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월 31일 정식 국회가 있은 후에 계속하여 개회하고 먼저 국호를 정할 새 여러 가지로 제출되었다. 혹은 조선 혹은 고려 혹은 대한 이렇게 토론되어 결국 대한(大韓)이라 정하였다. 대는 크다는 말이요 한은 동방을 의미하고 또는 크다는 뜻이다. 그러니 우리 국회는 대한민국 국회이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크고 또 크자 함이다.
그 다음은 시급한 것이 헌법이다. 각 9개 분과위원을 정하고 각 위원들 이월 여를 두고 주야 연구하여 헌법을 기초할 새 위원들은 잠을 자지 않고 기초하였다. 헌법은 전문이 모두 103조로 되었는데 국회에 일일 통과하여 제3 독회(讀會)를 마치고 동년 7월 17일에 국회의장 이승만 박사의 서명으로 완전한 국법임을 국외와 만방에 선포하니 동일에 국내 집집마다 국기를 게양하고 축하하며 미국사령부 하디 중장과 손문정 장관의 축하의 말이 있었고 유엔위원도 또 각국 내빈도 다 축사가 있었다.
5월 31일에 정식 국회가 탄생하고 7월 17일에 헌법이 탄생하고 동 27일에 정부통령 선거를 선언하고 투표(投票)한 결과 이승만 박사가 최다점 180표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부통령을 선거할 새 이시영(李始榮) 씨가 최다점 113표가 되었으나 회원 3분의 2가 되지 못함으로 다시 투표한 결과 김구 씨로 더불어 경쟁하다가 이시영 씨가 역시 3분지 2이상이 되어 부통령으로 피선되었다.
이번 국의원 투표와 정부 대통령선거투표는 절대 국민대중의 양심의 움직임이라 볼 수 있다. 누구의 눌림도 없고 누구의 시킴도 없고 가장 양심적이며 가장 자유롭게 되었다. 이것이 나라의 생명이요 조선이 다시 사는 표이다. 이날은 곧 1948년 7월 20일이다.
며칠 전부터 군정장관은 신정부에 정권을 넘기려고 각국과장에 사직을 권고하고 각 문부를 정돈하라고 지령을 발하였다. 이날에 나오는 민중의 만세소리야 참으로 만세이다. 삼일운동의 만세는 예비의 만세이요 이번은 참 만세이다. 유엔 위원은 이제야 성공하였다고 기뻐하며 이것은 조선의 성공뿐 아니라 국제의 성공이며 약소국의 성공이다. 전 국민은 소련국의 위성국으로 만들려는 공산당을 제하고는 아니 기뻐할 자 없다.
국무총리는 선정 후에 국회의 승인을 요하게 되는데 누가 당선될 것인지 이승만 박사가 계시는 이화장은 자뭇 복잡하고 혹 민중요인들이 왕래한다. 먼저 국무총리를 선하였는데 이범석(李範錫)장군으로 결정되다.
동 9월 21일에 불국파리에서 국제연합 이사회가 개회되었는데 우리 정부에서도 대표를 파송하여 한국을 국제 승인국으로 청원하기로 가결하고 대표를 선정할 새 장면 김활란 정일형 김규홍(金奎弘) 등을 파송하였다. 한국위원들이 도착 즉시로 옵서버 자격을 허락하여 우리 위원(委員)도 유엔에 참석하게 되었다.
동시에 소련대표는 북한대표도 참석할 것을 제의하여 34대 6으로 부결되었으나 한국문제를 지연시키려는 소대표 연설이 있음에 불구하고 미중호 삼국대표가 5개조를 제의하였는데
1. 유엔 한국위원회의 보고를 접수할 것 2. 대한국민 정부를 전한 정부로 인정할 것 3. 한국 소규모의 국방군을 만들어 외군을 철회케 하고 남북을 통일케 할 , 4. 국군 이외에 유사한 군사단체를 해제할 것 5. 외군철퇴는 신학국 위원총회에도 토의 되어 48대 6으로 가결되어 유리 대한민국이 국제연합회의 가결로 국제연합국으로 승인되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당당한 독립국으로 승인된 것은 우리 민족의 성공이다. 이 소문이 세계 각국에 알리어지고 우리나라에 이 소문이 전달됨에 집집마다 태극기가 펄펄 날리고 전 민족은 기뻐 뛰며 노래하였다. 남한 일대는 환희의 천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