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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럭크만 주석성경 요한복음 서문
요한복음의 저자는 세베대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인 요한이다.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다섯 차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있다(요 13:23; 19:26; 20:2; 21:7,20). 요한은 신약성경에서 다섯 권의 책을 기록했는데, 요한복음과 세 편의 서신과 요한계시록이다. 요한은 예루살렘 파괴 후, A.D. 88년부터 A.D. 90년 사이에 요한복음을 기록했다. 요한복음은 21장, 879절(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경우) 19,094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요한복음 기록 양식과 어휘는 요한이 나중에 기록한 세 편의 서신의 것과 일치한다. 요한이 즐겨 쓴 "I am"이라는 표현은 그의 저작에서 반복해서 사용됨을 볼 수 있다(요 8:58; 14:6 주석 참조).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제시한다. 누가처럼 예수님의 인간적인 측면에서 계보를 추적하여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도 않고, 마태처럼 예수님의 유대인으로서의 계보를 추적하여 아브라함까지 올라가지도 않으며, 요한은 그리스도의 계보를 창세기 1:1 이전으로 추적해 간다. 파괴적인 비평가들은 요한을 따로 분류하여, 역사적인 기록으로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요한이 이 복음서를 기록한 것은 죄인을 회심시키기 위한 것이므로(20:30-31), 비평가들은 요한이 "편견"에 치우쳤다고 말하며 역사적인 기록이 아닌 단지 신학적인 저술로만 취급하려 한다.
요한복음의 두드러진 특징은 요한이 사도 바울의 모든 서신들을 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울 서신은 적어도 요한복음을 기록하기 10년 전에 완성되어 있었다. 이것은 요한이 은혜, 영원한 구원의 보장, 그리스도의 몸 등의 신약 교리들을 접했음을 의미한다. 마태와 마가는 신약 교리들에 익숙하지 않았고, 누가도 신약 교리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지식만 있었다. 요한은 예수님의 지상사역 당시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기록했지만, 우리는 다른 복음서들에서 찾을 수 없는 바울 신학을 요한복음에서 발견할 수 있다(요 1:12-13; 3:1-6,36; 5:24; 8:3-11; 10:28-29; 14:16). 요한은 바울 교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생애 당시의 구약 신학을 모두 접할 수 있었으며, 이 두 요소가 모두 요한복음에 나타난다(요 2:1; 4:10-25; 5:25-29; 7:40-53; 9:24; 10:35-38; 15:1-7; 19:31).
요한은 그리스도의 몸의 예표다(계 4:1-2. 요 21:20-23 주석 참조). 예언을 가르치는 모든 성경 학자들이 이 관련 구절들을 찾지 못했다. 만일 이들이 이 관련 구절들을 자신의 저술에서 수록했다면, 그것은 1960년 이후의 저술에서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들은 이단 '럭크만'의 책에서 그 내용을 도용한 것이다. 그런 후 이 위선자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알기 때문에 그런 진리를 깨달은 것처럼 가장한다.
<요한복음 1장>
2 그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
3 만물은 그에 의하여 지은 바 되었으며, 이미 지음받은 것 가운데 그가 없이 지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그 빛이 어두움 속에 비치어도 어두움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인으로 왔으니, 빛에 관하여 증거하려 함이며, 모든 사람이 그를 통하여 믿게 하려 함이더라.
8 그 사람은 그 빛이 아니었고 그 빛에 관하여 증거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더라.
9 세상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비치는 참 빛이 있었으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에 의하여 지은 바 되었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더라.
11 그가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더라.
12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13 그들은 혈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또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
14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관하여 증거하며 외쳐 말하기를 “이분이 내가 말한 그분이라. 내 뒤에 오시는 그가 나보다 앞선 것은 그분이 나보다 먼저 계셨음이라.”고 하더라.
16 우리 모두가 그의 충만한 데서 받았으니 은혜 위에 은혜니라.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받았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것이라.
18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독생자, 그가 하나님을 분명히 밝히셨느니라.
19 또 이것이 요한의 증거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보내어 그에게 묻기를 “네가 누구냐?”고 하였더니
20 요한이 시인하고 부인하지 아니하였으니, 시인하기를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더라.
21 그들이 묻기를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네가 엘리야냐?”고 하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아니라.”고 하자, “그러면 네가 그 선지자냐?”고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아니라.”고 하더라.
22 그러므로 그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네가 누구냐? 우리로 우리를 보낸 자들에게 가서 답변하게 하라. 너는 네 자신을 무엇이라고 하느냐?”고 하니,
23 그가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라.”고 하더라.
24 보냄을 받은 자들은 바리새인들로부터 왔더라.
25 그들이 그에게 묻고 말하기를 “네가 그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니라면 어찌하여 네가 침례를 주느냐?”고 하니,
26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물로 침례를 주지만,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분이 너희 가운데 서 계시는데,
27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은 나보다 앞선 분이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 자격도 없느니라.”고 하더라.
2 그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
3 만물은 그에 의하여 지은 바 되었으며, 이미 지음받은 것 가운데 그가 없이 지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그 빛이 어두움 속에 비치어도 어두움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1절, 말씀은 the Word 이며 말씀들(words)과는 별개로 신격의 제 2위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Word와 word, words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태초부터 계셨고, 우리가 들었으며, 우리 눈으로 보았고, 주목하여 살폈으며, 우리 손으로 직접 만졌던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라(요일 1:1).
생명의 말씀이 아버지와 함께 계셨는데(요일 1:2) 여기서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진술하기에 조합하면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아들 하나님'인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영원 전부터 계셨던 것, 삼위의 제2신격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말씀'(Word)인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의 신격의 정확한 형상(현현)이기 때문입니다(히 1:3).
2-3절, 사도 요한은 '태초'만이 아닌 '마지막'(계 22장)에 대해서도 계시받았던 사도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세 인격 모두가 창조 사역에서 함께 사역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창조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관여하셨습니다. '주의 입김'으로 하늘들과 그 안의 군상들이 지음받았는데(시 33:6) 입김은 성령을 일컫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조주인 하나님이십니다(신 32:39, 골 1:16-17, 계 4:11).
4절, 영적인 생명이나 물리적 생명이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육체적인 생명까지도 예수님께서 조성하시는데(시 139:15, 사 49:5, 삼상 1:5, 욥 31:15)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했기에 4절에서 우선적으로 말씀하는 것은 신약 시대에 있어 '영적인 생명'인 것이 드러납니다(창 1:3, 시 36:9, 눅 2:32).
이방인들에게 비치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옵니다.” 하니(눅 2:32)
5절, '어두움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비치다(shineth)가 현재형으로 되어 있기에 이 빛은 지금도 어둠속에 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초림 때 잠시 비추고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현재도 영적으로 비추는 빛입니다. 죄인들이 이 빛으로 나아오기를 꺼리는 것은 그들이 악을 사랑하고 어두움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창 3:9).
그들 가운데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고후 4:4).
악인의 길은 암흑과 같아서 사람이 무엇에 걸려 넘어지는지도 알지 못하느니라(잠 4:19).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는 자들과 빛 대신 어두움을, 어두움 대신에 빛을 두며, 단 것 대신에 쓴 것을, 쓴 것 대신에 단 것을 두는 자들에게 화로다!(사 5:20).
6절,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앞서 이스라엘에 침례인 요한을 보내셨는데 그는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야를 받아들이도록 준비하고 회개시키는 사역을 맡았습니다(말 4:6, 눅 1:17).
7 그가 증인으로 왔으니, 빛에 관하여 증거하려 함이며, 모든 사람이 그를 통하여 믿게 하려 함이더라.
8 그 사람은 그 빛이 아니었고 그 빛에 관하여 증거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더라.
9 세상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비치는 참 빛이 있었으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에 의하여 지은 바 되었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더라.
11 그가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더라.
12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13 그들은 혈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또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
7-8절, 침례인 요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요한의 제자들은 오순절 이후 은혜의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행 18,19장). 알렉산드리아 태생의 '아폴로'와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입니다.
이 사람이 주의 도를 배웠으며 영 안에서 열심을 내었고 주의 일들을 정확하게 말하고 가르치나 요한의 침례만 알고 있더라(행 18:25).
9절, 모든 사람에게 이 빛이 비추지만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위선자들은 주님께서 오셔서 그들이 소경이라 지적했는데도 인정하지 않았고 그 결과 영적으로 소경인 채로 지옥에 갔습니다(요 9:41). '세상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이 빛에 비춰지는데 이것은 영접의 기회가 '태어난 모든 인류'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어떤 죄인이 진지하게 찾으면 만나주시는데 이 시대의 방법은 복음 전파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감지하려 하면 만나리니 그분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7).
10-11절,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더라'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며 마귀에게 지배당하고 있고 악함에 놓여 있습니다. '자기 백성'(이스라엘)까지도 악한 세상과 동조해서 빛을 거부하고 빛이신 분을 십자가에 못박게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온 세상은 악함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라(요일 5:19).
12절, '하나님의 아들들'은 요일 3:1-3과 직결되는 말씀인데 이 시대에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부활할 때 아담의 씨로는 '자매'였을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성 부활체를 갖게 될 것임을 말합니다. 그분을 영접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는 영적 지위를 얻었고 또 실제로 '아들들'이 될 것입니다(창 6:2,4, 욥 1:6; 2:1; 38:7).
이 시대에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과 창세기 6장, 욥기 1,2,38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운 그 천사들과의 주요 차이점은 후자들은 피가 없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의 효력을 받지 못하고 죄인은 피를 가진 피조물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영원히 구속되어 그분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천사들의 1/3이 계시록 12:4에서 땅에 던져지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리스도인은 그 천사들처럼 버림받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를 영접한다는 것은 그의 이름을 믿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영어 본문에는 여기서 believe 대신 'believe on'(의존하다, 신뢰하다)의 표현을 사용했기에 이것은 전심을 다해 그분을 구세주로 믿는 것을 말하지 단순히 지적으로 시인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행 8:37).
구원파들은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신 것을 '깨달아야'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깨달았으면 그것을 전심으로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칼빈주의자들도 대부분 이 기준에 미달하는데 그들은 전심으로 믿는 대신 자신이 아마도 태초에 믿는 자로 선택받았을 것이라고 자가 세뇌된 후에 교인처럼 살려고 합니다.
13절, 거듭남은 혈로, 즉 '사람의 피'로 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니코데모가 거듭남에 대해 질문했던 것은 사람이 또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날 수 있느냐는 것이었고(요 3:4) 성경은 '아담의 혈통으로는 안된다'고 단언합니다.
거듭남은 '육신의 뜻'으로도 불가능한데 '의지 숭배'와 관련이 되고(골 2:23) '금욕주의적 가르침들'을 실행함으로써(참선, 명상, 고행) 거듭남 비슷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착각하는 종교들을 말합니다.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였고, 육신적인 출생은 어느정도 사람의 뜻으로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몇명 가지자는 '가족 계획'이 영적인 출생에는 통하지 않습니다. 구원파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구주로 시인하지도 않은 채, '이제 복음을 깨달았어, 그러므로 거듭난거지' 하고 스스로 결정한다고 해서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 거듭남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셔서 모든 영적인 과정을 처리하시는 사건이지만 사람 편에서 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특정 죄인은 구원받도록 태어나기도 전에 예정하셨다면 예정된 죄인은 거부할 수도 없이 무조건 믿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그들은 '저항할 수 없는 은혜'라고 거짓말합니다. 죄인은 구원받기를 거부할 수 있고 하나님께 저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에 저항하는 죄인을 억지로 믿도록 하지 않습니다. 그런 파쇼적인 신은 무당들이 억지로 섬기는 악령이며 성령께서는 신사적으로 하십니다.
14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관하여 증거하며 외쳐 말하기를 “이분이 내가 말한 그분이라. 내 뒤에 오시는 그가 나보다 앞선 것은 그분이 나보다 먼저 계셨음이라.”고 하더라.
16 우리 모두가 그의 충만한 데서 받았으니 은혜 위에 은혜니라.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받았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것이라.
18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독생자, 그가 하나님을 분명히 밝히셨느니라.
19 또 이것이 요한의 증거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보내어 그에게 묻기를 “네가 누구냐?”고 하였더니
20 요한이 시인하고 부인하지 아니하였으니, 시인하기를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더라.
21 그들이 묻기를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네가 엘리야냐?”고 하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아니라.”고 하자, “그러면 네가 그 선지자냐?”고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아니라.”고 하더라.
14절, 여기서도 영어킹제임스 성경에서 말씀을 대문자 W로 표기하고 있고 한글킹제임스 성경에서는 고딕체로 표기하여 성경말씀(words)과 신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분합니다. '독생자'는 마리아의 태에서 태어남을 통해서 '말씀' 하나님께서 얻으신 칭호입니다.
내가 칙령을 선포하리라.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시 2:7).
'육신이 되어'(마 1:20-25, 눅 1:31-32, 딤전 3:16)는 '경건의 신비'인데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태어나신 것도 놀랍지만 사람과 똑같이 33년 반을 사셨고 사람과 같이 죽으셨던 것도 신비입니다.
'거하시므로'(dwell)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에스케노센'은 '장막을 치다'라는 의미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생일이 장막절 기간, 9월 23일 경으로 추측되는 이유입니다.
15절, 요한이 증거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인데 그렇기에 요한의 증거를 받아들인 제자들은 그리스도께로 곧바로 인도되었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하나님)라 시인하는 것(롬 10:9)이기 때문에 침례인 요한은 정확하게 그 일을 했습니다.
16절, 요한이 '우리'라고 할때 동료인 사도들을 말하고, 이 시대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은혜와 동일한 '은혜 위에 은혜'를 받게 됩니다. 구약시대에도 '은혜'는 있었지만 율법의 제약 때문에 제한적이었고 십자가 이후에는 믿는 자에게는 무제한의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가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엡 1:7).
17절, 하나님의 은혜는 창세기 2장에서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성경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말씀하는 요지는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이라는 특별한 은혜(은혜 위에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율법 하에서는 신약시대처럼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지 않았고 믿음과 행위들로 구원받았습니다(출 20:5,6, 신 24:13; 30:16-18, 롬 10:1-10).
18절, 여러 구약 성도들이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창 32:30, 신 34:10, 출 24:10, 사 6:5, 호 12:4-5), 구약과 모순처럼 보이지만 실은 구약 성도들은 하나님의 본체(혼)는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신격의 세 부분에 있어서 아버지는 불멸하는 혼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몸에 해당하고 성령은 영이십니다. 구약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혼이 아닌 몸(천사로 현현)을 본 것인데 그가 '주의 천사'였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불멸 하시며, 어떤 사람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며,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니, 그분께 영원한 존귀와 능력이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딤전 6:16).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독생자'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신 예수님을 언급하는 것입니다(골 3:1). 주님은 여전히 '인자'의 모습을 가지신 채로 셋째 하늘에 앉아계십니다.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고 하시니라(요 16:28).
20-21절, 요한은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했는데 초림 기간 중에 이스라엘이 요한의 인도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었다면 침례인 요한이 엘리야가 되었을 것입니다(마 11:14). 그러나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요한은 '엘리야의 영과 능력으로 행한 자'(눅 1:17)로 끝났습니다. 따라서 엘리야에 대한 예언(말 4:5)은 침례인 요한에서 100% 성취되지 못했고 그분이 변화산에서 보여주셨듯이(벧후 1:16-18) 진짜 엘리야가 계시록 11장에 와서 재림하시는 주님의 길을 예비할 것입니다.
'그 선지자냐'는 모세가 예언한 선지자인데(신 18:18-20) 이 말은 주님께서 초림 때의 사역을 이스라엘의 한 선지자처럼(눅 24:19, 행 3:23) 수행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선지자처럼 자연계의 이적과 치유의 이적들을 행하시고 선지자처럼 예언하시고 선지자처럼 처형되셨습니다.
22 그러므로 그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네가 누구냐? 우리로 우리를 보낸 자들에게 가서 답변하게 하라. 너는 네 자신을 무엇이라고 하느냐?”고 하니,
23 그가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라.”고 하더라.
24 보냄을 받은 자들은 바리새인들로부터 왔더라.
25 그들이 그에게 묻고 말하기를 “네가 그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니라면 어찌하여 네가 침례를 주느냐?”고 하니,
26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물로 침례를 주지만,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분이 너희 가운데 서 계시는데,
27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은 나보다 앞선 분이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 자격도 없느니라.”고 하더라.
22-24절, 요한에게 와서 네가 누구냐고 추궁했던 자들과 그들을 보낸 자들은 전부 당시의 추앙받는 종교 지도자들이고 그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었다면 침례인 요한에게 캐묻지 않고도 당장 그가 누구인지 알아 보았을 것입니다. 또 침례인 요한의 뒤를 이어 곧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것도 모를리가 없습니다. 구약 성경을 항상 연구했던 그들의 이런 무지는 이해 불가능한 지독한 '영적 흑암'인데 1:5에서 언급한 대로 그들이 '어두움'에 속했으므로 빛으로 오기를 싫어한 것입니다(요 3:20).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23절)은 이사야서 40:3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25절, '침례'는 메시야가 와서 직접 주는 것으로 유대인들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구약 선지자들이 침례를 주었기 때문에 일정한 근거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시리아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게 함으로써 문둥병을 치유했습니다(왕하 5:10-14). 엘리야와 엘리사 두 선지자가 요단 강가에 이르러서 엘리야가 외투를 말아 물을 치자 갈라져서 마른 땅 위로 강을 건넌 사건도 나옵니다(왕하 2:8). 이것도 일종의 침례에 해당하고(잠기는 것) 유대인들은 그 선지자가 나타나면 침례를 주리라 여겼는데 요한이 침례를 주니 오해한 것입니다.
26-27절, 침례인 요한의 고결한 성품이 드러나는데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출생에서부터 하나님이 개입하셨고 모태에서 성령 충만했고 이스라엘을 회개하도록 인도하는 위대한 사역자였습니다(눅 1:5-17). 그런데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즉각 종의 자세를 갖추고 겸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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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한복음도 듣고 싶었는데..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