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의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중 6번째 권인 "은의자"에서 주인공들인 유스터스와 질, 릴리언 왕자와 퍼들글럼에게 마법의 가루 냄새와 음악으로 체면을 걸며 "나니아는 없다", "아슬란은 없다", "태양은 없다"는 생각을 각인시키는 초록 마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등을 보면서 그보다 크고 더 좋은 것을 상상해서 태양이라고 불렀듯이, 고양이를 보고서 더 크고 더 좋은 고양이를 상상한 거야. 그리고 그걸 사자라고 부르는 거야. 음, 제법 깜찍한 상상이야.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너희가 좀 더 어렸다면 어울리는 얘기겠지. 그리고 너희가 상상 속의 사물을 설명하려면 실제로 존재하는 이 세계, 유일한 세계인 나의 세계에서 본뜨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잖아? 비록 너희가 아이라곤 하지만 그런 놀이를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자, 다들 유치한 장난은 이제 그만 집어 치우세요. 진짜 세계에서 여러분 모두에게 할 일을 드리겠어요. 거기에는 나니아도 없고, 지상 세계도 없고, 하늘도, 태양도, 아슬란도 없어요. 자, 모두 잠자리에 드세요. 그리고 내일부터는 좀 더 현명한 생활을 시작해요."
마녀의 말은 마치 그리스도인들에게 천국은 없고 하나님도 없고 성경은 가짜라는 말을 하며 그들을 조롱하고 설득하는 무신론자들의 말과 흡사합니다. 사실 마녀는 아슬란도 알고, 지상 세계도 알뿐만 아니라 지하세계의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나니아를 점령하려는 계획을 품고 있었으면서 나니아의 충성스런 용사들을 잠재워서 자신의 일꾼들로 삼으려고 시도했던 것이었습니다. 마녀의 말에 답한 퍼들글럼의 용기있는 말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꿈을 꾸었다고 칩시다. 그 모든 것들... 나무와 풀과 태양과 달과 별과 그리고 아슬란 님까지 모두 꿈이었다고! 혹은 우리가 지어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지어낸 것들이 내 눈에는 실제 사물보다 훨씬 중요해 보인다는 점이요. 당신의 왕국이라는 이 검은 구덩이가 유일한 세계라고 합시다. 그런데 나한테는 어처구니 없는 곳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 아니오? 당신이 옳다면 우리는 그저 장난이나 꾸며 대는 철부지 애들에 불과하오. 그렇더라도, 우리가 만든 가짜 세계가 당신의 진짜 세계보다 낫단 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난 가짜 세계 편에 있겠소. 설령 우리를 이끌어 주는 아슬란 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난 아슬란 님 편에 서겠소. 설령 나니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난 나니아인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겠단 말이오. 따라서 저녁 대접을 받은 데 감사드리고, 이 두 신사와 아가씨가 준비됐다면 우린 즉시 당신의 성을 떠나 이 암흑 속에서 지상의 나라를 찾는 일에 평생을 바치겠소. 우리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이오."
퍼들글럼의 말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신론자들에게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고 가정하더라도, 지어낸 것들이 그리스도인인 나의 눈에는 실제 사물보다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유일한 세계라고 가정해도 나에게는 죄와 사망의 냄새로 가득한 어처구니 없는 곳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 (당신들이 주장하는) 우리가 만든 가짜 세계가 당신들의 진짜 세계보다 낫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그 "가짜 세계" 편에 있을 것입니다. 설령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리스도의 편에 서겠습니다. 설령 하나님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입니다. 난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지배하는 이 악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찾는 일에 평생을 바치겠습니다. 나의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C. S. 루이스 (햇살과나무꾼 역), 『나니아 나라 이야기6 은의자』 (서울: 시공사, 2012), 216-219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