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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김기림
나의 소년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참여시
• 율격 : 내재율
• 성격 : 감각적, 애상적, 회고적
• 제재 : 길, 여읨(헤어짐)
• 주제 : 길 위에서 여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상,
상실감으로 인한 고통과 애상감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로 인한 슬픔과 잊혀지지 않는 그리움
• 구성 :
* 1연 : 어머니를 여의었던 소년 시절(과거 회상)
* 2연 : 첫사랑을 잃어버림(과거 회상)
* 3연 : 상실감으로 인한 방황(과거 회상)
* 4연 : 고통으로 보낸 나날들(과거 회상)
* 5연 :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그리움에 젖음.(현재)
• 표현 :
* 산문적인 호흡과 회상적 어조, 성장소설과 같은 정조
*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대상을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
* 공간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시상이 전개됨.
→ 길(과거, 상실감과 고통) - 강가(과거, 상실감과 고통) - 버드나무 밑(현재, 회상과 그리움)
• 출전 : <조광>(1936)
▰시구의 이해
♣ 은빛 바다 : 감각적 이미지
♣ 어머니, 첫사랑 : 그리움의 대상
♣ 조약돌 : 첫사랑의 비유
♣ 호져 : 혼자
♣ 강가 : 배경의 변화
♣ 노을에 함북 ~ 돌아오곤 했다 ; 공감각적 심상
♣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 계절의 순환, 즉 세월의 흐름
♣ 봄이, 여름이, ~ 다녀갔다 : 시간의 흐름. 오랜 세월이 흐름
♣ 어두운 내 마음 : 상실감으로 인한 고통
♣ 모래둔과 ~ 몸서리쳤다 : 스산한 분위기
♣ 항용 ; 항상, 늘
♣ 버드나무 : 과거의 기억을 현대의 시간대로 끌어들임
♣ 돌아오지 않는 ~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 : 시적 화자가 잃어버린 것들(상실감의 원인)
■ 작품 해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의 슬픔과 애상을 산문적 호흡으로 풀어 내고 있는 작품. 제재인 ’길’은 ‘떠나보내는 길’이며, 그 길에서 떠나보낸 어머니, 첫사랑, 잃어버린 기억들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1연은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화자의 소년 시절은 끝나버렸다고 말한다. 실제 김기림의 어머니 밀양 박씨는 아들이 장성하는 것을 지켜 보지 못하고 그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불귀의 몸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천진난만 어리광을 부리던 어린 소년에서 슬픔을 인내하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의미이다.[죽음]
2연은 어머니의 상여가 아스라이 사라져 가던 그 언덕길에서 첫사랑을 만났다가 바로 그 언덕길 위에서 잃어버렸노라고 말하고 있다. 조약돌처럼 작고 아름답게 시작되었으나, 또한 조약돌처럼 가슴에 단단한 슬픔만을 남긴 채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이다.[이별]
3연에서는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에 겪은 이러한 상실의 아픔으로 인하여 죽은 어머니와, 잃어버린 첫사랑의 추억이 서려 있는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 저녁 노을이 물들 무렵이면, 눈물에 젖은 채 쓸쓸하게 돌아오곤 했다고 회고한다. ‘푸른 하늘 빛’은 동경을, ‘노을’은 그리움을, 그리고 ‘자주및으로 젖어서’라는 구절은 화자가 그리움의 눈물을 흘렸음을 의미한다.[그리움]
4연의 시적 공간인 ‘강가’는 바다에서 시작하여 강으로 이어지는 상실의 공간이자, 제재인 ‘길’의 변형된 이미지이다. 그 상실의 공간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여러 번 흘러갔지만, 화자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슬픔들을 간직하고 있다. ‘누런 모래둔(모래 언덕)’은 우울한 화자의 마음의 반영이며, ‘감기’는 잃어버린 것들로 인한 ‘깊은 슬픔’을 형상화한 것이다.[상실감(슬픔)]
5연은 ‘지금도’라는 어휘에서 알 수 있듯, 현재의 상황이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는 그만큼 화자의 슬픔이 오래되었음을 의미하며,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화자는 지난날을 잊지 못하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해가 기울어 밤이 올 때가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빰의 얼룩’은 화자의 눈물을 의미한다.[기다림과 눈물]
죽음, 이별, 그리움, 상실감(슬픔), 기다림과 눈물 등 슬픈 소재들로 시상은 전개되지만, 공간의 변화(바다-->강가-->버드나무)와 함께 한 소년의 성장 소설과도 같은 이 작품의 전체적인 정조는 아름답고 감미롭기까지도하다. 주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의 슬픔과 잊히지 않은 그리움’
■ 이해와 감상 1
이 시는 시인의 유년 시절을 아름답게 회상하고 있는 작품이다. 1~3연까지의 중심 소재는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 이다. 이 길 위로 어머니의 상여가 지나가고, 그 길에서 첫사랑을 만났다 헤어지고, 그 길을 넘어 강가로 가 노을에 젖어 돌아오곤 한다. 유년 시절의 화자에게 아픈 기억을 남긴 사건들이다.
4연의 배경은 ‘강가’이다.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와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라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1~3연의 사건들로 인해 화자의 유년 시절에는 슬픔의 정조가 짙게 배어든다. 5연에서는 그로 인한 상실감에 시달리는 화자의 막막한 기다림이 나타나 있다. 그 기다림의 공간은 ‘늙은 버드나무 밑’이다. 늦도록 무언가를 기다리는 화자의 뺨에 눈물(‘내 뺨의 얼룩’)이 흘러내린다. 죽음, 이별, 상실감, 기다림, 눈물 등으로 표현되는 유년 시절의 아픈 기억이지만, 그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화자의 시선은 따뜻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 이해와 감상 2
이 시는 길을 바라보며 그 길에서 사람들을 생각하는 애상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제재로 사용한 ‘길’은 ‘떠나보내는 길’이다. 그 길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여 길 위로 여읜 사람들을 추억한다. 어머니, 첫사랑, 잃어버린 기억 등을 길 위로 떠나보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의 길은 이별의 길이고, 망각의 길이며, 상심의 길이다. 길을 통해 그들을 찾으려 떠나거나 추적하지 않는다. 다만 그 길의 초입에서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다. 그런데 그것이 구체적인 생활 장소와 얽혀 있는 추억과 연결됨으로써 읽는 이의 공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길’은 ‘강’과 연결된다. 강이 계속해서 흐르는 것처럼 시적 화자는 언덕길 위에서 많은 것들을 떠나보낸다. 하지만 계속해서 떠나보내는 시적 화자가 오르내리는 길과 시적 화자를 오래 전부터 지켜보던 버드나무는 여전히 그 곳에 남아 있다. 이러한 것들이 자꾸만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고, 추억의 감정을 만들어 낸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강과 버드나무인 것이다.
■ 내용 연구
시적화자는 언덕길에서 어머니와 첫사랑을 잃고, 그 상실감으로 인해 강가에서 방황의 나날을 겪었다. 그리고 현재 버드나무 밑에서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잃어버린 것들을 떠올리며 애상감에 젖어있다.
나의 소년 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시각적 이미지. 슬픔의 이미지 시적공간1 그리움의 대상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어머니의 상여 : 추리 → 부모를 일찍 여윈 시적 화자의 처지
⇒ 1연 : 어머니를 여의었던 소년 시절(과거회상1)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리움의 대상 작고 아름다운 사랑(첫사랑)
⇒ 2연 : 첫사랑을 잃어버림(과거회상2)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혼자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江)가로 내려갔다가도
시각적 이미지 시적공간2
노을에 함뿍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떠나간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외로움, 이별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행동
노을에 함뿍 자주빛으로 젖어서 : 공감각적 이미지(시각→촉각)
⇒ 3연:상실감으로 인한 방황(과거회상3)
그 강(江)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시간의 흐름, 오랜 세월이 흐름(계속되는 외로움(외로움의 심화), 의인법, 관념의 사물화)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고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
모든 것이 떠나감 상실감으로 인한 고통(황폐화되고 폐허화된 시적 화자의 마음)
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화자의 심적 진통, 성장의 아픔 감기 : 아이에서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의 진통.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인한 병
⇒ 4연 : 고통에 시달린 나날들(과거회상4)
할아버지도 언제 낳은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매우 오래된 과거를 현재를 이어주는 추억의 매개체. 역사의 증인 시적공간3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화자가 어린 시절 잃어버린 것, 화자의 소년기 내면적 진통을 가져다 준 것들(상실감의 원인)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활유법, 시간의 경과 내 뺨의 얼룩 :눈물의 자국. 그리움으로 인해 흘리는 눈물
⇒5연:소년 시절의 추억을 회상함(현재)
■ 참고
김기림(金起林)이 태어난 곳은 함경북도 성진에서 서북쪽으로 30리 가량 떨어진 학성군 학중면 임명(臨溟)이라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위도상으로 그곳은 북위 41도가 되었다. 백두산을 주봉으로 한 장백산맥이 동쪽으로 치달려 마천령을 이루었다. 그의 고향인 임명은 그 마천령이 바다로 흘러내리는 바닷가에 있었다 . 바닷가 마을이라는 뜻으로 임명이라는 지명이 붙은 것 같다.
이 마을에서 김기림은 부친 김병연과 모친 밀양 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인간 김기림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거멀못 구실을 하는 것이 그 집안의 생활 환경이다. 그의 아버지는 별로 넉넉하지 못한 집의 둘째로 태어난 듯하다. 그리하여 당시 우리 사회에서는 신분 인정의 기본 요건인 글, 곧 한문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그 대신 그는 이재(理財)에 상당한 능력을 지녔던 것 같다. 별 밑천도 없이 한 동안 중국의 동북쪽과 시베리아 등지를 드나들었다. 그리고 토목사업에 손을 댄 것이 성공해서 중년에 이르자 상당한 재산을 손에 넣었다는 것이다. 그 밑천으로 그는 고향 인근의 토지와 산을 사 모았다. 8.15에 이르기까지 인근에도 널리 알려질 정도의 지주가 되었다고 한다.
김기림은 과수원집 대지주의 아들로 애지중지 떠받들려서 자란 것 같다. 그가 태어난 것은 부친인 김병연이 나이 30을 넘어서의 일이다. 그 무렵만 해도 사람들은 10대 후반에 아들을 본다. 그럼에도 김병연은 잇달아 딸만 여섯을 보았다. 거기다가 김기림의 어머니인 박씨 부인은 별로 건강한 몸이 아니었다 .이래저래 아들이 없어서 애를 태운 것 같다. 그런 나머지 김병연 부부는 인근에서 영험하다고 소문이 난 무당을 불러서 굿판을 벌였다. 그러자 무당이 신들린 말로 일러 주었다. 그것이 정히 아들을 보려면 막내딸을 남에게 주도록 하라. 그리고 이후 절대 그 딸을 집안에 들여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김병연 부부는 무당의 말대로 막내딸을 성진에 사는 교회의 목사에게 양녀로 주었다. (그 집은 자식이 없었다.)그러고 나서 얼마 안 되어 김기림이 잉태된 것이다. 부친은 해외를 들락거린 사람이어서 무당 같은 것은 미신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무당의 말을 따라서 푸닥거리를 한 결과 얻은 아들이 김기림이다. 이런 사실은 그의 탄생이 적어도 한 집안의 매우 간절한 소망과 함께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한편 이렇게 귀한 아들을 낳은 어머니 박씨는 그 아들이 장성하는 것을 지켜 주지 못했다. 김기림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셋째 딸인 신덕과 함께 불귀의 몸이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김기림이 크게 각박한 세상을 산 것 같지는 않다. 그에게는 지주이며 재력가인 아버지라는 튼튼한 방풍림이 있었다. 그리고 본 어머니가 아니지만 그 후 곧 계모를 맞이해 들였다. 그녀가 단천에서 자란 전주 이씨다. 계모는 아들도 낳고 집안일도 넉넉하게 보살펴 주었다.
그러나 이런 외재적 환경에 비해 김기림은 적지 않게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훗날 어느 글에서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그의 감정을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라고 적었다. 이런 감정 속에는 셋째 누이의 그림자도 곁들여진 듯 보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새어머니가 들어왔지만 그녀는 큰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무시로 본 어머니 무덤가에 울음 우는 버릇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빌미로 그녀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들 일련의 사실은 소년 김기림을 매우 감상적인 쪽으로 내몬 것 같다.
"사실 나는 열다섯 살 때에 중학교의 작문 선생으로부터 '애가 이 뽄으로 글을 쓰다가는 필경 자살하겠다'하는 경고를 받은 일이 있다. 내가 오늘 감상주의를 극도로 배격하는 것은 나의 영혼의 죽자고나 하는 고투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 때의 공부하던 누이와 그리고 어머니, 내가 여덟 살이 채 차기도 전에 나의 어린 날을 회색을 물들여 놓고는 그만 상여를 타고 가 버렸다. 잔인한 분들이었다."
결국 김기림에게 고향은 이런 죽음들이 정신의 늪지대로 작용한 곳이다. 이것은 그가 지향한 예술 세계을 해석하는 데 하나의 시사가 될 수 있다.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끝없이 새로운 것, 밖을 향해서 떠나려는 의지가 나타난다. 몇 개의 글에서 그는 한 발자국 앞서 서울 유학을 떠나는 누이를 부러워한 바 있다. 그 고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날아가고 싶어했다.
그 후 그 역시 서울로 유학을 했다. 그러나 얼마 동안의 서울 체재 경험을 가진 다음 다시 그는 동경으로 떠났다. 동경에서 전문교육을 받은 다음 그는 귀국했다. 당시로서는 상당한 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일보 기자로 일했다. 그러나 이 안정된 직장과 생활도 그를 오래 묶어 두지는 못했다. 조선일보 기자 생활이 얼마되자 그는 다시 또 하나의 외계를 향한 날개짓으로 일본 유학길을 떠난다.
그의 문학, 곧 시와 비평도 이와 흡사하다. 귀국에서 문단에 등장하자마자 그는 곧 초현실주의를 소개하고 엘리엇 '황무지'에 비견될 장시 '기상도'를 썼다. 그리고 그 후에도 문학적 변신을 계속한다. 단적으로 김기림은 끊임없는 여행주의자다. 그 소인의 중요 부분을 그의 유년기 체험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14세가 되던 해 서울 유학길에 올라 김기림은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보성고보에서 그는 탁월한 성적이었다 거기에는 임화, 이헌구, 윤곤강, 김환태, 이상 등의 장래 시인, 작가 들도 있었다. 특히 이상과의 사이는 남달랐다. 김기림이 그의 시론에서 이상의 시를 호평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후에 그가 재차 도일하자 이상이 시집 '기상도'의 교정을 맡았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뒤를 따르기라도 하듯 이상도 현해탄을 건넜다.
이 보성고보를 김기림은 3학년 때 그만두었다. 표면적 이유는 병이 나서 요양차 고향에 내려갔기 때문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병이 나아서 건강이 회복되어도 보성에 복학은 하지 않았다 .대신 동경으로 건너가 명수중학 4학년에 편입학을 했다.
이 때는 누이 중 한 사람인 선덕과 함께 자취를 했다. 그 전에 선덕은 도일하여 경도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러던 것이 김기림이 동경으로 건너가자 거기서 합치게 된 것이다. 김기림은 여기서 부지런한 공부꾼이었던 것 같다. 명교중학에서 한 해 남짓 공부하고는 문부성에서 실시하는 검정시험을 보았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리하여 1926년 열 아홉에 일본대학에 입학하였다.
일본대학에서 김기림이 적을 둔 학과는 문학예술과였다. 일본대학 시절 김기림을 이야기하는 경우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 그와 일본 모더니즘 운동의 관계다. 일본 문단의 모더니즘 운동은 입체파, 표현파, 다다, 초현실주의 및 이미지즘, 아나키즘 운동을 두루 망라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특히, 초현실주의의 출현은 서구의 전위 예술운동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일본 동경 문단에 강한 충격이 된 듯하다. 이런 분위기가 모더니즘의 기수 구실을 한 김기림에게 자극이 되었다.
김기림의 동경 유학 시절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다른 문학인들과 달라서 그는 자신의 이력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또한 일본대학의 학적부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소실되어 버렸다. 그의 보성고보 학적부도 6.25때 소실되고 전하지 않는다 .이런점으로 인하여 그는 학적 조회가 어려운 문학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