 또한 함께 가십니다.
지난날 박람회(博覽會)를 할 때에 서울에 들어온 자가 이백만 명이었는데 그들 마음에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풍파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풍랑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자들 마음속의 풍랑이요, 하나는 해상의 풍랑입니다.
영국의 젊은 제독인 넬슨이 피서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다가 바람을 만났습니다. 함장이 말하기를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하니, 배를 탄 사람들이 다 울었습니다. 그때 넬슨 제독이 <성경>을 펴 들고 요한복음 14장 1절을 낭독하자, 그 부인은 안고 있던 아이를 궤짝 안에 넣고 이름을 쓴 뒤에 바다에 띄웠습니다. 제독이 또 <성경>을 읽자 부인이 ‘바람이 그치도록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제독은 자기의 처를 이끌고 출구 쪽으로 나가서 칼을 들어 처의 배를 겨누며 말하기를 ‘두려우시오?’ 하자, 부인이 ‘무섭지 않습니다’ 답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칼자루가 사랑하는 남편의 손에 들려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살리고 죽이는 권한이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있으므로 그 사랑은 풍파를 능히 그치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은 영적인 풍랑입니다. 교회 내에는 당으로 쪼개져 있어서 분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