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삼종(三種)의 성책(聖責) / 요한복음 16:8-9
사람은 책망을 받아야 바른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책망이 없는 사람은 바른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다윗도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받은 후에야 진정한 믿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책망을 받지 않는 것은 큰 죄가 됩니다. 소순대왕도 신하들의 책망을 받지 않아 큰 화를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책망하실 때는 직접 하시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하시기도 합니다. 사람의 책망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하나님의 책망은 감화롭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 숙자가 조카를 때리는 것을 보았는데, 조카는 그것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후 성령의 책망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성령께서 오시면 세상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이 책망은 곧 자책이지 타인에 대한 책망이 아닙니다. 타인에 대한 책망에는 분노가 있지만, 자책에는 회개가 있습니다.
바른 믿음을 얻으려면 먼저 자신의 죄를 알아야 합니다. 죄가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약초가 나올 때는 순이 없어 보이지만, 뿌리에서 다시 싹이 나듯이, 뿌리째 뽑아내야만 다시 나지 않습니다. 노여워하며 없애버리는 것보다는 사랑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더 나은 방법입니다.
옛 선지자들도 책망을 했지만, 사랑이 없어 회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뜨거운 불 속에서 눈이 녹아 사라지듯이, 성령께서 오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면, 그 사랑 속에서 죄가 녹아 사라지고 눈물과 통회가 있게 됩니다.
그 다음은 의로 책망합니다. 주님께서는 의의 해석을 다시 보지 못하게 하셨으니, 의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나를 세상에 두려는 것도 의가 아니고, 세상에서 떠나게 하는 것도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는 사람의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사로의 비유로 말씀하시며,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회개하고 하나님의 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 칭함을 받은 자들, 아브라함과 욥과 요셉 등은 모두 자신을 부인하고 전적으로 주를 의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서는 의라 함이 모두 거짓된 것입니다.
그 다음은 심판으로 책망하십니다. 세례 요한이 심판을 말할 때 도끼를 나무뿌리에 놓는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심판할 때에는 임금까지도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임금에게는 어떤 죄가 있겠습니까? 남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더 좋은 옷과 음식을 누리려 하며, 사람을 업신여기고 억압하며, 땀과 피를 착취하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며, 자신은 신성불가침이라 여기고 조금만 잘못해도 목을 베는 그런 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임금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각자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그 시체를 밟고 올라서서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합니다. 그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고 당파가 생겨나며 많은 생명이 죽습니다. 이런 자들이 심판을 받지 않는다면 누가 받겠습니까? 이러한 의미로 성령께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책망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살 수 있지만, 받지 않으면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망이 마음속에서 스스로 일어나야 합니다. 사람의 책망을 받지 못하고 원망하는 자라도, 스스로 책망을 받아들이는 자는 반드시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에스더 시대의 유대인들과 요나 시대의 니느웨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책망을 받지 않는 자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책망을 받지 않아 오늘날까지 나라도 없이 방황하며 화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