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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인구수도면적공식명칭기후민족 구성언어정부/의회형태종교화폐국화대륙국가번호GDP전압도메인
아라비아반도 북부 |
11,384,922명 (2024년 추계) |
암만 |
88,778㎢ 세계면적순위 |
요르단 왕국 (The Hashemite Kingdom of Jordan) |
지중해성기후 |
아랍인(98%), 체르케스인(1%), 아르메니아인 |
아랍어 |
입헌군주제 / 양원제 |
수니파 이슬람교(92%), 그리스도교(6%) |
요르단 디나르(JOD) 환율계산기 |
블랙아이리스 |
중동 |
962 |
USD 42,553,000,000 |
220V / 50Hz |
.jo |
요약 서남아시아에 있는 아랍 국가. 수도는 암만이며 화폐는 요르단 디나르이다. 국민은 대부분 아랍인으로 북아라비아의 카이스족 또는 남아라비아 예멘족의 후손이며 아랍어를 사용한다. 자유기업경제 체제에 바탕을 두고 발전하고 있으며 GNP의 주요원천은 지역·사회·개인 서비스업, 무역, 건설, 제조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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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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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강 동쪽에 있으며 수도는 암만이다. 남북으로 약 460km, 동서로 약 355km 뻗어 있고 북쪽은 시리아, 북동쪽은 이라크, 남동쪽과 남쪽은 사우디아라비아, 서쪽은 이스라엘을 경계로 한다. 아카바 만에 19km의 해안선을 끼고 있다.
웨스트뱅크로 알려진 요르단 강 서쪽 지역도 1949년부터 이스라엘군에게 점령당한 1967년까지는 요르단의 영토였다(이 항목에서는 그 지역에 관한 부분을 통계에서 제외시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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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데이터 ©2024 GeoBasis-DE/BKG (©2009), Google, Inst. Geogr. Nacional, Mapa GISrael
200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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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자연환경
시리아 사막(Syrian Desert)
서남 아시아의 건조 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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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은 지형학적으로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사막지역은 시리아 사막(북아라비아 사막)의 연장으로 국토의 동쪽 4/5를 차지한다.
사막 북부는 화산용암, 현무암, 침식된 모래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남쪽은 사암층의 노출로 형성되었다. 요르단 강 동쪽의 이스트뱅크 고원지대는 평균고도 600∼900m이며, 남쪽 끝 아카바 만 가까이에 요르단 최고봉인 람 산(1,754m)이 솟아 있다. 지구대로 이루어진 요르단 계곡 지역에는 사해가 있는데, 이 호수는 수면이 해수면 아래 약 400m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사해(Dead Sea)
서쪽의 구릉지대와 동쪽의 트란스요르단 고원 사이에 위치한 호수
ⓒ David Shankbone / wikipedia | CC BY-SA 3.0
토양은 일반적으로 건조하며 기후는 동쪽의 사막기후에서 서쪽의 지중해성 기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전국토면적 가운데 5% 미만에서만 연간강우량이 400㎜ 이상을 기록하며, 4∼10월에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동부 사막의 내륙분지에는 와디가 흐른다. 요르단과 웨스트뱅크 사이를 흐르는 요르단 강은 동쪽 고원지대에서 흘러내려오는 수많은 샘과 시내가 합류된다. 그러나 지나친 증발 때문에 염도가 점점 높아지다가 사해에 이르러서는 표면의 평균 염분함유량이 거의 300‰나 된다.
요르단의 겨울은 서늘하고 비가 많이 오며, 북쪽의 암만에서는 평균기온이 9℃, 남쪽의 만(灣)에 면한 알카바에서는 17℃이다. 덥고 건조한 여름의 평균기온은 암만에서 24℃, 알아카바에서 32℃이다. 물이 부족하여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국민
요르단 국민의 98%는 아랍인으로 북아라비아의 카이스족 또는 남아라비아 예멘족의 후손이다. 공식어는 아랍어이다. 9/10는 수니파 이슬람교도이며 1/20은 그리스도교도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교도는 루마니아 정교회나 그리스 정교회 신도이다. 1980년대 중반 85만 명 이상의 허가받은 난민과 이주민을 비롯해 10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쏟아져 들어옴으로써 인구통계의 수치가 바뀌었을 뿐 아니라 정치·사회·경제 생활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수용소에 거주하며, 근동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한 국제연합 난민구제사업기구(United Nations Relief and Works Agency/UNRWA)에서 생계유지 수준의 지원을 받는다. UNRWA에서 주로 난민들의 위생·교육·복지를 맡고 있다. 모든 난민은 요르단 시민권을 갖고 있는 한편 난민구제 혜택을 받기 위해 난민의 신분도 유지하고 있다(→ 국제연합 팔레스타인 난민구제사업국).
2024년 기준 요르단의 인구는 1,138만 4,922명이고, 인구밀도는 128명/㎢이다. 2024년 기준 연간 인구성장률은 0.42%였다. 15세 이하가 전체 인구의 2/3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구의 2/3 이상이 도시에 거주한다. 인구가 농촌에서 도심지로 많이 이주함에 따라 경제도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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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요르단은 자유기업경제 체제에 바탕을 두고 발전하고 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급성장하는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비슷하며 1980년대초까지 인구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했으나 그후 성장률이 떨어졌다. GNP의 주요원천은 지역·사회·개인 서비스업, 무역, 건설, 제조업 등이다. 전국토의 1/20만 경작이 가능하다.
요르단 강 하곡과 바로 동쪽의 고지대는 관개가 잘 되어 있다. 농업이 GNP의 약 1/20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상당 부분이 종사하고 있다. 주요작물은 토마토·가지·호박·고추 등 채소류이다.
그외에 밀과 보리를 비롯한 곡류·편두·올리브·수박·바나나·오렌지가 생산된다. 요르단에는 목초지가 거의 없으며 그나마 목축을 하기 위해서는 대개 우물을 파야 한다.
주요 가축인 양과 염소에서 고기와 젖을 얻으며, 양봉도 이루어진다. 얼마 안 되는 삼림은 주로 시리아와 가까운 동쪽의 고원지대에 분포하며, 연간 국내수요의 약 1/2을 충당할 수 있는 양의 목재를 생산한다. 1967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웨스트뱅크의 농경지를 잃게 됨에 따라 요르단 정부는 조림계획을 다시 세우고 일부 삼림지를 농경지로 바꾸었다.
광업과 채석업은 GNP의 1/20 미만을 차지하며, 노동력 가운데 약 1%가 종사하고 있다. 주요광물은 인산염이며 그외에 구리·석고·망간광석·고령토·칼륨·유리질모래를 채굴한다.
요르단에서는 가정난방과 원격통신에 태양열을 이용한다.
제조업은 암만에 집중되어 있으며, GNP의 1/10을 차지하고 노동력의 1/15이 종사하고 있다. 주요 생산품은 시멘트·인산비료·압연강·담배·맥주·포도주이다. 전력은 화력발전으로 생산된다.
건설업은 GNP의 1/20을 차지한다. 주요 건설계획을 통해 요르단 강 골짜기의 관개용 댐과 공장, 사해의 칼륨 공장, 알아카바의 비료 공장과 항만 시설, 라시디야의 대규모 시멘트 공장 등이 세워졌다.
제라시와 페트라의 유적, 사해 주변의 온천과 광천 등으로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노동력 가운데 약 1/2은 정부와 지역·사회·개인 단위의 서비스업에 고용되어 있다.
산업은 국영은 아니지만, 정부가 많은 산업부문에 공동소유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정유, 인산염 채광, 관개와 전력·수송·통신 산업의 대부분을 소유한다.
아랍과 서방 여러 나라의 원조가 경제발전에 적지 않은 몫을 한다. 노동조합과 고용주 조직이 법으로 인정되어 있다. 정부예산 수입의 2/5 이상이 보조금과 차관으로 이루어지며, 약 2/5는 국내 세입(주로 간접세·수수료·직접세)으로 충당한다.
예산은 주로 개발·국방·치안을 위해 지출된다.
남북으로 국토를 가로지르고 암만과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잇는 국영 철도가 있으며, 도로망은 약 3/4이 포장되어 있다. 유일한 항구인 알아카바가 아카바 만에 있으며, 암만·알아카바·지지아에 국제공항이 있다.
주요수출품은 천연인산비료, 채소·과일류, 살아 있는 동물, 화학비료, 의약품, 의류, 섬유, 방적사 등이며, 수출상대국은 주로 이라크·인도·사우디아라비아이다.
수출액의 1/4을 초과하는 수입품은 전기·비(非)전기 기계 및 설비와 원유·운송장비·철강·곡류 등이 주종을 이루며, 주요수입국은 이라크·미국·영국·일본이다. 막대한 무역 적자는 해외에 있는 요르단 노동자들의 송금과 관광수입, 보조금과 차관 등으로 메워진다.
요르단의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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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사회
요르단은 입헌군주국이며, 최고 행정권은 왕에게 있다. 양원제 국회가 있었으나 1976년 아브둘라 이븐 알 후세인 왕의 명령으로 해산되었고 후세인 왕이 1970년대말에서 1980년대초까지 칙령을 통해 통치했다.
1984년 상원과 하원으로 이루어진 국회가 다시 소집되었다. 상원은 왕이 임명한 3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었으며 하원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13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었다. 최고 사법기관은 대법원이며 개인의 신분과 관련된 문제에 관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이슬람 종교재판소(Shari⁽ah Muslim courts)가 있다(→ 샤리아). 병력은 7만 명으로 대부분 육군이다.
사회복지제도는 낙후된 편이다. 정부의 연금제도는 노령·장애·사망시에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보건시설은 주로 암만을 비롯한 도시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농촌인구의 대부분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다. 영양부족과 위생시설이 열악할 뿐 아니라 나쁜 기후 탓으로 장티푸스·파라티푸스·살모넬라·간염·이질 같은 질병이 널리 퍼져 있다. 평균수명은 남자 60세, 여자 64세 정도이다. 주택이 계속 건설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택문제가 심각하여 대다수 가구는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교육시설로는 공립학교, 사립 또는 종교계 설립 학교, 난민 어린이를 위해 UNRWA에서 운영하는 학교 등 3가지 유형의 학교가 있다. 교육부에서 모든 학교를 감독하며 14세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암만의 요르단국립대학교(1962), 이르비드의 야르무크대학교(1976), 알카라크의 무타대학교(1981) 등이 대표적이다. 신문은 민간이 소유하나 여러 면에서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국영방송인 하심요르단 방송국과 요르단 텔레비전 방송국이 요르단의 전자 매체를 장악하고 있다.
요르단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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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요르단에서는 아랍 문화가 발전되어왔으며 최고 형태의 예술은 다른 아랍 세계와 마찬가지로 구전예술과 문학예술이다. 민속문화는 노래·민요·이야기하기 등의 구전예술을 통해 표현되어왔다. 가장 유명한 시인은 무스타파 와바 앗 탈로서, 그는 뛰어난 문체와 사상으로 20세기 주요 아랍 시인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이브라힘 아부 나아브, 파우다 투칸, 사미라 아잠 등 새로운 세대의 시인과 산문 작가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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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스라엘과 함께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이라고 알려진 지역에 자리잡고 있어서 대부분의 역사가 이스라엘과 뒤섞여 있다. 사람이 살게 된 시기는 아득히 먼 전기 구석기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요르단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는 BC 13세기 이후 존립했던 기드온·암몬·모압·에돔 등이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BC 1000경)에 지금의 요르단 동부 대부분은 이스라엘 왕국에 복속되었다. 그후 다른 중동지역과 함께 아시리아·바빌로니아·페르시아에 차례로 넘어갔으며, BC 330년 무렵부터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셀레우코스 왕조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사이에 아랍어를 쓰는 나바테아인이 요르단 동남부에 왕국을 세웠다. 이 왕국은 BC 64∼63년 로마인들에게 정복되었고, 7세기에는 이슬람교도인 아랍인들에게 넘어갔다.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들은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았고, 아바스 왕조 때는 바그다드로 옮겼다. 그 이후로 요르단 지역은 권력의 중심지에서 멀어졌으며 주민들은 서서히 베두인족의 유목생활로 되돌아갔다. 1099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함으로써 예루살렘에 도읍한 라틴 제국이 요르단 강 동쪽까지 영토를 넓혔다. 16세기에 요르단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어 다마스쿠스의 관할 아래 들어갔다. 19세기에 오스만 제국은 아라비아로 오가는 길을 보호하기 위해 체르케스인·카프카스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난민들을 요르단에 정착하게 했다. 요르단은 1920년 트란스요르단이라는 이름으로 팔레스타인과 함께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고, 아브둘라 이븐 후세인이 영주(군최고사령관)로 임명되었다. 1948년까지 영국의 위임통치가 계속되긴 했으나 트란스요르단은 밸포어 선언의 대상에서 제외된 후 1927년 입헌국가로 독립했다. 1949년 독립한 이스라엘과의 휴전으로 요르단은 웨스트뱅크를 합병했으나 1967년 6일전쟁 후 이스라엘에게 빼앗겼다. 1970∼71년 요르단은 정부군과 요르단에 주둔하는 팔레스타인 게릴라 사이의 전투로 쑥밭이 되었다. 전투는 정부군이 팔레스타인 게릴라군을 요르단에서 몰아냄으로써 끝이 났다.
요르단 페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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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과 한국과의 관계
요르단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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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요르단과 한국은 1962년 7월에 수교했다. 1975년 3월 주 요르단 대한민국 대사관이 개설되었고, 2010년 10월에는 주한 요르단 대사관이 개관했다. 한때 요르단은 한국 업체들의 진출이 활발했던 건설시장이었다. 양국 간 고위급 교류가 활발하여 1999년 12월부터 최근까지 방문 및 방한이 활발했으며, 압둘라 국왕은 2015년 9월까지 다섯 차례 국빈 방한했다. 2011년 11월에는 라니아 왕비가 세계개발원조총회 참석차 방한했다. 한국에서는 1999년 2월 김종필 국무총리가 전 국왕 조문 차 방문했으며, 2000년 5월에 박준규 국회의장 IPU 총회 참석차 방문한 이후 정관계 고위급 인사가 방문했다.
한편, 요르단은 북한과 1974년 6월에 국교를 수립한 이후, 대사관을 설치하기도 했으나 대사관은 1998년 3월에 폐쇄되었고 2018년 2월에는 국교를 단절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한국은 1991년부터 2014년까지 총 3,774만 달러를 요르단에 무상으로 지원했고, 2014~17년에는 청각장애 특수학교 건립사업, 전자조달 시스템 구축사업, 3개 지역 보건소 건립사업을 전개했다. 또한 2006년부터 2017년 사이에 총 107명의 해외봉사단을 파견한 바 있다. 또한 대외경제개발협력기금(EDCF)으로 요르단의 요르단연구용원자로 사업과 암만남부폐수처리장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요르단의 대한국 수출액은 3,298만 달러, 수입액은 5억 3,113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유기화학품, 구리, 천연진주 및 양식진주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자동차, 면역물품 등이다. 양국의 주요 협정으로는 무역협정(1972년 11월), 경제·기술 협력협정(1977년 10월), 문화협정(1977년 10월), 항공협정(1978년 5월), 투자보장협정(2002년 7월), 이중과세방지협정(2002년 11월), 한-요 이중과세방지협정 및 투자보장협정(2004년 7월), 관광협정(2005년 1월), KOICA 봉사단 파견약정(2006년 3월), 원자력협력협정(2008년 12월), 국방분야 협력협정(2009년 10월), 무상원조 기본협정(2013년 12월), 항공협정(2014년 10월 개정), 외교관 사증 면제 협정(2015년 9월)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2023년 기준 요르단에는 345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과 이르비드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23년 기준 500명의 요르단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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