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소풍 in 효고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 무더운 여름 탈없이 건강히 계신가요? 이제 겨우 몽당연필 <2018년 소풍 in 효고>소식
올립니다. 소풍 직후 사무실 이사와 사진, 영상 등의 확인
수정작업, 평가회 참석 등을 거치느라 많이 늦었네요.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2년만에 성사된 조선고급학교 방문이었습니다. 지난 2016년 이바라기 소풍 이후 작년에는 야마구치 우리학교, 도호쿠 우리학교를 다녀왔지요. 원래 소풍은 이른바 ‘조고 학군’ 위주의 행사였는데 작년은 ‘작은 우리학교’를 찾아 방문했었습니다. 이번 효고 소풍은 그래서 좀 더 특별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큰
콘서트, 큰 우리학교 방문이었거든요.
올 해는 특히 의미있는 곳이었습니다. 4.24 교육투쟁의 성지인 효고에 70주년이라는 기념적인 해에 방문하는 것 뿐아니라 4.27남북정상회담을
겪은 직후였으니까요. 그래서 더 두근두근 긴장된 소풍이기도 했지요.
모두 46명의 대규모 인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인기가수’ ‘이한철 밴드’, ‘한충은’
뿐 아니라 ‘팝핀현준과 박애리’ 그리고
‘금강산 가극단’ 까지. 공연단의
규모도 역대급이었으며 저마다 ‘평화의 사절단’과 같은 마음으로
단단히 무장한 우리 소풍 방문단들. 6월 29일부터 2박 3일간의 짧지만 강렬한 시간들.
그럼 효고는 어떤 지역일까요? 효고 현은 1948년 조선학교 1차 폐쇄령에 맞서 효고 현의 전 재일조선인들이
목숨을 걸고 조선학교를 사수해 결국 현 지사의 ‘양해각서’를
받아 낸 민족교육 투쟁의 성지입니다. 이 지역에는 현재 6개의
조선학교가 남아있고 오사카, 도쿄 다음으로 재일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1995년 고베대지진 때에 동포동네인 ‘나가타’가 큰 피해를 입었으나 여전히 우리 동포들은 그 생명력을 끈끈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올 해는 최근 동포 행사 중 단일행사로는 가장 큰 ‘민족포럼’이 효고현 고베시에서 열리기도 한답니다.
몽당연필 소풍은 첫날 ‘콘서트’ 둘째날
‘학교방문’, 그리고 마지막 날은 그 지역의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는 ‘역사탐방’으로 이루어진답니다.
첫날 새벽 같이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간사이 공항. 그곳에는
이미 우리 동포들이 우리를 맞아주고 계셨습니다. 간사이 공항에서 약 1시간
반을 달려 콘서트 장에 도착. 리허설을 위해 공연단을 내려 준 후 방문단은 ‘니시고베조선초급학교’와 ‘코리안
생활센터 <이어>’를 방문했습니다.
4.24교육투쟁.
48년 1월 GHQ(연합군총사령부)는 지방자치체에 ‘조선학교 폐쇄 명령’을 하달합니다.
이에 전국의 조선학교 재학생과 학부모, 관련 동포들의 거대한 저항에 직면합니다. 4월 24일 효고 현청을 둘러싼 효고 현 동포들은 지사 면담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이고 결국 효고 현 지사가 각서 즉 ‘재일조선인 자녀들에게 자주적인 교육을 허가한다’ ‘재일조선인 학교는 일본의 학교교육법을 준수한다’ 는 쌍방의 양해각서를
교환하였고 이는 자주적 민족교육을 지켜낸 동포 역사의 획기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모두 잠든
틈을 타 효고 현에 주둔한 GHQ가 ‘비상계엄령’을 발동해 동포 지도자들 및 성인들 천 6백명 이상을 강제 연행한
전대미문의 대 탄압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항의하던 4월 26일의 오사카 집회에서 김태일 소년이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까지…. 1948년은
동포들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양보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던 일본정부와 GHQ는 결국 1년 뒤인 1949년
제2차 폐쇄령을 내려 당시 우리 동포 조직이었던 ‘조선인연맹’과 ‘조선학교’를 군대를
동원하여 강제 폐쇄시켜 버렸습니다. 우리학교에 다니던 조선의 아이들은 일부는 일본학교로 강제 전학, 학교 자체를 ‘공립 또는 현,도립
조선인학교’로 개편하여 일본인 교원들을 부임시켜 관리하거나 일본학교의 분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니시고베조선초급학교’ 이 학교는 이 폐쇄와 해체의 과정에서 유일하게
‘자주학교’를 고수하며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끝까지 우리학교를
지켜낸 효고지역의 유일한 학교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 당시를 지켜낸 1세, 2세 동포들이 계신 <이어>를 찾아갔습니다. 짧은 시간이라 많은 대화와 나눔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학교를 보고 그 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들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참 고맙고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만나 잠시만에 노래하고 춤 출 수 있는 우리들이기에 역시 ‘하나’였음을 실감했습니다. 연극 <자이니치바이탈체크>를 보셨죠? 바로 그런 데이서비스센터를 직접 가서 보고 느낀 방문단이었습니다.
이어서 방문단은 ‘고교무상화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하고 그것도 모자라
지자체의 교육보조금을 삭감한 일본’에 대해 항의하는 거리행동을 일본 무상화 연락회 대표진들과 동포 청년들과
함께 진행하기 위해 고베시내로 들어갔습니다만, 결국 내리는 폭우로 인해 취소하고 공연장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번 소풍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이미 공연장 밖의 홀은 효고 현 각지에서 오신 동포들과 일본분들, 그리고
일본 전국에서 오신 손님들로 가득 찼습니다. 올 해의 소풍이 조금은 각별하다는 걸 눈치채셨을까요? 이 날의 공연은 만원 객석일 뿐 아니라 수익(우리학교 지원금)으로서도 최고였습니다.
이날의 공연이 특별했던 건 또 다른 사건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6월
28일(소풍 전날) 고베조선고급학교
3학년의 조국(북한)으로의
수학여행 귀환 때 오사카 간사이공항 세관에 의해 기념품이 압수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학생들이 오늘의 공연 첫 무대를 장식합니다. 이 사건은 이후 한국 시민단체 285개 단체의 연명과 일본대사관 항의방문으로 이어졌으며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한국 시민단체들이 독자적으로 ‘조선학교 차별철폐’를 호소하는
보고문을 제출할 정도로 우리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비행기 사정으로 두개의 진영으로 나누어 들어온 고베조선고급학교 3학년들. 조국에서 보고들은 것을 전하기 위해 후배들, 부모님들을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싸 온 기념품들이 모두 압수당할 때 그 아이들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조국을 떠나 일본에 산다는
것,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던 그 삶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을까요?
그 날 아이들은 무대에 오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시간이 없어 북을 여행하던 2 주일 내내 소풍 공연 연습을 했다던 고3학생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러나 우리학교 아이들은 참 대단합니다.
모두 무대를 만끽하며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아픔으로 고개숙이고 비탄에 빠져 있는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반쪽 조국인 한국에서 온 몽당연필을 따듯이 맞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공연해 줬습니다. 냉정과 증오가 살갗을 스치고 마음을 후벼 팠을 그 이역 땅에서의 칼날이 몽당연필 공연을 함께 만드는 그 순간
만큼은 녹아 없어졌길 간절히 바랍니다.
고베조고 학생들의 공연에 이어 이한철 밴드, 한충은과 기타리스트 김정환
(바드), 금강산 가극단 최영덕, 김선아, 양성희, 인기가수(손병휘, 이정열), 우리나라, 팝핀현준과 박애리, 그리고 효고현 청년상공회 등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900석의 객석이 꽉 차 그 뜨거운 열기를 받으며 동포들을 울고 웃기며 함께 지낸 2시간 30분. 4.27 정상회담의
날 아이치 현에서 있었던 무상화 재판의 부당판결의 아픔도 기념품 압수로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도 모두모두 씻겨가라 그렇게 손잡고 함께 춤추고 노래했습니다.
첫댓글 아... 추억의 니시고베학교네요... ^^ 사진 잘 보고 갑니다.
흥이 절로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