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나부터 천국 / 마태복음 6:10, 33
모든 일에 있어 스스로부터 실천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 나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서 자식에게 효도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고, 내가 예수를 믿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더러 믿으라고 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몇 년 전 종로거리에서 술에 만취해 쓰러진 청년이 있었다. 순경이 가서 그를 일으켜 신분을 조사해보니 그는 금주 운동가였다. 스스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 어찌 금주를 주장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이런 모순이 많다. 나라를 해친 사람이 애국자인 체하고, 사기로 남의 재산을 빼앗아 먹는 사람이 청렴한 체하는 것은 마치 원숭이에게 양복을 입힌 것 같다.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려면 기독교 운동이 필요하다. 남한은 북한보다 전도의 자유가 있어 남한 곳곳에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천국이 가까이 임할 것 같다. 그러나 믿음의 힘은 신앙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 비해 약하다. 많은 사람들이 믿으면서도 주일을 지키지 않는다. 반면 북한에서는 주일 성수 문제로 목사와 장로, 평신도가 많이 검거되어도 주일을 지킨다. 북한의 선거일을 주일로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모두 투표하지 않고 예배를 드렸다. 이렇게 주일을 엄수했기에 목사가 주일을 지키지 않는 교우를 꾸짖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천국이 되기 위해, 우리 사회와 민족이 모두 천국이 되기 위해 기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 자신부터 천국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천국은 언제 내게 임하는가? 내가 예수를 믿고 자복하며 회개하는 때이다. 단순히 믿는 때가 아니라, 믿고 회개하는 때, 곧 죄를 깨닫는 때이다. 베드로는 왔다 갔다 믿기는 했으나 확실히 천국을 보지 못하다가,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생선을 많이 잡은 때에 베드로의 마음 문과 천국 문이 분명하게 열렸다.
예수를 믿는 순간이 곧 천국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 이미 죄를 용서받았으니 회개할 필요가 무엇인가"라는 위험한 믿음은 천국을 소유할 수 없다. 바울도 다메섹에서 큰 빛을 보고 크게 죄를 깨달았을 때 비로소 천국을 얻었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디에 임하는가? 주께서 말씀하시길,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수 없고, 다만 천국은 너의 마음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장)고 하셨다. 천국은 서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시골에 있는 것도 아니며, 미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조선에 있는 것도 아니다. 천국은 각자의 마음속에 건설된다. 이렇게 천국이 우리 마음에 임하면, 그제서야 비로소 가정이 천국이 되고, 사회가 천국이 될 수 있다.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난다"고 하니, 우리는 우리 내면에 천국을 건설하여 그 영광이 밖으로 나타나기를 바란다. 이는 성령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인간은 천국을 볼 수도 소유할 수도 없지만, 그분이 오셔서 역사하시면 다른 세상을 개척하고 새로운 하늘과 땅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