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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의 시노드 담화문]
사랑하는 대전교구 형제자매님, 수도자님, 사제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15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부터 2016년 11월 20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를 「자비의 특별 희년」으로 선포하셨기에, 오늘은 은혜로운 자비의 특별 희년이 시작되는 첫날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원죄 없으신 성모께 한국교회를 봉헌하고 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하여 오늘을“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로 정하였으므로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자비의 특별 희년」의 시작 예식은, 하느님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그동안 닫혀 있던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 성문’을 교황님이 여는 것에서 막이 오릅니다. 그리고 지역교회의 다른 대성당의 성문들도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자비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주제로, 당신의 주교 문장의 모토를 ‘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로 정하신 것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도 ‘자비’라는 단어가 32차례나 등장합니다. 교황 칙서인 「자비의 얼굴」을 발표하시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이”시라면서, 분노에 더디시고 자비로우신 분이 하느님의 본성임을 강조하십니다. 이처럼 자비로우신 아버지를 닮은 교회이어야 하고, 자비로운 그리스도인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자비의 특별 희년」의 의미입니다. 「자비의 특별 희년」을 통하여 교회가 있는 모든 곳이, 특히 나와 우리 공동체가 있는 곳이 무자비와 무관심의 바다 한가운데에 떠있는 ‘자비의 섬’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처럼 은혜로운 날에 저는 기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들에게 “대전교구 시노드 개최”를 선포하는 역사적인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시노드’는 ‘syn+ hodos’라고 씁니다. 즉, ‘함께 길을 간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의미의 시노드는 공동합의성 (synodality)을 지향합니다. 시노드는 교회의 비가시적인 친교 개념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구체적인 삶에서 실현하는 기능적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하느님 백성 모두가 실존적인 삶에 적용되는 교회적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노드의 궁극적 목표는 친교의 영성을 향한 하나 됨의 길입니다. 우리는 시노드를 통해 함께 걸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듬고 배려하면서 신앙인으로서의 삶에서 만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함께 찾아갈 것입니다. 이런 함께 가는 삶의 여정을 통해 친교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늘 함께 하시면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공의회도 그러하듯, 시노드를 준비하고 진행하며 이끌어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시노드에 대한 여러분의 염려, 시노드를 개최했을 때에 교구장인 저에게 과중될 업무 부담, 더 큰 위기로 진전될 수도 있는 관계들이 큰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참으로 오랜 기간의 기도를 통한 식별로 대전교구의 시노드 개최가 힘이 들더라도 우리가 걸어야 할 길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교황님의 우리 교구 방한을 추진할 때도 이와 같았습니다. 짧은 시간을 앞두고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아시아 청년대회’에 교황님을 초대하는 일은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제 안에 소망으로 자랐습니다. 소망은 준비를 위한 열정을 싹 틔우고, 그 열정이 두려움과 편리주의라는 합리적 유혹을 물리쳐서 기적처럼 교황님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와 사회 안에 많은 변화의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물론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의 전구, 여러분의 희생과 기도, 협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 속에 하나의 큰 행사를 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도록 이끄시는 하느님, 양보하고 실수를 감싸주는 손길, 그리고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느님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이번 시노드도 그런 여정이 되리라는 희망과 확신이 제 안에 있습니다.
또한 기도 가운데 시노드가 요청되는 ‘지금, 여기’를 식별해 보게 됩니다. 과학과 경제의 발전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거짓 믿음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기아,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와 환경, 빈부격차, 청년 실업 등이 모두 과학과 경제가 조금 더 발달해서 늘어난 생산량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리 그리고 선함을 정초할 기반은 종교의 붕괴와 함께 이제 존재 가치마저 논하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종교를 향한 전 세계인의 비난은 점차 거세집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잔인한 테러와 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세속인들에게 주요 종교들의 다툼과 분열은 성스러움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증거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인간의 아름다움과 생명은 과학과 의술의 칼날에 온전히 내맡겨진 듯합니다. 기술을 살 수 있는 돈이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으로 우리 모두를 지배합니다. 우리의 생각, 말, 행동, 경제, 과학, 군사, 외교 등 모두를 말입니다. 종교인의 수는 늘어나기보다 오히려 감소하며, 더 이상 신앙인, 사제 ‧ 수도자라는 이유로 존경을 받는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성당의 비어가는 자리를 어떻게 채울지를 고민한다면 그 뿌리는 대단히 깊은 곳에 있음을 우리 모두는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속한 대전교구는 바로 이러한 모든 실상이 응집된 곳, 그 최첨단에 놓여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과학과 기술을 이곳 대전이 이끌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농촌의 붕괴, 농촌과 도시의 극심한 간극, 이주노동자로 대체되는 농업노동력, 다문화 가정이 가진 여러 문제 등이 모두 대전교구의 특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문제들입니다.
교황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보여주신 행보와 말씀들을 우리는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자비의 특별 희년」을 살아야 하고, 교황님의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실행에 옮기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남과 북이 갈라진 불신과 소통 부재의 현실을 용서에 바탕을 둔 화해를 통하여 나눔과 사랑을 실천에 옮겨 형제애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장한 순교자들께서는 최고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순교자의 믿음과 사랑의 삶을 오늘의 우리가 구체적으로 받아들여 이 사회를 구원하는 빛과 소금,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다른 교구보다 더 우리 대전교구가 시노드를 절박하게 요청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어떻게 접근할지, 청소년 선교에 어떻게 적용할지, 세속화의 위기로부터 신앙인다운 삶의 자세를 어떻게 찾아낼지, 가정의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며 여러 종교로부터 유입된 문화와 사고방식을 어떤 자세로 교회가 대하고 선교를 이끌어갈지, 생태 회칙을 반영한 삶의 변화를 어떻게 실현할지, 죽음의 문제가 아닌 삶의 문제로 순교를 어떻게 해석하여 신앙적 삶의 주춧돌로 바로세울지 등 우리 대전교구에 놓인 현안 문제가 곧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일 정도로 많습니다.
시노드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가 가는 길 그 자체입니다.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들이 모두 같은 품위의 하느님 백성으로 마주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상처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안에서 슬퍼하실 예수님을 뵙고 용서를 청하며 화해를 해야 합니다. 시노드는 이처럼 우리의 귀를 열어주고, 마음을 통하게 하는 성령의 이끄심에 맡겨드리는 여정이며, 복음의 가치를 함께 되새기고 이를 널리 전파하는 기쁨을 나누는 여정입니다.
교황님께서 주재하신 주교 시노드도 결코 원만하게 진행되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갈등도, 반대도, 몰이해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전 세계에서 모인 주교와 추기경들, 전문가로 참석한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차이를 좁혀갔으며 주어진 문제에 머리와 마음을 합함으로써 전체 교회가 하나 됨을 향하여 더욱더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시노드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불만과 불편함도 많고, 번거로움, 갈등, 격한 감정의 오고감, 어려운 합의과정, 서로의 차이만 확인하는 듯한 절망감,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마주함 등 참으로 힘든 어려움이 있음을 모두가 분명하게 알고 시작하는 길입니다.
함께라면 갈 수 있는 길, 함께여서 갈 수 있는 길, 함께이기에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차이가 이해로, 이해가 일치로 변화되는 신비의 여정을 이끌어 주시리라 믿으며, 우리 모두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시노드를 위한 기도를 시작합시다. 한 사람의 예외 없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열어주시기를, 타인을 받아들일 공간을 마련하여 주시기를, 귀를 열어주시고 연민의 마음을 허락하시며, 팔을 뻗어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여유와 배려와 용기를 주시기를 다함께 기도하며 시노드를 시작합시다. 자신의 생각을 용기 있게 표현하고, 상대의 말을 열려 있고 겸손한 자세로 들어줄 때에 성령께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성령의 은총 속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우리 함께 갑시다!
함께라면, 성령께서 이끌어주신다면, 우리는 기쁘게 웃으며 더욱 일치된 평화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변화된 모습이 교회 안과 밖에 향기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그리고 걸어갑시다! 두려움을 버리고, 손을 벌려 함께 손을 잡고, 머리와 마음을 합해 봅시다. 함께 걸어가는 여정인 시노드를 함께 준비하고 시작합시다. 고맙습니다.
2015년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유흥식 라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